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용병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 하나를 떠올렸다. 3종 이상의 침식체들 중에는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가졌으면서, B급 카운터와 같거나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종이 있다고.

지금 눈 앞에서 십자 모양의 칼날을 빙빙 돌리고 있는 저 침식체가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너,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지면에서 10cm 이상 부유하는 그것은 남자를 보면서 시큰둥하게 말을 던졌다. 아무래도 적의 같은 것은 없어보였다.

 

“폭발이 일어나길래 카운터 녀석들이 얽힌 줄 알았는데, 별 것 아니었나보네.”

 

적의가 없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 따위는 공격할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보통 침식체는 인간을 해치지 않던가?

이런 강한 종이 등장하는 이 곳은 침식도가 얼마나 되는걸까. 그의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볼 일이 없다면, 이만 가지.”

 

남자가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자, 침식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인간이 어떻게?”

 

침식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남자에게 있어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나를 뭐라고 봤던 것일까.’ 남자는 생각했다. 적의 없던 무성의했던 시선은 남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보시다시피 인간이지. 피차 싸울 이유도 없을텐데, 놓아준다면 나도 별 말썽 없이 물러나겠어.”

 

협상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는 그에 걸맞는 태도를 보이며 침식체에게 말을 건넸다. 그것이 부유한 덕분도 있었지만, 아직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아서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올려다보는 그런 상황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아니, 잠깐. 네가. 인간이라고?”

 

침식체는 많이 혼란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있으니, 자신의 청각과 시각이 주는 정보 신호가 일치하지 않는 듯 했다.

마치 광란을 일으키는듯한 모습에 남자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혼란스러운 것을 마주했을 때, 보통 집단을 이룬 지성체는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포획해서 무리에게 돌아가 다같이 분석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위협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깔끔히 지워버려 후환을 없애는 것.

어느 쪽이건 남자에게 있어서는 이득이 될 것이 없었다.

 

차라리 이런 혼란을 틈타서 눈 앞의 침식체를 처치하는 것이 생존확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승산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기다리다가 맞이할 최후 보다는 백 번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총의 장전 손잡이를 당기고, 사격 모드를 자동 사격으로 돌려둔다.

 

“아니, 저게 인간일 리가...”

 

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혼란해하는 여성형 침식체를 향해 남자는 방아쇠를 당긴다.

총구가 불을 뿜고, 침식체의 신체 일부가 섞인 탄환과 납탄이 무작위로 침식체를 향해 쏱아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저 침식체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이어간다. 총알들은 남자의 바람을 냉정하게도 저버리며 침식체의 몸에 두른 방어막에 찌그러져 바닥을 나뒹군다.

그래도, 탄창을 다시 채워가며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살아 돌아가서 오르카를 다시 보는 것”이라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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