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수연이 자신의 흥건하게 젖은 몸을 다시 깨끗이 닦고 침대의 매트와 이불을 세탁하고 또 언제 구해왔는지 자신의 몸 사이즈에 적당히 맞는 말끔한 여성용 정장과 속옷을 구해와 입혔다.
그리곤 적당히 택시에 태워져 같이 코핀 컴퍼니에 들어와 연휴 첫날 마무리를 위해 남아있는 몇명의 직원에게 인사와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고 현재 자신이 머신갑으로 있던 때 사용하던 사장실의 의자에 앉았다.
이수연과 같이 움직였기에 직원들과 마주칠 때엔 그녀의 뒤쪽에 몸을 숨긴 소녀가 누군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딱딱 할 말만 하고 안겨준 선물과 이만 퇴근하고 연휴를 잘 보내라는 말에 곧 호기심을 지우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각자의 집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날 정도로 블랙기업으로 만든 기억은 없는데.."
소녀 관리자는 지금의 몸으로는 조금 비율이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블랙이든 화이트든 명절 연휴의 시작을 위해 퇴근하는 모습은 세계 어느 직장에서나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조금 울리듯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녀 관리자는 시선을 옮겼다.
사장실 구석에 커다랗게 배치된 탕비실.
또각, 또각. 가까워지는 하이힐의 발소리와 함께 그녀는 조용하고 우아하게 책상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블랙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다.
둘 뿐인 조용한 공간에서도 책상에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절묘한 힘 조절과 밸런스, 일에 열중하는 주인을 배려하는 행동.
그 플로라 메이드를 이끄는 메이드장 베로니카와 같이 절도있고 기품과 예의가 느껴지는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다.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찻잔을 집어들었다.
"그런가? 뭐..자네가 노력해주고 있다는 건 알고있고 깊이 감사하고 있네."
그리곤 가볍게 한 모금.
코핀 컴퍼니가 다시 살아나며 가끔 개인적이나 기업 대 기업간의 계약으로 중요한 손님들이 오는데, 그들은 전부 부사장인 그녀의 선에서 처리하기 때문에 관리자는 손님 대접을 위한 차나 커피, 간식 등을 탕비실에 배치시켰다.
그 때문인지 사장실 전용 탕비실의 것들은 하나같이 구하기 어려운 일급품이었는데, 자신도 가끔씩 직접 이곳에 올 때는 꼭 즐기곤 했다.
전 세계적인 침식 덕분에 몇몇 기호품들은 특히 귀해져 가격이 미친듯이 올라갔는데, 이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라는 커피는 현재는 특별한 루트나 각 국의 아주 높은 신분이 아니면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흠..역시 이 커피는 아주 깊은 풍미와 특유의 향이..푸핫! 써어!!"
소녀 관리자는 눈을 감고 느긋하게 한 모금 들이킨 고급 커피를 퉤퉤하며 혀를 내뱉고 뱉어버리더니 잔을 힘껏 내리쳤다.
설마 자신을 독살하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수연을 째릿하고 노려봤지만, 그녀는 곧장 소녀 관리자가 내려놓은 커피잔을 들어 호록 하고 소리나게 마셔보였다.
꿀꺽.
소리나게 침을 삼킨 관리자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이수연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그녀가 배신한건가 아니 그러면 저 독이 든 커피는 왜 마신거지? 바로 자신이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고 오해를 풀기위해 일단 마셨다가 뒤늦게 해독제를 마시려는 속셈..'
"풋."
"응?"
이수연은 커피를 몇 모금 더 음미하듯 마신 뒤 이번에도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는 마치 비웃듯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푸후훗..관리자님 아무래도 잘못된 건 커피가 아니라 관리자님의 입맛 같은데요? 외모랑 성격도 소녀가 되버린 것 같더니 이제는 입맛까지 소녀 취향이 되버리신 것 같네요."
"무,뭐라고? 자네가 나를 독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입맛이 바뀌었다고?!"
"뭔가요 그건. 제가 당신을 독살해서 대체 어떤 이득이 있다고..어제 미친듯이 가버렸다고 머리까지 이상해진건가요?"
이수연은 소녀 관리자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볼을 빵빵히 부풀렸다.
확실히 자신과 그녀는 육체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나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 그녀가 자신을 해친다고 얻을 이득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마도..'
"흠, 흠. 의심해서 미안하네..정말 한 순간 믿기지 않는 쓴 맛이 느껴져서.."
소녀 관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사과했다.
다행인 것이라면 단단히 삐친듯한 그녀는 사실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바로 몇시간 전까지 자신의 밑에 깔려 앙앙 울부짖는 한없이 무력하고 가련한 소녀였는데 이제와서 그런 말을 좀 한다고 해봤자 오히려 귀엽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게다가 평소의 남자였던 그라면 절대 보여주지 않을 약하고 여린 모습.
이수연은 몸을 움츠리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아랫배에서 끓어오르는 욕정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수연은 가늘게 늘어뜨린 눈으로 먹잇감을 관찰하듯 소녀를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는 살며시 고개를 숙여 소녀의 얼굴 옆쪽으로 다가갔다.
"이 벌은..나중에 침대에서 갚아드리죠. 이 '마조 암컷'. "
오싹.
마치 귀를 통해 관통한 그녀의 요염하고 조곤거리는 말이 머리속을 범하듯 전율했다.
분명 자신을 낮잡아보는 매도일텐데도, 기분이 나빠야할텐데 오히려 아랫배쪽이 뜨거워지며 몸이 저릿하게 떨려온다.
'뭐지..이거..싫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얼굴을 붉히는 관리자를 보며 이수연은 만족한 듯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뭐, 당장은 아니지만요. 아시겠죠? 전에 말씀드린 알파트릭스로부터 온 계약건."
"아...응. 그거."
관리자는 이수연에 말에 간신히 이성을 부여잡고 몸을 추스르며 기억을 되짚으며 대답했다.
알파트릭스 내에서만 독점하고 있는 특별한 자원의 지분을 넘겨받는 대신 아주 성가신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내용.
확실히 기업의 경영을 전부 부사장에게 떠넘겼으니 이것은 그녀가 해야할 일.
물론 위급한 상황이거나 그녀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이 개입할 생각이었다.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네..이런 좋은 연휴에 자네에게만 일을 맡겨서."
"신경쓰지 마시죠. 사장님은 사장님의 일이 저에겐 저의 일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소녀 관리자의 작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럼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다음에 볼 땐 다시 멋진 남성분이었으면 좋겠군요."
음란하게 혀를 섞지도, 특별한 도발도 하지 않은 그녀의 가벼운 눈웃음과 언행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라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빨갛게 익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남자로 돌아간다면 분명 이 뒤바뀐 관계는 다시금 역전되겠지만.
"네..알겠습니다."
"후후..착하군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그녀의 귀여운 암컷이었다.
누구랑 보빌지 모르겟어서 야설을 못쓰겟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