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는 대물림되어 전해진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듯이 이 물건은 적합한 소유자를 찾는다. 설령 운명을 거부하려 한다 해도 인과율에 따라 워치는 반드시 주인의 곁으로 오게 되어있다. 


학회를 빠져나와 대학생의 신분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려 했던 레지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대물림되어버린 워치와 손끝에서 느껴지는 살이 아려오는 차가운 냉기, 분명 예전에 봤던 고서에서 나온 냉기와 같았다. 


맥크레디 가의 사람에게 내려지는 워치, 지식의 호수가 폭주하는 것에 대한 대비책.

그리고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무기. 카운터의 워치는 그러했으며 레지나가 가진 힘은 강력하였다.

“이정도가 전부인 걸까? 지긋지긋한 냉기 같으니라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손으로 그려낸다. 


카운터 워치의 능력에 따라 사용법은 천차만별이었지만 레지나의 냉기는 그녀가 원하는 그림에 응하여 발동되는 능력이었다. 


얼음장벽을 만들고 싶다면 이미지를 그려낸 다음 손짓으로 힘의 출력을 정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이점을 얻어내는 것이 능력 사용의 올바른 예시였다.

단점이라면 능력을 의식적으로 제어하지 않았을 때 추위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레지나의 냉기능력의 힘은 일정 출력을 내는 방식이 아닌 방대한 힘을 원하는 수준까지 낮추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그녀가 낸 출력은 전체 능력의 20%, 사내 트레이닝 룸 안에 단단한 장벽을 만들어낸 대신 손에 서리가 끼고 주변 공기가 차가워졌다.

“하아... 20%에 불과한데도 주변이 차가워졌어. 얼마나 터무니없는 힘인 거야?”

“레지나 양의 워치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사장님?”

사장님, 관리자라 불리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미세한 서리가 껴있는 방 안임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레지나에게 담요를 건넸다.

“갑자기 내부 연락망으로 주변 기온이 낮아졌다는 연락을 듣고 찾아왔다네. 이 정도의 냉기를 지닌 방벽이라면 한동안 환풍구만 열면 에어컨 걱정이 없겠어.”

“농담은 그만두세요. 저는 이 냉기 때문에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아요. 오히려 화염을 다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염이라. 자칫 잘못 사용하면 옷에 불이 옮겨붙을지도 모른다네. 오히려 좋으려나?”

“사장님!”

레지나가 살짝 화를 내자 그는 잠시 뒤로 빠졌다.

“농담이라네. 화염을 다루는 레지나양도 좋지만 나는 오히려 이쪽이 좋다네.”

“냉방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요?”

헛기침하는 사장, 정곡이 찔려버렸다.

“냉방비도 냉방비지만 레지나양은 대물림받은 워치의 능력을 최대한 제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누군가의 유산을 뒤잇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네.”

위로가 되는 말이긴 하나 레지나는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대물림받은 워치의 능력을 제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유산을 뒤잇는 것과 반대되는 목적 때문이었다.

“유감이네요 사장님. 저는 유산을 뒤이을 생각 따윈 없어요. 형체가 보이지 않는 진리에 미쳐버린 사람들이 남긴 유산을 최대한 빨리 처분하고 싶을 뿐이죠.”

가정을 파멸로 이끈 학회. 아버지를 변이시키고 어머니를 미치게 한 에크하르트 초월지식 학회는 그녀에게 있어 흉물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검게 꿈틀거렸던 지식의 호수는 영원히 봉인하고 싶은 골칫덩어리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코핀 컴퍼니의 채용에 응하였다. 


이곳의 시설이라면 틀림없이 워치의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때까지 버텨줄 수 있어 보이기에.

“그런가? 남겨진 유산을 처분하는 쪽도 고된 선택이지. 이해하네.”

담요를 덮고 잠시 앉아서 쉬는 레지나 옆에 앉는 그,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잔에 따르더니 그녀의 손에 컵을 쥐여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사장님. 훈련시설을 흔쾌히 사용하게 해주신 것도, 각종 업무를 통한 체험을 제공하신 것도,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업무 쪽은 인력난도 있는 마당에 오히려 레지나양이 도와줘서 살았네. 그리고 위치상 사장과 사원이지 자네와 난 협력자 아닌가. 가는 길은 달라도 최종 목적은 같네.”

“자신이 속한 세상을 위해 움직인다. 네, 저와 사장님의 목적은 같네요.”

식어가는 커피에 입을 대본다. 손끝이 차가워졌다곤 해도 능력이 잔까지는 닿지 않아서인지 입안으로 들어간 커피는 그 온기로 레지나의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향이 좋고 맛은 부드럽네요. 블루 마운틴인가요?”

“향을 맡은 다음 다시 한 모금 마시고 음미를 해보게. 비슷하지만 다른 원두라네.”

“그럼 어디... ,”

온화한 향기가 나며 부드러운 맛과 가벼운 바디감을 가진 커피, 블루마운틴과 언뜻 비슷한 느낌이지만 확연히 다른 원두를 사용한 맛이었다.

“산토스군요. 산토스 맞죠?”

“정답이라네. 신경 써서 원두를 고른 보람이 있군.”

“과제를 하면서 지겹도록 마신 싸구려 커피랑은 다른 맛이네요.”

“당연히 맛이 다를 수밖에. 새벽 일찍 장에 나가서 신중하게 고른 원두이니 말이네.”

레지나는 한 잔을 비워내고는 컵을 옆에 두었다.

“원하시는 게 무엇이죠? 단순 사원 복지에 이바지하는 느낌의 움직임이 아닌데요? 부탁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 주셨으니 사원은 이에 응해야겠죠?”

레지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상대방의 말, 행동 하나하나를 눈 속에 담고 사고를 읽어내는 데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학교 내에서 과제를 수행할 때도 리벳을 전속으로 고용했을 때도 이 능력은 늘 도움이 되었다.

“이런, 들켜버렸군. 나도 한 사회생활 한다고 자부하지만 레지나양에겐 못 당해내겠네.”

“고고학과 전공 대학생을 무시하면 곤란해요.”

“미안하군. 내가 실수를 해버렸네. 그런데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지? 내가 제대로 들은 게 확실한가?”

“제대로 들었습니다. 무리한 부탁만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리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레지나양에게 하나 부탁을 하도록 하지.”

말을 끝낸 이후 사장이 휴대폰으로 레지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밤하늘에 별이 수놓은 밤, 퍼레이드에 찍혀있는 푸른 몽마의 의상을 입은 야릇하고 아름다운 그녀가 찍힌 사진이었다.

“사장님, 이 사진은?”

“자네라네. 파격적인 옷을 입고 활보하던 퍼레이드 당시에 찍힌 사진이라네.”

“이 사진을 제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이죠? 설마.”

레지나는 진땀을 흘렸다. 리벳이 골라준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즐겼던 그때가 떠올랐다. 


창피하기도 하였고 당당하기도 하였던 10월 31일의 그 날. 


왜 이사진을 그가 가졌는지, 어째서 보여줬는지 대충 감은 잡혔는지라 제발 그 말만을 나오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그 설마라네. 레지나양, 능력의 완벽한 제어를 위해서라도 이 옷을 입어주지 않겠나?”

사진을 보여준 이후 사장이 가져온 트렁크가 열렸다. 


은색의 트렁크 안에 고이 접혀있던 옷은 퍼레이드 당시에 입었던 옷과 비슷한 사양의 몽마 의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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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똥글 써왔다

꼴리는 여캐들이 많아서 소재를 고민해본 결과

카사 유입때 부터 뽑고 싶었던 ESPR 캐릭터들이 떠올라서 한 번 적어보려고

특히 레지나 서큐버스 의상에 그만 쥬지가 서서 몇 번 뺐던걸 기억하며

글로 적어본다

또 19쪽으로 갈거 같지만 많이 쓰면 많이 좋아진다고 하니까 노력해볼게

봐줘서 고맙다 카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