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었다.

거적대기 한 장을 겨우 걸치고, 형형한 눈빛으로 걷고 있는 그녀의 뒤를 수 많은 시선과 말꼬리가 쫓고있었다.


"저 여자가..."

"그래, 그 미친 여자..."


미친 여자.

얼마전부터 한창 활성화 되기 시작한 '다이브'에 참여하는 민간 용병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살벌한 별명.

항상 함선 구석에 처박혀있는 주제에, 차원종만 나타나면 직검 한자루를 손에 들고 제 몸을 돌보지 않으며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미친 여자.

볼품없는 거적대기에 군데군데 묻어있는 갈색 얼룩의 정체를 어림짐작한 용병들이 떨떠름한 눈으로 거리를 벌린다.


목숨걸고 일하는 밑바닥 하루살이 인생의 용병들조차도 꺼리게할 정도로, 저 '미친 여자'의 악명은 자자했다.


"저 여자도 참여하는건가?"

"젠장. 저 여자, 아군이 있어도 칼을 휘두른다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담은 알고있다. 다른 용병들이 자신을 꺼리는 것도 알고있다.

그녀가 그들의 동료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그들을 자신의 전우로 받아들일 생각조차 없다.


그녀의 전우들은 이미 수없이-


"좋아, 다 왔군. 다이브 개요에 대해 설명할테니 제대로 들어라, 재방송은 없다."


왠 호리호리한 인영이 대기실로 들어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작전인원이 전부 모인 모양이였다.

의뢰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무엇무엇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저런 것따위 들어봤자 제대로 이해할 자신도 없었고, 이해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그저 베어넘기면 될 뿐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넌 겨우 그 정도야.)

(우리가 죽는 동안 할 수 있는건 겨우 그 칼질뿐이였지)

(너는 그 정도인 결함품...)


"닥쳐!!"


오른 눈이 쑤신다.

피투성이의 무엇인가들이 말을 걸 때마다, 오른쪽 눈에서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의 통증이 피어난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편할텐데. 그렇게 빌고 빌어도 죽지 못한다.

그녀는 죽을 수 없어, 편해질 수 없어, 스스로 이 빌어먹을 삶을 끝낼 수 도 없어.


(넌 살아야해.)

(우리를 버린 너는 살아야해.)

(그래야 너는...)


"닥치라고!"


콰드득, 후려친 대기실의 벽에 금이 간다.

그 소리에 놀란 군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그와 동시에 예의 소문이 그들의 입을 오르내린다.

어차피 들을 생각도 없던 설명이다. 집합시간은 알고있으니 그냥 나가자.


뒤를 쫓는 시선과 말꼬리에게서 도망치듯 대기실을 빠져나오니, 그에 맞춰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으신가요?"


상냥하고, 가식적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본인이 호인임을 피력하고 싶은 이기적인 이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는 치가 떨린다.


"손에서 피가..."

"꺼져, 남의 일에 신경쓰지마."

"하지만 용병이시죠? 용병이 손을 다치면..."

"꺼지라고 했....!"


(너는 또 그러는구나!)

(쓸모없어, 비틀려 있어, 누구에게나 상처를 입혀)

(그런 너를 우리는...!)


주저 앉고 말았다.

오른 눈이 뽑혀나갈 것처럼 아프다. 귓가에선 끊임없이 말이 들려온다.

이제는 뭉개져버려, 그저 어떠한 음성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끔찍한 소리들이 뇌리를 파고든다.


그만해, 사라져, 제발. 빌고 빌어도 멈추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언제까지고 이 빌어먹을 고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가 이 고통을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





"시끄럽네요, 조용하게 만들어드리죠."





정적이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였던가.

들리지 않아, 아프지 않아, 고통스럽지 않아.


정靜이란 이리도 편안한 것이였던가.

그저 몰아쉬는 숨소리와, 미친 듯이 뛰고있는 맥박의 소음만이 들리는 고요한 복도가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낙원이였다.


그리고 그 낙원을 파고드는 낯선 목소리가 있었다.


"이제 괜찮으신가요?"

"너는..."


이런 합법성이 의심되는 사설 다이브 작전따위에 있을만한 이가 아니였다.

선이 가는 곱상한 얼굴과 올곧은 푸른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인이다, 선인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얼굴의 남자가 말을 걸고 있었다.


"임시방편이지만 편해졌죠?"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

그 미소를, 언젠가 그녀는 본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예전. 그녀가 아직 '무엇인가'를 보지 못했던 시절.


그녀가 아직 외톨이가 아니였던 시절-


"제 1 전대..."

"예...?"

"펜릴...나유빈 부 전대장..."


남자의 미소가 굳는다.

호선을 그리던 입가가 딱딱히 굳고, 눈빛에는 경계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부탁입니다...부탁이에요."


그녀는 코 끝까지 그의 멱살을 잡아당긴채 말했다.


"제발...저를 죽여주십시오."


관리국의 패잔병.

살아남은 마지막 선봉.

이름조차 없는 그녀는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