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모음집

첫화  이전화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꿈 속의 달콤한 천장은, 가혹한 현대 문명이 부수어 줬다.

일어나기 조금 힘들다...


"일어나십시오. 나유빈씨. 체크아웃까지 4시간 남았습니다."

"지금 일어나지 않으면 실비아씨까지 깨우러 갈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촉박해질지도 몰라요."


...조금은 실비아가 불쌍해졌다.


"아오오... 그래, 일어났네. 일어났어. 그으.... 자네는 벌써 준비를 다 마친겐가?"


"군인에게 시간 엄수는 절대적인 수칙과도 같습니다."


실제로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그는 이미 깔끔하게 정장으로 환복을 마치고, 이부자리와 캐리어까지 깔끔하게 정돈을 마친 상태였다.


이런걸 보고 전세계에서 실비아가 한 말이 있었는데...

모르겠다. 준비나 해야겠군.






똑 똑 똑


"...실비아씨? 체크아웃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내부 상황을 유추하지 않아도, 이미 어디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어어 그 다 준비 좀만 기다려줄래?"


평소라면 카일에게 틱틱댔을 실비아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말려주는 중이다.

참 신기한 광경 보는군...


아, 문이 열린다.


"아~ 그게 사실은 두시간 전에 다 준비를 해놨거든? 근데 하나 못한게 생각이 나서 말이야... 좀만 기다려주면 안될까?"


"하아... 항상 실비아씨만 마주하면 한숨부터 나오는군요.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은 없는겁니까?"


"진짜진짜미안, 좀만 기다려줘 금방 나올게~"


거세게 문이 닫힌다. 그런데 얼핏 상황을 보니 준비 못한게 있는거 같진 않았는데... 옷매무새도 깔끔해 보였고.

뭘 하러 들어간거지?


유유자적 시간이 흐른다. 얼핏 보니 30분정도 걸린거 같은데...


"저기 실비아씨..."


"어~ 나 나가~"


드디어. 마치 성벽처럼 굳게 서있던 문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까도 이랬었나?


선명한 눈끝.


백옥같은 피부.


매혹스럽기까지 한 입술.


거대한 외투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몸매.


지금의 실비아는...


하나의 예술같았다.


마치 일련의 선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듯, 그녀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밝게...


아니, 아니지. 대체 왜 실비아를 두고 작품을 평가하고 있는거야?


"어... 저기, 오빠? 내 얼굴에 뭐 잘못 칠... 아니! 뭐 묻은거 있어?"


아, 빤히 쳐다보고 있었구나. 큰일났네.


"아님세. 그냥 어... 뭐가 좀 달라보여서."


"어머, 그래? 어떻게 달라보이실까~? 좀 더 이뻐보이나?"




망했나


"저... 실비아씨? 나유빈씨가 당황하실텐데 그런 질문은..."


"아 뭐~! 나왔음 됐지. 이제 가자!"


"어 잠깐, 실비아씨? 체크아웃 아직 안했어요! 로비로 가야죠 로비!"


"뭐... 체크아웃은 둘 다 내가 하지. 둘 다 주게. 자네는 가서 차량부터 찾고."


"아... 알겠습니다. 그럼 차를 몰고 정문 앞에 나가있겠습니다."


하... 진정하자 진정. 내가 뭐 고자새끼도 아니고, 실비아가 좀 예뻐보일수도 있지.

침착하게 대하면 되는거야 침착하게...





"나유빈씨! 이쪽입니다!"


"뒤에 타시면 됩니다. 손에 들은 그건 뭡니까?"


"아, 이거? 아까 체크아웃하면서 받은거라네. 여기 호텔 자사가 사탕이 그렇게 유명하다더군. 실비아양, 자네도 먹겠나?"


"오, 사탕이야? 땡큐~"


"헙"



오. 손가락이 물렸네.

아니 손가락을


"엄마야, 유빈오빠 얼굴이 왜그래? 완전 새빨개졌는데?"



당했다. 그냥 집어가라고 준 사탕을 손가락 채로 물 줄이야...

완전히 졌다. 아니... 이번 차안은 좀 적적하겠네.




어색하다. 실비아도 자기의 행동을 꺠달았는지 덩달아 얼굴이 새빨개져있다.


카일은 지금쯤 둘이 무슨 쇼를 하나 생각하고 있겠지.



대체 왜 감당도 못할 장난을 쳐서...





"도착입니다.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버거집입니다. 테마파크도 가까운데 있으니, 밥을 먹고 테마파크로 출발하도록 하죠."


"... 대체 두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겁니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정 뭐하면 이번 버거집은, 테이블을 두분만 따로 잡아드리죠. 식사가 끝날때까지 지금같은 상태면, 테마파크는 없습니다. 남는 티켓은 마리아 사령관님이랑 제이크를 부를거에요."





그렇게, 믿었던 카일은 우리를 결국 여기까지 내몰았다.




"손님, 주문하신 베이컨에그버거 하나와, 싸이패티 버거. 그리고 감자튀김과 콜라 두잔입니다. 음료 리필은, 카운터로 음료컵을 가져와주세요."





먼저 입을 열은건 실비아였다.


"맛있...겠네? 그... 안그래?"


"아... 그러게. 참 맛있겠군. 감자튀김도... 잠깐, 여기 케찹이 없나?"


"어... 없을리가 없는데... 아! 나이프 통 근처에 모아뒀네. 이거를"



아, 누군가 세상에 흐름은 있다고 했던가. 또 이런일이 일어났다.

그냥 케첩을 들으려 가던 손이 겹쳤을 뿐이다.

그냥 손이 겹쳤을 뿐이다... 그냥...


아니, 솔직히 그냥 손이 겹쳤다고 생각할 순 없잖아?



"어... 미안한데 손좀... 그..."


모르겠다. 예전에 이럴때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실비아양."


"어, 어? 어? 왜?"


"... 밥이나 먹지. 테마파크는 가야할 것 아닌가."



왜일까.



단순히 두려워서? 아니, 그런 이유는 아니다.


다만... 뭔가 지금은 아닌것 같았다.


"어어 그 그래. 카일이는 먹는속도 빨라서 빨리 먹어야대. 빨리 먹고 가자."



뭐... 이게 마지막 기회였을 수 있지만, 그래도 기회는 온다. 반드시.





"휴우. 두분 다 식사는 마친것 같군요. 괜찮았습니까?"


"완전 응. 촉촉히 구워져 부드러운 번에 기름향이 적절히 들어간 베이컨에... 패티맛은 말할 필요도 없더라. 평점이 조작 없이도 그렇게 높을만 하던데?"


"좋아요. 나유빈씨는 뭐, 불만은 없으십니까?"


"나도 잘 먹었다네, 카일군. 다음번에 또 올만 하겠어."


"네, 그럼. 바로 테마파크로 이동하도록 하죠. 실비아씨, 티켓은 다 준비해 뒀죠?"


"그러엄~ 그럼. 내가 그걸 까먹겠어?"


"물론 안까먹으시겠죠. 이걸 예약하느라고 어제 전산망까지 뚫어가며 했던 난리를 생각하면..."


"야! 너 내가 그거 비밀로 하랬지. 어?"



말과 동시에 날아가는 무자비한 주먹질. 곧 형태를 바꿔 카일의 볼따구를 길게 늘이기 시작한다.


"때리지 마십쇼. 저도 아픕니다."

"그어다고 끄집지더 마십시어 시비아야."


"한번더 그런거 풀면 그땐 꼬집는걸로 안끝날줄 알아..."


"시정하도록 하죠. 다시는 꼬집히기 싫네요."

















"워후! 테마파크다!"



"실비아양? 너무 멀리 나가지 마세요. 인파가 많아서 찾기 힘듭니다."


"내가 애야? 나도 내 앞가림은 잘하니까, 신경 끄셔!"


아, 간다. 따라잡아야 해.


"아, 카일군. 실비아는 내가 같이 있을테니 다른것들 먼저 보고 있게."


"뭐, 믿고 맡기겠습니다. 애초에 둘만 남겨둘 생각이기도 했고."


"하하, 그거 고맙네."



"전 근처 공원에 있을테니 다 놀면 그쪽으로 모이면 됩니다. 저녁에 보죠."



"그럼 이따가 봅세나"







"오, 뭐야. 지긋지긋한 카일이 아니라 오빠가 쫒아오는거였네?"


"헉.... 헉... 걸음이 헉... 왜이리 빠르 헉..."


아 이 지긋지긋한 체력부족. 운동을 하던가 해야지.


"하하하! 일부러 카일을 따돌리려고 빨리 걸은 감은 있었는데, 되게 빨리 지치네? 덕분에 좋은구경 했네~"


"허... 아이고. 아무튼, 아무래도 오늘은 너랑나랑 단 둘이 다녀야 할 것 같네. 괜찮다면,"

가볍게 한손을 내밀었다. 그녀와 내가 연결된다. 처음으로.


"뭐, 당연히 좋은거 아니겠어?"


"자, 우선 롤러코스터부터 타러 가자고! 여기 롤러코스터는 두번 도는 코스가 인상적이니까!"


"어... 내가 손을 내밀긴 했는데 그..."


"뭐야, 겁먹은거야? 설마 이런거에 겁먹는건 아니지? 이거 끝나면 자이로드롭도 타러 갈건데?"


아, 망한거 맞았네.


...



"당연히 괜찮지! 자이로드롭이 끝나면 허리케인도 타러 가자!"


모르겠다...





"자, 안전벨트 꽉매시고, 출발합니다~"


"유후~!!"


실비아는 완전히 신난것 같았다. 아직 오르막길 구간인데도...





떨어진


"꺄아아아!"
"으아아아악!"


앞이 어질어질 하다... 눈앞에 뭐가 지나가는건진 모르겠다. 악몽이다.





"재밌었다. 그지?"


"어... 어어? 어 그래 어 물론 재밌었지."



"푸흡. 아까 잔뜩 겁에 질린 표정 다 봤거든? 무서워하는거 맞네~"



"아... 아니거든? 야, 내기할래? 자이로드롭에서 먼저 비명지른쪽이 아이스크림 내기. OK?"


"흐응, 누가 잔뜩 쫄줄 알고? 덤벼봐!"







"잘~ 먹겠습니다! 이러다 돼지되는거 아닌가 몰라~ 참!"


이번이 벌써 네번째 패배다. 벌써 그녀는 아이스크림, 와플, 츄러스를 먹고 벌써 마약옥수수까지 손에 들려있는 상태였다.



"하... 곧 저녁인데, 그러다 저녁식사도 못먹을거야. 카일이 맛있는걸로 준비했다던데, 먹을 순 있겠어?


"괜찮아요~ 여자는 디저트배가 따로 있고 식사 배가 따로 있다구. 그것도 몰라?"



"어련하시겠어..."



다 잃은지 얼마 안돼서 돈도 얼마 없는데.  이러다 진짜 탕진하겠군. 그 스캐빈저 사태때도 자금난은 없었는데...





"요~ 카일~ 뭐좀... 그건 뭐야"


"아, 이건 돌아가서 마리아 소령님 드릴 기념품입니다. 여러분것도 하나씩 샀으니 받으시죠."

"그건 그렇고, 실비아씨도 얼굴이 상당히 행복해보이십니다? 그것도 우울해보이는 나유빈씨를 옆에 달고..."


"어 좀 그런게 있어. 아무튼, 저녁도 네가 예약했다며? 테마파크 레스토랑이야?"


"네. 일부러 좋은 자리를 공들여 잡았습니다. 풀코스로 준비했으니, 어서 가시죠."



"매번 수고해주네, 카일군."


"별 말씀을요.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게 보고 있으니까요."

"뭐... 실비아양은 이미 식당 메뉴를 둘러보고 있으니말입니다만..."


"잘, 되는중입니까?"



나는 굳이 언어로 표현하는것 대신 가장 직관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고개만 한번 끄덕여주면 되는거지.


"... 믿겠습니다."


"우와... 오빠, 와서 이것좀 봐바!! 이런 고기를 통짜로 구워서 내놓는다니..."


"여긴... 천국일까?"



"하하, 일단 자리에 앉자. 벌써부터 군침이 돌긴 하지만, 아직 메인디쉬까지는 거리가 멀었으니 진정하고, 자리에 앉자고."


"뭐? 메인디쉬까지 거리가 멀었다니. 고기가 눈앞에 있는데?"



"뭘 생각하는지 알기는 한데, 여긴 코스요리 레스토랑이야. 여기 보라구. 기본적인 4단계를 지키고 있어서 메인디쉬인 스테이크는 세번째 차례에나 먹을 수 있어."



"뭐어? 그게 말이 돼? 왜 그런 불편한 방식을 하는거야?"



"나도 이해는 안되지만... 그게 여기 방식인걸 어째."



"아우, 좋다 말았네. 그럼 아까 그... 그걸로는 뭐가 나오지?"



"메뉴판에 얼추 나와있는것 같은데. 여기보면...











"와, 배 너무 불러. 여기서 한발짝도 못움직일거 같애..."



"그렇다고 벤치에 누우면 안됩니다. 실비아씨."



"아~ 알겠어 알겠다구. 일어나면 될 거 아냐. 꼭 여기서까지 시비를 걸어야 해?"


"..."


"하긴, 모처럼 놀러왔는데 이것마저 방해하면 컨디션 회복에 방해만 되겠죠. 앞으로 터치하지 않을테니,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엥? 오? 뭐야 진짜? 취소하기 없기다?"



"물론이죠. 군인은 한입으로 두 말 하지 않습니다."


"유후! 가자, 유빈아!"



"허... 잘 다녀오겠네. 카일."



"뭐, 화이팅 하십쇼."



"잘... 해보겠네."








"우와아. 저거보여, 오빠? 이게 여기 랜드마크래. 회전목마 짱크다!"


"이정도면 어렸을때 본 펜타곤 기밀 함선보다 더 크겠는데?"



"비유가... 남들이 들으면 좀 이상하겠는데."



"뭐 어때! 우리 둘밖에 안듣잖아. 안그래?"



"상관 없으려나?"


"그나저나, 분위기도 좋은데, 사진 하나 찍을래?"



"사진? 좋아!"


"이런데 왔으면 사진 하나는 남겨줘야 하니까."



"어... 저기, 저희 둘 사진좀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아 여기 서서, 신호주시면 그떄 찍으시면 돼요. (소곤히) 고백할 때 찍어주세요"


"좋아. 여기 서서~ 셋 하면 찍는거야."


"그전에, 여기 동전좀 봐줄래?"



"에... 동전?"



"응, 동전. 내가 다섯을 세는동안, 이 동전을 이리저리 움직일거야. 거기에 시선을 꽂아주면 돼. 알겠지?"



"어... 뭔진 몰라도, 알겠어."



후... 한방에 해야 한다.



"다섯"



오른손에 있던 동전을 왼손으로 튕긴다. 동작 1.



"넷"



왼손에 있던 동전을 높게 던진 후에, 오른손으로 받는다. 동작 2.


"셋"



동전을 빙글빙글 돌리다, 하늘로 높게 튕긴다. 동작 3.



"둘"



동전을 낚아채며, 왼손에 준비해뒀던 꽃을 꺼내서...



"하나, 짜란~"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래?"



솔직히 좀 무섭다.



성급했으면 어쩌지?



마음에 없었으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며, 얼굴을 쳐다봄과 동시에...



"...이걸, 어쩐다?"


"리프 노드!"



그녀의 한줄기 명령과 함께, 등 뒤에서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빛줄기는 다시 여러갈래로 갈라지고, 다시 한번 더 여러 갈래로 갈라져.


형형색색의 폭죽이 회전목마, 실비아, 그리고 나를 가득 메운다.



"하하... 사실 나도 이거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거든."



...아, 그럼 아까 새벽부터 칼같이 입장표를 구매했다는게...


"그래! 그래. 내가 먼저 찜하고 있었다구. 그렇게 카일이랑 다 짜놔서 계획까지 완벽했는데..."


"이거를... 먼저 고백을 받았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답을 안했구나?"



순간 실비아와 나, 그 사이의 거리는 사라진다.

그녀가 나를 꾸욱 안아주었다.


"나도, 사랑해."


주변의 터지는 폭죽과, 내 터질듯한 심장 박동이 뒤섞여,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황혼으로 기념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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