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다음에 또 보죠 레지나."
"가 볼게요,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는 친구 레지나를 배웅해준 뒤 자리에 앉아 찻잔을
다시 채웠다.
그윽하고 향긋한 향기가 응접실을 가득 메웠고, 엘리자베스는
우아하게 한 모금 향기를 머금고 음미했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다. 프리드웬 기관에 손님을 두 차례나 맞이해야 했으니까.
깨물어 먹은 쿠키 부스러기가 그녀의 가슴께에 떨어졌다.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신경질적으로 그것을 털어냈다.
도도하고 우아한 미녀, 그야말로 귀족의 화신인 그녀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고 당당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가지 컴플렉스가 있다면 젖가슴의 모양이었다.
레지나의 가슴도 매력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지.
엘리자베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에 만족했다.
얇은 선의 몸매와 다리도 물론이었다. 하지만 시선이 젖가슴에
이르자 저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같은 나이 또래에 비하면 다소 처진 모양의 젖가슴이 볼때마다
그녀를 화나게 했다.
값비싼 보정속옷도, 이름난 마사지사의 시술도 소용이 없었고
그녀의 젖가슴은 혼자서 수배의 중력에 영향을 받기라도 하는 듯
그대로였다. 혹시 그가 이런 가슴을 싫어하기라도 한다면..
"하아."
엘리자베스는 스스로의 가슴을 받쳐서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
기분좋은 묵직함이 손에 얹어졌다.
이만큼만 되어도 소원이 없을텐데. 이만큼만...
"..너 뭐하냐?"
엘리자베스는 눈에 띄게 당황한 티를 내며 손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옮기려 했다. 잠깐, 원래 손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지?
결국 엉거주춤하게 허리에 손을 얹은 그녀.
"푸하하!"
"물벼룩, 당신은 에티켓이 늘지를 않네요, 그러고도 영국 신사를
자부할 수 있나요?"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붉어져 있었고 기분탓인지
호수같은 녹색 눈망울엔 거의 눈물까지 고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늘 자신을 갖고 놀던 상사의 약한 모습을 로이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헤에, 신경쓰고 있었구나. 가슴."
흠칫이라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놀란 엘리자베스.
로이는 낯익은 그녀의 낯선 리액션이 그저 재밌었다.
"하긴~ 조금 처지긴 했지. 홍차폭탄, 사실 나이 속이고 있는 거 아냐?"
엘리자베스는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필 이 남자앞에서..
"너무 신경쓰지마~ 원래 사람이란 게 맘에 안드는 부분도 있는거지 뭐!
그게 하필 여성의 상징같은 부위인 건 유감이다만~"
쐐액-
날카로운 단검하나가 로이의 소중한 부분 한뼘 아래에 꽂혔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면 버넷가의 대는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야..얌마! 홍차폭탄! 큰일 날 뻔 했잖아! 어디다 칼을 던지는-"
로이는 차마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의 기관장. 늘 도도하고 우아한 엘리자베스가 울상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심했나..'
심성이 못되지 않은 탓에 로이는 여자를 울렸다는 양심의 가책에
괴로웠다. 항상 자신을 업신여기는 엘리자베스를 조금 놀려주고 싶었을 뿐 상처 입힐 생각은 아니었는데.
"저, 저기 홍차폭탄..."
"최악. 여자의 약점을 갖고.. 나가 죽으세요, 물벼룩. 진짜 싫어."
엘리자베스는 로이의 눈을 마주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거 큰일인데.
로이는 허둥거렸다. 당연히 그녀가 곧 받아쳐줄줄 알았는데
이정도의 컴플렉스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 저기, 엘리자베스. 미안해.."
"기관장 명령입니다. 죽으세요, 물벼룩."
"그.. 그 내가 한 말이 전부 진심은 아니야."
여전히 엘리자베스는 로이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한껏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로이는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무심코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단순한 그 답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버렸다는 사실은 눈치채지도 못했고,
귀엽다는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구요?"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아니 그거 말구요."
"내가 또 뭐라 했냐?"
"귀엽다고 한거."
이번엔 로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으로만 한거 아니었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귀엽다는 말을 해도 되는건가?
엘리자베스는 당황하는 로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깝잖아!
로이는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녀에게선 향긋한 홍차냄새와 향수냄새가 달콤하게 풍겼다.
"내가 귀엽다고 말한 거, 진심인가요. 물벼룩?"
어느새 공수가 역전 된 것 같았다. 로이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으나
기관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고개를 도로 돌려 자신과 눈을
맞췄다. 촉촉한 녹색 눈동자에 비친 로이는 부끄러워 하고 있는 듯 했다.
"그, 그걸 내 입으로 어떻게 말하냐고!"
"어머, 여자의 약점은 그렇게나 잘 말씀하시더니, 칭찬은 못 해주나요?
정말 저질이네요. 저질, 저질, 저질, 저질."
로이는 단순한 만큼, 도발에도 약했다.
"말하면 되잖아! 그래, 너 귀엽다고! 젠장. 진심이다. 됐냐?"
"아직 안 됐어요. 제 어디가 귀여운거죠?"
어느새 엘리자베스는 살짝 눈웃음까지 치고 있었다. 그리고
로이는 분하게도...
그녀가 아름다워보였다.
"그.. 가슴말야. 진심이 아니었어. 네 가슴, 난 꽤 좋아해."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순간 놀란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고백을 가슴에 대고 하시네요. 저질 변태 다워."
"뭐? 아니야! 그냥 진짜 순수하게 좋다고! 놀린 건 진심이 아니라고.."
엘리자베스는 모든 남자를 포로로 만들 수 있을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가슴이 어떻게 어디가 좋은지 10가지 말하지 않으면, 화 안 풀거에요."
치사한 여자. 저렇게 웃으면서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잖아..
로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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