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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지역 이후의 시점


1편~마지막 편까지 모음

https://arca.live/b/counterside/39057596




그 날은 내가 친구의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온 날이었다.


"아아~ 엄마한테 혼나겠다! 아빠는 퇴근 하셨으려나?"


신나게 놀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있었고, 나는 허겁지겁 친구의 집을 나와 집으로 힘껏 달렸다.


"아니,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느린거야?"


나는 투덜거리면서 느릿느릿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탄 다음 우리 집이 있는 층인 9층을 눌렀다. 집에 돌아가면 꾸중은 좀 듣겠지만 분명 어제처럼 평범하게 어머니와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9층입니다.'


같이 화목한 시간을 보낸 후에, 잠자리에 들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그럴 것이었다.


"....어?"


이상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집은 평소와는 달랐다.


"엄마...아빠....?"


불 꺼진 집안은 평소의 우리 집이 아니었다. 가구들은 부서져있고, 부모님은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어...?!"


경련을 일으키던 부모님은 갑자기 경련을 멈추더니, 그 자리에서 인간이 가능한 자세인가 싶을 움직임으로 기괴하게 관절을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어...어....?!"


달빛에 비친 부모님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분명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었지만, 몸 곳곳이 마치 괴물처럼 변해있었고 눈빛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와도 같았다.


그리고 두 분은,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시며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두 분의 손톱이 내 코 앞까지 다가온 순간, 나는 깨달았다. 더는 부모님은 내가 아는 부모님이 아니며 나를 아들로 보지 않고 그저 도륙내고 싶은 하나의 타겟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아....아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시고 쓰담아주셨던 부모님의 그 손은, 이제 괴물의 날카로운 손톱이 되었다. 저 손톱들이 나를 향해 휘둘러지기 직전,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죽을 힘을 다해 내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하지만 내가 한가지 간과한 것은 저 위협적인 발톱이 잠긴 나무 문 하나 못 부술리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내 방이 아니라 밖으로 도망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도 요청 했어야 했다.


"크르륵...."


부모님, 아니 괴물인가? 내가 문을 잠그자마자 두 존재는 그 손톱을 휘둘러 문을 부쉈다. 아니, 정확히는 문 째로 벽을 부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벽이 부서져 현관문과 거실, 부엌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 엄마...아빠...."


그리고 슬픈 사실 한가지는, 저런 끔찍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저 두 괴물은 나를 더 이상 자신들의 사랑하는 자식으로 보고 있지 않지만 나는 아직도 저 두 괴물을 사랑하는 부모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구나,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게....그렇게 그 때 죽었다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를텐데.


"헉....!"


그런데 내가 갈기갈기 찢기기 전, 갑자기 현관문을 부수고 누군가가 달려들어왔다. 제 3자가 나타나자 부모님이었던 두마리의 괴물들은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젠장...어째서....."


달려들어온 누군가는 검은 옷을 입은 은발의 소녀였다.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부모님보다는 훨씬 어려보이는 소녀는 부서질 듯이 주먹을 쥐고, 한 치의 망설임 따위 없이 자신이 등에 짊어진 두개의 칼을 뽑아들었다.


"하아아아앗-!"


그리고 그 뽑아들은 칼로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며,


"커...억.....?"


아버지의 팔이었던 것을 베었다. 언제나 듬직하고 나를 안아올려주던 그것들은 갑자기 나타난 저 소녀에 의해 한 순간에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캬아아아아악!!!"


아버지였던 괴물들의 팔들이 잘리자, 이번에는 소녀에게 어머니였던 괴물이 분노한 것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위협적인 공격을 어린 아이 장난처럼 피하고 순식간에 팔과 다리였던 것을 부숴버리듯이 베었다.


"크윽...."


소녀는 그렇게 팔과 다리를 잃고 움직일 수 없게 된, 괴물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어머니의 머리를 베자, 이번에는 팔을 잃고 고통에 몸부림 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너희를 막으려면 이 방법 밖에는 없었다..."


아버지의 머리도 베었다. 아니, 날려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머리가 내 눈 앞에서 날아갔다.


"키야아아아아악!!!!"


하지만 잘린 머리들은 분노와 광기에 찬 괴성까지 내지르며 소녀를 노려보았다.


"그만...그만해라!!!"


소녀는 괴로운 것처럼도 보였고, 짜증이 난 것처럼도 보였다. 소녀는 살짝 비틀거리며 잘린 머리들에게 다가가,


"아....?!"


그 머리들을 완전히 터뜨려서 으깨버렸다.


"헉....헉......"


괴물이 되어버린 부모님의 머리가 으깨지자마자, 순식간에 주변은 정적이 되었다.

부서져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가구들, 폭탄이라도 맞은 것 마냥 산산조각 난 베란다와 벽들, 핏자국이 낭자한 거실과 곳곳에 내팽개쳐진 부모님이었던 고깃 조각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호박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마치 설원의 한마리 늑대처럼 달빛에 비춰지는 고독하게 서있는 소녀.


방금 전 무참히 두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온 몸에 피가 튀어있건만 그녀는 전혀 추악하지도, 극악무도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마치 전장을 수호하는 한명의 발키리 같았다.


순식간에 내 부모님을 도륙해버린 그 소녀의 이름은 힐데. 힐데 누나. 그녀는 부모님의 지인이었다. 딸 뻘의 외형을 가진 소녀를 부모님은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썼고, 예의 바르게 대하셨다. 가끔은 나, 부모님, 힐데 누나 이렇게 넷이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예쁜 누나인데, 어린 남자아이가 연상의 누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힐데 누나를 만나는 날이 되면,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대한 얌전하고 의젓하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아, 안녕하세요!'


'녀석, 힐데 누나 만난다고 멋 부리는거야?'


'아, 아빠! 그런거 아니거든요! 엄마도 뭐라고 말 좀 해봐요!'


'풋...'


'정말, 힐데 누나가 비웃잖아! 난 몰라....'


그런 그녀가, 정말 예쁘고 좋아하는 힐데 누나가 순식간에 내 눈 앞에서 잔혹하게 부모님을 살해하는 장면을 나는 눈 앞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말았다.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나를 발견했다.


"너, 어떻게 여기에....설마 방금 그 장면, 전부 봐버린 것은 아니겠지?"


힐데 누나가 나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내가 아는 예쁘고 멋진 힐데 누나가 아니었다. 이제 나에게 있어 그녀는 부모님을 참혹하게 살해한 살인마나 다름이 없었다. 그녀가 나까지, 나까지 저렇게 죽여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천천히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싸늘한 호박색 눈빛과 두려움으로 범벅진 푸른색 눈빛이 교차했다.







"......헉...!"


눈을 뜨자 주변에는 괴물이 된 부모님의 참혹한 시체도, 부모님의 피로 범벅이 된 집도, 그 가운데서 부모님을 도륙한 검을 들고 자신을 바라보던 힐데도 없었다. 그저 하얀 벽지, 침대 옆 창문을 통해 보이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하늘과 도시의 야경이 보일 뿐이었다.


병원이었다. 의문의 습격을 받은 시윤을 지나가던 행인이 신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어,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도...그 꿈...."


머리가 아파온다.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시윤은 거의 매일 밤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잠에 들면 수년 전 부모님이 힐데에게 살해 당하던 날이 계속해서 꿈 속에서 반복 되었기에.


아니, 그냥 저것만 반복되기만 해도 다행이지, 어느 날은 힐데가 자신 마저 괴물의 아들이라며 살해하거나, 갑자기 도륙나버린 부모님이 자신에게 왜 힐데가 본인들을 죽이게 두었냐며 원망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죠?...라고 하고 싶지만 방금까지 악몽을 꾸신 것 같아서 그 말은 하기가 애매하네요."


갑자기 어디선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잠깐-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 목소리다.


"....!"


시윤이 주변을 둘러보자 머리맡의 의자에 목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어떤 여성이 앉아있었다. 방 안은 어둡고, 그 쪽은 빛이 잘 들지 않는 쪽이어서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다. 이 여성은...


"아니, 하....저기요.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아하하,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오늘은 싸우러 온게 아닌걸요. 저는 그저 시윤군이 걱정되서 병문안을 왔을 뿐이예요. 이렇게 선물까지 사왔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에코백에서 음료수와 쿠키 세트를 꺼내 시윤에게 건넨 여성의 얼굴이 마침 구름이 걷혀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온 달빛에 비춰 드러났다.


"필요 없으니 본인이나 실컷 드시죠. 제가 아직 미성년자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철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 과자에 환장할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생각하고 사온데다가 이거 제법 비싼건데, 제 성의를 봐서 한두개 정도는 먹어줄 수 있죠? 걱정하지 마세요. 독이나 이상한건 안 넣은 그냥 평범한 쿠키랑 음료수니까 안심하고 드셔주세요."


윤기 나는 긴 갈색의 머리카락, 계속 쳐다보면 빨려들어갈 듯이 심해처럼 끝을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 도자기 인형 같이 단정하고 상냥한 얼굴.


누가 보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앳 된 얼굴의 아름다운 소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여성은 다정하고 따뜻한 언행과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인하고 교활한 속내를 가진 육익의 보스, 나유린이었다.


"그나저나 온 몸이 땀 범벅이예요. 무슨 꿈을 꾸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수건이라도 갖다드릴까요?"


유린이 시윤의 손을 잡았지만, 시윤은 그 손을 뿌리치고 유린을 노려보았다.


"무슨 수작인지는 뻔히 보입니다. 보나마나 전처럼 육익에 오라느니 용혈을 깨우라느니 안 그러면 죽일거라느니 그럴거잖아요?"


시윤과 유린의 첫 대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조직인 육익으로 전향하고 시윤이 가진 비밀스러운 힘, 변종 클리포트 인자인 용혈을 깨우라는 제안을 시윤은 거절했고, 유린은 시윤이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여 시윤이 살기 위해서라도 강제로 용혈을 깨우게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시윤은 육익으로 오지도, 용혈을 깨우지도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렇게 예쁜 여자가 걱정해주는데 쌀쌀맞고 예의 없이 구냐면서 시윤을 욕하겠지만, 사실은 그런 유린에게 죽을 뻔한 시윤이 이렇게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아니, 한 술 더 떠서 유린을 보자마자 거품을 물고 기절해도 이상할 것 없었을 것이다.


"부정은 안 할게요. 하지만 한가지 정정할 것이 있다면 이제는 시윤군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거랍니다. 전에는 시윤군의 입장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는데다가 말 실수도 했고 너무 폭력적인 방법을 썼다는거, 인정 할게요. 사과 하죠."


유린의 말 실수. 그것은 클리포트 인자를 폭주 시켜 힐데에게 죽임 당한 시윤의 부모님을 거들먹거렸다는 것이다. 주시윤에게 있어 최악의 역린. 그것은 분명 자신의 부모님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 건드려도 분노할 그 역린을 유린은 초면부터 건드린 것도 모자라 시윤을 죽기 직전까지 몰아갔다. 할 수만 있다면 제 앞의 저 불여우 같은 여자를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요? 용혈을 깨우면 스승님께 목이 달아나고 그렇다고 안 깨워도 당신한테 죽을텐데 저더러 뭐하자는겁니까? 이렇게 해도 죽고 저렇게 해도 죽을거 저는 그냥 미쳐버리고 싶은 심정인거 아시나요?"


시윤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자신의 앞에서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악마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 할게요. 그리고, 저는 이제 시윤군의 각성이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것 만이 아니라 시윤군 본인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용혈을 각성하면 저는 스승님께 죽는다고 몇번이나 말했나요? 저한테 용혈이 필요하다니? 저에게 있어서 용혈은 부모님을 앗아가고 제 목숨도 위협하는 독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예요. 이 정도면 좀 알아들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면, 벌써 노망이라도 드셨어요?"


망설임 없이 시윤이 독설을 쏟아내는데도 유린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웃었다. 한참을 시윤이 쏟아내는 독설을 듣던 유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시윤군, 솔직히 지금 너무 많이 무리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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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아마 3부작에서 5부작 정도로 끝날 것 같네요. 주시윤의 부모가 죽는 장면은 작 중에서도 2차 창작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제 나름대로 상상해서 써봤습니다.

사실 만화로 그리려고 했는데 만화로 그리기에는 손도 느리고 저질 체력인지라 그냥 글로 썼습니다. 대신 다음화부터는 중간중간 라노벨 일러처럼 짤 같은걸 그려넣을까 해요. 글 써본 경험이 딱히 없어서 필력이나 묘사가 너무 딸리는지라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댓글에 이 장면 그려줘(예시:주시윤이 여공익 노려보는 신 그려줘)이렇게 써주시면 몇개 골라서 그린 다음에 언젠가 올릴 수도 있을지 모르죠.

그리고 공익을 나ㅁ공익 나유빈으로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여공익 반응이 너무 좋아서 그냥 여공익 나유린으로 했어요. 싫으시면 그냥 윾빈이로 바꾸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