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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지역 이후의 시점


1편~마지막 편까지 모음

https://arca.live/b/counterside/39057596



"....!"

"대장!!"

시윤이 서윤의 배에서 검을 빼자, 알트 소대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서윤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쓰러졌다.

"서윤양, 당신 방금 진짜 미나양 같았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털어대는거. 알아요? 제가 하늘 같은 스승님을 배신했다고요?"

시윤은 서윤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 쓰러진 서윤을 노려보았다.

"서윤양은 스승이 금지된 힘을 썼다는 이유로 자기 눈 앞에서 부모님을 잔인하게 죽여놓고서 정작 본인은 그 힘을 쓰고 다니는걸 눈 감아줄 수 있다는걸로 간주해도 되는거겠죠? 뭐? 비겁하고 뻔뻔? 서윤양...그러는 서윤양이야 말로 왜 남의 부모님을 거들먹거리시나요? 머리에 총이라도 맞았어요?"

주시윤의 역린, 부모님. 서윤은 시윤의 과거와 부모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었다면 방금 같은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으윽...."

"주시윤, 너 이게 대체 무슨-."

"힐데씨는 빠져계세요. 근본적으로 이건 모두 당신 탓이니까."

보다 못한 힐데가 끼어들려던 찰나, 시윤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고작 도발에 넘어가서...."

"고작 도발에 넘어가서 어린 여자애한테 무력을 행사하다니 역시 선배는 어린애가 맞잖아? 라는 말을 하시려고 했다면 그만두시죠. 물론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이라는 건 인정 하겠지만, 이 이상으로 저를 화나게 하시면 진짜로 어디 하나 잘려나가는 수가 있어요. 저는 기분이 나빠지고 서윤양은 스스로 화를 재촉 하는 꼴이니 서로가 손해 보는 짓은 하지 마세요."

뱀 같은 붉은 눈이 이글거리면서 서윤을 노려보자, 허세는 사라지고 두려움만이 남았다. 서윤은 굳어버리고 말았다.

"여성 분을 괴롭히는건 제 취향이 아니지만, 서윤양 본인이 부모님을 거들먹거리면서 선 넘는 발언을 했다는건 감안하셔야겠죠? 그래도 한번 자비를 베풀어 드린거니 죽이지는 않은거예요. 이번에는 배였지만, 다시 헛소리를 하면 그 때는 머리 아니면 심장입니다. 그리고 제 볼 일은 서윤양이 아니니 목숨이 아까우면 이만 제 눈 앞에서 꺼져주시겠어요?"

"대....대장...!"

시윤의 말이 끝나자 샤오린이 서둘러 바닥에 쓰러진 서윤을 부축했다.

"샤오린양, 당신 정도면 알겠죠. 제 목적은 여러분이 아니고, 여러분을 이 자리에서 즉사 시켜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법과 잔머리를 쓰더라도 승산은 없어요."

"큭....."

"그리고 저도 방금 서윤양처럼 선 넘는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여러분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 가세요. 어차피 싸워도 시간 벌이도 못하고 목숨만 버릴 뿐인 상대인데도 여러분과 싸울 생각도 없고, 그냥 자비롭게 몸 멀쩡하게 살려서 보내준다는거죠."

샤오린이 시윤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시윤은 그런 샤오린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그냥 물러나는게 제일 현명한 선택이예요. 아무리 저라도 여러분 같이 어린 분들을 죽이는건 아무래도 껄끄러우니까요. 거기다가, 한 때는 같이 싸웠던 동료였었으니 마지막으로 정을 베푸는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가세요. 부탁입니다. 부탁으로 할 때 행동으로 옮기세요."

"싫다면 어떡할거지?"

"그렇지 않다면 저도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부상 당한 서윤양은 어서 함선으로 돌아가서 응급 처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시간만 끌어봤자 서윤양이 아무리 카운터라도 일단은 인간인데 과다 출혈로 죽기 밖에 더할까요?"

확실히 시윤의 말이 맞았다. 알트 소대의 리더인 서윤이 힘을 개방한 상태에서도 시윤에게 허무하게 무력화 되었는데, 그런 서윤보다 약한 자신, 유진, 소빈이 이길 수 있을리 없었다. 거기다가, 서윤은 지금 부상 상태이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샤오린은 이를 갈며 서윤을 부축해 돌아섰다.

"야, 멸치! 뭐하는거야!! 어서 저 개자식을 찢어 발겨야..."

"상대하는건 무리야, 너는 대장을 함선으로 데려다줘. 그리고 소빈이는 나랑 같이 미나 일행과 다시 합류 한다."

"그렇지만....!"

"이 멍청아! 뇌에 지방만 꼈냐?! 방금 너도 봤잖아! 대장이 순식간에 당하는걸! 그렇다면 우리가 다 덤벼도 저 주시윤이라는 괴물을 이길 수 없어! 그리고 대장은 지금 중상이야! 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샤오린의 일갈에, 결국 유진이 고개를 떨궜다. 아무리 바보 같은 자신이라도 안다. 방금 대장이 당했으니, 대장보다 약한 자신은 시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그래도 노력한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저 멸치가 같이 싸우자고 말해주길 바랐다.

"....알았어. 대장을 함선에 대려다놓고 다시 올게."

그렇지만....이상과 현실은 명백하게 차이가 있었다. 이길 수 없다. 평소의 샤오린이라면 싸우자고 했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한다는 것은 정말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장, 조금만 버텨줘!"

유진은 눈물을 머금고 서윤을 들쳐업은 채 함선으로 달렸다.

"현명한 선택이예요."

유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시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있지,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

"뭔가요?"

"당신은...어째서 배신한거지?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잖아."

"이것도 시간을 끌려는 속셈인가요? 하지만 뭐...서윤양을 눈 앞에서 치워주셨고 제 뜻대로 싸우지 않겠다는 선택을 하셨으니 답례로 알려드릴게요. 저의 전 스승님...힐데씨는 클리포트 인자라는 힘을 썼다는 이유로 폭주하던 제 부모님을 제 눈 앞에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 힘을 버젓이 눈 앞에서 쓰고 다니니, 어떻게 속이 안 뒤집어지겠어요?"

"그런..."

"거기다가 저 역시 그 힘을 가지고 있고, 스승님은 힘을 깨운다면 부모처럼 죽인다고 협박 하셨고 회사 상층부에서도 제가 힘을 쓰면 처분 하려고 벼르고 있어요. 제 역린은 부모님입니다. 서윤양을 저렇게 만든 것도 제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죠."

"......."

"정리 하겠습니다. 스승님은 제 부모를 죽였고, 저 역시 힘을 쓰면 죽이려고 협박 했으며, 회사 상층부도 스승님과 같은 생각이고 서윤양은 제 역린을 건드렸어요. 이 정도면 답이 됐나요? 그럼 가세요, 마음 바뀌기 전에."

"린아...이제 가자."

시윤과 눈이 마주친 소빈이 떨면서 샤오린을 잡아 끌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진심으로 유감이지만.....그렇다고 해서 쓸데 없는 목숨까지 해치진 않길 바라."

샤오린은 나지막하게 말을 남기고 소빈과 함께 서둘러 이탈했다. 마지막 남은 알트 소대원들 마저도 사라지자, 멀리서 상황을 지켜볼 뿐인 나유린을 제외하고는 힐데와 주시윤 만이 공허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방해꾼들도 쳐냈고 진짜 저희 뿐이네요."

"주시윤, 너...."

"뭘 그렇게 노려보세요? 서윤양 때문이예요? 그래도 안 죽였잖아요. 힐데씨처럼 부모님 거들먹거리니까 자업자득이죠. 이제 힐데씨 차례예요. 힐데씨는 서윤양과는 다르게 지속적으로 하셨으니까 서윤양처럼은 안 끝나요."

시윤의 검이 다시 한번 붉게 이글거리며 빛났다.

"일어나세요. 누가 보면 제가 나쁜 놈인줄 알겠어요. 어디까지 절 비참하게 할 셈이죠?"

"......."

"아까의 그 기세는 어디 갔어요?"

시윤의 조롱하는 듯한 말에, 힐데가 입을 뗐다.

"죽여라."

"네?"

"그냥....죽여라. 그것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나를 죽여도 좋다."

"진심이죠?"

시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굳이 힘들여 싸우지 않아도 부모의 원수를 갚을 기회인데, 누가 마다 하겠는가? 하지만 유린이 그랬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당장 죽이지는 말라고. 원수도 원수지만, 힐데를 지금 죽인다면 나유린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생각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냥 저 년을 죽인 다음에 차라리 나도 죽자. 어차피 복수를 끝내면 더 살 이유도, 생각도 없으니까. 시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표정 마저도 지운 채 검을 휘둘렀다.

".......?"

그런데 막상 힐데의 목을 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

힐데의 얼굴이, 마치 부모님이 죽던 순간의 자신의 모습 같아서.

'엄마.....아빠......'

잔인하게 토막 난 부모의 시체 앞에서 오열하는 어린 소년. 그런 소년이, 지금의 힐데와 겹쳐보인다. 그리고,

'있죠, 있잖아요, 힐데 누나! 저 나중에 다 크면 그 때 누나랑 결혼 할래요!'

'꼬맹아, 더 크고나서 와라.....그래도 당당한 모습이 보긴 좋군.'

'에헤헤, 평생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요!"

한 때, 정말 잠깐이었지만 모든 것이 바뀌기 전의 행복했었던 기억. 그녀와의 추억.

-그녀를 연모했었던...첫사랑의 잔재.

죽여라. 상대는 네 부모를 도륙한 위선자다. 목을 베어라, 네 부모가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줘라, 억울하게 눈을 감아야 했던 두 사람의 넋을 발키리의 죽음으로 달래라.

귓가에서 누군가가 끊임 없이 속삭이는 것만 같다. 휘두르던 칼은 멈췄지만 힐데의 목과 몇 센치도 떨어져 있지 않다. 정말, 정말 조금만 손을 움직여도 힐데는 그대로 죽는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힐데는 눈을 감았다, 그래....나는 죄가 있건, 없건 수 많은 이들을 죽였다. 세계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수 없이 죽였던 이들에 대한 죗 값을 치르자. 그렇게 생각하며, 힐데는 시윤의 검에 목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저는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 날이 없었어요. 잠에 들고 꿈을 꾸면 언제나 그 날 밤에 있었던 일이 꿈 속에서 반복 되어서요."

그런데 힐데에게 다가온 것은 차가운 칼날의 감촉이 아니라, 시윤의 무미건조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였다.

상상치도 못한 말에 놀란 힐데가 감았던 눈을 떴다. 힐데가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다시 검은 천으로 둘둘 감기는 시윤의 검이었다.

"주시윤, 그게 무슨....."

"그렇다고 착각은 하지 말길 바라요. 저는 당신을 용서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그럼에도 제가 당신을 죽이지 않은건 마지막 자비입니다. 수년 전 행복했었던 때. 그 때의 옛 정 때문이예요. 서윤양에게 베푼 자비와는 다른 자비. 그러니 다음은 없어요."

그 때, 멀리서 고층 건물의 잔해를 딛고 미나 일행이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 침식체들을 전부 정리한 모양이었다.

"소대장-!!!"

엉망진창이 된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아는 얼굴들은 보였지만, 몇명은 보이지 않았다. 부상을 당해서 두고 온건지, 아니면 전투 끝에 전사 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탈 하시는데 성공 하셨다면 이만 돌아가셔서 다음 지시를 기다려주세요."

미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유린은 누군가와 연락을 하며 시윤에게 다가왔다.

"시윤군, 이만 가죠. 지수씨와 에이미양은 이미 현장에서 이탈 하셨고, 이제 저희만 남았어요. 목적은 이뤘으니 더 이상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돌아가요."

힐데를 죽이려고 한 것에 대해 추궁 당할 줄 알았으나, 유린은 추궁은 커녕 시윤의 손을 잡아 끌었다.

"힐데씨. 아니....스승님, 다음은.....다음에 만날 때면, 그 때는.....저와 스승님 중에서 둘 중 한명은 정말로 죽음을 맞이할겁니다."

시윤은, 그대로 뒤로 돌아 유린과 함께 힐데의 시선에서 천천히 사라져갔다.

"안돼....가지마!! 주시윤! 시윤아!!!!"

사라져가는 시윤의 뒷 모습.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데, 신기루 같아서, 너무 멀어서 잡히질 않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문득, 20년 전이 떠오른다. 자신이 유린과 수연을 버리고 그녀에게로 갔었던 때가. 그 때 유린과 수연의 심정이 이랬을까. 죄책감과 후회만이 밀려온다.

"아, 아아아....."

결국 힐데는 다시 한번 오열했다.

그리고 유린을 따라가는 시윤의 눈에서도 다시 한번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 분명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을텐데? 왜 이렇게 슬픈거지?







"나유린 및 육익의 생포나 섬멸은 실패, 알트 소대 소대장 서윤은 중상, 코핀 컴퍼니의 사원이자 펜릴 소대의 소대원 주시윤은 육익으로 배신....."

함선으로 돌아오자마자 수연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의자에 앉고 머리를 짚었다. 상상도 못한 일에 골치가 아프다.

"델타세븐과의 협력과 다이브를 한 목적인 왜 침식체들이 광폭화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광폭화 침식체의 샘플은 얻었지만, 손해도 막심합니다. 서윤양은 전투 불능이고 무엇보다 저희 측 최강 전력 중 한명인 주시윤군이라는 아군이 적에게 넘어가다니."

배신도 배신이지만, 무엇보다 시윤은 용혈을 깨워버렸다. 금지된 사악한 힘을. 그 힘을 각성한 이상, 시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있지, 소대장..."

"........."

"그...주선배....믿기지가 않아. 나는 이해 못하겠어. 대체 왜..."

힐데는 줄곧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부르고, 대답해도 어두운 표정만 지으며 반응이 없었다.

만약 그때....병원에서 병문안을 왔다고 말해줬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따뜻하게 대해줬었다면-.

"시윤...."

"어, 어?! 소대장!"

결국 바닥에 주저앉은 채, 힐데가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 놀란 미나가 서둘러 진정 시키려고 하였으나, 힐데는 그저 절규하듯이 울 뿐이었다.

"미안...미안해.....시윤....역시 처음부터 나 같은건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득 시윤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난다. 그 때라도 알았더라면....만약,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 같은 것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좋았을텐데....







다시 숙박 업소의 방. 시윤은 어두운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있었다.

"첫 출격인데도 잘해주었어요, 시윤군."

그리고 옆에는 유린도 함께 앉아있었다.

"네. 감사하네요."

"왜 그렇게 표정이 울상이예요? 혹시 제가 아까 못 본 사이에 지수씨와 에이미양의 저세상 만담에 휘말리기라도 하셨나요? 그 분들 그러는건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잊어버리세요. 지수씨는 허구언날 탕수육은 부어야 한다, 자신은 엘리트 스파이 스파이지수다, 이상한 소리만 하시고 에이미양은 거기에 같이 휘말리시는지라..."

"그런거 아니예요. 피곤하니까 자고 싶네요."

"그래요? 이리 오세요."

유린은 그대로 시윤을 안았다. 유린의 품은 그녀의 본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말하신대로 좀 자두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감정 소모는 전투보다도 체력 소모가 빠른 편인 것 같거든요."

"......"

시윤은 말 없이 유린에게 안겨있을 뿐이었다. 온기를 찾을 대상이 없어서 한 때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에게 안겨있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래도...너무 따뜻해서 놓치고 싶지가 않다. 그리고 이 사람 마저도 없으면, 나는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으니까.....

"유린씨..."

"네?"

"죄송하지만 이대로, 계속....더 안겨있어도 괜찮을까요?"

"네, 물론이죠."

그리고 유린은 불을 끄고, 시윤을 조금 더 품에 밀어넣었다. 그 품에 안긴 시윤의 머릿속에 별안간 힐데가 떠올랐다. 한 때의 첫 사랑이자, 부모님의 원수.

그녀를 증오하는 것은 맞고, 복수를 하고 싶은 것도 맞다. 하지만, 어째서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포기한거지? 마지막으로 남은 이것은 미련인가? 이 감정은 뭐지?

'이제...정말 돌아갈 수 없어요.'

"시윤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지금은 저와 단 둘이 있을 뿐이니, 서로에게 집중해야겠죠?"

언젠가의 어린 날, 힐데와의 첫 만남을 다시 회상하며 시윤은 씁쓸하게 그 마지막 남은 미련이라는 감정을 마음 속 어딘가에 묻고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린을 단단히 잡고 더욱 파고 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는 숨소리와 옷깃이 스치는 소리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외로이 지샌 무수한 나날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한 때 자신과 같은 나날을 지샜던 악마의 달콤한 유혹. 이무기에서 막 벗어난 어린 용은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 완전히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천사의 키스는 구원을 해줄 수는 있으나 무척이나 괴롭고, 악마의 키스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나 무척이나 달콤하다고.

그렇지만.....이렇게나 달콤하다면 비록 그 끝이 파멸일지언정 악마의 키스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미 나락에 있는데 더 떨어질 나락 따위가 있을까?

한 때 발키리를 연모했던 어린 날을 뒤로 한 채, 결국 미성숙한 용은 마지막 감정 마저 흘려보내고 악마에게 안겼다.







"저희 아들입니다. 인사해."

"엄마랑 아빠 스승님이야. 버릇 없이 굴면 안된다?"

주말, 한 낮의 카페. 창가 쪽 테이블에는 하얀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와,

"아...안녕하세요..."

그 사이에 흑발에 가까운 갈색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어린 소년이 앉아있었다. 소년은 남녀의 아들인 것을 증명하듯이, 그들과 꼭 닮아있었다.

"네가 이 자들의 아들인건가, 나는 힐데. 자주 보게 될 것 같군. 잘 부탁하지."

"스승님, 애한테도 저희한테처럼 딱딱하게 말하지 마시고...너도 자기 소개 해야지?"

"앗, 아! 네, 저는,"

소년은 부모의 부추김에 자신도 소녀에게 이름을 말했다. 이 다음에, 힐데라는 소녀와 자신의 미래, 관계, 결말, 운명. 그 무엇 하나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앞 날을 향해 그 한 발자국을 내딛은 것이다. 소년은 힐데를 향해 웃었다.

"주시윤, 이라고 해요."




많이 길었고 필력도 부족한데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주시윤 각성 회로 돌리다가 쓴 글이고 모자란 글이지만 칭찬해주신 분들 계셔서 기뻤어요. 그리고 드디어 각성 주시윤이 나올 예정인지라 행복사 할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주시윤이 나유빈한테 설득 당해서 육익에 가도 이상할게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7지역에서 배신해도 납득이 될 것 같네요. 저는 시윤이가 그러더라도 여전히 좋아할거라서 상관은 없지만.


짤도 그리려고 했는데 2화 딱 한번만 그리고 끝내서 죄송합니다...아마 나중에 지운 다음에 짤도 그려서 재업하거나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댓글 봤을 때 ㅗㅜㅑ 하다라던가 왜 둘이 그거 안 하냐는 댓글이 은근히 보였어요. 저도 보고 싶기는 한데 필력도 그림 실력도 딸려서 그냥 내뇌망상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우리가 보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에 숙박 업소에서 둘이 했겠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어쨌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공익이랑 주시윤 많이 아껴주세요. 그리고 다들 9월에 나올 각시윤 단챠에 뽑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