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오늘 특별하게 할 일 있어요?"


"딱히 특별한 일은 없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니?"


일요일 아침, 스카이의 전화로 잠에서 깨어났다. 운동회 때의 일로 친분을 쌓게 된 소녀들이었지만 아침부터 걸어오는 전화는 조금 의외였다.


좋게 표현하자면 내가 편한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아니 나쁘게 표현하지는 말자. 초등학생들이니까.


전화기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와 늘 함께하는 다른 아이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무슨 일을 하려고.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점심? 어...... 아직이야."


점심? 소녀의 이야기에 핸드폰에서 귀를 떼고 켜지는 화면을 확인했다. 12시 30분, 전 날 늦게 자기는 했지만 너무 늦게 일어난 게 아닌가.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급하게 이리저리 핸드폰을 건드렸다. 다행히 온 메시지는 없었다. 주말 아침에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없다니,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다시 귀를 가져다댔다.


"식사 아직 안하셨대!"


수화기 너머로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 작게 소리치는 스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쉬쉬, 주변을 진정시키는 듯한 케이시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소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러면 오늘 같이 점심 드시실래요? 마침 부 활동겸 점심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히어로부의 부 활동에 점심 요리하기가 있었던가. 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부분을 신경써야 하는 사람은 돈을 부활동비를 지원하는 부사장과 관리부장 뿐이니까.


꼬마아이들이 준비하는 요리는 무엇일까. 나는 작게 올라오는 미소를 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래, 어디로 가면 될까?"


"그러면 카운터 아카데미 조리실습실로 와주세요!"


"알았어. 나중에 보자."


소녀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는 부스스한 머리를 쓱쓱 빗어내렸다. 편한 갈색 면바지와 검은색 무지 티셔츠, 입안에 대충 던져넣는 자일리톨 한 개, 평일에는 상상도 못할 차림이었지만 꼬마들을 만나는 지금만큼은 모자람 없는 복장이었다.


흥얼흥얼 대충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려고 하자 리코리스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어디가는거야 사장님? 옷은 또 왜 그 꼴이고?"


"그 꼴이라니. 말이 좀 심하다 싶은데."


터져나오는 반발에 리코리스는 머리를 살짝 꼬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아니, 평소에 입던 정장은 어디가고 사복차림인가 싶어서 한 말이야...... 그보다 어디 나가? 오늘 일정표에는 하루 종일 방안에서 게임하기로 써있던데."


분명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는데. 메이드장이 내 일정표에 그런 것까지 써놓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좀 좋게 포장해주면 안되나, 휴식시간이라던지, 여가활동이라던지......


조금은 울컥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하루 종일 방안에서 게임할거라고 정해놓지는 않았어. 나도 약속이라는 게 있고......"


"됬고, 누구 만나러 가는데? 메이드장님께 보고해야하니까."


분명 내가 고용주인데 대우가 심하지 않나. 가끔 이 회사는 어떻게 되먹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지금같은 상황...... 이런 상황도 다 내가 너무 가볍게 굴어서 그런 거겠지.


"스카이, 히어로부 주말 부활동 참석으로 보고해."


"알았어. 경찰이랑 블랙타이드도 준비해놓을게."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허튼 짓 하지 말라고.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주말에 여자는 안만나고 왜 초등학생들이랑 노나 몰라......"


이건 분명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오늘 하루 몇번 울컥하는지 모르겠다.


마음 속으로 참을 인자를 3번 그었다. 눈 앞의 메이드는 일정표로 보이는 다이어리에 가볍게 펜을 휘둘러 글을 써내려갔고 점을 콕 찍은 후 한 손으로 덮었다.


"바로 가는 거지? 차 키 잊지 말고, 오늘 저녁 식사시간까지는 돌아와. 애들도 데려올거면 미리 연락해줘. 애들 저녁까지 준비해놓을게."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는 만족스러운 듯 작은 미소를 짓고 품격있게 치마 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올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지나치고는 그대로 1층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다.


시동음이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20분이면 카운터 아카데미까지 간다.


초등학생들이 준비하는 식사라고 해봤자 얼마나 대단한걸 준비하겠어.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작은 미소가 피어졌다.


밥과 간단한 국, 그래 된장국정도면 좋겠다. 거기에 계란프라이같은 거 하나만 준비해도 충분할텐데. 빨리 가면 아직 요리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 팔을 걷어부치고 긴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게끔 뒤로 질끈 묶은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질끈 묶어서 노출되는 새하얀 목 뒤로 작은 땀 한방울을 흘리는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하얀 손을 계란물로 더럽히며 열심히 요리하는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소 공만 잡았기에 서툴게 칼질하는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에 미소짓는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간은 잘 맞을까 조심스럽게 호호 불면서 국 한숟갈을 먹어보는 스카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만해도 미소가 절로 나온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가볍게 부르다 라디오를 틀었다. 맑은 하늘에 걸맞는 기분좋은 노래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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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장님의 욕망을 조금 곁들인


어쩌다보니 2000자를 넘겼다


저어는 페도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