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에이미! 좋은 아침~ 표정이 왜 그래? 밤 샜냐? 너 게임 하는 거도 없으면서 웬일로 밤을 샜대?'


나도 너희들이 맨날 하는 게임 해보느라 밤 샜지, 롤 롤 하는데 이게 왜 몇십 년을 가는지 알겠더라.


'어, 혼자 시작했어? 보통 혼자 시작하면 욕 먹는 거 못 버티고 탈주하던데. 역시 멘탈 좋다.'


헤헤, 멘탈이 좋기는 뭘. 그냥 채팅 무시하면서 핑만 보고 게임했지.


'핑으로 태러하는 놈들도 많거든, 물음표 핑 박으면서.'


아,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어쩐지 요란스럽더라.


'그니까 이렇게 눈으로 보이게 뭘 해줘야 한다는 거지!'


어, 깜짝아. 왜 갑자기 내 의자 다리를 확 밀어차는 거야? 넘어질 뻔했잖아.


어어, 사이 좋은 거 아니었어 우리?




"워워, 자다가 갑자기 뭐야? 악몽이라도 꿨어?"


벌떡 일어나자 요요 걸 - 그냥 히로세라고 부르자. 히로세가 반응하는 게 들렸다. 난 반사적으로 그 쪽을 본 뒤, 주위를 훑고는 침대에 다시 주저앉았다.


책상 앞에 앉은 히로세는 스탠드 등을 켜고 무언가 끄적이고 있었다.


"잠깐만, 여기 내 방이라며. 왜 네가 여기 와있는 거야?"


"아, 내 방은 아까 본 것처럼 서류 작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서. 널 팀원으로 받으려면 준비해야 될 서류가 좀 있거든. 원래 시엔이 있을 땐 걔는 잠에서 깨는 일이 없다보니 그냥 작업했던지라 습관적으로 여기 왔는데, 방해되면 나갈게."


"...아냐, 있어도 돼. 물 있으면 물이나 한 잔 줘."


"마시던 거도 괜찮으면 여깄어."


히로세가 건네준 컵을 받고 천천히 삼켰다. 미적지근한 물, 거의 상온의 물이다. 뱉을 뻔했다. 몸에는 더 좋다지만 물 맛이 심하게 없다.


"이거 물이 왜 이렇게 미지근해, 냉장고에 안 넣어놔?"


"어? 어, 꺼내온지 꽤 돼서 그런 거 같은데. 그래도 그 정도로 미지근하진 않을건데?"


그렇게 말한 히로세가 다시 잔을 가져가 입에 댔다.


"앗 차가, 생각도 안 했더니 더 차네. 미지근하다며, 어디 아파?"


히로세가 걱정이 어린 눈으로 나를 보자 무안해졌다. 다시 물을 입에 가져가 마셔보려니 여전히 미지근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어디 아픈 게 맞나보지 뭐.


"감기 같은 건가? 적당히 약 먹고 자면 나을거야."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상상 속에서만 말이야. 내일 서류 내고 메디컬 체크를 받으면서 확실하게 확인해보자고."


"내일 메디컬 체크? 대체 뭔 팀이 하루만에 서류 작업 다 끝내고 팀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내 질문에 히로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대답을 아꼈다.


"아까 전에 얘기했지? 다른 사람들이 필요할 때 명의 빌려주고 그 수수료 받아먹는다고."


그랬지. 끄덕였다.


"이게 원래는 자경단 느낌으로 출발한 거거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없는 이웃을 지키자. 그래서 능력과 적당한 정의감이 있는 사람은 다 자원할 수 있었어. 자전거, 스쿠터, 하여튼 탈 수 있는 건 다 타고 빠르게 자유를 찾아준다고 프리덤 라이더즈. 콩글리시지만 괜찮은 편이지?"


자전거를 타는 정의의 사도라. 민서의 모습을 보면 상상도 안 간다. 내가 무심결에 그 쪽을 봤는지 히로세도 피식 웃었다.


"맞아, 민서 씨도 원래는 저 수준까지 무기력하진 않았어. 원래부터 게임 좋아하고 사람 어려워하긴 했지만. 근데 사람 모이다보면 정치질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믿던 사람에게 발등 찍히고... 그러면서 기존 팀도, 민서 씨의 마음도 작살이 난 거지."


"흔한 일이기야 한데... 개인 입장에서 가벼운 일은 아니지. 둘 다 힘들었겠어."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어. 중립이라 두들겨맞을 일도 없었고, 우리 대표였던 린 시엔이라는 친구가 홍콩 유명인사의 친자식이거든. 그 영향력 덕분에 다른 분파에 비해서 잘 살아남았지, 프리덤 라이더즈라는 이름도 유지하고. 다른 팀은 다 흐지부지 분해되거나 주제에도 안 맞는 심도 다이브에서 골로 갔어."


제법 긴 이야기지만 그래도 들어주는 게 예의겠지. 중간중간 작게 감탄사만 추임새로 넣어가며 히로세의 말을 들었다.


"아무튼, 프리덤 라이더즈가 모두를 환영하는 건 이래서야. 자경단이 뿌리고, 인맥 빨로 쉽게 등록할 수 있게 시스템도 갖춰뒀고. 근데 좃망하면서 후원도 끊기면서 수수료 받아먹고 살게 됐다. 더 질문 있어?"


질문 있냐는 말에 반사적으로 하품이 나왔다. 히로세는 그걸 보고 실없이 웃었다.


"하기야 오늘 피곤한 하루였겠네. 마저 자, 서류 작업도 다 끝나가니 내 방에서 마무리할게."


말하고 나가는 히로세의 등 뒤로 나도 인사를 던졌다.


"잘 자, 요요 걸."


"이왕이면 좀 멋진 이름을 쓰지 요요 걸이 뭐야? 센스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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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터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팬픽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