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국 산하 태스크포스 코핀 컴퍼니의 이름은 요새 업계에 있어 상당히 뜨거운 감자였다.

 

하나 뿐인 소대의 소대장, 힐데의 잠적과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해 과거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침체되어 있던 회사가 소대장의 복귀, 그리고 어떤 이상한 로봇 사장의 취임과 동시에 가장 괄목한 성과를 내고 있는 회사로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펜릴 소대, 알트 소대 등 우수한 카운터들을 영입해 소대를 재정비해 훌륭한 팀업을 만들어낸 영향도 컸지만,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 민감한 몇몇 전문가들이라면 코핀 컴퍼니의 괄목상대에 있어서 회사의 창립 멤버이자 쇠퇴기와 중흥기의 중심에 있던 '그 사람'의 공로를 결코 빼놓지 않을 터였다.

 

그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는 하나 같이 화려한 것 뿐이었다.

 

사실상 코핀 컴퍼니를 지탱해온 실세이자 역사 그 자체로 꼽히는 그 사람.

 

힐데의 잠적과 동시에 수 많은 거대 태스크포스 기업들에서 그 한 사람만을 노리고 다 망해가는 코핀과 합병 제의를 해올 정도로 업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인재 중의 인재.

 

머신 갑 사장의 회사 인수로 부사장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전반적인 계약을 도맡아 하며, 부족했던 자본이 뒷받침되기 시작한 동시에 다시 회사를 원 궤도로 끌어올리며 주주들의 환호를 부르고 무수한 악수 요청을 받게 한 기적의 주인공.

 

코핀 컴퍼니의 과거 위상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식어가 붙은 시점에서 그가 업계 사람들로부터 실적에 있어서, 그리고 동업자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

 

그 인물은 지금 부사장실에서 새로운 다이브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관계자와 마무리 악수를 나누던 참이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저희 회사의 최정예 부대를 투입시킬 예정이니 말씀하신 추가 요청 건에 대해서도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잘 부탁하네. 역시 나 사장과 일하면 스무스하게 흘러가서 좋다니까. 참, 이젠 나유빈 부사장이라 불러야하지? 미안하네, 입에 하도 익어서 그만."

 

"하하, 괜찮습니다. 사장님 앞에서만 말 안하시면 상관 없죠, 뭐."

 

"그렇지? 하하! 나중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그러죠.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복잡한 계약 과정을 무사히 끝내 홀가분해진 얼굴로 관계자는 서류를 챙겨 부사장실 문을 나섰다.

 

그와 스치듯 부사장실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한 남자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또 일인가요? 요새 예전에 비해서 꽤나 바빠진 것 같네요."

 

"적자를 메꾸려면 아직 멀었어요. 이제 경영이 정상 궤도로 올라왔는데 더 열심히 할 때죠. 그런 의미에서 주시윤 군."

 

계약한 서류를 모아 탁자에 탁탁, 소리나게 정리하던 유빈이 시윤을 보며 빙긋 웃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는 게 아닌 그런 표정이었다.

 

"은근슬쩍 결제 서류 가져오는 척 땡땡이 치는 건 그만 하라고 했을텐데요."

 

"하하, 선배... 아니, 부사장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전 지금도 아주 착실히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하하하, 시윤 군이야말로 뻔뻔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요. 시윤 군에 대한 제 믿음은 스승님의 출장으로 임시 소대장으로 임명되자마자 본인 휴가계를 마음대로 결제한 시점에서 바닥을 뚫고 들어갔으니 그 서류들 이리 주시고 바로 다이브 준비나 하시길 권고드리죠. 또 옆으로 새지 말고요."

 

"......지금요?"

 

"네. 지금 계약 완료했잖아요?"

 

탁탁, 하고 보란 듯 이미 다 정리된 서류 쪼가리들을 재차 내리치는 유빈.

 

잠시 그 서류로 시선을 향하던 시윤의 눈이 부사장실에 걸려 있던 시계로 향했다가 다시 유빈에게로 향했다.

 

"저기 부사장님. 곧 퇴근 시간 아닌가요?"

 

"야근 수당에 보너스까지 빵빵하게 지급될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서 준비하세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나 씨 다루듯 다뤄지진 않습니다만 부사장님...... 이거 이렇게 날림으로 처리해도 되는 겁니까?"

 

"돈은 항상 옳답니다, 시윤 군. 오늘 따라 혀가 좀 길어지신 것 같은데 자꾸 그러면 지시 불응으로 바로 감봉을ㅡ"

 

"바로 준비하죠. 최선을 다하는 남자가 제 모토니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 쌩 하고 부사장실을 나가는 시윤.

 

잠시 후, 골 아픈 듯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주무르던 유빈의 귀에 킬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 안 듣는 후배님 교육시키느라 고생이 많아, 대장."

 

"대장이 아니라 부사장입니다. 사장님은 윗방에 계시고요, 에이미 씨. 오해받을 수 있는 표현은 되도록 피해주면 좋겠다고 한 것 같습니다만."

 

"노력해 보겠는데 잘 안 된단 말이지. 대장은 대장이잖아?"

 

"......말을 말죠. 남들 앞에서 그런 말 쓰지나 마세요."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뜨자 팔베게를 하고 접객용 소파에 다리 쭉 뻗고 누워 있는 에이미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입고 다니는 검은색 겉옷마저 벗어버린 탓에 옷 입은 곳보다 살색이 더 많이 드러나는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유빈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소파 위에 신발 신고 올라가지 말고요."

 

"......빡빡해."

 

"에이미 양이 너무 남의 눈치를 안 보는 거란 생각은 안 하시는건가요..."

 

왜일까.

 

이 사람을 보면 과거 다른 사람 말은 죽어라 안 듣던 왈가닥 동료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물론 일하는 데 있어선 그 동료와 앞의 주시윤과 비할 바가 못 됐지만......

 

뒷골목 들어가서 담배 하나 물며 다리 꼬고 앉아 있어도 위화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날라리 같은 인상과 달리 그녀의 일처리는 현장에서든, 사무실에서든 빠르고 깔끔하기로 사내에서 정평이 났으니까. 듣기로는 이 나이 되도록 독수리 타법을 아직도 못 고쳐 고생하는 힐데의 서류 작업을 도와주며 이것저것 뜯어먹고 있다고도 시윤에게 귀띔으로 들은 것 같다.

 

"제 생각인데, 왠지 에이미 양은 스파이 같은 거 시키면 잘 할 것 같아요."

 

"앗, 나도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산업 스파이 같은 거 할 기회 생기면 나 보내주면 안 돼?"

 

"그럴 일이 생긴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그나저나 에이미 양, 소속된 소대 없이 파견 나가는 소대 끼어서 일하는 스타일은 여전하시더군요. 혹시나 해서 다시 여쭤보는건데 다른 소대에 들어갈 생각은 정말 없으신겁니까?"

 

"딱히?"

 

왜 그래야 하냐는 듯 진짜 궁금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의 반응에도 유빈은 딱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코핀 컴퍼니에는 현재 총 3개의 소대가 운용 중이다. 펜릴 소대와 알트 소대, 그리고 도시전설에 가깝던 카운터 오르카와 유명 용병 에디 피셔를 주축으로 모인 R7 소대. 에이미는 코핀 컴퍼니와 계약한 카운터인 동시에 셋 중 어느 소대에도 속하지 않고 일 나가는 소대에 적당히 낑겨서 가는 '용병' 취급 받고 있는, 회사 내에서도 특이 케이스로 취급받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그런 묘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 그런 일처리 스타일도 있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사원이 머신 갑 사장에 의해 충원된 것과 달리 부사장 나유빈에 의해 회사에 입사한 두 명 중 한 명이라는 주목받기 충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동기가 생각난 듯, 에이미는 '아 참'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보니까 걔는 잘하고 있대?"

 

"잘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

 

"......"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그 순간 아주 절절히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게 내가 되도록 현장 일만 시키라고 했잖아, 대장."

 

"크, 크흠. 이것저것 가리기엔 그동안 인력이 너무 부족했잖습니까?"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고! 그리고 이젠 인력 걱정도 없는데 뭔 소리하는 거야?"

 

"아니 지수 씨도 제가 데려온건데 좀 그렇잖습니까, 가만히 두기는 좀......"

 

"대장,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 혹시 들어봤어?"

 

"......어라, 여기 전화가."

 

식은땀을 흘리던 유빈을 구원해준 것은 책상 위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 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잽싸게 전화를 들어올린 유빈은 아예 에이미로부터 등까지 돌려 앉으며 통화를 시작했다.

 

"네, 코핀 컴퍼니 부사장 나유빈입니다."

 

[......]

 

"여보세요? 누구시죠?"

 

응답이 없는 전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곧 밀려들 업무거리에 대비해 필기구를 찾으며 유빈이 책상을 정리하는 그 때였다.

 

 

 

[......나다. 오랜만이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펜을 집으려던 유빈의 손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언가 감지한 에이미가 시선을 돌렸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유빈의 표정이었다.

 

 

 

[......류드밀라 전대장님?]

 

 

 

 

 

 

 

-----

 

쓰다보니 분량 늘어날 것 같아서 둘로 나눔...... 


처음 잡았던 주제는 '나유빈(만)이 이수연을 대신해 코핀 컴퍼니 부사장이었다면?'이란 아이디어였음. 본편에서 육익이 배후에 있던 클리포트 게임이 여기선 나유빈이 부사장이므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는 식으로 쓰려고 했는데 어째 쓰다보니 육익 전체를 넣는 걸로 바뀌어버렸네.

 

육익 넣은 코핀에 이수연은 뺄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분량 너무 잡아먹을까봐 묘사 생략함. 쓰지는 않았지만 본편에서 이수연 엇나가려던 걸 나유빈이 힐데 옆에 있으라면서 말린 거 생각하면 갠적으론 나유빈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막가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