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기사들의 시대를 종식시킨 것은 화기의 도래였다.

비록 갑옷 장인들이 더 품질이 뛰어난 금속으로 대응했고, 기사들이 속도와 충격력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총알을 막기 위한 더 무겁고 두꺼운 판금갑옷을 걸쳐가며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 귀족 중기병의 꽃이었던 장다르메들이

한낱 스페인 평민 화승총병들 앞에서 진흙바닥을 뒹굴게 되면서 중기병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아직 근성있는 기병들이 총격을 이겨낼 경우에 대비해 장창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화기로 무장한 평민들의 밀집대형이 귀족들의 기마돌격을 저지할 수 있음이 만천하에 입증되면서

화승총은 이제 전장을 보병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서로마제국 몰락 후 중세 유럽의 전장은 그동안 군인이 아닌 전사들이 지배해 왔었다.

물론 근현대의 군인과 중세의 전사 양쪽 모두 용기, 명예, 충성, 힘이라는 사나이의 미덕을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한 것은 똑같지만

군인에게는 규율과 단결이 있는 반면, 전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전사는 군대의 일부로서 싸우기는 하지만, 사실상 혼자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사가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과 일대일로 정정당당히 검을 맞대는 것이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계 따위로 적을 죽이는 것은 기사도에 어긋나는 불명예라 여겼다.

반면에 군인은 대열을 지키며 명령에 따라 주어진 임무 - 그 임무가 아무리 중세 사나이의 기준에서 불명예스러울지라도 - 를 다해야 한다.

군역이라 하면 여전히 중세의 기사를 떠올리던, 16세기 초의 유럽인들에게는 아직 전혀 생소했던 개념이 태동하고 있었다.



명예로 빛나던 기사들의 전장이 겁쟁이 천것들의 씹게이같은 총격전으로 전락해가는 것에 대해

중세 로망을 잊지 못한 이들의 한탄이 역사의 뒤안길에 남겨졌다.

1516년부터 루도비코 아리오스트가 집필한 르네상스 문학의 꽃이라 불리는 작품, "광란의 오를란도" 에서

작가는 화승총이라는 새 발명품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비열하고 추악한 발명품이여,

너는 어찌하여 인간의 마음에서 자리를 찾느냐?

너 때문에 군대의 영광은 무너지고

너 때문에 무기 장인들은 그 명예를 잃는다.

너 때문에 미덕이 갈수록 더럽혀지니

최악의 범죄자도 너보다는 착하게 보일 정도라네.

그는 더 이상 힘에서도 담력에서도

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도다."


16세기 프랑스 육군 원수였던 블레즈 드 몽뤽도 화승총에 대해 이런 저주를 남겼다.


"이 저주스러운 기계는 결코 발명되지 않았어야 했거늘...

용맹한 전사들이 너무나도 많이, 한심한 놈들과 최악의 겁쟁이들의 손에 쓰러졌다.

그들의 면전에서라면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조차 못했을 겁쟁이들이

멀찌감치서 그 괘씸한 총알로 용맹한 사나이들을 쓰러뜨렸도다."




- 크리스터 외르겐젠 외 저 "근대 전쟁의 탄생",

움베르토 에코 저 "중세",

맥스 부트 저 "전쟁이 만든 신세계" 에서





아 개새끼들 전쟁 좆같이 하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