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당신만은 내가 죽여버릴 거야...!!”

 

술이 당긴다. 그것도 도수가 조금 있는, 고급진 위스키가 당긴다.

 

주위를 쓱 훑어본다.

처음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널브러진 책걸상과, 공중을 활보하는 서류 뭉치들.

그리고 그 너머엔 울부짖는 소녀까지. 

묵혀놓은 양주를 꺼내기에는 이만한 안주가 없었다.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찬장의 구석구석을 살핀다. 

남겨뒀던 적당한 술은 좀 없는지 확인해보기 위함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찬장엔 빈 병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찬장 밑 서랍에 손을 댄다. 

그곳에 들어있던 것은 싱글 배럴 버번. 증류한 옥수수를 오크통에 숙성시켜 만든, 도수가 매우 높은 아메리칸 위스키였다. 

 

젠장할, 뒈지기 직전에나 먹으려고 남겨뒀던 건데.

 

본래 위스키란 귀티가 흐르는 분위기의 조명 아래서 매끄러운 글라스에 물결을 담아낸 후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며 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귀부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택한 방법은 스트레이트. 심지어 잔도 거치지 않고, 병에서 목구멍으로 바로 들이키는 스트레이트였다. 

 

애주가들이 봤다간 쌍욕을 지껄이겠군.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속으로 조소가 흘러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식도에 파도가 들이치고, 그 파도는 거센 물살을 이끌며 그 몸체를 이리저리 부딪혀댄다.

첫 맛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 잠깐의 달콤함이 가시기도 전에, 쓰라림과 열기가 찾아왔다.

사그라 들지 않는 열기에 물살이 닿는 장소마다 식도가 타들어가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 독한 양주를 단숨에 들이킨 탓일까, 몸에 곧바로 반응이 온다. 

피부는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시야는 흐릿해져가며, 사고가 마비된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낫을 든 채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

그녀의 눈동자에는 한이 서려있었지만, 무엇이 그리도 슬픈지 그 한스러움마저 눈물 방울에 가로막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그 잘못의 연쇄가 시작된 것일까.

 

희미해진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조각난 기억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생각을 더듬어간다.

기억의 파편들이 주마등이라도 된 마냥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그 순간순간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부터였나.

 

그리고 이내, 파편 뭉치들은 하나로 합쳐졌다.

 

 

 

 

 

 

그늘의 밑바닥 if 

-그녀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리타 아르세니코는 겨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겨울은 단절의 계절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사람들의 시야를 흐리고, 차디찬 한기는 그들의 감정을 얼어붙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두터운 외투를 껴입는다. 

 

그 외투는 따스하다. 그러나 그 외투는 동시에 하나의 커다란 장벽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숨기며, 타인과의 연결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말이다.

 

그 장벽의 안에서 그들은 타인의 상실에 공감해주지 못한다.

서로에게 관심을 품지도 않는다.

그저 냉기로 가득찬,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해갈 뿐이다.

 

거리를 밝히는 화려한 조명조차 그 냉기를 녹이지 못하니,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어찌 됐든, 겨울은 참으로 역설적인 계절이 아닐 수 없었다.

도심의 불빛 사이로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는 광경은 미치도록 아름답지만, 불빛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그렇지 못했으니.

 

왜 유독 겨울만이 그런 비극의 시기로 취급받는 것일까.

 

볼에 떨어지는 싸락눈의 서느런 감촉을 느끼며 리타는 한창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지만, 그 잡스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떤 인물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산통을 깬 것이다.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주세요! 저희 딸만은 안 돼요!

 

“맞아요! 그 애가 없으면 돈을 못 갚는다니까요!”

 

리타는 자신의 발치에서 땅바닥을 기며 애걸복걸하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봤다.

참으로 한심한 쓰레기들이었다.

도박에 중독되어 돈도 갚지 않고, 어린 자신의 피붙이를 돌보기는커녕 돈벌이에 이용할 정도로 도박에 미쳐있는 쓰레기들. 

그들에게 줄 일말의 동정심조차 리타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표정이 구겨지는 것을 참으며 리타는 그들을 매몰차게 걷어찼다.

 

“닥쳐. 이미 결정한 일이니까.”

 

“안 됩니다! 안 돼ㅇ...”

 

“이미 얘기했잖아? 이건 부탁이 아니라 통보라고. 빨리 문이나 열어.”

 

“흑흑흑...정말 안 되는데...”

 

초췌한 모습의 남성은 리타가 보란 듯이 큰 소리로 흐느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조금의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방도가 없어진 그는 하는 수 없이 눈앞에 있던 허름한 판잣집의 문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윽...냄새...”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를 반긴 것은 코를 찌르는 듯한 악취였다.

집안 곳곳에는 버리지 않은 쓰레기봉투가 널려 있었고, 그 쓰레기로부터 흘러나온 냄새가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작은 집 전체를 절여버린 것이다.

 

그 쓰레기봉투들과 함께 집 이곳저곳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보자니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 누가 오더라도 사람이 사는 장소라곤 생각하지 못할 풍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그러나 고작 집 구경이나 하자고 오늘 그녀가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리타는 널려있는 쓰레기들을 헤치며 집 안쪽의 방으로 향했고, 그 안에서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던 작은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꼬맹이.”

 

“...?”

 

말소리가 들려오자 소녀는 말소리의 발원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리타는 가만히 그런 그녀를 쳐다봤다.

 

기껏해야 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나이대와는 맞지 않은 행색을 취하고 있었다.

덥수룩한 긴 더벅머리에, 후줄근한 겉옷. 

몸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돈을 낭비하는 부모들을 대신해 아르바이트를 뛰는 모습까지.

도저히 어린 소녀라곤 생각되지 않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또래와 달랐던 점은 그녀가 품고 있는 눈동자였다.

그녀의 눈동자엔 생기 한 점조차 돌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텅 비어버린 눈동자로 리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민 어린 감정을 뒤로하고, 차가운 겉옷으로 스스로를 감추며 리타는 말을 이었다.

 

“너희 부모가 방금 너를 팔았다. 빨리 짐 싸고 밖으로 나와. 오늘부터 넌 내 소유물이니까.”

 

“팔았...어...?”

 

“그래, 팔았어. 그러니까 어서...”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 서있던 그녀의 아버지가 달려와 둘의 사이를 가로막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팔았다니요! 멋대로 데려가는 거면서...!”

 

“...뒈지기 싫으면 입 닥치고 있어.”

 

“아니요, 절대 안돼요! 이 애가 없으면 우린 어떻게 살아요! 통보든 뭐든 절대 못 넘겨요!”

 

“하...”

 

그 역겨운 꼴을 보고 있자니, 리타의 입에선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 인간은 무슨 염치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봐, 쓰레기.”

 

“ㄴ, 네...? 저 말인가요...?”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어쨌든, 넌 네가 저 꼬맹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벌레랑 쓰레기가 우글거리는 집구석에서, 학교도 안 보내고 저렇게 일만 시키고 있는데?” 

 

“윽...!”

 

“아니, 당신은 못 해.

스스로 돈도 못 버는 인간들이 양육은 무슨 양육이야. 

그러니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데리고 가겠어. 저 꼬맹이를 위해서도 그게 나을 테니까.”

 

흥분한 리타는 계속해서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말은 정당했다.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부모의 밑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가난과 도박이 그녀에게 대물림될 뿐이다. 

설령 생판 남인 자신이 그녀를 키우게 될지라도, 그런 족속들보다야 자신이 그녀를 거두는 것이 맞다고 리타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뒤를 이은 남성의 말은 그녀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그래도, 다...당신은 살인자잖아! 

내가 당신 같은 살인자보다 못하다는 거야?!”

 

“...뭐?”

 

“그...그런 피 묻은 손아래에서 무슨 애를 키워! 

우리 애까지 살인자로 만드려는 거야?! 나...난 절대 그 꼴 못 봐!”

 

살인자. 단 세 글자 밖에 되지 않는 그 한 단어는 리타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잠깐의 충동적인 정의감에 빠져 본인이 영웅이라도 되는 기분에 도취해있었지만, 정작 자신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해왔던 일들이 순식간에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결국 그녀의 위선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녀의 그런 기가 죽은 모습에 기세가 등등해진 남성은 이전보다도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고,

 

“봐봐! 당신도 이건 아닌 거 같지? 그러니까 어서 포기하고 돌아가!”

 

지금까지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여성마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목소리를 펴기 시작했다.

 

“맞아요! 빨리 돌아가요!”

 

그들의 일갈에 리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과연 살인자가 도박 중독자보다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마저 제대로 서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옆에서 사태를 일망하던 아이에게 눈길을 돌렸다.

 

“야, 꼬맹이.”

 

“네...?”

 

“네가 대답해봐. 나를 따라올 거야, 아니면 저 인간들 밑에서 계속 있을 거야.”

 

“당연히 우리죠! 대시, 빨리 대답하렴! 우리랑 같이 살겠다고 말이야!”

 

“넌 닥치고 있으랬지! 꼬맹이 빨리 대답해봐. 나야, 이 인간들이야?”

 

“우...우으....”

 

양측의 압박에 소녀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조용히 침묵만을 고수했다.

 

그러나 혼란스런 리타에게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즉답이 나오지 않고 대답을 얼버무렸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저들이 똑같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청록색의 머리를 산발로 뒤척이며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

 

“봤죠! 당신이랑 가기 싫다잖아요! 그러니 어서...!”

 

“닥쳐!”

 

“히...히익...!”

 

“당신들, 기간을 딱 1달만 더 주지. 

그 1달 안에 뭔가 다른 일을 하든 장기를 팔든, 어떻게 해서든 돈을 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달엔 당신네들 사망 보험금으로 빚을 전부 갚아야 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리타는 그 허름한 판잣집을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이 잘났는지 뻔뻔한 태도로 나오는 저 쓰레기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저 꼬맹이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자신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그녀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로 불린다지만, 그녀는 이제 갓 10대 티를 벗은 어린 여성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산전수전을 겪었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쓰레기들과의 다툼에 한정된 것 일뿐, 이런 상황에까지 대비되어있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까지 복수에 눈이 먼 장님과도 같았으니,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리타는 주머니에서 한 까치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곤 하늘을 바라봤다.

날은 서늘했고, 피부로 느껴지는 감촉은 오싹했다.

 

그 추위 속에서, 그녀는 마치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겨울 속 인간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녀왔어.”

 

밖에서 있던 일이 피곤했던 탓일까.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리타는 사무실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모르는 호라이즌은 홀로 온 그녀의 모습에 의문을 표했다.

 

“왔습니까, 휴먼. 음? 데리고 오겠다던 그 여자아이는 어디다 냅두고 왔습니까?”

 

“관뒀어. 흥이 떨어졌거든.”

 

“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여간 인간들의 변덕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이 고철 덩어리야.”

 

그 말을 기점으로 그녀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 호라이즌 또한 그녀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고, 사무실에는 어색한 정막만이 감돌게 되었다.

 

리타는 말없이 위스키를 꺼내 들이켰다.

술이라도 취해 모든 것을 잊고자 하는 듯이.

 

그렇게 그들의 옛날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그 도박 중독자 부부와 그들의 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리타의 귀에 들려왔다.

 

 

 

 

**

 

 

 

“빌어먹을.”

 

취기에 이끌려 몸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개같은 기억이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굳이 떠올리지 않았을 만큼이나.

 

리타는 불현 듯 고개를 들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낫을 휘두르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자신이 그때 데리고 가지 않았던 그 꼬맹이가 자신의 바로 눈앞에 서있었다.

 

덩치는 훨씬 커지고, 생기를 잃었던 눈에는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는 채로.

 

무엇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던 것일까?

나름의 궁금증을 품었던 리타였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 해답을 풀 열쇠를 쥐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한창 감상에 빠져들었을 때, 어디선가 시끄러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리타! 언제까지 술만 먹고 있을 겁니까? 빨리 대시를 진정시켜야 합니다.”

 

그녀가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날아다니는 작은 드론 한 기가 있었다.

이 사무실의 대표이자 그녀의 사장인 호라이즌이었다.

 

“조용히 해. 생각 중이잖아.”

 

“지금 사무실이 이 꼴이 났는데도 딴 생각 할 여유가 있습니까?”

 

그녀의 일갈에도 호라이즌은 기세를 굽히지 않고, 오히려 리타를 나무랐다.

 

“어쨌든 빨리 그녀를 진정시켜야 합니다. 리타, 뭔가 좋은 방법이라도 없습니까?”

 

“없어, 그딴 거.”

 

“진공관 맙소사. 우린 망했군요.”

 

호라이즌이 기계적인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소리가 어찌나 괴랄했는지, 기계 장치 너머로 좌절하고 있을 호라이즌의 모습이 만취한 리타의 머릿속에 그려질 수준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계속 굳어있던 리타의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진정해, 호라이즌. 대시를 잘 봐.”

 

“무슨 말입니까, 휴먼?”

 

리타의 지적에 호라이즌의 카메라는 눈앞에 서있는 대시를 응시했다.

 

무엇이 이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호라이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리타를 다시 바라봤다.

 

“저 녀석은 지금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어. 공격을 하려면 진작 했었겠지.”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로 그러했다. 

그녀가 울부짖으며 사무실을 뒤엎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방금 리타가 말했던 대로, 그녀가 리타를 죽이고자 했다면 이런 수다를 떨 시간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망부석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호라이즌은 대시를 향해 렌즈를 확대했다. 

 

그녀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 듯 후들거렸고, 그 가느다란 팔은 오늘따라 무기를 드는 것조차 버거운 듯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해 몸을 떠는 경우도 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호라이즌에게조차 그녀의 모습이 그리 비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리타, 뭔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나도 몰라. 아직은.”

 

기대와 의심이 공존하는 눈초리로 호라이즌이 질문을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호라이즌이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리타는 말꼬리를 흐린 채 들고 있던 술병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한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리타는 고요히 연기만을 내뿜었고, 다른 둘은 그녀를 향해 그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방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로 자욱해질 때쯤이 돼서야, 그녀는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

 

대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리타는 기억을 조금 더 되새길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또 다시 기억의 물결 속으로 스스로 그 몸을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