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가 드디어 결심이 섰나 보구나, 이 몸을 행복하게 할 준비는

된거겠지? 아하하하!"


로자리아는 관리자가 보낸 순백색 드레스를 차려입고 들떠있었다.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 에어부케를 던지는 시늉도 하며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신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는 로자리아.


도마는 골칫거리 딸을 시집보내는 표정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훔쳤다.


필멸자 필멸자 거리며 낮춰부르던 이의 신부가 되는 것이 저렇게나 좋을까.


도마는 뭐가 됐든 주인이 행복해보이니 덩달아 기뻤다.


로자리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관리자를 찾아나섰다.


관리자녀석도 참, 직접 마음을 전할 것이지 이렇게 드레스만 달랑

보내다니, 이 몸을 직접 보며 청혼하는 건 쑥스러웠던 게지.

뭐어, 그런 면도 귀엽게 봐줄 수 있을정도의 아량은 갖고 있다.

하루하루 기쁘게 봉사하는 그 녀석의 얼굴을 감상할게 기대되는구나!


의기양양하게 사장실의 문을 열며 자신의 드레스입은 자태를

과시하려던 로자리아는 사장실에 관리자만이 있는 것이 아님에

당황했다. 저 분홍머리 계집은 뭔데 관리자와 함께, 그것도 

드레스를 입고 있는거지? 로자리아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아, 로자리아. 와줬구만."


"필멸자. 너의 해명 여하에 따라 이 세계의, 최소한 너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느니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진정해, 진정. 난 너의 말을 존중했을 뿐이라고."


관리자는 그녀가 종신계약을 할 때 했던 '첩을 늘리라'라는 말을

존중했다고 했다. 로자리아는 분노와 억울함에 몸을 떨었다.

종신계약을 맺을 때 로자리아에게 관리자의 존재 의미와, 지금이

하늘과 땅차이만큼 다르다는 걸 설명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이 핑크머리 암캐는 연신 헤픈 미소를 흘리며 관리자에게

꼬리를 쳤다. 감히-!


".. 그래서 나는 둘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군."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저는 첩으로 시작할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후훗."


첩으로 '시작' 이라?! 끝이 시체가 될지도 모르는 년이 입놀리는 꼴 하고는. 


관리자는 헤실거리며 베로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선 누가 첩이고 누가 정실인지 알 수가 없잖아!

로자리아는 분통이 터졌다.


"어이, 계집. 확실히 하자꾸나. 분명히 내가 관리자에게 첩을

늘리라는 말을 하긴 하였으니.. 너의 존재 자체는 허락한다만

그 이상의 입지를 넘보는 것은 드높은 천상의 법률로 엄격히 금한다. 

이해했지?"


베로니카는 관리자에게 보여주던 사람좋은 미소를 싹 거두더니 

어금니를 꽉깨문 로자리아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그건, 주인님께서 결정하시는 것 아닐까요? 현 정실 로자리아님."


"뭐,뭣이? 신성모독이다!"


"그리고 주인님은 그런 '관리자'라는 정 없는 호칭으로 만족하실

분이 아니고 말이죠."


"나, 나는 네 년의 주인의 주인이니, 말을 삼가거라!"


"아, 아직도 제가 습관적으로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나 보군요.

서방님.. 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까요?"


베로니카는 야릇한 미소로 관리자를 올려다 보았다. 

관리자는 이미 사르르 녹아있는 표정이었다.


"과,과... 관리... 여보!"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른 로자리아의 뜬금없는 호칭에 관리자는 깜짝 놀라고, 또 흐뭇한 표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귀여운 마왕의 남편이라니.


로자리아는 관리자의 오른쪽 팔에 팔짱을 껴오며 베로니카를 노려보았다.


"봤지? 나도 이제 관리자가 아니라 여보라고 부르거든? 벌레는 

찌그러져있어. 짓뭉개지기 싫으면."


"로자리아,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니까, 벌레라니.."


"저는 괜찮습니다. 서방님. 후훗. 저는 마음을 담는 통이 크거든요."


베로니카는 로자리아에겐 없는 풍만한 젖가슴을 드러내듯 과시하며 

관리자의 왼쪽 팔을 감쌌고 로자리아는 날카로운 살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베로니카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로자리아는 본능적으로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베로니카도 그만 해주게. 우리 셋이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우리 '자기' 말이니까, 내가 양보해야지. 잘 부탁해, 영원한 첩."


로자리아가 눈에 불꽃을 튀기며 손을 내밀었다.


"서방님의 뜻에 복종하는 게 아내 된 자의 도리. 잘부탁드려요.

1대 정실 님."


베로니카도 미소 뒤에 싸늘한 적의를 숨기며 로자리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정실 대 첩의 암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