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태어난 이래, 나는 그것을 꾸준히 고민해왔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애초에 태어난 순간 결정되는 출발점부터가 다른데 공평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진 자는 무수한 선택지를 쥘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죽어라 일해도 늪에서 벗어나기 희박하다.

돈 많은 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탐욕스러운 삶을 사는 동안, 가난한 누군가는 입에 풀칠하기도 바쁘다.

삶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떻게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 하는가?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ㅡ

애초에 일을 하지 안 하면 되는 거였다고.

굳이 사회가 정한 룰을 지키며 힘겹게 살 필요 없이, 나만의 룰로 세상을 살아가면 되는 일이었다고.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반박하겠지.

대체 무슨 방향으로 생각해야 그런 한심한 니트 같은 결론이 나오는 거냐고 말이다.

뭐, 충분히 할 법한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일을 하는 것으로 본인이 속한 카스트에서 벗어나려 하는 자들은 '패배자'다.

 

처음부터 이해가 안 됐다.

왜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바꿀 수 없는 체급 차이를, 계급 차이를 극복하려 그리 애쓰는거지?

애초에 라이트급이 헤비급이랑 붙여놓고 싸우라는 식의 게임 따위, 공평하다 할 수 있겠냐고.

뭐? 사람에겐 주어진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저력이 있다고?

스포츠에서 2부 팀이 1부 팀을 이기는 걸 보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다고?

바보 같긴, 그런 기적은 스포츠에서나 바라란 말야. 웃기지 말라고 해.

한 번 뿐인 인생에서 뒤집기를 시전하겠답시고 쓸데없이 힘을 빼면 어쩌자는거야?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살아도 인생을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이거야.

카운터로 비유하자면ㅡ C급, D급따리 카운터들 모아놓고 싸우는 것보다 A급, B급 카운터 한 둘 보고 싸우라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잖아?

그리고 이 업계엔 그리 일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위 카운터들이 수두룩하고.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그런 기류에 숟가락만 얻고 꿀을 빨면 되는 것 뿐.

어차피 일은 하고 싶은 사람들 시켜놓고, 나는 뒤에서 그들을 받쳐주는 콘크리트 역할만 해주면 충분하다는 거다.

 

 

 

그러니까ㅡ

 

 

 

"그러니까, 전 이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이거에요. 공 차는 사람 있으면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막말로 너도나도 침식체 잡겠다고 우르르 몰려가면, 소는 누가 키워요 소는?"

 

"......"

 

안 되겠다, 이 여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ㅡ

 

내내 듣는 동안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딱히 다른 사람의 신념 같은 건 상관도 않는 개인주의 겸 무사안일주의에 가까운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참을 수 있는 한계란 게 존재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왜 여기 게임 센터에서 이러고 있는걸까.

기억을 더듬었다.

잠깐 나왔다가 낯익은 얼굴을 마주한 것 뿐인데, 대체 어떤 경로로 이런 상황에 빠졌단 말인가.

개연성은 어디갔지?

 

그보다 잠깐...... 그러고보니 아직 업무 시간 아니었나?

회사에 일손이 부족해 플로라 메이드에 프리라이더 팀까지 불렀는데, 이 인간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프리덤 라이더즈에요 라- 이- 더- 즈!! 프리라이더라든지 가X라X더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라이더즈라고요!! 댁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거지!?"

 

"갑자기 왜 소리 지르는 건가?"

 

"아뇨, 왠지 어디서 누가 또 우리 팀 이름을 잘못 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아무튼 자네, 그... 어디 소속되서 일하는 카운터 같은데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대부분 태스크포스 회사에선 일하는 시간 아닌가?"

 

"훗, 저를 뭘로 보시고! 당연히 전부 처리했죠!"

 

아아, 역시 할 일을 다 하고 노는 건가. 그거라면 부사장은 못마땅하겠지만 나는 뭐ㅡ

 

"아뇨, 튀었다는 뜻인데요."

 

"......"

 

"뭐 들으신 거에요 지금까지. 일은 최대한 안 하는 게 낫다니까요? 어차피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니었고, 일만 붙잡는 거 보단 이렇게 쉬엄쉬엄 환기를 해가면서 일해주는 편이 낫죠."

 

그 일 내려준 시점이 분명 내가 잠시 일이 있어 나오기 직전이었을텐데.

아니. 분명 급한 일들부터 처리하느라 쌓여 있던, 그리 급한 건 아니어도 쌓아두긴 뭐한 잡일들 처리하러 부른거긴 한데,

그래도 이건 빤스런한 사람 치곤 너무 당당하잖아.

우리 회사에 있는 펜릴 소대장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거.

 

"으으... 그 사장놈, 웬일로 불렀나 싶었는데 우리한테 일을 시키다니...!"

 

"사장이 일 시키려 부하 직원 부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예전에 그 쪽에서 저 꼬셨을 때 약속했단 말이에요! 시키는대로 열심히 일하면 불로소득 창출 비법을 알려준다고!

 

"......"

 

나는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했긴 했는데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게...... 이제 막 2주일 쯤 된 것 같은데?

 

"그런 말까지 해줬으면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려먹어?!"

 

"아니, 그래도 최소한 일은 해줘야 뭘 해주든지 하질 않겠나."

 

"쳇... 그게 문제긴 하죠. 배 곪을 걱정만 안 한다면 일도 안 해도 될텐데."

 

툴툴거리면서도 그녀는 계속 인형 뽑기 기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스테이크 모양의 인형을 노리는 듯 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머신 갑 인형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모습이다.

관심 좀 가져주지......

 

"그러고보니 그 쪽은 무슨 일 하러 나오신건데요?"

 

"그거야ㅡ"

 

 

 

 

 

[사장님, 서류 결제 부탁드립니다. 부사장님이 출장 가시면서 전부 맡겨놓으셨어요. 오늘 안에 확인하셔야 해요?]

 

[서류 가져왔어 사장님. 응,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내가 왔냐고? 소대장은 독수리 타법 치다가 갑자기 미안하다면서 어디 가서 안 보이고 시윤 선배는......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오늘 선배 본 적 있어?]

 

[서류 가져왔어요, 사장님. 이번 달 알트 소대 관리비는 사장님께 직접 보고하라는 부사장님 말씀이 있어서요.]

 

[저번에 말씀하신 급식 업체 후보요? 몇 군데 추려놨긴 했는데 그건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확인...... 네? 그 서류 먼저요? 아, 아... 네! 알겠습니다.]

 

[정말이지, 일이 끊이질 않네요. 그런 사장님을 위해 엄습해오는 악의를 빗겨내는 OO동자 제작 신품 부적을ㅡ]

 

[사장님한테 뭔 호객 짓이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것보다 이 서류 사장님 결제를 받으라 해서 되도록 빨리ㅡ]

 

 

 

 

 

"......회사에서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이대로 가다간 과로사 할 것 같길래 본능적으로 튀었지."

 

"설마했던 땡땡이 동지?!"

 

그렇네.

 

생각해보니 적어도 지금은 이 친구한테 뭐라 할 입장이 못 됐다.

아무리 그래도 일이 적당히 많아야지, 오늘따라 봐야 할 서류가 대체 몇 개야?

여기 카운터 시켜서 다이브하고 이터니움 캐는 회사지 서류 처리하는 하청 회사 아니란 말이다.

 

부사장이 출장 갈 일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여자... 눈치가 늘었는지 최근엔 나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인단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행동 패턴을 바꿔야 할 때가ㅡ

 

"후훗, 역시 인생의 진리를 아시는 분이셨군요! 제 눈은 역시 정확했어요!"

 

"아니아니, 그래도 난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다만."

 

"아뇨아뇨, 거부하실 필요 없어요. 게으름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하는 궁극의 경지. 반박할 수 없는 땡땡이를 실행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그 경지에 한 발을 디딘 것이나 다름 없다고요?"

 

어쩐지 눈을 반짝이며 열변을 토하는 일본 출신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 회사 점쟁이가 투영되는데......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떠셨나요. 자신을 엮은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난 순간의 쾌감이! 짜릿짜릿하지 않았나요? 막 흥분되고 그러지 않았나요? 원래 혁명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거라고요! 일찍이 인간의 진리를 꿰뚫어 본 지O보와 만O메 센세에 버금가는 모 대현자 펭귄 선생 가라사대,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말도 있잖아요?"

 

"나도 남극 사는 뽀 모 군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다만은, 그래도 지켜야 할 정도란 게ㅡ"

 

"갈(喝)!!!"

 

분노에 찬 소녀의 일갈이 온 가게 안에 울러퍼졌다.

 

"어디서 함부로 약을 파시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보시죠. 그 정도를 지키고 이 극락정토에 발을 딛은 사람이 애초에 누구였죠?"

 

"오해일세. 적어도 난 놀아도 할 일은 끝내고 노는 편이지, 자네처럼 답 없이 놀아제낄 생각만 가득한 케이스와는 다르단 말이네."

 

"다, 답이 없다뇨! 이래뵈도 빠른 은퇴 자금 위해서 나름 노력하고 있거든요! 최근엔 돈 좀 벌려다가 목숨까지 날려먹을 뻔했다고요! 알지도 못하면서!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바로 그것일세. 그런 정신머리가 농땡이 하수인 자네와 나 같은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거지."

 

"하, 하수?!"

 

급작스런 폭언에 소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튀어나올 듯 부릅 뜨며 몸을 떨었다.

허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 처자ㅡ 아직 진정한 인생의 진리엔 눈을 뜨지 못한 듯 보였으니 말이다.

 

 

 

"스스로 떳떳한 신념을 가지는 것. 그건 좋네. 허나 삶은 의지만으로 돌아갈만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군." 

 

"듣자듣자 하니까...!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진리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고요!"

 

"허면 왜 지금 당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지 않는건가?"

 

"네? 그거야 놀고 먹기 위해선 그래도 기반이 필요하니까ㅡ"

 

"그래서는 자네의 신념과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이 되지 않나?"

 

"......네?"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갸웃한다.

한 편으로는, 무언가 찔리는 게 있다는 듯 몸을 떨고 있다.

 

"분명 자네 입으로 말했네. 일하며 사는 자들은 패배자나 다름없다고. 그렇다면 대체, 지금까지 일을 했던 자네의 행동은 대체 뭐란 말인가?"

 

"말했잖아요! 그건 완벽하게 놀고 먹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ㅡ"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게. 아직도 모르겠나? 신념을 가졌다면...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해야 하는 법!"

 

그렇다.

 

무릇 모든 결과에는 그 결과를 도출케 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

어떤 주장을 한다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여자ㅡ 본인 입으로 니트를 추구한다고 말하는 프리라이더의 히로세 아키는 '가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프리덤 라이더즈라고! 아까부터 거슬리게 어디 사는 누구야, 자꾸 틀리는 게!!"

 

"묻겠다ㅡ"

 

또 이유 모를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물었다.

 

 

 

 

 

"어째서 돈이 있어야만 놀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지?"

 

 

 

 

 

"......네?"

 

대체 무슨 개 짖는 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비상식적인 발언을 들은 상식적인 인간의 행동 그대로였다.

허나, 그 상식이야말로 잘못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자네는 지금 근본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네. 인간이란 애초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경지를 구축할 수 있는 존재. 자본이라는 족쇄에 스스로를 구속시킨 순간부터 자네의 이상은 잘 쳐 줘야 이류에 불과한 신념이 된 것일세."

 

"아니, 잠깐. 잠시만요. 물론 저도 숨만 쉬며 살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면 바랄 게 없겠죠. 하지만 이미 시도해봤는걸요? 돈 벌어주는 사람이 없어져서 숨만 쉬고 살려해도 배고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쉬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법 가르쳐준다며 꼬시던 사람은 부려먹기만 하지!"

 

"그 방법, 내가 알고 있다고 하면 어떨텐가?"

 

"?!"

 

움찔, 몸을 떠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어쩐지 그런 반응을 보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에, 나는 멈추지 않고 그녀를 몰아붙이기로 했다.




* * * * *


유미나 편

https://arca.live/b/counterside/28064112


곧 출장 돌아올 부사장한테 잡혀 쳐맞을 관리자입니다. 

분명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왜 개소리 대잔치가 된걸까

내가 봐도 개소리 쓰느라 지웠다 다시썼다 힘 다 빼서 정해둔 뒷내용은 다음편으로 넘기겠음... ㅈㅅ

글 쓰는 거 재밌긴 한데 진짜 장난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