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사료가 나유빈의 손을 타고 퐁당퐁당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
“맛있니?”
대상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물고기란 걸 알면서도 그는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면서 정성스럽게 사료를 골고루 뿌려주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뚱뚱한 물고기 한 마리가 나유빈이 뿌린 사료 대부분을 독식했다.
대장으로 보이는 물고기는 거대한 몸집을 흉기처럼 사용해 주변 물고기들을 쫓아냈다. 힘이 부족한 물고기는 자잘한 부스러기를 노렸고, 대다수 물고기는 근처에 접근도 못한 채 지느러미만 동동 굴렀다.
“제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말이네요.”
그도 바보처럼 모두가 사이좋게, 그리고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는 것까지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저 뚱뚱한 물고기가 조금이라도 욕심을 덜 부렸더라면….
‘아, 그래. 그때 스승님이 조금이라도 욕심을 덜 부리셨더라면….’
적어도 펜릴 전대는 지금처럼 찢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전히 천방지축인 이수연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체 세상의 멸망까지 무기력하게 시간을 허비했을 수도 있다.
“역시 감정이란 참 귀찮기 짝이 없네요. 분명 망설임 따위는 진작 내다버린 지 오래였을 텐데.”
자신을 다독이려는 것처럼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난간에 기댄 채 턱을 괸 나유빈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뚱뚱한 물고기를 응시했다. 그의 눈이 점차 가늘어지고, 돌연 혼자서 사료를 독식하던 뚱뚱한 물고기가 괴로운 듯이 몸을 비틀었다.
“대장?”
“무슨 일인가요 지수 씨?”
뒤에서 같은 육익의 일원인 이지수의 부름에 나유빈이 등을 돌렸다. 그는 미련 없이 손에 들린 사료를 호수에 전부 흩뿌렸다.
“저기, 반차까지 내서 급히 생긴 용무란 게 무엇이죠?”
오늘도 동사무소에서 후임에게 쪼인트를 까인 이지수가 이를 갈았다.
“하하. 별 건 아니에요. 에이미 양이 일을 마치고 슬슬 합류할 때가 되었잖아요? 조만간 동사무소 일도 접을 텐데. 육익 단합회라도 해보려고요.”
“육익, 단합회…?”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지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 걸 본 나유빈이 쿠쿡 웃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별론가요?”
“아, 아닙니다! 대장께서 내리신 결정이라면 틀림없이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요. 금발 원숭이를 환대하는 것 같아 조금 떨떠름하긴 합니다만….”
“앞으로 함께 대업을 견인할 동료잖아요. 이참에 지수 씨도 에이미 양도 조금 더 친해지는 게 어떨까요?”
“….”
이지수가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노력, 해보겠… 습니다.”
“하하. 저는 지수 씨 믿어요.”
순수한 선의의 무서움을 몸소 새긴 이지수가 아찔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그녀를 반긴다. 마치 그녀가 상상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지수에게 에이미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슬슬 에이미 양이 올 시간이네요.”
여전히 이마를 짚은 채 끙끙대는 이지수로부터 몸을 반쯤 돌린 나유빈은 평소처럼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호수를 흘겼다.
반투명한 안경알에, 어렴풋이 물고기의 모습이 비쳤다.
등을 뒤집은 채 수면 위로 떠오른 물고기가.
. . .
마치 날카롭게 연마된 칼날처럼 싸늘하면서도 차분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이지수, 느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나유빈 사이로 이질적인 패션의 외국인이 다가왔다.
육익의 일원, 퍼스트윙 에이미 스트릭랜드였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타난 에이미는 보드 끝자락을 가볍게 차올려 손에 거머쥔 뒤 체조 선수 마냥 반듯한 자세로 바닥에 착지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싱긋 웃었다.
“여! 오랜만이야, 대장.”
“하하. 에이미 양도 오랜만이에요.”
요란한 등장에 나유빈도 선선히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여전히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패션이네요. 에이미 양다워서 보기 좋아요.”
“그런 대장 패션도 불량한 공무원 같아서 되게 어울린다?”
“무례한 녀석! 대장이 동사무소에서 얼마나 유능한 평가를 받는지 아느냐!”
나유빈은 절대적인 무언가다. 그는 결코 폄훼당해선 안 된다는 사고를 지닌 이지수가 에이미의 장난기 섞인 대답에 발끈했다.
“지수 씨?”
“… 오랜만이다, 금발 원숭이.”
물론, 나유빈의 제지에 금방 꼬리를 내렸지만 말이다.
“아하핫! 지수도 오랜만! 나한테 차가운 건 여전하네!”
“닥쳐라. 네년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쩜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요란하기 짝이 없는 복장의 에이미를 흘긴 이지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그게 다 한 쪽 눈으로만 사람을 봐서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칙칙한 안대나 벗는 게 어때? 모처럼 예쁜 눈을 숨기는 거, 아쉽지 않아?”
“흥. 참견 마라. 다 이유가 있어서 쓰는 거니까.”
“알지알지. 그나저나 대장, 나는 왜 부른 거야? 원래 합류 날짜는 다음 주 아녔어?”
에이미가 보드를 등에 매며 물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하도 개성 넘치는 그들의 모습에 수상한 시선을 보냈지만, 나유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육익 단합회를 열려고 합니다.”
“육익, 단합회…?”
뜬금없는 답변에 에이미가 멍청히 두 눈을 껌뻑였다.
“하하. 지수 씨랑 똑같은 반응이네요.”
“저는 저렇게 얼빠진 표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대장.”
이지수가 반박했으나 나유빈은 가볍게 흘려들은 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뭐부터 할까요? 아직 저녁까지 시간이 좀 있는데.”
“뭐야, 뭘 할지 미리 정해둔 거 아녔어?”
“명색의 단합회인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걸 해야죠. 겸사겸사 서로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고요. 그래서 에이미 양은 뭘 하고 싶으신가요?”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듯한 나유빈의 질문에 에이미가 조용히 눈을 굴렸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역시 나유빈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이지수였다. 계획된 장난이라기엔 그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즉 그녀도 처음 듣는 이야기란 건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했다.
“음, 우리 사이에 그런 게 필요한가 싶긴 한데….”
에이미는 자신이 눈치가 빠르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다.
결국, 그녀는 나유빈이 웃는 얼굴로 흉계를 꾸미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저런 제안을 던졌다고 판단한 뒤 조심스레 말문을 텄다.
“그럼 오락실 어때?”
“오락실?”
아니, 언뜻 보면 에이미랑 잘 어울리긴 하지만. 그래도 예상치 못한 선택지에 이지수가 진심이냐고 묻는 눈빛을 날렸다.
물론, 에이미는 상큼하게 이지수를 씹었다.
“마침 근처에 엄청 큰 오락실이 있거든. 레트로 게임도 꽤 많을걸? 대장도 남잔데 어렸을 땐 게임 좀 해보지 않았어?”
“하하. 물론 해봤죠. 구 관리국 시절에도 훈련 뒤 여가 시간엔 펜릴 전대원들과 알음알음 게임을 즐겼는걸요. 실전에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자투리 시간도 사라졌지만요.”
나유빈이 추억을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오락실이라….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네요.”
“저, 저도 굉장히 훌륭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장! 간만에 머리 좀 굴렸구나, 원숭이!”
뒤늦게 나유빈의 기분을 생각한 이지수가 가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에이미를 칭찬했다. 누가 봐도 분한 감정이 가득 실린 얼굴이었으나 불행히도 이곳에 그녀의 마음을 신경 써주는 이는 없었다.
“좋아. 그럼 오락실로 가는 거 확정이지? 안내는 내가 한다?”
“부탁드립니다, 에이미 양.”
다른 이도 아닌 금발 원숭이에게 졌다는 패배감에 이지수가 분을 삭히는 사이, 에이미는 오락실 안내하고자 먼저 등을 돌렸다. 앞장 서면서 머리 뒤로 깍지까지 낀 모습이 참으로 여유롭다. 셋은 약속 장소를 벗어나 오락실이 있는 도심으로 향했다.
“근데 대장은 무슨 게임 위주로 했어?”
“격투 게임을 했습니다.”
“오올? 우리 대장 격겜 쫌 치나봐?”
“하하. 어떨까요?”
에이미의 노골적인 질문에 나유빈은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저, 저도 게임은 좀 합니다, 대장!”
“지수는 무슨 게임 했는데?”
“어, 어….”
대답이 곤궁해진 이지수의 눈이 허공을 수영한다.
“트, 틀린 그림 찾기!”
“푸하핫! 우리 지수답지 않게 되게 귀여운 종목이네!”
오락실에 그런 게 있긴 했지. 에이미가 폭소하며 이해한다고 이지수의 등을 두드렸다.
단체로 오락실에 놀러갈 때, 격투 게임이나 슈팅 게임엔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할 게임도 없을 때 의외로 시선이 가는 캐주얼 게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테트리스와 더불어 오락실에서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남녀노소가 다 무난히 즐길 수 있는 게임 중 하나다.
하지만 에이미가 대놓고 목을 놓아 웃고, 나유빈도 아닌 척 옅게 미소를 띠자 부끄러워진 이지수가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화를 냈다.
“우, 웃지 마! 이래 봬도 내가 살던 동네에선 틀린 그림 찾기 1등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 내기 한 번 할까?”
에이미가 은근히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제안했다.
“내기? 나와 자웅을 겨루자는 거냐, 원숭이?”
“모처럼 이런 멤버로 오락실에 가는데. 그냥 게임만 즐기는 건 재미없잖아?”
에이미의 제안에 나유빈이 끼어들었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럼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저녁값 대신 내기 어떤가요?”
“오 뭐야? 대장도 끼게?”
마치 먹잇감을 찾은 포식자처럼 에이미가 흉악하게 웃자 나유빈이 조용히 안경을 벗었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안경알을 스윽 닦아낸 뒤 특유의 얄미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왜요? 혹시 쫄리시나요?”
“방금 뭐라고 했어?”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에이미가 검지로 자기 귀를 후볐다.
“쫄리시냐고 물었는데요.”
연이은 나유빈의 도발에 에이미의 표정이 굳었다.
“… 좋아. 내가 그래도 대장 체면은 챙겨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원하신다면, 내가 아주 개박살을 내주는 수밖에 없겠네? 아앙?”
“하하. 아무래도 에이미 양에게 오락실 랭커, 식스윙즈가 물로 보이셨나보군요. 좋습니다. 승부를 받아들이죠.”
둘의 시선이 맞닿고, 찌릿 전기를 일으키며 주변이 거세게 불타오른다.
“후후후.”
“하하하.”
이지수의 눈에 환영이 보였다.
나유빈 뒤로 활활 타오르는 붉은 날개가 활짝 펼쳐지고, 에이미 뒤로 프리덤 라이더즈의 로고가 파랗게 번쩍인다.
“뭐야 이거, 무서워….”
그렇게, 그라운드 원의 오락실에서 육익 단합회의 서막이 열렸다.
끝
잠도 안 와서 창작탭 둘러보다가 문득 예전에 사원들로 롤하는 문학 떠올라서, 만약 얘들은 게임을 한다면 어느 장르 게임을 잘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끄적임. 후속은 누가 써주면 좋겠당.
아래는 본인의 육익 게임실력 망상.
나유빈 - 격겜과 지휘계 시뮬겜 마니아. 본진은 킹오파. 킹오파는 97 이후 인정하지 않고 있음. 그래도 98은 예외적으로 인정.
에이미 - 두루 잘하지만 전공은 리겜. DDR이나 펌프 등의 전신을 사용하는 리겜을 특히 좋아함. 오락실의 아이돌.
이지수 - 틀린 그림 찾기의 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