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counterside/26482807
이 글덩어리는 위 링크에 올린 멋진 팬아트를 보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개멋진 팬아트니까 꼭 한 번씩 보세요.
오리지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이 불편하신 분들은 미리 걸러주세요.
인간은 침식체를 이길 수 없다.
정확히는, 카운터가 아닌 인간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검증이 필요한 명제가 아니다.
인간의 가능성 어쩌구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 눈에 직접 보여주면 될 뿐이었다.
수 년에 가까운 시간을 훈련에 투자한 이들이 단 몇 초만에 찢겨나가는 모습을.
캄파멘토.
적도의 바로 아래인데다 아마존 강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환경.
도시는 항상 습했다.
비가 오지 않는 순간에도 공기 중에 남아있는 질척함은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막 배치받은 터커 이병 역시 도시의 질척임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다만 그 상대가 습기가 아닌, 채굴꾼이었지만.
[승인은 받으신겁니까?]
[허가증 보여줬잖아.]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인원 수가 맞지 않습니다.]
[급하게 추가한거야. 밖에서 안전하려면 더 필요한데 이것도 줄인거라고.]
[재승인 받아오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하...]
사내의 뒤에 서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짜증 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거 그냥 좀 보내주면 안되나?]
[추가된 인원 포함해서 다시 승인 받으셔야합니다.]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우리가 여기서 하루이틀 일해?]
터커 이병은 그들의 욕지거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규정은 지켜야하니까 규정입니다.]
그의 단호한 말투에 도시 밖에서 한탕 챙기려던 채굴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런 씨발, 우리가 우리 목숨 걸고 일하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니네가 우리 목숨 책임이라도 지나?]
짜증섞인 고함.
[나가 뒤지든 살든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문이나 열라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절대...]
탁.
누군가가 어린 경비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대가리 수는 똑바로 신고하자고 했잖나.]
검문소 안에서 나온 것은 노병이었다.
어린 이병과 장비는 같았지만, 계급장에선 큰 차이가 보였다.
[로크, 자네 따라나갔다가 시체도 못 건진 사람이 몇 명인지 알기는 하나?]
베테랑의 풍모가 엿보이는 노병이 실없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뒤져나가는데도 자네는 항상 살아돌아오니 참 이상한 일이야.]
[미친 늙은이가..., 무슨 개소릴 하는거야?]
로크라 불린 채굴꾼이 움찔했다.
[혹시 아나? 자네랑 나갔다 뒈져버린 놈들 머리통에 짐승 새끼들 발톱대신 자네가 쏜 총알이 박혀있을지?]
[무슨 그따위 헛소리를...]
경비병의 말을 들은 로크의 무리가 술렁였다.
그냥 흘려듣기엔 조금 심각한 말이었다.
그런 채굴꾼들의 술렁임을 신경쓰지도 않고, 노병은 턱짓으로 문쪽을 가리켰다.
[가봐.]
[그릭스 상사님?]
[됐네, 내가 알아서 할게.]
당황하는 젊은 경비를 물러세운 그릭스 상사는 채굴꾼들에게 흔쾌히 문을 열어주었다.
[안 가고 뭐하나?]
[...]
채굴꾼 로크는 짜증섞인 눈으로 그릭스 상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한숨을 푹 내쉬더니, 무리를 이끌고 터벅터벅 도시 바깥으로 사라졌다.
[이래도 되는겁니까?]
[괜찮아. 어차피 돌아올 땐 신청한 인원도 못 데리고 들어올건데.]
그릭스 상사는 뭐가 즐거운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
[표정이 왜 그러나?]
상사는 검문소 안에 마련된 탁자 앞에 앉았다.
조악한 냉방 장치는 있었지만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캄파멘토, 자네는 왜 이런 곳을 골랐나?]
젊은 병사는 상사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 했다.
[훈련 성적이 우수했지않나. 관리국 직할 도시도 노려볼만 했을텐데.]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위험한데다 날씨도 좆같은 이런 깡촌이 뭐가 좋다고? 자네 미쳤나?]
[...]
[하긴,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쓸만한 신병이 들어온거니까.]
그릭스는 낡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상사님은 왜 캄파멘토에 계십니까?]
[나?]
제대로 차가워지지도 않은 음료수를 들이키려던 그릭스 상사가 신병을 돌아보았다.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위험한데다 날씨도 조.. 아니, 나쁜 깡촌인데 왜 여기 계십니까?]
[월급이라도 타먹으려면 이런 곳이라도 있어야하지 않겠냐? 나 같이 늙은 몸뚱아리를 어디다 쓰겠나?]
[...]
터커 이병은 상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상사의 얼굴에 남아있는 무수한 흉터.
[대정화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많지 않습니다.]
[또 어디서 헛소리를 듣고 왔나 보군.]
대정화전쟁마저 이겨낸 베테랑이 이런 깡촌에서 한가로이 경비나 하고 있다.
이 사실은 캄파멘토의 병사들 사이에서 늘 의문을 자아냈다.
[난 그 전쟁에서 한 게 없어. 그냥 이리저리 꽁무니만 내빼다가 추하게 살아돌아온거지.]
누군가 그릭스에게 이러한 사실을 물어보면 항상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운이 좋았던 늙은이지.]
물론 납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말 못할 사연이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채굴꾼 한 무리 통과했다고 보고나 올려.]
[인원 수는 어떻게 합니까?]
[그 쪽에선 물어보지도 않을걸?]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터커 이병이 쭈뼛거리며 관리국에 보고를 올리자, 담당자는 그저 짧게
[확인했습니다.]
한 마디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 말이 맞지?]
[너무 대충인거 아닙니까?]
그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람 한 두명 죽어나가는건 일도 아니란거지. 심지어 그게 채굴꾼이라면 더더욱.]
터커 이병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도시의 출입을 관리하는 부서에서조차 이 지경이니 그로서는 바꿀 수 있는게 없었다.
[꼬맹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거다. 어깨에 힘 좀 빼.]
그릭스는 늙었지만 여전히 억센 손아귀로 신병의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그 때였다.
먼저 거는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신경 쓸 이유가 없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받지.]
그릭스 상사가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7번 검문소 그릭스 상사입니다.]
한동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렇게 하지.]
상사가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터커 이병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오늘 자정을 기해 검문소를 폐쇄하라는군. 귀빈이 온다는 모양이야.]
[귀빈... 캄파멘토에 말입니까?]
[그러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터커 이병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검문소는 왜 닫는겁니까?]
[윗선의 지시야. 보안을 위해서라는데... 어지간한 귀빈이 아니신가보군.]
[지금 밖에 나가있는 사람들은요?]
그는 오늘 7번 검문소를 통해 도시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도시 밖에 버려둔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연락이 갈거야. 그건 우리 할 일이 아니고. 말한대로 자정에 검문소 폐쇄니까 준비하게.]
[예.]
터커 이병은 검문소를 닫고 있는 동안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비해 이곳저곳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난 할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오지.]
[예? 그게 무슨... 그릭스 상사님? 상사님?!]
애타게 외치는 이병을 방치한 채, 상사는 검문소를 나섰다.
[대체 어디갔다 이제 오십니까?]
자정을 30분 정도 앞 둔 시간.
터커 이병은 검문소로 돌아온 그릭스 상사를 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살짝 짜증이 섞여있었다.
[볼 일이 좀 있었지. 슬슬 퇴근하지.]
[검문소 폐쇄건 때문에 교대도 없다고 연락이 와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들었지.]
그릭스 상사는 대충 답하고 도시의 문을 닫는 스위치를 눌렀다.
[아직 30분 남았습니다.]
[돌아오기로 되어있는 사람들은 없어. 적당히 해치우고 퇴근하자고.]
[...]
평소 같았으면 규정대로 진행하자고 달려들었을 신병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도 말이 없었다.
교대도 없이 연속된 근무로 사지가 너덜너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성적 우수한 신병도 근무 뺑뺑이 한 방이면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그런거 아닙니다.]
푸핫, 하고 상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검문소를 폐쇄하면 어디로 출근합니까?]
[안 그래도 그걸 이야기해주려고 했네. 임시 파견이야.]
[파견? 어디에 말입니까?]
상사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코핀... 컴퍼니?]
[일이 진행되는 동안 자네는 거기 경비를 맡을거라는군.]
[뭐하는 회사입니까? 처음 들어보는데...]
[관리국 직할 도시에서 활동하는 태스크포스인 모양이야. 나도 자세한 건 모르네.]
[그 귀빈이 이 회사 소속입니까?]
그릭스 상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국 소속 군인이 왜 태스크포스의 경비 같은 걸.]
[어쩌겠나, 우리 같은 말단은 시키는대로 하는거지. 아무튼 그렇게 알게. 나 없는 동안 사고치지말고.]
[그릭스 상사님은 안 오시는겁니까?]
터커 이병의 질문에 상사가 그의 정수리를 살짝 찍었다.
[자네는 나이 오십 줄이 다되가는 노병에게 하루종일 서있으라 할 셈인가?]
[...죄송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내 할 일이 따로 있지.]
[안 말해주시는 겁니까?]
[자네가 알 만한 일이 아니니까.]
그릭스 상사가 먼저 검문소 밖으로 나갔다.
[언제까지 거기 있을건가?]
[예, 지금 갑니다.]
재촉하는 말에 터커는 급하게 폐문 절차를 마쳤다.
컴퓨터 화면에 뜬 상황을 보니 다른 검문소들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다들 개판이구만...]
지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닫는 자신들의 검문소가 가장 마지막까지 열려있던 문이라니.
몇 개 남지 않은 인류의 도시 중에 제일 위험하다는 곳이 이 꼴이니 다른 도시는 오죽할까?
[내일부턴 지루할거 같습니다.]
[직할 도시에서 온 높으신 분들 구경이나 하라고. 혹시 알아? 잘 보이면 돌아가는 비행기에 병아리 하나 태울 자리가 생길지?]
[농담이 과하십니다.]
[농담이 아냐.]
그릭스 상사의 어깨는 오전보다 조금 무거워져 있었다.
[이런 깡촌에서 썩는 것보단 좋은 인생이 많을거야.]
[그러는 상사님은 왜 여기 계속 계시려는겁니까?]
[실적 하나 없는 늙은이를 어디서 부르겠나?]
[상사님의 그 말은 지나가는 개도 안 믿습니다.]
[개만도 못한 것들 같으니라고.]
터커 이병은 상사의 오른쪽 허벅지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그 곳에 매어있는 홀스터를.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대의 마크가 새겨진 낡은 홀스터.
그 홀스터에 항상 끼워져있는 낡은 권총.
공식적으로 받은 인식표와 함께 매달려있는 반쯤 찌그러진 인식표까지.
평범한 노병은 아닐거란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터커는 그릭스 상사라면, 자신이 캄파멘토에 온 이유를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저는 침식체와 싸우고 싶습니다.]
[뭐?]
터커 이병의 말에 그릭스가 걸음을 멈췄다.
[침식체들과 싸우고 싶어서... 캄파멘토에 자원했습니다.]
[...]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싸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머저리 같은 놈.]
그러나 이병의 기대와 달리,
그릭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뒤에 나온 말은 한심함이 뒤섞인 경멸과 분노였다.
[애송아, 침식체와 싸우는 건 요상한 시계를 찬 카운턴지 뭔지 하는 놈들이 하는거다. 우린 그 뒷처리만 하는거고.]
[...]
[침식체를 눈으로 본 적은 있나? 이 따위 고철덩이 총으로 그 놈들을 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보기 드문 상사의 격정적인 모습에 터커의 숨이 멈췄다.
[맞추는 건 둘째치고, 맞춰봐야 흠집 하나 안 난다. 그 놈들이 1종이라고 비웃는 짐승 새끼 한 마리 잡으려고 분대 하나가 통째로 갈려나가는 일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은 얼어죽을, 그따위 생각이면 당장 총 내려놓고 다른 밥벌이나 찾아봐라.]
[상사님은 대정화전쟁에 참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는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짐승 새끼들 발톱에 찢어뒤지든, 공무원이라는 새끼들 총에 맞아죽든 매사 죽는건 똑같았다고.]
[...]
[지금은 다르다 꼬맹아. 정 침식체가 죽이고 싶으면 돈을 벌어서 그 요상한 시계를 사라. 군인 같은건 꿈도 꾸지 말고.]
[상사님은...]
터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침식체를 보신 적 있으십니까?]
[...]
그릭스 상사의 입술이 굳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무겁게 열린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정도로 많이 봤지.]
그렇게 대답하는 노병의 얼굴엔 증오, 공포 그리고 짙은 후회가 묻어나왔다.
[빨리 들어가라 꼬맹이. 군바리는 가급적 관두고.]
[...편히 쉬십시오.]
터커 이병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릭스 상사는 한참을 깜박이는 가로등 아래에 서있었다.
전날, 상사와의 어색한 이별 후에 터커는 잠을 설쳤다.
군인 따위 그만두라는, 침식체와 싸우는 건 환상일 뿐이란 상관의 노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발.]
잠을 설친데다가 전날 계속 혼자 근무를 섰더니 온 몸이 삐그덕거렸다.
경비 업무는 서있는게 고작이었지만 그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컨디션이 나빴다.
[곧 도착한다. 해이한 모습 보이지 말도록.]
자신을 담당자라 칭하며 꺼드럭거리던 양복쟁이가 소리쳤다.
터커는 속으로 오다가 뒤지든 말든 빨리 일이나 끝내고 싶다며 욕지거리를 했다.
‘존나... 담배 피고 싶다...’
가열차게 내리쬐는 찐득한 햇빛에, 온다 온다 소문만 무성한 귀빈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올랐다.
차오르는 원망 만큼 치솟는 흡연 욕구는 젊은 병사를 미치게하는데 충분한 위력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궁시렁대던 때였다.
한 무리의 차량이 건물 앞 도로에 멈춰섰다.
비싸보이는 승용차 한 대와, 자재가 잔뜩 실린 트럭 몇 대.
트럭 몇 대에 나눠 운송해야할 자재들을 항공편으로 보낸 걸까.
과연 관리국 직할 도시의 태스크포스는 좀 남다른 모양이다.
‘저 회사는 돈도 존나게 주겠지.’
문득 상관이 어젯밤 했던 소리가 다시금 떠올랐다.
돈이나 모아 시계를 사라는 말.
[캄파멘토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차에서 내리는 여성을 보고 양복쟁이가 다가가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아까까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던 양복쟁이가 실실 쪼개며 굽실거렸다.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햇빛이 너무 강하니 빨리 안으로 드시지요.]
[...]
회색 양복을 차려입은 여자는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이윽고 힐끔힐끔 눈알을 굴리던 터커 이병과 눈을 마주쳤다.
새빨간 눈동자가 무심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안대?’
해적이나 차고다닐 법한 촌스러운 안대가 그녀의 한 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시선을 거둔 여자는 다시 양복쟁이 담당자에게 눈을 돌렸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배려해주신대로 일 이야기는 안에 들어가서 하는걸로 할까요?]
차가운 표정이었던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등장부터 화려했던 귀빈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지 벌써 3시간이 지났다.
28분이나 지각한 교대자에게 욕을 한 바가지나 쏟아붓자 답답했던 속이 좀 풀렸다.
그가 자신과 같은 신병이라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후우...]
그는 건물 뒤편의 그늘에서 싸구려 담배를 뻑뻑 피워올렸다.
그래도 차가운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가 있으니 7번 검문소보단 나은 환경이었다.
지루하다는 최악의 단점만을 제외한다면.
‘차라리 검문소 근무가 낫지.’
검문소나 건물 경비나 매한가지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 구경하는 맛에선 차이가 났다.
도시의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많은 사연을 가진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반면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구경할 게 별로 없다.
[하...]
안대 낀 요상한 여자나 뭔지 모를 자재들도 한 두번 보는게 신기하지, 앞으로 매일같이 보다보면 금세 물릴 것이다.
[...]
도시에서도 고지대에 위치한 건물이라 캄파멘토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을 포함해, 고층 건물들이 늘어선 이곳과 대비되는 공간을 터커 이병은 멍하니 쳐다보았다.
판자촌과 별로 다를게 없는 저 공간은 원주민들의 땅이다.
지옥이 되어버린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자들의 땅.
자신이 서있는 이 공간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의 겉면이고, 원래 있어야할 자리를 잃고 대륙 유일의 피난처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집은 뒷면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별 수 없지.’
인류라는 종 자체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빈부격차를 논하던 것도 인류가 전성기를 누리던 과거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생존이라는 대명제 앞에, 존엄성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
그런 시덥잖은 생각들을 하며 시간을 죽이던 터커 이병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들어왔다.
[상사님?]
저 멀리, 도시의 뒷면에 익숙한 떡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릭스 상사다.
평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사복이라는 점이었다.
‘왜 사복을?’
검문소가 문을 닫은 동안 할 일이 따로 있다고 했던 양반이다.
근데 왜 대낮에 사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을까.
터커 이병의 눈이 그릭스 상사의 뒷모습을 좇기 시작했다.
사복을 입은 노병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거리가 제법 있는 탓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게 채굴꾼이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저런 복장과 장비를 차고 다니는 건 채굴꾼이 아니면 없었으니까.
‘채굴꾼과 만날 일이 뭐가 있지?’
검문소가 아니라면 마주칠 일이 없다.
채굴꾼과 군인은 그런 관계였다.
거기다 군복을 벗고 사적으로 만날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개인적인 친분일까? 하지만 그릭스 상사가 친하게 지낼만한 채굴꾼이 있을거란 상상은 쉽게 들지 않았다.
‘한 번 알아보자.’
터커 이병은 들고 있던 담배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근무가 끝나고, 막사에 돌아온 터커 이병은 일등상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뭐 하나만 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뭔데.]
일등상사 로페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컴퓨터 화면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릭스 상사 임시 파견지가 어딘지 알고 싶습니다.]
[왜.]
[...]
사복 입고 돌아다니는 그를 목격해서 그렇단 말은 하지 않는게 좋아보였다.
[그릭스 상사가 저한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게 이유가 되나?]
[...]
로페즈는 깐깐하기로 소문 난 사람이었다.
터커 이병도 그의 악명을 잘 알고 있어, 굉장히 긴장한 상태였다.
무심하지만 날카로운 눈매가 터커 이병을 응시했다.
[그릭스 상사는 휴가다.]
[예?]
[휴가다. 7번 검문소 폐쇄기간 동안 휴가를 냈다.]
[휴가... 말입니까?]
툭.
일등상사는 컴퓨터 옆에 놓여있던 서류에 볼펜을 가져다댔다.
부대원들의 휴가를 한 눈에 보기 좋게 정리해둔 달력이었다.
[그릭스 상사는 검문소 근무가 다시 시작되기 전 날에 돌아올 예정이다. 답변이 됐나?]
[감사합니다.]
[용무는 그게 끝인가?]
[그렇습니다.]
[돌아가게.]
터커 이병은 절도 있는 자세로 일등상사에게 경례를 취했다.
조심스럽게 멀어지던 그를 로페즈 일등상사가 불러세웠다.
[터커 이병.]
[예, 일등상사님.]
[자네가 맡고 있는 임무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말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터커가 매우 정중하게 사무실 문을 닫았다.
로페즈 일등상사의 말은 그에게 이렇게 들렸다.
‘무엇 때문에 그릭스 상사의 행방을 조사하는지 몰라도 사고는 치지마라.’
어차피 터커 이병으로써도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그릭스 상사는 단순히 신병에게 자신의 일정을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휴가 가시는거면 말 한 마디 정도는 해주시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기 휴가 계획은 물론이고 사소한 일정까지 관리 차원이라며 꼬치꼬치 캐묻던 그릭스 상사였다.
그러면서 자기 일정은 꽁꽁 감추다니.
조금 섭섭했다.
자신은 지루한 건물 경비나 서야하는데 휴가라니.
하루만에 지긋지긋해진 그 건물로 또 나갈 생각에 벌써부터 짜증이 솟구쳤다.
그 때였다.
[터커?]
[...?]
동기인 팻 이병이 그를 불러세웠다.
[일등상사님이 찾으신다.]
[날?]
이상한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만난게 방금 전이었는데, 왜 갑자기 찾는걸까.
[빨리 가봐. 그 꼰대 성깔 알지?]
[고맙다. 바로 가볼게.]
터커 이병은 서둘러 로페즈 일등상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터커 이병입니다.]
[들어와라.]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한 후 관등성명을 말하자 곧바로 들어오란 소리가 돌아왔다.
[검문소 일지는 어딨나?]
로페즈 일등상사는 그가 문을 다 열기도전에 물었다.
[7번 검문소 일지가 없다. 어디있나?]
[어제 제출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없다.]
일등상사가 그렇게 말하며 파일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직접 확인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7번...]
터커 이병은 1번 검문소부터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일지 파일들을 확인했다.
로페즈 일등상사의 말이 맞았다.
6번 검문소 일지 다음에 8번 검문소 일지가 있었다.
[확인했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디있나?]
[...]
로페즈 일등상사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터커 이병!!]
[죄송합니다!]
[폐문할 때 절차를 제대로 이행했나?!]
[이행 했습니다!]
[검문소 일지에 제대로 기록했나?!]
[기록 했습니다!]
[검문소 일지를 제대로 제출했나?!]
[제출 했습니다!]
[그럼 제출했다는 7번 검문소 일지는 어디있나?!]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터커 이병은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내일 근무가 끝나는대로 7번 검문소로 돌아가 일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만약 검문소에도 일지가 없으면 그릭스 상사의 휴가는 취소다. 정말 분실된거면 너한테도 징계가 있을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일어나!]
갑자기 일어난 탓에 잠깐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네 입으로 말해봐라! 내일 근무가 끝나면 뭘 해야하지?!]
[7번 검문소로 돌아가 검문소 일지를 찾아봐야합니다!]
[찾지 못 하면 어떻게 된다고?!]
[그릭스 상사의 휴가는 취소되고, 저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로페즈 일등상사가 사나운 눈으로 터커 이병을 노려보았다.
[알겠으면 이만 돌아가라!]
[예! 알겠습니다!]
터커 이병은 평소보다 몸에 힘을 꽉 준 채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 문을 닫고 걸어서 정확히 여덟 걸음.
[개씨발.]
욕을 했다.
혹여나 로페즈 일등상사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나는 병신이다. 나는 병신이다.]
터커는 검문소 안의 의자에 앉아서 중얼거렸다.
그의 손엔 7번 검문소의 운영 일지가 들려있었다.
아무래도 상사의 재촉에 서둘리 폐문 절차를 마무리한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제대로 반납해야할 일지를 책상 위에 던져둔 채로 그냥 나오다니.
그러고선 자기가 일지를 제대로 제출한 줄 알고 있었다.
[후...]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은 일지를 완전히 분실한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일지를 잃어버렸다면 아주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징계는 물론이고 자기 때문에 휴가가 날아간 그릭스 상사를 어떤 얼굴로 봐야할까.
터커 이병은 일지를 가방 안에 넣고도 문을 나서기 전까지 세 번은 더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번엔 두고 오는게 없기를...]
중얼거리며 검문소 문을 나선 그는 다시 막사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소한 사고였을 뿐인 일이었다.
그냥 물건을 깜박 잊고 두고 온 탓에 일등상사한테 욕을 처먹는, 그런 사소한 일.
적어도 터커 이병의 귓 속에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열어줘...!]
[...?]
메아리치듯, 어떤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린다.
[열어줘...! 열어달라고...! 이런 씨발...!]
[...]
소리에 집중하며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옮긴다.
터커 이병은 한 발자국 씩, 닫혀있는 7번 게이트로 다가가고 있었다.
[문 열라고...! 이 씨발새끼들아..!!]
소리가 한층 명확해졌다.
굳게 닫힌 7번 게이트 바로 바깥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고통에 가득 찬.
[...!!]
터커 이병은 헐레벌떡 검문소 안으로 뛰어들어가 수화기를 잡았다.
심드렁한 당직 근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7번 게이트 개문 요청합니다.]
[그게 뭔...]
[부상자가 있습니다! 개문 요청합니다!!]
수화기를 잡지 않은 한 손은 검문소의 메뉴얼을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긴급 개문 절차...’
터커 이병의 두 눈은 긴급 개문이 허가되는 상황을 훑고 있었다.
‘있다...! 요구조자가 있을 시...’
[요구조자에 의한 긴급 개문입니다. 절차대로 시행하겠습니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이 정도면 충분히 보고했다 생각한 터커 이병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공무원 마인드로 가득 찬 놈들과 이야기를 길게해봐야 바깥의 부상자에게 가혹한 시간이 될 뿐이다.
[7번 검문소, 긴급 개문합니다.]
어차피 비어있을 각 검문소와, 졸다가 방금 깨서 정신이 없을 도시의 출입국 관리소에 짧게 상황을 전파한 뒤, 장비를 조작해 7번 게이트를 개방했다.
문이 열리는 동안 장비를 챙긴 터커는 경계자세로 천천히 게이트에 다가갔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그 곳에는 쓰러져가는 두 사내가 있었다.
[이런 씨발...!]
사내는 터커 이병을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노친네는 어디가고 햇병아리 새끼만...!]
[무슨 일입니까?]
터커 이병도 사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실랑이를 벌였던 채굴꾼 사내, 로크였다.
온 몸에 상처를 입은 로크는 비틀거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뒤에 있는 사람은 이미 피를 대량으로 흘린 상태였다.
[7번 검문소, 현 시각 요구조자 둘 발견. 중상임. 의료 지원 요청함.]
제대로 전달이나 될 지 의심가는 핸드토키에 상황을 전파한 터커 이병은 로크의 뒤에 있던 사내 먼저 부축했다.
[야 이 씨발..! 나부터..!]
[부상이 심한 사람부터입니다!]
[미친새끼...]
[이봐요! 내 말 들려요?!]
터커 이병은 제대로 대답도 못 하는 부상자를 검문소 안에 눕혀두었다.
그리곤 다시 밖으로 나가 로크를 업어들고 돌아왔을 때, 그의 숨은 이미 끊어져있었다.
시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피가, 바닥을 천천히 적시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문 부터 닫아 또라이 새끼야!!]
[...!]
터커 이병은 로크의 말대로 7번 게이트의 문부터 닫았다.
다행히 이들이 침식체들을 달고 온 기색은 없었다.
[이게 다 씨발 무슨 일입니까?]
[미친새끼... 약부터 줘!]
터커 이병은 검문소에 비치된 긴급 의료 키트를 꺼내들었다.
로크의 부상은 분명 심한 상태였지만, 그가 데려온 사내처럼 수 분내에 사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채굴꾼은 주사형 진통제를 꺼내 자신의 팔에 거칠게 박아넣었다.
[크아아...!]
터커는 다시 한 번 핸드토키를 잡고 의료 지원을 요청했다.
진통제를 맞은 로크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핸드토키를 잡고 역정을 내던 터커를 불렀다.
[야 꼬맹이..!]
[뭡니까?]
[노친네 어디갔어?]
[그릭스 상사님 말입니까?]
[그래 씨발, 그 빌어먹을 노친네 어디갔냐고.]
터커 이병이 거칠게 핸드토키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릭스 상사님을 왜 찾습니까?]
[이런 씨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나도 모릅니다!! 휴가 중이십니다!!]
[빌어먹을! 씨발!! 어디 있냐고 물었지 휴가 갔냐고 물어봤어?!]
[몰라요! 나도 모른다고요 씨발!! 상처 안터지게 제대로 누르고나 있어요!!]
[좆같은..., 당장 그 노친네를 만나야해... 당장..., 씨발...]
로크는 그릭스 상사를 만나야한다며 중얼거리는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의료 지원이 올 기미가 없자 터커는 그냥 수화기를 들고 소리쳤다.
[이런 개씨발!! 7번 검문소에 의료팀 보내라고!! 시체 담을 가방도 하나 챙기고!! 알아들었어?! 알아들었냐고 이 좆같은 새끼야!!]
솔직히 쓸때만 해도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랏슴...
한참 전부터 조금씩 쓰던건데, 어제 패치노트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겜을 반 쯤 놔버려서 완성 할 수 있을지 모르겟다.
혹시 끝까지 읽어준 카붕이 있으면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