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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

조심스럽게 눈을 떴는데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뜬다. 조금씩 시야가 제대로 보인다. 내 얼굴과의 거리 10cm정도. 시윤 씨의 얼굴이 보였다. 어제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간다.

꿈인가 싶어서 눈을 오랫동안 감고, 다시 뜬다. 눈을 떠도 내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 곤히 잠들어 있다. 꿈 같은 게 아니었다. 나는 잠옷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시윤 씨는 내 고집으로 여기서 자게 되는 바람에 상반신만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잠들었다. 괜히 얼굴을 만져보고 싶어서, 손을 뻗으려다가 관뒀다. 힘들었을테니 괜히 깨우고 싶지 않다. 

조용히 빠져 나갈려고 했는데,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이 느껴졌다.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왔다. 시간이... 벌써 점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늘이 휴일이 아니었으면 완전 대참사였을 것이다. 


침대에 걸터 앉아서 다시 한 번 잠들어 있는 시윤 씨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결국 내 욕심대로 바라는 걸 얻어버렸다.

그래, 지금은 헤어짐 같은 거 생각하지 않을 거야. 방법도 찾고 있고, 지금까지도 무사히 내 몸에는 아무 탈이 없으니까. 


이전 세계에서도 하루하루가 바쁘다 보니 대충 끼니를 때워서 요리 솜씨는 별로 없지만... 직접 점심이라도 만들어 줄까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간단하게 씻으려 몸을 일으켰는데 허리부터 발끝까지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아...!!"

"...? 카린 양? 왜 그래요!"




통증 때문에 힘이 빠지고, 넘어져서 쿵-하는 소리가 난다. 소리를 듣고 깼는지 시윤 씨가 엄청난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의도치 않게 잠을 깨워버리는 바람에 미안해졌다.




"괜찮아요? 넘어진 거에요?"

"으으... 다리랑... 허리가 너무 아파요."

"이정도로 아프면 깨우지 그랬어요."

"저도 누워 있을 땐 몰랐어요... 미안해요. 시윤 씨. 놀라게해서요."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놀란 표정으로 나를 살핀다. 어제와 같은 다정함에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시윤 씨가 나를 끌어 안았다.





"시윤 씨?"

"진짜... 실수로라도 저 놀래키지 마세요. 이제 즐거울 일만 남았는데... 문제 생긴 줄 알았잖아요~"

"... ..."





나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그렇지만, 시윤 씨도 조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거 겠지...

한 손을 그의 머리에 올려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쓰다듬으니 어리광 부리 듯이 나를 더 꽈악 안는다. 처음 보는 모습에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진심으로 많이 놀랜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해졌다.







"많이 아파요?"

"모르겠어요. 걸을려니까 갑자기 아프네요."

"흐으으음. 예상해보면 아마 어제 3번이나 같이 섹..."

"거기까지!"






뒷 음절이 나오기 전에 품에서 빠져나와 검지 손가락을 시윤 씨의 입에 가져다 댔다. 시윤 씨가 입술에 갖다댄 손을 잡더니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따뜻한 체온이 손바닥에 스며든다.






"정말...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고...!"

"어제의 고집불통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그럼 저 미워 하실 거에요?"

"흥. 그럴 일은 없어요. 절대로."

"하하- 고마워요. 일으켜줄게요."





그의 부축을 받아서 일어난다. 하반신에 그윽하게 퍼지는 통증에 인상이 절로 찌뿌려졌다. 걸을 순 있겠지만... 많이 아프긴 아프네.





"오늘은 공주님처럼 모셔야겠네요~"

"네?"

"계속 무리하시기도 했고, 어제 ㅅ.. 엄청 재밌게 놀아서 많이 힘들잖아요?"

"꺅!"





갑자기 공중으로 붕-뜨는 바람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공주님 안기가 낯설어서 시윤 씨를 꽉 붙잡았다.





"내, 내려주세요! 걸을 수 있습니다!"

"하하- 안되죠~ 자, 어디로 데려다 드릴까요?"

"으으... 정말 일단 욕실로요...!"

"같이 씻을까요? 앟!"





약올리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항상 손이 먼저 날아간다. 시윤 씨는 좀 피하다가 이제는 피하지도 않고 맞아주곤 한다. 정말...





"후우... 그럴까요?"

"어... 농담한 거에요. 하하. 아프시니까 힘드시면 불러주세요~"

"... ..."

"... 역시 같이 씻을까요?"




농담이라면서 내가 긍정하니까 더 신나 보였다. 나도 싫지 않으니까, 따라서 같이 웃었다.














-







그의 손길에 내 머리카락을 맡겼다. 드라이기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워진다. 내가 하겠다는 데도 기어코 자기가 드라이기를 손에 쥐더니, 소원을 성취해서 기분이 좋은 듯 생글생글 웃는 것이 화장대 거울로 보였다.





"다른 사람이 해주니까 빨리 마르는 것 같아요."

"그럼 앞으로 자주 해드릴게요."

"히히- 배고플텐데 점심은 제가 해드릴게요."

"카린 양은 요리 잘 하시나 봐요?"

"살던 세계에선 너무 바쁘다 보니 전투 식량으로 많이 때웠어요. 자신은 없지만 제가 만들어드리고 싶어서요."

"하하하. 기대해도 되죠?"

"너, 너무 많이는 하지 말아 주세...요..."

"엄청나게 할 거에요~"

"아!!!"





부끄러워서 아! 소리를 지르니 그가 더 크게 웃는다. 살짝 삐칠려다가 이번에도 결국 따라서 같이 웃었다.

그냥 같이 이렇게 있는 것 만으로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나에게도 이런 기분을 느낄 기회가 있구나. 시윤 씨가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면 놓쳐버렸겠지.






"감사합니다. 시윤 씨."

"네~?"

"머리 이쁘게 말려주셔서요."

"하하- 한 건 별로 없는데, 만족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네! 이제 우리 점심 먹어요."

"그래요. 힘들면 말해요. 도와드릴게요-"






비록 원래 챙겨 먹었어야 할 점심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배고픈 것 따위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토요일 오후가 흘러갔다.

















*








토요일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같은 옷을 다음날에 또 입는 건 질색인데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일요일 점심에 뭘 입고 만나야 할 지가 더 고민이었다.

카린 양에겐 무채색 옷만 입는다고 놀려 놓고, 정작 내 옷도 별다를 건 없었다. 역시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그냥 항상 입던 옷으로 입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았다.

3월의 끝자락 4월로 지나가기 직전이면 딱 벚꽃인데. 벚꽃 구경을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종종 일어났던 침식재난 때문에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또 모르겠다. 이미 다 떨어 졌을 수도 있고.





"아-"




카린 양에게 빌려줬던 후드티와 같은 디자인의 후드티가 보였다. 이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바로 바꿔 입고, 전신 거울로 핏을 맞춘다. 입은 옷이 다 검정색이라 칙칙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맨날 보는 옷 보는 거보단 새롭겠지.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돈해주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봄이라는 게 실감나도록 밖의 온도가 제법 많이 따뜻해졌다.

이제서야 제대로 된- 설렘 가득한 데이트를 하는 오늘에 딱 맞는 맑은 날씨가 더 기분을 좋게 한다. 어쩌다가 약속을 잡으면 만났던 그 거리로 걸어간다. 몇 번 그 곳에서 만났지만, 오늘은 또 새롭게 느껴진다.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일찍 나와서 거리의 사람들을 본다. 일요일이라서 거리에는 사람이 북적이고, 시끌시끌하다. 종종 커플들도 스쳐 지나간다. 

카운터니까 평생 회사에서 구르다가 혼자 늙어 죽던 지, 아니면... 스승 님한테 목이 날아가던지 해서 꿈도 못 꿀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러다 여자친구도 생기고...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분정도 일찍 도착해서 카린 양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 풍경을 계속 보았다. 딱히 아는 사람도 안 지나가고, 그렇다고 하트베리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것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카린 양을 알아볼만한 사람도 안보이니까 일단 안심해도 되겠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한 시간까지 10분 정도... 그 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시윤 씨, 저 왜 못 알아봐요-"

"엥?"





조금 놀랬지만, 내색하지 않고 돌아보니 카린 양이 살짝 삐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늘 자주 입던 옷이 아닌 내가 오래 전 선물로 주었던 옷을 입고 나왔다. 잊은 채 지냈더니 선물 해주고도 몰라봤다. 명백한 나의 실수-







"예쁘네요. 잘 어울려요."

"그, 그래요? 다행이에요. 자주 입던 옷이랑 달라서..."







노란색 머리띠, 하얀 목폴라티, 개나리색 테니스 스커트. 카린 양에게 어울리는 색조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봄 날에 맞게 정말 눈부시도록 어울렸다. 카린 양은 어색한지 자꾸 자신의 옷을 내려다 보았다.






"미인한테 뭔들 안 어울리겠어요?"

"그, 그러지 말고! 그... 정말로 안 이상해요?"

"정말인데요~ 직접 선물까지 해드린 옷인데 절 못 믿으시나 봐요. 섭섭한데요."

"아니에요! 시윤 씨가 그렇게 말씀 해주신다면야 저는 괜찮습니다."

"하하- 빈말 아니니까 자신감 가져요."






늘 그렇듯 칭찬을 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게 토끼 같아서 귀엽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웃는 표정에 귀여움은 두 배가 된다.






"그럼. 갈까요?"

"앗, 갑자기 손을 잡으시면-"

"뭐, 어때요~ 손잡는 거도 부끄러워하시면 그저께는 어떻ㄱ.."

"쉿- 쉿!"








볼 거 다봤는 데 손잡는 게 뭔 대수냐 싶지만, 아무래도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손을 잡고 돌아다니게 좀 그런 걸까.






"하하- 괜찮아요. 카린 양. 저도 사람 많은 곳에서 다른 사람이랑 손잡고 다니는 거 처음이에요."

"그, 그게..."

"저도 어색하고, 조금 쑥쓰러운데. 그래도 잡고 싶었어요. 카린 양 생각은 어때요."






말도 못하고, 여전히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내가 웃자 카린 양도 이내 웃는다. 부끄러움도 둘이 같이 있으면 덜어지지 않을까-







"오늘은 제가 봐둔 데가 있는데, 가보실래요?"

"어떤 곳이에요?"

"카린 양이 어제 해산물을 잘 못 먹어 봤다 해서요. 한 번 도전해보시겠어요?"

"좋아요! 매운 거 아니면 다 먹을 수 있어요!"

"하하- 그럼 얼른 가요. 저 배가 등짝에 붙겠어요~"








자연스럽게 우리는 손을 잡고, 초록불 신호와 함께 횡단보도의 인파 속에 섞여 들어갔다.















-








침식오염 때문에 바다까지 전부 오염되는 바람에 해산물이 귀해져 먹어볼 기회가 정~말 없었다길래. 혹시라도 안 맞을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맘에 들었는지 맛있게 먹어주었다.






"초밥이란 거 정말 귀하고, 비싼 음식이었는데..."

"여기서는 제일 무난하게 해산물을 접할 수 있죠. 찾아보면 흔하게 있지만, 그 중에서 나름 고급진 곳 찾아봤어요."

"감사합니다. 시윤 씨. 정말 맛있어요."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먹지 않고, 카린 양을 멍하니 쳐다 보고만 있었다. 잠깐 멍에서 빠져나오면 하나 씩 먹다가 문득 카린 양이 새우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나에게 먹어보라며 내밀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먹었는데-





"억!"

"와사비를 조금 더 넣어봤어요!"






코가 뻥 뚫리는 알싸한 매운맛에 나도 모르게 억-소리가 절로 나왔다. 재밌다는 듯 내 앞에서 꺄르르거리며 웃는데 귀여우니 그냥 용서가 됐다.






"으- 이번엔 제가 당했네요. 방심하면 안되겠어요."

"헤헤- 미안해요."

"카린 양이니까 용서 해주는 거에요~"






용서해준다는 말에 해맑게 웃는다. 용서는 하지만, 복수의 칼날(?)정도는 갈아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따라 웃었다.














-





커피 값은 자기가 계산하겠다는 걸 말리다가 결국 져버렸다. 정작 키오스크 앞에서 어버버-하는 엉뚱한 모습이 귀여운 건 덤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키오스크를 잘 못쓰시던데-"

"시윤 씨! 멀쩡한 청년을 할머니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하하하하- 장난이에요. 제가 해드릴게요. 메뉴는 뭐 드실 거에요?"

"...아메리카노로요."





삐쳤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눌러주고, 내가 다됐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카드를 꽂아 결제를 한다.






"엇, 카드는 잘 꼽으시네요? 악!"

"자꾸 그러면 정말...!"

"아파요~"





삐친 모습이 귀여워서 놀리다가 팔뚝을 맞았다. 별로 아프지 않지만 엄살을 부리니 미안한지 때린 곳을 살짝 문질러준다. 나오는 영수증을 가지고 비어있는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시윤 씨는 젊어서 좋으시겠어요."

"네?"

"뭐, 일단은 저보단 어리시잖아요?"

"그러고 보니 카린 양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네요. 근데 제 나이는 어떻게 아셨... 아?"

"저는 시윤 씨의 사원 정보를 봤답니다."





웃으면서 내 신상 정보를 다 봤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근데 카린 양은 제 또래랑 비슷해 보이시는데 말이죠?"

"네. 맞아요. 그래도 1살 차이 밖에 안나요. 그래서 그냥 카린이라고 부르셔도 돼요."

"아~ 근데 왜 키오스크는 못... 아! 아파요~"

"제가 살던 세계는 키오스크가 없었으니까요!"





이번에도 팔뚝을 한번 때리더니 또 문질러준다. 이게 병주고 약주고 인가?

때마침 우리의 주문 번호가 번호판에 떠서 빠르게 내가 먼저 튀어나갔다.





"감사합니다."

"뭘요. 숙녀는 앉아 계시면 된답니다~"

"정말..!"





그럼 이제 막 20살이 되어서 자기가 살던 세계의 멸망을 본 건가... 오히려 여기서 해맑게 웃고 있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일에 비하면... 훨씬 더 어깨가 무겁고 괴로웠겠지. 당장 깊게 생각 안 해도 지나간 일들만 해도 굉장히 괴로웠을 것이다.





"카린 양."

"네-"

"아니에요~"

"...? 또 뭘 놀리실려고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괜히 들추는 건 관두기로 했다. 너무 먼 미래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듯이, 돌아보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러고보니 카린 양은 이제 단 음료는 안 드시나 봐요?"

"아- 단 것도 좋아해요. 가끔 시윤 씨가 사주셨던 핫초코가 생각나서 사 먹기도 했고요."

"그럼 왜 지금은 아메리카노일까요?"

"하나 씨가 가끔 사주셨는데, 아메리카노도 괜찮아서 그 뒤로 마시고 있어요. 잠이 잘 깨기도 하고?"

"하하하...이젠 완전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피곤에 찌는 직장인의 삶..."

"시윤 씨 말대로 그래선지 가끔 군인이었단 사실을 잊어버리곤 해요."

"이제 완벽하게 적응하셨네요."

"네. 예전에 정보부에서 일한 게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정보부?"






나의 의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여기 세계와는 상관 없을테니 이야기해도 상관 없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긴 했지만, 계속 들어도 신기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이야기들이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덤덤하게 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웃으면서도 이야기하며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카린 양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





헤어지기 전에 카린 양이 여기는 꼭 같이 또 와야한다 길래 따라왔다. 짧은 기간 동안 참 많은 추억이 서린 공원이었다. 변함없이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산책로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저번보다 더 아주 가까이 붙어서 강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강물 소리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져요."

"혼자서도 자주 오셨나봐요."

"네. 처음 여기를 왔을 때, 매번 침식오염 된 물만 보다가 맑은 물을 보니까... 계속 찾게 되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카린 양은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침묵했다. 무릎 위에 살포시 얹고 있는 손을 잡아주니, 카린 양도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절대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손 잡고 있는 걸요?"

"네.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기적적으로 이렇게 손을 잡고 있네요-"





그녀가 맞잡은 손을 내게 보여주며 웃는다.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눈부시게 빛이 난다. 나도 따라 웃는다. 카린 양이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시윤 씨! 같이 사진 찍어요-"

"사진이요?"

"남기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보고 싶을 때 꺼내보면 되니까요!"







나름 한 손으로 잡고 요리조리 화면을 잡아보는데 뭔가 맘에 안 드는지 끙끙거린다. 마치 스마트폰 잘 못 다루는 어르신들을 보는 기분...

기다리다가 한 손에 든 카린 양의 핸드폰을 낚아 챘다.






"앗!"

"제가 사진은 또 잘 찍죠~ 카린 양. 이리 붙어봐요-"

"네?!"






한 손은 핸드폰을 들고, 한 손은 카린 양의 허리에 손을 올려 내 쪽으로 밀착 시켰다. 꽤 다정한 투 샷이 나오는 것 같다.






"카린 양. 웃어요~"





카메라 어플의 찰칵 소리가 나고, 사진이 자동저장됐다. 저장 된 걸 확인하고 돌려주었다.






"사진 저한테도 보내주세요."

"당연히 드려야죠~"

"근데 저 뭐라고 저장하셨어요?"

"앗, 안돼요!!"





은근슬쩍 보려는 데 내 얼굴을 밀어낸다. 이러니까 더 궁금해졌다.





"에이- 궁금한데... 저 슬퍼요~"

"그, 그래도 안돼요...!"

"그럼 저도 비밀 할래요."

"... ..."

"안 알려줄거에요~"

"...제가 보여드리면 시윤 씨도 보여 주실 거에요?"

"그럼요-"





귀까지 빨개지는 게 보였다. 카린 양도 내심 궁금했는지 나도 비밀로 한다고 하니 쉽게 넘어왔다. 알고 보면 참 순진한 사람인 것 같고... 사진을 보내고, 잠시 주저하더니 나에게 화면을 보여준다.






"하하하하하!"

"아! 비웃지 마세요! 엄청 고민했다고요!"

"비웃는 거 아니에요. 귀여워서 그래요~"

"아아아아!"

"아야~ 아파요~"







'시윤씨♡'라고 적혀있는데 어떻게 안 웃을 수 있을까. 부끄러운지 양손으로 마구잡이로 나를 때린다. 카린 양의 머리 위로 스팀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시윤 씨도 보여주세요!"

"하하하- 보여줄까요~ 말까요~"

"아- 정말! 미워 할 거에요!"

"미안해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미워할 거라는 말에 바로 항복했다. 내 핸드폰을 꺼내어 연락처 목록을 띄우고 바로 보여주었다.







"... ..."

"별로 인가요?"

"아, 아뇨! 그냥 꽃 밖에 안보이길래...?"

"저에겐 제일 아름다운 꽃이라서?"

"... ..."






실시간으로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면 참 재밌고, 귀엽다. 내 팔을 양손으로 붙잡고, 어깨에 이마를 대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카린 양은 노란색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노란 꽃으로 해봤죠?"

"... ..."

"카린 양~?"

"드, 듣고 있습니다!"

"제 팔을 안지 말고, 절 안아주실래요?"

"몰라요!"






분명 잡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팔을 안고 있다. 괜히 팔에 닿는 물컹한 감촉이 신경 쓰인다.





"카린 양. 자꾸 말랑말랑한게 느껴져서-"

"악!"

"아, 이번엔 정말 때리지 마요. 저도 곤란해서 그런 거라고요~"






살짝 떨어지더니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그대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리곤 때린 팔뚝을 또 문지른다. 그래, 내가 장난치다가 맞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제 문질러 주는 게 어디야.

시선을 돌리는데 때마침 분위기를 바꿀 아주 좋은 곳을 발견했다.






"카린 양. 저기 봐봐요."

"네?"

"저기 강 쪽 말고, 산책로만 있는 쪽이요."

"...! 저거 벚꽃이에요?"

"여기까지 올 때 안보이길래 이번엔 안 핀 줄 알았는데 저기는 피어있네요. 가볼래요?"

"네! 가볼래요!"






카린 양이 신난 듯 먼저 일어나서 내 손을 잡아당긴다. 나도 따라서 일어나 벚꽃을 핀 곳으로 같이 걸었다. 거리가 좀 있는데도 빨리 보고 싶다며 뛰어가자고 재촉하는 모습에 나는 못 이기겠다는 듯 손을 잡고 같이 달렸다. 








"와...!"

"누군가랑 벚꽃 구경을 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도요. 애초에 보기도 정말 힘들었는데."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만개하여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카린 양의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앞서나가서 구경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았다. 

늘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카운터도 군인도 아닌 꽃을 좋아하는 순수한 소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카린 양이 쪼그려 앉아서 뭔 가를 줍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짠-"

"...?"

"하하하! 시윤 씨, 엄청 잘 어울려요!"

"아?"






온전한 모습으로 떨어진 벚꽃을 내 귀 위쪽 머리카락에 꽂았다. 그리곤 자기도 귀 위로 머리카락에 꽂았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럼 또 한 장 찍을까요?"

"좋아요!"







남자한테 꽃은 좀 그렇지만, 기쁘다면야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지-

일요일 늦은 오후 우리는 벚꽃 하나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게 웃었다.



















-




[같이 출근 하실래요?]

[좋아요.]








아침 일찍 보낸 메시지에도 카린 양은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성격 상 일찍이 일어나서 준비했겠지. 어플을 닫으니, 어제 찍은 사진으로 해둔 배경 화면이 반겨준다.

월요병마냥 월요일만 되면 출근하기가 그렇게 싫었는데. 이젠 거의 그렇지 않다. 대충 모닝빵을 잼에 찍어 먹으며 어제 같이 찍은 사진들을 감상했다. 나에게 사진이라곤 거리가 참 먼데도 어플의 자체 보정의 힘이란 굉장하다. 핸드폰을 쥔 손에서 진동이 느껴지고, 메시지가 떴다.





[어디서 만나서 갈까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



같이 출근하니 당연하게도 수근거리는게 느껴진다. 카린 양이 주위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괜히 미안해지는 느낌...




"대박."

"좋은 아침입니다. 서윤 양."

"아, 안녕하세요. 서윤 씨."





서윤 양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니 두분 다시는 안 보실 거 마냥 행동하시더니 무슨 바람이 부신 거에요?"

"하하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설마 그럼 이제 사귀시는 거에요?"

"이미 예전에 기정사실화 하시고 보시지 않았나요?"

"뭐라고?!"

"아! 안녕~ 미나야~ 너는 알고 있었어?"







뒤를 돌아보니 미나 양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린 양이 내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핀다.








"아니? 전혀 몰랐는데...? 진짜 죽어도 안볼 것처럼 행동했잖아?!"

"하하하- 아주 어쩌다 보니 아주 극적인 화해를 했지 뭐에요?"

"그래? 그럼 둘이 사귀는 거야?"

"뭐... 그런 셈이죠?"

"대박! 선배는 좋겠네. 카린 씨가 아깝네-"

"그러게. 카린 씨가 아깝다~"

"...저기요들?"







소란스럽게 우리 둘 사이를 축하(?)하는 두 사람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카린 양은 상황에 좀 적응이 됐는지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 모두 감사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카린 씨?! 주시윤 선배 어디가 좋아서요?!"

"ㄴ, 네?!"

"맞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카린 씨가 훨씬 아까운데? 저번에 내가 귓속말로 얘기해주지 않았어? 선배 엄청..."

"여기서 왜 오두방정이야?"






산 넘어 산이라고, 이젠 스승님까지 뒤에서 나타났다. 똥 씹은 표정으로 우리 쪽을 보며 다가온다.






"... 뭐하냐?"

"하하하... 스승님..."

"페, 펜릴 소대장님."






내 팔을 잡은 카린 양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뭔데? 나도 알려줘봐."

"소대장! 둘이 화해 했나봐!"

"그래서?"

"힐데 소대장님~ 저기 시윤 선배님 팔 쪽을 보세요~"







카린 양이 깜짝 놀라서 잡았던 팔을 놔버렸다. 이미 스승님은 다 본 것 같은데-








"네 성격에 여자친구가 생기긴 하는구나."

"네? 제 성격이 뭐 어때서요-"

"네가 고생 좀 하겠다."







스승님은 내 말은 싸그리 무시하고, 카린 양의 등을 톡톡 치더니 그대로 복도 쪽으로 걸어간다.






"곧 일할 시간이니까 그만 노닥거리고, 빨리 다들 할 거 하러가."

"아~ 그럼 저도 이만~"

"같이 가!"






스승님의 말에 다들 순식간에 흩어졌다. 생각보다 별 말이 없어서 조금 놀랐다.







"어... 시윤 씨, 저희도 이제 일하러 갈까요?"

"그러죠. 그럼 이따 봐요-"

"이따 봐요. 시윤씨-"








카린 양은 관리부실 쪽으로 가고, 나는 스승님과 미나 양이 간 쪽으로 따라갔다. 작전 대기실 문을 여는데 본능적으로 몸이 뒤로 빠졌다. 이번엔 손이 날아왔다. 이거 완전 데자뷰...







"야."

"네~ 잔소리는 달게 받겠습니다~"






한 대 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 위로 손이 찹-하고 올라왔다. 대기실 안에 미나 양도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있는 것 같았다.






"...?"

"물에 빠진 생쥐 꼴 마냥 여기 온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네?"

"네가 선택한 거니 네 스스로 책임져라."

"...뭐, 당연하죠."







여전히 알 수 없도록 어렵게 말하지만, 그래도...







"근데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오진 않았는데 말이죠-"

"그럼 다 얼어 죽어가는 산송장?"

"생쥐가 낫겠네요."

"대체 무슨 얘기야?"

"하하, 옛날 이야기에요. 그보다 오늘은 지시 나온 거 없나요?"











적어도 내 선택을 존중해주니까.














+) 7지나오고 잠깐 머리가 굳어서 쉬었다가 써왔어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25안으로 끝날듯한데 또 뇌절에 삼절안하게 조절 잘해볼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