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게 무겁네. 여기다 버리면 되는건가?"


내 몸은 알 수 없었던 이들에 끌려가 어느 공터위에 던져졌다.


"그래. 이정도면 관리국 녀석들도 찾지 못하겠지."


희미하게 뜬 눈이 처음 본건 하늘에서 끝없이 내리는 눈이었다.


그래 정말로 새하얀 눈이네


나의 몸 주위의 있던 눈들은 어느새 내 피를 머금은채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여기는 베타3 a타입 폐기체의 처리 완료. 본부로 귀환하겠다."



나를 이리로 데려왔던 이들은 이내 자리를 떠났다.



"이렇게 죽는구나."


새하얀 눈을 향해 손을 뻗어도 차가운 느낌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점점 눈이 감겨오고 의식에 잠기기 전 조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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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위아래로 흔들린 충격에 난 의식을 되찾았다.

눈을 떠보니 내 앞에는 관리국의 전투복을 입은 이들과 금발머리의 여성이 나를 지긋이 쳐다보고있었고 내가 눈을 뜨자 내게 다가왔다.


"이봐 유리! 네 환상적인 운전실력덕에 여기 숙녀분께서 잠에서 깼어!"


"하! 그러면 내가 잠시 오토로 돌려놓을테니 네가 와서 운전할거냐?"


"워워 진정해 장난이라고."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좀 적당히 해줬으면 하는걸


"이제 대화를 시작할테니 잡담은 금지한다."


여태까지 묵묵히 나를 지켜보던 금발의 여성이 말을 꺼내자 차 내부는 이내 조용해졌다.


"먼저 네가 기억나는걸 말해보도록."


"당신은 누구지..?"



"내 이름은 류드밀라다. 자세한건 네 상태를 나중에 말하지."


류드밀라라 꽤나 입에 감기는 이름인걸


"A-84 그게 내 이름이야. 기억나는거라곤 A타입에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있는 사고형성 영상외에는 없어."


류드밀라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왼손에있는 패드에다가 무언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 네 상황은 인지하고 있나?"



"대충 살펴보니 폐기처분되어야 할 내가 어째서인지 모르겠지 여기있다는거지."



류드밀라는 적는걸 그만두고 한숨을 쉬고는 태블릿을 옆으로 놓았다.


"정확히는 자네가 큰 부상을 입고서 우리 관리국의 관할지역까지 왔다는거다."


내가?

"거기에 올때 제발 살려달라고도 했었지. 따라서 절차에따라 네 시리얼넘버를 확인, 그리고서 얼마지나지 않아 폐기된 넘버라는것까지 알게되었지."


내가 살고 싶어했다고?



"따로 심어져있는 프로그램도 없는것같고 탐지기도 이상반응이 없으니 내가 해줄말이 있다."


류드밀라는 내게 상처투성이 손을 내밀었다.


"메이즈 전대에 온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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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시간이 좀 지나자, 나는 방을 배정받았고 류드밀라는 내게 맞는 스케쥴을 만들겠다며 떠났다.


"그래서 이름이...."




"A-84라고 두번째 말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담당병사는 난처한 표정을 짓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뒤 사무실에 들어온건 나갔던 병사와 류드밀라가 함께 들어왔다.


왜일까?



"당신 바쁜거 아니었어?"



"물론이다. 하지만 부대원의 이름을 정하는데 그정도 업무는 뒤로 미룰 수 있지."


류드밀라는 어딘가 슬픈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당신들과는 틀려. 내게는 이름같은걸 가질 이유도, 자격도 없어."


"아니. 그건 다른거지 절대로 틀린것이 아니다."


류드밀라가 내게 어느정도 다가오고서야 그녀의 눈에서 약간의 눈물이 보였다.


"원래라면 자신의 이름은 자신이 정하는거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하지."



"그러니까 난 필요 없다고...."



"알렉스."


"뭐?"



"이제부터 자네의 이름은 알렉스다. 이견이 있나?"



"그거 A타입의 앞글자를 따온거지?"


"싫으면 말하도록."



미묘한 느낌이다.

겨우 이름을 불러준게 이렇게도 따뜻하다니


"알렉스라. 좋아 꽤나 괜찮은 울림이네."


"그럼 잘 부탁하지 알렉스."


"잘 부탁해 전대장."



하얀 눈이 내리던 날

여태까지 아무것도 없던 내 손에는 따뜻한 동료의 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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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서 시간은 쉴틈없이 지나갔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말로 많은 인연이 생겼고

그리고 많은 이들이 죽었다.





"부전대장님! 어서 들어오십쇼!"


올려다본 하늘은 피로 붉게 물든 대지와 별반차이가 없었다.


클리포트 게임


빌어먹을 침식체들은 파도마냥 몰아쳤고 필사적으로 막아봤지만 이내 파도에 휩쓸려 형체도 못알아보는 이가 늘어났다.


결국 최후의 순간 방주라고 불리는 관리국의 함선에 몸을 숨기는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적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전조없이 나타난 6종침식체

류드밀라는 그것을 요격하러 지친몸 밖으로 나갔다.




"부전대장님! 함교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움직여봐! 뭐가 동결처리야!"



결국 난 나를 구해준 류드밀라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다.




 시공간 프로토콜 작동 COW-13을 실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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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았던 의식이 점점 떠오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 몸을 침식파가 급속도로 좀먹어갔다.

아니 이미 늦었던걸까


그런 나를 다시금 붙잡아주는 손이 있었다.

그래

이번에도 난 잡을 수 없는 새하얀 눈 대신 류드밀라의 손을 잡았다.



"좋은 아침이야 전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