불꽃은 피아를 구분하지 못한다.
프로메테우스의 희생으로 불을 알게 된 인간은 그의 가르침으로부터 교활한 지혜를 깨우쳤다. 이를 토대로 인간은 불꽃을 통제해 자신들을 더욱 번성케 했다. 불의 공포는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불씨도 방심하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을 일으킨다. 불에 익숙해진 인간은 그 점을 간과했다.
신께서 내려준 교활한 지혜가, 인간에게 자만심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불을 가까이 했다. 이를 멀리하기엔 불이 지닌 메리트가 너무나도 절실했다. 인류의 발전은 불에서, 그리고 불에서 발산하는 빛에서 비롯되었다.
동화가 전설로, 전설이 신화로, 신화가 다시 동화로 승화되기까지 억겹의 세월이 흘렀다. 바야흐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자기중심적 기준을 확립한 시대. 그 찬란함을 상징하는 문물이 바로 시계다.
마치 카운터라는 신인류에게 힘을 주는 워치처럼, 인류는 우주적 시계열을 자신들 기준으로 새로 재정립했다.
어찌 이토록 오만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사그라들지 않는 화마에 삼켜진 시계탑은, 마치 인간이 차근차근 쌓아올린 문명이 얼마나 덧없는지 시사하는 듯 보였다.
"장난 아니네."
서둘러 화재 현장으로 달려온 강소영이 나직히 한탄했다. 눈을 뜨기 두려울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후덥지근한 공기가 그녀를 덮쳐온다.
오늘의 약속 장소였던 시계탑은, 이미 손 쓸 도리 없이 새까맣게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자칫 손을 가까이 대기라도 하면, 그대로 화마에 삼켜질 것만 같은 감각이 그녀를 휩쓴다. 내뿜어지는 열기만으로도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뻘뻘 흐르자 강소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되게 난감한데요...?"
입가에서 미소를 싹 지운 채, 한없이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저 멀리 그녀가 선배와 술을 마시던 호프집까지 충격이 올 정도면 보통 수법으론 불가능하다. 요즘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현상이 일어나면 하나같이 특정 존재를 떠올리곤 한다.
"역시 카운터이려나?"
카운터.
강소영은 자신이 쫓는 중인 범죄자를 떠올렸다.
범행의 죄질을 떠나 타고난 성격 탓에 주변 원한을 꽤 많이 산 친구다.
무엇이든 발화시키는 힘을 지녀 이터니움 광산에서 알차게 쓰였던 그는 형기를 마치고 얼마 안 된 지금, 본인이 쌓은 업보 탓에 어떤 조직에게 쫓기고 있었다.
민병대.
제대로 죗값을 치루지 않은 카운터 범죄자에게 의뢰를 받아 사적 제재를 가하는 굉장히 극단적인 자경 단체이자 강소영과 선배가 따르던 팀장이 속한 조직.
"괜히 경정님만 따돌리고 왔나?"
이번 테러 사건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직감이 그렇게 고하고, 강소영이 그렇게 여겼다.
당장이라도 현장을 뒤져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고 싶은 그녀였지만, 공교롭게도 이 화재를 전부 진화하기 전까진 그 소망을 이루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어쩔 수 없네."
불끈 쥐었던 주먹을 가벼히 풀어낸 그녀가 화재로부터 등을 돌렸다.
"일단 주변 교통부터 정리해야겠지...?"
민중의 지팡이에게 시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그게 경찰의 일이었으니까.
"시민 여러분! 경찰입니다! 모두 지시에 따라서 대피해주세요! 거기 학생! 불구경 재밌는 건 알겠는데 때와 장소는 좀 가리자!"
품에서 경찰 수첩을 꺼낸 뒤, 그녀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면서도 순서를 착각하지 않고 구경꾼이 된 시민들을 제일 먼저 대피시켰다.
'뭐가 됐든 현장 주변에 사람이 많은 건 별로 좋지 못한 현상이고....'
이번 시계탑 화재는 사건의 단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이곳에 머물게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반쯤 억지로 시민들을 뒤로 물린 그녀는 따로 자켓 주머니에 챙겨둔 접근 금지 테이프를 꺼내 저지선을 그었다. 혼자임에도 퍽이나 익숙한 몸놀림이었다.
잠시 후, 소방차와 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속속 현장에 도착해 어렵지 않게 현장 통제가 이루어졌다. 강소영은 자연스럽게 현장 지휘를 담당 지구대에 떠넘기곤 저지선 밖으로 빠져나왔다.
"좋아. 그럼 어디 본격적으로 탐문을 시작해볼까?"
사복의 젊은 여성이 품에서 수첩을 꺼내든 모습은 흡사 경찰보단 기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익숙한 듯 주변에서 불구경을 하는 시민들에게 접근해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첫 타자는 화재 현장 근처에서 장사하던 포장마차 주인이었다.
"화재 직전에?"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묻자 포장마자 주인이 거친 턱수염을 매만졌다.
"내가 장사하느라 워낙 정신이 없어서... 다만 조금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지?"
"이상한 냄새요?"
"그...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고기 익는 냄새였어.
포장마차 주인은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타자는 노래방에서 나와 다음엔 어디로 갈까 고민중이던 남학생들이었다. 큰 기대 없이 고른 대상에게서 그녀는 예상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니까 웬 남성이 쫓기듯이 골목길에서 뛰쳐나왔다는 거죠?"
"ㄴ, 네! 막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레알. 괴물이 쫓아온다면서 막 비명 지르길래 침식체라도 나타난 줄 알았다니까?"
작은 체구의 남학생이 벌벌 떨면서 수상했던 행인의 행색을 설명했고, 뒤를 이어 건방지게 생긴 남학생이 낄낄 웃으며 사견을 덧붙였다.
남자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뒤, 강소영이 물었다.
"그 남자는 어디로 사라졌나요?"
"그게 그러니까 막 손에서 반짝이 마냥 빛이 나더니 그대로...!"
"그대로?"
작은 체구의 남학생이 설명을 허둥대자 보다 못한 건방진 남학생이 참견했다.
"그냥 갑자기 '꽝!'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렸더니 귀신처럼 사라졌지."
"마, 맞아! 뭔가 번쩍한 것도 없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오호라? 귀신처럼 사라졌다?"
여지껏 들어온 것과 전혀 다른 형태의 증언에 강소영의 손에 들린 볼펜 단추가 아랫입술을 꾹 밀어올렸다.
'아직도 시중에 엘릭서가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일부러 그녀가 쫓은 카운터 범죄자의 능력은 발화였다.
폭발도, 그렇다고 은신도 아닌 발화.
영민한 그녀의 두뇌가 제법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했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엘릭서가 용병 네크워크, 언더 그라운드를 통해 퍼졌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소영이 서둘러 학생들에게 마주 웃었다.
"협조 고마워요 친구들. 이건 협조해준 답례야."
"에이. 우리가 애도 아니고 무슨 사탕이야. 됐어요."
"고, 고맙습니다."
"대신 위험하니까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다? 부모님들 놀라셨겠다."
요즘 보기 드문 풋풋한 반응에 강소영은 입가가 한결 느슨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시민들의 답변도 대개 비슷했다.
웬 남자를 보았다. 폭발이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계탑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더는 탐문으로 얻어낼 게 없다고 판단한 강소영이 수첩을 덮었다.
"협조 감사드려요."
"아, 잠깐만요 기자 누나. 그 일 끝나시면 저랑 같이 술이라도... "
"요즘 밤길이 좀 많이 뒤숭숭하니까 늦게까지 놀지 말고 얼렁 집에 들어가렴 꼬마야."
마지막 탐문 대상이었던 청년의 지속적인 추파에 슬그머니 경찰 수첩을 보여주며 간신히 떨쳐낸다. 귀찮게 엉겨붙는 이 없는 저지선 테이프 안으로 피신한 그녀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별로 기대하진 않았지만, 소득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녔다. 부상을 입고 도망치던 남자의 인상착의는 그녀가 쫓던 범죄자의 것과 동일했다. 덕분에 그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졌지만,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수확이다.
대신 범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또 그를 쫓던 괴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덩달아 범인의 정체도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모든 게 오리무중이다.
강소영은 미궁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으읏! 블랙박스나 CCTV도 확인해야 하는데..."
허리를 피는 척 주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 법한 위치를 면밀히 살핀다.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라 CCTV는 시야에 제법 여러 개가 잡혔다. 하지만 중앙 광장은 자가용 출입 금지 구역이라 블랙박스를 찾긴 어려워 보였다.
"뭐, 있어도 단서를 남기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손놓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지구대에게 따로 요청할 도움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그런데 자꾸 무언가 뇌리 한 켠에서 걸린다. 마치 누군가가 훼방을 놓는 기분이다. 대개 자기 힘만 믿고 무식하게 구는 카운터 범죄자에게선 쉽게 느낄 수 없는 답답함. 강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데..."
상대는 흔적 지우는 실력이 탁월하다.
마치 민병대 같다. 목표를 죽였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주제에 추적당할 가능성이 있는 흔적은 모조리 지워내는 교활함이 특히나.
"설마 팀장님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강소영은 즉각 부정했다.
아무리 영락했어도 강민우는 카운터 범죄자를 잔혹하게 죽이면 죽였지, 이런 식으로 경찰 수사를 농락할 위인은 아녔다.
문득 차가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주변 사람을 각별히 챙기던 팀장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동시에 늘 곁에 있던, 한심한 선배의 모습까지도. 잠깐, 선배...?
뭔가 자꾸 걸리던 무언가의 정체를, 강소영이 뒤늦게 깨달았다.
"아 맞다. 잊고 있었다! 선배 놓고 왔지 참!"
"혹시 나 찾았냐? 이 빌어먹을 후배년아."
"히익!"
마치 지옥 밑바닥에서라도 기어올라온 듯한 음침한 목소리였다.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한 감각에 강소영은 드물게 진심으로 기겁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눈밑이 퀭하고, 머리카락도 산발이 된 남자가 그녀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호프집에 버리고 온 선배였다.
"서, 선배?"
"오냐."
조용히 강소영을 흘긴 그가 터덜터덜 걸어 경찰차 본넷에 걸터앉았다. 딴에 안절부절 못하는 후배의 모습을 본 그가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턱짓했다.
"저기 가 봐. 블랙타이드 형님들 오셨다."
"어? 설마 선배가 연락해주신 거예요?"
"그래. 참 무시무시한 분들이더라."
이만 빨리 가보라는 선배의 손짓에 강소영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블랙타이드 쪽으로 호다닥 달려갔다.
"하아. 힘들어 죽겠네."
잠깐만 쉬자며 한숨을 뱉어낸다.
그는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꽃을 향해, 굉장히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강소영은 이미 여러 차례 신세를 진 블랙타이드에 얼굴을 비췄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스트롱홀드가 힐끗 샌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졌다.
언제부터일까? 블랙타이드의 신세를 지는 일이 퍽 줄어들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린 카운터, 이유미의 활약상은 그만큼 대단했다. 때문에 오늘의 재회는 양측 모두가 오랜만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자리였다.
"요즘 소식이 뜸하길래 걱정했는데. 다행히 건강한 모양이구나."
"아하하. 제가 또 건강 빼면 시체잖아요?"
싱글벙글 웃으며 받아치는 강소영의 모습에 스트롱홀드가 틀린 말은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마주칠 일이 줄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강소영과 재회를 반겼다.
"그나저나 여긴 4기동의 관할 구역이 아닌 걸로 아는데. 왜 너 혼자ㅜ여기 있는 게냐? 보라색 꼬마 아가씨는 또 어딨고?"
"아하하. 이것저것 좀 알아보려고 잠시 파견 좀 나왔어요. 뭔지 아시죠?"
강소영이 슬쩍 윙크하자 스트롱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 좀 부렸다는 이야기구나."
역시 척하면 척이시네요! 강소영이 엄지를 척 세웠다.
"정말 그 아이 없이 괜찮은 게냐? 뱃지를 내려놓은 몸으로 이런 말을 하긴 뭐하다만, 내 눈엔 카운터의 힘을 빌려야 할 사건으로 보이는데?"
단짝이라 할 수 있는 이유미가 보이지 않자 그가 걱정스러운 듯 질문했다. 공교롭게도 그녀를 대신해 블랙타이드를 불러낸 남자는 카운터로 보이진 않았다.
스트롱홀드의 시선이 슬쩍 강소영 너머, 경찰차 본넷에 걸터앉은 청년을 향했다. 노장의 눈에 비친 저 남자는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환자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거든요. 그래서 직접 발품 좀 뛰어보려고 했는데..."
스트롱홀드의 속내를 눈치 못 챈 강소영은 어색하게 웃다 그만 어깨를 으쓱였다.
"보다시피. 결과가 썩 좋진 못하네요. 한심하죠?"
"글쎄다. 그걸 평가하는 건 내 몫이 아닌 것 같구나."
확실한 건, 아무도 그녀를 한심하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트롱홀드는 대답 대신 품에서 사탕을 한 줌 꺼내 강소영의 손에 쥐어줬다. 그녀가 남학생들에게 줬던 사탕과 같은 메이커였다.
"저기, 아저씨? 저 애 아닌데..."
"아직 내 눈엔 다 애다."
그가 피식 웃으며 강소영의 머리카락을 흐트려놓았다.
"헌데, 꼭 그 아이의 시선을 피해서 진행해야만 하는 일이더냐?"
"아...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강소영이 대답을 얼버무리자 스트롱홀드도 구태여 더 캐묻진 않았다. 이유미가 4기동에 합류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무리 그녀가 어리고 순진해도 단짝인 강소영의 변화에는 눈치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일부러 어린 카운터를 떨어뜨려놓고 단독 수사를 행하고 있다는 걸, 스트롱홀드는 경험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해냈다.
"보아하니 뭔가 확신은 섰지만 그뿐인 모양이로구나. 나도 현역 시절엔 자주 겪어본 일이지. 응원하마.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릴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그 아이도 네가 걱정일 테니까."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아저씨. 저도 너무 조급했던 거 같아요."
"하하핫! 뒤늦게 '그냥 데려올 걸' 같은 후회라도 밀려오더냐?"
"쪼금?"
솔직한 고백에 스트롱홀드가 강소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직 미래가 창창한 그녀가 여기서 꺾이는 건 좀 많이 아쉬운 일이었다.
"알면 됐다. 우리도 의뢰를 받은 몸이다. 손이 닿는대로 도와주마."
"어? 그치만 의뢰비는..."
"저기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든 청년이 다 내주었다."
"선배가...?"
강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선배란 남자가 웬 젊은 경찰과 실랑이를 피우고 있었다.
"저런. 네 도움이 필요한 모양이구나. 뭐하느냐? 어서 가보지 않고!"
"... 하아.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들려드릴게요."
강소영이 한숨을 내쉰 뒤 청년쪽으로 달려간다.
스윽.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스위퍼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팔꿈치로 스트롱홀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할배. 저거 혹시 그거요? 그거 맞죠?"
스위퍼가 새끼손가락을 빼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느새 다른 블랙타이드 멤버들까지 아닌 척 상체를 기울이며 지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스트롱홀드는 대견한 딸내미를 보는 시선으로 접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모르지. 하지만 보통 끈끈한 관계는 아닌듯 하군."
"오오."
블랙타이드 전원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세상에서 남의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그들은 청년과 젊은 순경 사이에 껴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 강소영을 빤히 쳐다봤다.
"이렇게 보니 순정 만화의 여주인공처럼 보이는데요?"
스카우트의 중얼거림에 블랙타이드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거나 말거나.
저 둘은 근 몇 년간 사소한 안부 문자 한 번 안 나눈 서먹서먹한 관계다.
"그래서. 뭐 더 들은 거 없수 할배? 또 그렇게 점잔 빼지 말고 썰 좀 풀어보쇼. 칙칙한 영감님들의 땀내나는 우정 이야기는 이제 질린다구요."
"크흠!"
"어? 어어? 할배? 잠깐, 그렇게 도망가기유?"
스위퍼의 빈정거림에 멋쩍게 헛기침을 낸 스트롱홀드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나 참. 뭐, 그래도 풋풋해서 보기 좋네."
신병으로 들어오면 잔뜩 굴려줘야지. 스위퍼가 낄낄 웃었다.
언제 다 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