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지고 끝이 그을리고 빛바랜 데다 피가 눌러 붙은 그런 사진 조각을 남자는 품에 고이 모신다. 하늘 행 편도권의 일정이 연기된 탓이다.
소총의 띠를 어깨에 걸고 장전 손잡이를 당겨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아직 보는 눈은 죽지 않았는지, 잘 작동한다. 탄약도 온몸의 주머니에 넉넉하게 걸어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클레이모어와 수류탄도 챙긴다. 몸이 묵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챙기고 나니, 평소라면 한 걸음 떼는 것 조차 어려웠을 양이 챙겨졌다.
남자는 ‘나도 침식체가 된게 아냐?’라고 시덥잖은 농담을 속으로 내뱉으며 자조했다. 짐을 다 챙겼다고 생각 될 쯤, 저 멀리서부터 기척이 느껴진다. 들려오는 것은 사람의 것도 아니고, 짐승의 것도 아닌 이형의 것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라고 판단했다. 어떻게든 살아있는 통신기를 찾기만 하면 빠져나갈 구석이 생길 것이라며 움직였다. 잔뜩 챙겼지만, 자원을 최대한 아껴가면서 싸워야 한다. 언제 또 보급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침식체들을 따돌려가며 폭심지에서 벗어난다. 전함의 외벽을 들어올리고, 인간 군인이 챙길만한 군장의 양을 아득히 넘게 챙길 수 있는 그런 몸이 됐음에도 피로는 누적된다. 이놈의 하늘은 쭉 붉은색이어서 언제가 낮이고 밤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남자는 자신이 잠시 쉬어가기로 정한 폐 전함의 잔해의 곳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한다. 침식체를 저지할 겸, 조금 과격한 방범벨로 적합한 선택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벽에 등을 기댄다. 자신이 챙긴 자동소총과 탄약들을 살핀다. 자신이 아는 상식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라고 봤다. 침식체와 비슷한 파편들이 뒤섞인 기묘한 물건이다.
인간이 침식체가 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뒤섞인 물건이 인간이 사용하는 탄환과 혼용이 가능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뺏거나 적출해서 사용할 걸 하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점검을 끝마치고, 이 전함에 혹시나 살아있는 시설이 있다면, 그것도 하늘이 도와서 현실과의 연락이 닿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락이 닿는다 하더라도 카운터가 아닌 용병 나부랭이 하나를 구하기 위해 어느 기업에서 배를 띄울지는 미뤄두고서라도.
잠시 눈을 감고 망중한을 한껏 음미한다. 잠시 후, 남자는 이 세상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을 원망했다. 저 멀리, 남자가 들어온 입구 부분에 설치해둔 지향성 폭발물이 큰 폭발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입구는 다행이도 맞은편에 하나 있긴 했지만, 이 폭발 소리로 이끌린 침식체가 그곳마저 막아버릴 수 있었다.
피워둔 불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주변을 정찰하던 누군가가 자신이 만든 흔적을 보고 생존자를 찾으러 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소총을 챙겨들고 발 빠르게 자리를 뜬다. 방을 하나 둘 지나치며 복도를 걷던 중, 있어선 안될 것 같은 것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토끼인지 곰인지 개인지 알 수 없는 솜뭉치의 인형. 실밥이 다 닳고 천이 누렇게 바래서 인형인지 천과 솜이 뒤섞인 무언가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생긴 무언가.
남자의 발걸음이 순간 멈춘다.
이 남자는 그 인형의 이름을 알고 있다.
비가 오는 꿈같은 날. 한쪽 어깨가 비에 젖는 것 조차 신경쓰이지 않는 그런 행복했던 오후의 흔적. 누군가가 그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일생의 파편에 건네준 조미료 같은 것. 남자의 딸아이는 그것에게 이름을 붙여줬고, 남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 그 기억 또한 자신이 꾼 꿈에 지날지도 몰랐지만, 어째서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래.”
저게 왜 여기에 있을까. 애초에 실존하기는 한 것일까. 그런 혼란 속에서 남자는 침대 위에 다소곳하게 올라가 있는 낡은 인형을 안아들었다. 딸아이의 몸뚱이 같은 덩치의 것. 이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끄는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었지만, 지금은 이 단편마저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이제는 걸어둘 폭발물이 없는 홀더에 고래를 단단히 고정하고는 묵묵히 전함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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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보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