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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ca.live/b/counterside/33479142

















"카린 양. 오늘 야근이에요?"

"아, 시윤 씨, 오늘 투약 해야 하는 날이라서요-"

"그럼 기다릴테니 같이 퇴근해요."








벌써 몇 번째로 투약 받는 걸까. 주마다 맞으니 이제 벌써 11번째 인가?

매일 맞는 건 아니어도 이따금 카린 양의 팔을 보면 주사바늘 때문에 멍이 들어있었다. 카린 양은 매번 괜찮다고 했지만, 더 이상 이런 거 맞을 필요 없이 여기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 


원칙적으로는 투약 받는 동안에는 사장님과 부사장님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는 작전 대기실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계속 찍어온 사진을 감상했다. 맨 처음 공원 벤치에서 찍은 어색한 사진에서부터 벛꽃을 머리카락에 꽂고 찍은 사진... 넘기면 넘길 수록 어색했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지극히 다정하고 평범한 커플 사진들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사진 같은 건 어릴 때부터 잘 안 찍었었는데... 부모님이 지금 내 모습을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궁금하지만, 답 같은 거 못 받으니 그저 궁금증에 그쳤다.







"시윤 군."

"끝났나요?"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






부사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온다. 평소라면 한숨 쉬면서 가봐도 된다고 할 텐데, 뭔가 이상하다.






"...문제가 있나요?"

"일단은...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큰 문제는 아니에요. 다만 이번엔 좀 예후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시윤 군이 카린 양과 각별한 사이니 이상 징후가 있으면 제일 먼저 알아 차릴 거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거에요."

"뭐, 그렇겠죠.... 본인은 알고 있나요?"

"지금 당장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 본인에게 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시윤 군이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상이 있으면 저에게 따로 보고하면 됩니다. 전달 할 말은 여기까지니 이만 가봐도 됩니다."

"... 방법은 찾고 있는 건가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 신경써서 보도록 해보겠습니다."





방법은 커녕 좋지 않은 징조 뿐이라는 건가... 오늘은 유독 부사장님의 한숨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무언가 알아 낸게 분명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함구 하는 것 뿐이겠지. 혼자서 방법을 찾거나, 캐보고 싶었지만 나에겐 그런 잔재주는 없었으니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병실 문을 열자 이미 다 정리하고 퇴근 할 채비를 하는 카린 양이 있었다. 문을 여는 소리에 돌아보고, 나를 보고 웃는다. 변함없는 웃음에 조금 안심이 됐다.







"아파요?"

"괜찮아요. 이번에도 멍이 조금 들 것 같아요."

"음... 그럼 안아드릴까요? 아- 때리지마요~"

"시윤 씨...! 여긴 회사입니다!"






역시 평소와 크게 다를 거 없는 모습이니 일단은 괜찮은 걸까.

결국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면...








"시윤 씨?"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카린 양 생각이요-"

"얼굴 표정이 심각하던데요?"

"하하, 이제 안 통하네요."








이런 거엔 묘하게 눈치가 빠르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길래... 최대한 돌려서, 내 의문과 거의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은 별 말씀 없으셨나봐요."

"네. 바이탈 신호도 괜찮고, 대신에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하셨고... 아! 엑자일러에 대한 정보를 좀 얻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어요. 그쵸?"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불필요한 희망을 주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엑자일러에 대해서 알아낸거지, 엑자일러를 여기에 유지 시키는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고...





"오늘은 조금 늦게 나왔는데,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갈까요?"

"그래요. 카린 양 먹고 싶은 걸로 먹죠~"







지금 이런 머리 아픈 고민을 하기엔... 내 눈 앞의 사람이 먼저니까 일단 생각을 관뒀다.

얼른 가자며 내 손을 잡고 이끈다. 걱정 할 시간에 더 좋은 추억을 쌓고 싶다. 가능하다면 아주 오랫동안.













-











토요일이지만 대규모 정화 작전에 참가 해야 해서 함선으로 집합했다. 정말 오랜만에 카린 양도 후방 지원을 나왔다. 예전 그림자가 나왔을 때가 생각나서 괜히 머리가 욱씬 거리는 것 같았다.



한참 작전을 수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2종이 쓰러지는 것이 확인되고, 레나 씨의 작전 종료 통신이 들렸다. 아무 탈 없이 마친 것에 다들 안심하며 함선으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카린 씨- 뭐해?"

"아, 미나 씨. CRF를 좀 보고 있었어요."

"왜? 문제라도 있어? 한참을 보고있던데."

"아뇨, 그건 아니고... 그냥 본 거에요. 일단 우리 얼른 함선으로 복귀해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반응을 보면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함선으로 복귀하고, 카린 양이 대기하고 있는 대기실로 조용히 찾아갔다. 대기실 문을 열어도 여전히 워치를 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 서있는 그녀에게 조용히 다가가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악!"

"왜 그렇게 놀래요~"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시면..."

"하하하- 남자친구가 오는지도 모르고, 워치만 보고 계시면 슬퍼요."

"아... 그게..."

"무슨 일이에요~"

"CRF가... 기분 탓인진 모르겠는데. 평소보다 소모량이 늘었어요."

"오늘 조금 무리하신 거 아닐까요?"

"아뇨. 시윤 씨도 그렇고 모두 뛰어나게 잘해주셔서 평소보다 제가 후방에서 지원할 일이 없는데도... 꽤 많이 줄어있어요."

"... 컨디션이 안 좋은 가봐요. 무의식적으로 출력을 너무 많이 냈을 수도 있고요."

"역시 그런 걸까요..."







워치 만을 보다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도... 기우이길 바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머리! 머리카락 헝클어져요!"

"그치만 쓰다듬고 싶은 걸요? 그리고 괜찮을 거에요. 어제 정제 투약의 후유증 일 수도 있고요."

"그렇겠죠? ... 아니! 일단 그만 쓰다듬으세요! 일하는 곳에서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럼 이따가 퇴근하고 저 안아줘요-"

"그건 얼마든지 해드릴테니 그만!"






침울했던 표정이 환해지는 걸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거 보고해야겠지.

... ... 일단 조금 더 지켜보고, 취합해서 보고해야겠다.







"컨디션 안 좋은 것 같으니, 내일은 하루 종일 같이 집에 있을까요-"

"뭐든 저는 좋아요! 아, 이번에 맛있어 보이는 집밥 레시피를 찾았어요. 내일 제가 해드릴게요."

"하하하- 대 환영이죠."















-







그 이후로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늘 그렇듯 행복하게 웃고 떠드는 일이 더 많았다.  지금 내 눈 앞에서 꼬물거리며 요리를 한다던가?

카린 양은 사실 처음 나에게 직접 요리를 해줬을 땐,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조금 타거나, 덜 익거나, 조금 짜거나... 괜히 상처 받을까 티내진 않았다. 애초에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만든 장본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굳이 내색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만족을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심각한 표정으로 먹곤 했으니까. 그래선지 매번 만들어 올 때마다 실력이 늘고, 요즘엔 회사에 도시락을 싸와서 탕비실에서 점심을 먹는 일도 많아졌다.






"카린 양."

"아...! 갑자기 뒤에서 안으시면 위험해요!"

"으음, 그냥 오늘은 뭘까 궁금 하기도 하고, 그냥 안고 싶었어요."

"불 쓰고 있어서 위험해요! 조금만 참으세요!"

"못 참아요~"





맛있는 냄새에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내심이 바닥나버렸다. 못 참고 뒤에서 허리에 팔을 감고 안아버렸더니 참으라고 한다. 밥은 참아도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참을까. 어깨 너머로 보니 닭볶음탕이 냄비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카린 양, 매운 거 잘 못 먹잖아요-"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저번에 시윤 씨가 얘기하신 게 생각나서..."

"지나가듯이 한 말인데 기억해주시다니, 감동인데요? 카린 양이 최고에요."

"히히- 거의 다 됐으니 조금만 도와줄래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만든 모양이었다.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으니 완성품이 더 기대가 되었다. 플레이팅을 하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군침이 도는 매콤한 냄새와 함께 굉장히 먹음직스러웠다.

카린 양은 긴장한 표정으로 맛을 봐 달라며 먹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같이 먹으면 좋겠는데, 꼭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다. 내가 먼저 먹기 전까진 수저도 안 잡을 기세라서 결국 먼저 맛을 본다.




"오?"

"어, 어때요?"

"카린 양이 확인해보면 어떨까요?"

"아! 빨리 알려주세요!"

"하하하- 맛있어요. 진짜니까 얼른 같이 먹어요."

"시윤 씨는 항상 맛있다고만 하셔서..."

"카린 양이 해주는 건 당연히 다 맛있죠?"




맛있다는 말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한 입 먹더니 자신이 생각한 맛인지 표정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제 말 맞죠? 전 거짓말 안 해요."

"제가 이렇게 만들 수 있다니...!"

"나중에 닭볶음탕 집 사장님 하셔도 되겠어요."

"헤헤- 다음에 또 만들어 드릴게요."





실없는 웃음을 따라 나도 같이 웃었다. 제법 맛있게 잘 된 요리라서, 수다를 떨면서도 우리는 바쁘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만드는 거 안 어려웠어요?"

"사실...여기에선 너튜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더라고요. 2인분 만드는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몰라요."

"노력도 재능이죠. 저라면 못 할 거에요~"

"히히-"








순식간에 그릇들이 비워지고,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정리했다. 항상 이렇게 같이 먹으면 설거지는 내 몫이었다. 카린 양이 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나서서 하는 거지만.

카린 양이 식탁 의자에 앉아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지켜보는 게 보였다. 쉬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집중하는데 뒤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저한텐 참으라고 잔소리 하셨으면서."

"아까는 불 앞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아, 치사해요."

"히히-"

"안되겠어요. 이거 다하면 후식 먹을 거에요."

"후식이요?"

"제 뒤에 있네요. 후식. 악!!"







등짝을 손바닥으로 강타하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카린 양이 얼굴이 빨개져서 나를 노려본다. 입을 앙 다물고 쳐다보는 게 참... 토끼 같아서 귀엽다.






"에이~ 때리지 말고 안아줘요."

"흥!"

"고마워요~"





안 그럴 것처럼 굴더니 바로 따뜻한 체온이 등 뒤에 닿았다. 마지막 그릇 헹구고 있으니 다하면 바로 안아서 침대로 가야겠다.













-







"아파요..."

"하하... 미안해요."





자제력을 잃고 너무 난폭하게(?) 해버린 탓인지 평소보다 축 늘어진 채 나에게 기대왔다. 조용히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다가, 카린 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윤 씨-"

"네~"

"시윤 씨의 집도 궁금해요."

"그러고 보니... 따로 초대 해드린 적이 없네요."

"궁금해요- 저희 집은 아무래도 아무 것도 없어서..."

"뭐, 저도 혼자 살다 보니... 별로 특별한 건 없어요. 그래도 궁금하다니까 다음엔 저희집에서 놀아요~"

"좋아요!"






해맑은 목소리와 함께 품에 안긴 채로 나를 올려다본다. 이마에 입을 맞춰주자 다시 내 품에 파고든다.

늘 느끼지만 뭐든 열심이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겸비한 사람이 가질 거라고 생각 할 수 없는 치명적인 귀여움이 있다. 그 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카린 양. 불꽃놀이 본 적 있어요?"

"으음...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어릴 때부터 그런 거창한 걸 볼 정도로 여유롭진 않았거든요."

"그래요? 그럼 한 번 보러 갈까요."

"볼 수 있어요?"

"그럼요- 당연하죠."

"그럼 보러갈래요. 한 번 쯤은 꼭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저도 누군가랑 같이 보러 가는 건 처음이네요. 꼭 보러 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린 양과 들숨과 날숨이 맨살에 닿는 게 느껴졌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무언가 이상해서 내려다보니 잠들어있었다. 낮잠은 웬만해선 잘 안자던데... 요즘 컨디션이 많이 나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깨우기 싫어서 가만히 있다가 조금씩 나도 나른해질 때 쯤, 품에서 꼼지락 거리는 게 느껴졌다. 뒤척이는 건가?






"......시영......씨..."





무슨 꿈을 꾸는 건지는 몰라도, 나쁜 꿈 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끌어안았다. 꿈 같은 하루하루가 더 오래갔으면 좋겠다.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며 나도 낮잠에 빠져들었다.

















*











시윤 씨가 오늘은 멀리 나가야 예쁜 것을 볼 수 있다 해서 따라왔는데, 생각보다 더 먼 거리를 가는 듯했다. 바깥의 풍경이 점점 더 낯선 곳으로 바뀔 때마다 마음이 들뜨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멀리 나가야 볼 수 있어요?"

"하하, 힘들면 업어드릴까요?"

"힘든 건 아니에요. 그냥 점점 궁금해서요. 그리고 버스에 앉아서 가는데 업어서 뭐해요."

"그냥 업어드리고 싶네요. 하하-"



버스가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어느새 엄청 큰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에 창문 가까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푸른 바다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조금 늦은 시간에 오다 보니 금방이라도 붉게 빛나는 태양이 바다의 수평선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바다가 저렇게 파란 건 처음 봐요."

"벌써 마음에 드시나 봐요. 이제 시작인데-"

"히히-"

"곧 내려야 해요."




시윤 씨가 내게 손을 내밀고, 나는 그 손을 잡고 따라서 버스에서 하차했다. 조금 걸으니 항구 같기도 하고...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과 다른 쪽에 보이는 등대가 조명 장식들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항구에는 엄청 큰 배가 있었다.





"엄청 큰 배...!"

"크루즈선이에요. 카린 양은 군용 잠수함 같은 거만 봤을려나요?"

"아..! 저, 저도 알아요! 크루즈선!"

"하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때리지 말고 들어봐요. 우리 이제 저 배 탈 거에요."

"네? 정말요?"

"정말이에요. 물론 저거 보다 더 큰 배도 있는데, 지금은 운항을 안 하더라고요. 아쉽게도-"





저 엄청 화려하고 큰 배를 타다니! 게다가 이렇게 화려한데도 더 큰 배도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커다란 거라곤 맨날 타는 함선이 전부였는데!

설렘으로 가득 차 심장이 마구마구 뛰는 게 느껴졌다.





"안에 들어가면 맛있는 거도 먹을 수 있어요."

"대박! 진짜요?"

"진짜로요- 갈까요?"

"네! 얼른 가요!"

"하하하- 벌써 엄청 신나 보이셔서 저도 기분 좋아지네요."





나도 모르게 시윤 씨의 손을 붙잡고, 방방 뛰면서 앞서갔다. 승선하니까 안에는 정말로 음식점도 있고, 카페도 있었다. 뭐든 먹고 싶은 건 다 먹자며 이것저것 골라보는데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제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다 사면 우리 선상으로 올라가요~"

"가볼 수 있어요?"

"물론이죠~"

"갈래요!!"





계속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에 설렘이 배로 커져 갔다. 내가 있던 원래 세계에도 이런 것들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다가도, 한편으론 없었으니 이렇게 벅차 오르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새삼 살던 세계에서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내 표정에서 티가 난 걸까, 갑자기 시윤 씨의 얼굴이 시야에 훅 들어왔다





"아!"

"좋은 날인데 웃어요~"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을..."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지금은 저랑 있는 거 생각해줘요."

"네~"





내가 활짝 웃으니, 시윤 씨도 안심했다는 듯이 선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따라서 계단을 오르니 정말로 엄청 넓고, 바다가 보이는 선상이 나타났다. 갑판의 제일 끝으로 걸어가 석양을 바라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정말 귀한 경험이에요. 고마워요. 시윤 씨."

"으음... 아직 진짜는 시작도 안 했는 걸요?"

"지금도 엄청난데 또 있어요?"

"며칠 전에 약속한 게 있으니까요."

"하도 보여 주신다는 게 많아서, 뭔지 감이 잘 안 오네요~"

"하하- 오늘은 그 중 하나를 볼 거에요."






안에서 사온 떡꼬치를 오물오물 먹으면서 수평선에 잠겨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계속 군것질을 하고, 수다를 떨다 보니 파란 바닷물을 찬란하게 비추던 햇빛이 점점 사라지고, 별빛이 반짝이는 어두운 밤으로 바뀌어 갔다.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는 동안에 시윤 씨가 커피를 사오겠다며 선상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해가 완전히 지고 바다도 까만 밤하늘을 머금은 것 처럼 어두워졌다. 살던 세계에서 보던 탁하고 침식된 바닷물이 아닌, 온전히 밤하늘을 담고, 주변의 야경을 담은 찬란한 바다였다.

이 곳에 온 지 얼마나 됐을까. 원래 세계와 이곳 세계와 시간 오차가 조금 있어서 세는 것도 일이었으니 어느 순간 부터는 세어보지 않았다. 처음 여기에 떨어졌을 땐 추웠는데, 이젠 따뜻하거나... 가끔 덥다고 느끼니 꽤 오랜 시간 흘렀겠지.

가끔은... 아니 이렇게 시윤 씨랑 재미있게 놀다 가도 생각이 많아졌다. 원래의 세계에서 이런 걸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싸워온 시간 뒤로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있자니 매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항상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점점 더 우울한 생각을 빠져들 때 쯤 누군가의 손이 시야를 가렸다.





"앗! 안 보여요!"

"기분이 좋아지게 해드릴려고요."

"네?"

"세상에서 커다란 꽃이 피어나는 걸 볼 거에요. 침울하게 있을 때가 아니에요-"

"꽃...? 아!"





말 뜻을 이해했을때쯤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소리와 섞인 폭죽 소리가 들리고, 앞을 가렸 던 시윤 씨의 손이 사라지자 나의 시야에 밤하늘을 수 놓는 불꽃이 눈에 보였다. 어둠을 화려하게 밝히는 야경과 어우러져 밝은 빛이 계속해서 터졌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가끔씩 불꽃놀이를 하는 이벤트가 있더라고요. 마침 초여름도 다가오고 여름에 보면 딱이라서 왔어요. 어때요?"

"예뻐요... 처음 봐요! 엄청 좋아요!"

"맘에 들어하시니 저도 좋아요. 저도 불꽃놀이 같은 거 다른 사람이랑 같이 보는 거 처음이거든요."

"마술 같아요... 시윤 씨 말대로 정말 큰 꽃이네요."






시윤 씨가 건네주는 커피를 받고, 한참 동안 나와 시윤 씨는 커피를 홀짝이며, 퍼져나가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불꽃을 눈에 담았다.

문득 사라지는 불꽃을 보고 있으니 줄곧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차마 꺼내지 못했지만...







"시윤 씨."

"네~"

"제가 언젠 간 사라지더라도..."

"..."

"잊지 말고 저를 꼭 기억해주세요."






시윤 씨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생각할 때쯤 허리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당연하죠. 어떻게 잊겠어요. 이왕이면 앞으로도 항상 같이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








나를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바짝 붙었다. 씁쓸하면서도 다정한 얼굴로 나에게 웃어 보였다. 나도 따라서 웃었다.

주변에서 또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같이 하늘로 눈길을 돌리자 엄청나게 많은 불꽃들이 터져나갔다. 






"클라이맥스인가 봐요."

"우와..."





수 많은 불꽃들의 끝에는 제일 큰 소리를 내더니, 태어나서 본 것 중 제일 커다란 꽃이 밤하늘에 피어났다.






"카린 양."

"네."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네!"

"... 그리고 다음에도 또 와서 구경하는 거에요."








하늘 높이 커다란 꽃을 그리던 불꽃은 점점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다음에도 꼭 보고 싶다.

그리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운처럼 만난 인연과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 7천자쯤 왔을때 통으로 날려서 멘탈 초박살났다가 겨우 다썼다.....

이제 세이브 분단위로 해야지... 읽어줘서 고마워!!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