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가 게임을 접으면 일어나는 일들






"으아아아악! 제발 그만해!"


넓은 창고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내가 왜 네가 부탁을 들어 줘야 하지?"


필터를 통해 두껍게 변조되고 충분히 뭉개진 음성이 엄청난 볼륨으로 들이닥쳐 그의 귀청을 멍하게 했다.


"무슨 짓을 해도 난 말할 수 없어!"


"잘 들어 친구, '무슨 짓을 해도 안 된다'라는 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린 말 그대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으니까.

이를테면 난 네 내장이 쏟아지는 걸 네 멀쩡한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만들 수도 있어.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제발, 제발!"


"그러나 네가 몇 마디만 해 주면 일을 더 쉽게 만들 수도 있지.

정말로 그 친구들이 네 목숨까지 바쳐서 충성할 만한 가치가 있는 놈들인지 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다."


"으으, 너희들은 대체 누구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질문은 이쪽이 하고 있잖나."


"누군가의 사주로 온 거라면...으아아악!"


부러지는 소리가 한번 더 났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주말을 맞이하기 전에 단골 술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무언가... 어디선가 기억이 끊긴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끊긴 건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깨어났을 떈 이미 한 무리의 괴한들에게 둘러싸인 채 사지가 결박되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틀렸어 친구. 크게 잘못 짚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

우리가 지금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지. 안 그런가?"


"그건..."


엄습하는 고통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 작자들은 대체 누구지?


그에게 질문하는 심문자는 유리로 분리된 옆 방에서 스피커를 통해 자신에게 질문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 쪽으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투광등 때문에 괴한들의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자신이 있는 장소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인지할 수 있는 건 자신을 둘러싼 괴한들의 실루엣이 전부였다.


그는 자신이 원한을 샀을 만한 사람들을 떠올리려 해 봤지만,


불행히도 생각을 깊게 하기도 전에 떠오르는 목록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지?


역광 때문에 방을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이 드라마에서나 본 것 같은 경찰서의 심문실처럼 생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 같은 장소가 아무 데나 널려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냉정해져야 한다. 그는 되뇌었다.


놈들이 자신을 납치하고 이런 시설에 구속할 정도로 유능할지 몰라도, 


요구사항이 무엇인지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그가 계속 잡아뗴거나 적당한 선에서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함께 시간을 보낼지는 전적으로 자네에게 달려 있단 말일세.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는게 어떤가?"


"안돼, 난 말할 수 없어! 그 치들이 날 찾아낼 거라고!"


"정말로? 정말로 지금이 미래 생각을 하기에 적당한 때라고 생각하나?


괴한 한 명이 그의 손가락을 다시 뒤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제발, 제발 그만해! 말하면 이 직업을 잃는 걸로는 안 끝나!"


"틀린 대답이야."


손가락이 하나 더 부러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씨발!!!"


손가락이 몇 개째 부러진 거지?


머리가 의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깨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너무나도 생생한 동시에 모호해서, 무슨 손가락이 부러졌는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그는 격통을 견디며 어렴풋이 스스로의 과장된 비명 소리가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 너는 누구지?"


"제발...제발 그만!"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나나?

모른다면 말해 주지. 윈스턴 토마스, 35세,

존 로버츠라는 가명으로 블랙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하고 있군.

현장 사보타주, 정보 거래 등을 주업으로 하는 산업 스파이고, 

음... 어이쿠. 이전엔 인신매매 중개까지 한 적이 있구만."


좋아. 그는 생각했다.


이 새끼들 보통내기가 아닌데. 어디서 뒷조사를 단단히 하고 찾아왔나 보군.


그가 고통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겁에 질린 연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괴한들은 자신에게 가하는 압박을 전혀 늦추지 않았다.


"너희들 대체 누구야? 대체 어떻게..."


"질문은 이쪽에서 한다고 했을 텐데."


"그, 그건, 인신매매는 손 뗐어! 단 한번이었다고!

놈들과 거래를 틀려면 내가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손을 뗐으니 이제 사람 장사에선 깨끗하다 이건가? 자네 정말 구역질나는 사람이군.

초등학교도 못 뗀 카운터를 무허가 용병 단체에 팔아먹고 밤에 잠이 잘 오던가?"


"아니야, 아니야... 그래서 다시는... 으어어억!"


손끝에 다시 격통이 찾아왔다.


"다음 질문이다.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지?"


"말 못해! 제발!"


"이것도 내가 말해 주지.

맥스웰 코퍼레이션. 162시간 전 블랙 네트워크의 중개인을 통해서 수주를 받았군.

수주 내용은 코핀 컴퍼니가 보유한 자산의 탈취, 인력의 회유, 혹은 기밀 정보의 확보.

주 네트워크 액세스 포인트는 3DC4-kn, 아이디는 pphej104, 비밀번호는 503924@^jason이고,

중개인 이름은 칼 데이비드."


이 발언을 듣자마자 그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물론 자신의 본명, 나이, 직업 같은 건 뒷조사를 좀 철저하게 한 놈이라면 어디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꽤 머문 자리를 잘 지우고 다닌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흔적이란 건 어디서든 남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수주한 의뢰는 물론이고 아이디와 비밀번호까지 알아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다, 당신들 대체 누구야? 어떻...아니 하지만..."


"슬슬 겁쟁이 연기를 그만둘 마음이 들었나?"


심문자가 쐐기를 한번 더 박았다.


그는 갑작스런 소름이 손끝의 고통보다도 더욱 싸늘하게 그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린 연기를 하던 표정 그대로였지만,


그건 조금씩 연기가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다.


"너희들은 누...누구야? 그걸 다 어디서...?"


"아직도 부족한가? 그럼 내가 하나 더 읊어 보지.

맥스웰이 자네를 정말 신뢰했나 본데. CRF 억제 장치 개발 총책임자를 손절할 때,

경쟁사에 유출된 개발 관련 자료들을 자네를 통해서 폐기했군 .

한 건에 30만 크레딧이면 보너스도 꽤 넉넉하게 얹어 줬나 보지?"


"이, 이봐, 잠깐만!!"


그가 급하게 소리쳤지만 심문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나 혼자 잠깐 떠들었으니, 여기서부터 진짜 질문이다.

코핀 컴퍼니가 보관 중인 물품과 관련된 정보는 어디서 들어온 거지?"


"몰라, 진짜 모른다고!! 난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할 뿐이...아아아아아아악!!!"


어깨 아래에서 신체가 어긋날 때 나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횟수로 미루어 보아 손가락은 이미 다 부러뜨린 줄 알았는데. 무언가 다른 부분을 뒤틀어 꺾은 것이 확실했다.


"거짓말 마라. 너 같은 겁쟁이가 코핀 컴퍼니 같은 라이센스드 태스크포스를 아무런 보증도 없이 선뜻 털겠다고 나설 리가 없어.

네게 확신을 심어준 정보가 있었을 거다."


"진짜야! 제발 믿어줘!"


"믿어 달라고?

이거 보게 이 친구야. 왜 이렇게 아마추어처럼 구는 건가?

누군가 밤늦게 자네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기절시키고, 구속한 다음 심문하고 있다는 건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뜻이란 말일세.

자네도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면 감을 잡았어야지."


"말했잖아! 난 그냥 잔챙이라고!"


"아니면 잔챙이처럼 보이고 싶을 뿐이거나."


고통에 헐떡거리던 그가 애써 소리질렀지만, 심문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애써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자, 고통을 통제하는 것 역시 훨씬 힘들어지고 있었다.


"있잖아... 

드, 들어봐. 너희들이 누구 지시를 받고 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린 타협할 수 있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돈을 얼마 받고 왔던 간에 내가 고용주한테 이야기를 잘 하면..."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도 착각하고 있군. 우리랑 협상하려는 건 그다지 좋은 자세가 아니야."


그는 어떻게든 심문자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상대는 단호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좋아. 아무래도 자네가 우리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는 요원한 것 같군.

어쩔 수 없지. 민병대 친구들이 찾아오면 좀 말문이 트일 것 같나?"


"뭐? 잠깐만! 민병대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긴장할 것 없어. 난 그저 이 동네 이웃들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잖나."


이것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마법의 단어였고, 


그는 민병대 주제에 확실하게 반응했다.


"이, 이봐! 민병대는 이 문제랑 상관없잖아!"


"왜 그러나? 별 것 아니야. 이 동네 민병대는 불 지르는 게 특기라길래 말이지.

가끔 민병대 대장이 인간쓰레기의 사지를 천천히 불태워 죽이는 취미가 있다는 게

사실인지 정말 궁금했거든. 자네가 어쩌면 알려줄 수도 있겠군."


"이...이 쓰레기 같은 새끼!"


"자네가 할 말인가?

그게 싫다면 말해라. 맥스웰 코퍼레이션이 네게 준 정보는 뭐고, 그 출처는 어디지?"


심문자가 일갈했고, 그는 여기가 한 발 물러날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 이...씨발! 좋아! 말할게!

하지만 맹새코 이건 업계인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관리국에서 코핀 컴퍼니를 손절하려고 한댔어!

코핀 컴퍼니 사장이 실종된 것도 그것의 일환이라고 그랬다고!"


"코핀 컴퍼니 수장이 사라졌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농담해?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눈깔이 발바닥에 달렸어도 그 정도는 눈치챌 수 있어!"


"하지만 확신이 필요했을 거다. 그렇지?"


"그...그래! 이전 리플레이서 사태 때 이미 너무 많은 걸 목격했기 때문에, 

코핀 컴퍼니의 수장이 직접 관리국에 스카웃됐다고 하더군.

그가 회사 연줄을 다 가지고 날아 버리는 바람에 회사 창립자인 부사장은 현재 영향력이 거의 없는 허수아비 상태고 말이야."


"터무니없군. 그딴 말을 믿었나?"


"씨발 안 믿으면 어쩔 건데?

네가 보기엔 내가 무슨 뒷세계의 황제라도 되는 것 같아? 거기까지 들어 버린 이상 나는 거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야!

아무튼 그래서 지금 코핀 컴퍼니는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말이지.

관리국도 어째서인지 손을 뗀 상태고, 지금껏 코핀 컴퍼니 자산이나 기밀을 탐내던 회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하나씩 파먹으려 하고 있어!

수주를 가로채고, 헤드헌팅으로 유망주를 가져오고, 사보타주를 하고 있지!"


"그래서 거기 껴서 한탕 해 보려고 했다 이건가?"


"그래. 너도 알겠지만 코핀 컴퍼니는 최근 너무 나댔다고.

이 업계에서 누군가 일거리를 쓸어 가고 있다는 건 누군가는 밥을 굶어야 한다는 거거든!

장담하건데 벼르고 있던 경쟁사가 하나뿐만은 아니었을걸?"


"관리국이 기업들끼리 전쟁을 하는 걸 두고 보고만 있단 소린가?"


"그게 궁금하면 니가 관리국 대빵한테 가서 물어 보는 게 어때?"


퉤. 그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좋아. 그럼 재정 상황 이야기를 해 보지."


그가 입에 담아선 안 되는 정보들을 충분히 내뱉었음에도 심문자는 전혀 만족한 눈치가 아니었다.


"...제기랄. 이미 충분히 말했잖아. 더는 안돼. 이 이상 말하면..."


"도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고용주 이름을 인정해버린 지금 차라리 우리에게 더 잘 보이는 편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지 않나?"


"부탁이야,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나는..."


"어쩔 수 없군. 민병대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그 말을 듣자 괴한 중 한 명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자, 잠, 잠깐잠깐잠깐!! 기다려! 뭘 더 알고 싶은지 말을 하라고!"


그는 급하게 괴한을 제지해 필사적으로 자신이 더 이야기를 할 의사가 있음을 피력했다.


그는 그저 괴한이 핸드폰을 꺼내려던 걸 그만둬서 다행스러울 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심문자가 잠깐 동안 침묵하자 뭔가 분위기가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맙소사, 자네 지금 우나?"


심문자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아니야, 아니야!"


수치와 분노 때문에, 혹은 그렇게 보이는 무언가 때문에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눈물이 이미 그의 뺨을 간지럽게 타고 내려가 허벅지를 잔뜩 적시고 있었다.


"계집애 같은 새끼. 벌써 엄마가 그리워진 거냐?

고작 사지 좀 묶이고 손가락 마디나 몇 개 부러졌다고?

선량한 사람 등쳐먹고 눈먼 돈을 긁어모을 때 나왔어야 했던 눈물이 이제서야 나오는 건가?"


"씨발, 엿이나 먹어!"


그는 부정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코맹맹이 목소리와 말끝에 묻어나는 딸꾹질 떄문에


애써 강한 척하는 어린아이의 모습마냥 안쓰러운 분위기밖에 연출하지 못했다.


"다시 묻지. 코핀 컴퍼니의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다음 '표면적인' 회계 감사 내역이 공개되면 바로 도산될 지경으로 심각하군.

단순히 일거리를 빼앗긴 게 문제가 아니야. 이유가 뭐지?"


"왜 씨발 나한테 이걸 다 묻는 거야?

너희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잖아. 그럼 그냥 가던 길 지나가면 되잖아!

난 이걸 목숨 걸고 말해야 하는데! 불공평하잖아! 너무 불공평해!"


하지만 상대방은 그의 투덜거림을 귓등으로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심문자가 고갯짓하자 괴한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등을 다시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코, 코핀 컴퍼니는 일개 중소 태스크포스가 수주하는 계약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최근 시설을 급격하게 확충했어.

그 새끼들이 어디서 돈이 나서 갑자기 차원 함선을 몇 대씩이나 들여왔겠어? 고용 규모는 어떻고?

하지만 외, 외부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야.

남은 건 사장이나 그 주변인에게서 자금이 수...혈되고 있는 것 밖에 없는데,

이 자금의 상당수가 미래전략실이라는 부서를 통해 들어오고 융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어."


"분명 그건 코핀 컴퍼니 내부에 심어진 첩자를 통해서 얻은 정보겠군?"


"그렇겠지!"


"코핀 컴퍼니에 심어진 다른 첩자들의 이름을 아나?"


"이봐,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저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떨거지야!

중개인이나 회사에서 심어 놓은 스파이들 이름을 내가 어떻게 다 알아?

난 그저 그런 첩보가 있었다는 사실만 전해들었을 뿐이야!"


그 말을 들은 중개인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했다.


"아, 아무튼! 그래서 차명 계좌를 이용한 돈세탁이나 불법적인 거래로 돈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

그게 아니라면 들어간 만큼 뱉지도 못하는데 어떤 병신이 좋다고 돈을 무작정 투입하겠어?

이쪽 업계가 더러운 일에 발을 담그는 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건 안 들키는 걸 전제로 하는 거니까.

결국 미래전략실이 운용 중인 자산의 명의를 추적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단 말이야.

돈세탁 과정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거래 수수료로 군 단위 지자체도 하나 먹여 살리겠더라. 웃기게도 기관이 아니라 개인 명의로 하고 있더군?"


"개인 명의라."


"그런데 그게 어땠을 것 같나? 그걸 직접 봤어?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나올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물 거래 같은 걸 무더기로 했는데,

한 분기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어! 미친 새끼들이지!"


"계속해."


"...그래서 난 백 퍼센트 이 놈들이 모종의 조작질에 가담했다고 확신했지.

이런 투자를 할 수 있는 새끼들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태스크포스 같은 걸 굳이 하고 있겠어? 당연히 어떤 사기 행각이 있었겠지!

아니면 관리국이 어떤 더러운 일을 맡기는 대가로 뒤를 봐 주고 있었거나. 

그 놈들은 그게 가능하니까!

그런데 뭐겠어? 그 명의를 다시 추적했는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어! 마치 유령처럼!

그 차명 계좌가 우리가 추적 가능한 미래전략실 관련 정보의 종착지였어.

여기 사용된 계좌를 빌려준 사람들은 거렁뱅이에 가까운 퇴역 용병들인데, 하나같이 큰돈을 받고 자기 명의를 빌려줬더군."


"그 사람을 고문했나?"


"그런 짓은 안 했...."


그는 부정하려 했지만, 심문자가 고개를 슬쩍 까딱거리는 것이 보이자마자 급히 말을 바꿨다.


"알았어 알았어!

씨발, 너희들도 날 고문하고 있잖아! 왜 니들이 그딴 걸 신경쓰는 건데?"


그는 치가 떨린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항변했지만, 심문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우린 놈을 묶어서 흠씬 두들겨패줬지. 니가 나한테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그 놈은 자기한테서 그 계좌를 빌려간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어.

언제 빌려준 건지,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지어 단수인지 복수인지조차 모든 걸 모호하게 말했다고.

우린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 아무 것도...

우리가 그 놈 계좌에 들어가 있던 크레딧 자릿수를 불러 주니까 우리가 자기를 납치해서 두들겨패줬을 때보다도 더 놀라더라고!


그는 기억을 애써 더듬었다.


"...흔적을 더 캐내기 위해 기업들이 미래전략실이 운용 중인 자산에 공매도 공격을 가해 보긴 했는데,

코핀 컴퍼니는 좆도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어.

방어 시도는커녕 매각조차 하지 않았어. 크레딧이 그냥 그대로 썩어가게 뒀단 말이야. 

마치 수백 수천만 크레딧이 몇 분만에 사라지는 것보다

우리가 자기를 추적하는 게 더 불쾌하다는 것처럼..."


"그 후로 어떻게 됐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래서 코핀 컴퍼니가 지금 거지꼴이라고!

이제 됐냐? 어서 날 풀어줘!"


"흠. 아직 석연찮은 구석이 많은데."


"이 개새끼들! 아는 걸 다 말했잖아. 나한테서 더 얻어갈 건 없다고!"


"그래? 그거 이상한데. 정말 아는 걸 다 말했다고? 확실한가?"


"뭐, 뭐가 또 문제인데?"


그의 불안한 질문을 무시하며, 심문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아나? 난 자네 태도가 정말 지긋지긋해."


갑자기 심문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


"자네가 알고 있는 사실의 절반조차 이야기하지 않았잖나. 

이를테면 자네의 또다른 이름에 대해서 말일세."


그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자네가 일개 '장기말'이 아니라 중개인 그 자신이고, 자네가 먼저 맥스웰 쪽에 접촉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잖나.

산업 스파이야말로 오히려 위장 신분에 불과하지.

우린 자네가 누구인지 알아. 자넨 존 로버츠가 아니야. 윈스턴 토마스도 물론 아니고."


안 돼.


한 가지 문장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이 새끼들이 그걸.


"자네는 공작금 포함한 30만 크레딧 같은 푼돈으로 빌어먹고 사는 그런 개미 떨거지가 아니지. 오, 아니고말고.

기업들 상대로 온갖 시덥잖은 짓은 다 중개하는 개자식 중에 일류 귀족 개자식이 아니냔 말이다."


"아...으...?"


"칼 데이비드. 그게 자네 진짜 이름이지. 아니, 적어도 자네의 닉네임이겠지.

미래전략실 자산을 차단했다고 코핀이 알거지가 됐다고?

그런 터무니없는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기업이 다른 보험 자산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는 걸 믿으란 말인가?

실상은 좀 다르지 않나? 코핀 컴퍼니로 흘러들어간 돈은 미래전략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야.

바로 관리국 최상층에 속하는 백본 네트워크에서 직접 흘러들어가고 있었지. 내 말이 틀린가?"


그는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심문자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른 자산의 상당수는 이터니움을 위주로 한 현물이고, 이 자산 은닉과 관련된 정보는

태스크포스 외부 감사 기관 중 하나에 근무하는 선임 회계사가 알고 있겠지.

이니셜이 E.A군. 이름은 엘러노어 앨리스.

그녀 역시 관리부와 연줄이 닿아 있는 인사인데, 2주 전부터 실종된 상태다.

그녀의 행방에 대해서는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이...이건...

잠깐만. 너 그... 대체 어디서 그걸..."


순식간에 공포에 질린 그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제 이건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


"난 자네에게 여러 번 경고했네. 우리에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거라고.

자네 고객과의 신뢰를 핑계로 자네 앞에 당장 들이닥친 재앙을 무시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천천히,

자네가 진심으로 이해하길 바라면서 이야기해줬어.

그런데 자네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군."


심문자는 이제 변조된 목소리 너머로 경멸조가 숨겨지지도 않게 말했다.


최대한 감정을 죽여 온 지금까지와의 어투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우리가 모든 걸 알고 찾아온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면 혹시 이런 생각을 했나?

이곳의 번지르르한 심문실 시설을 보고 어느 비밀 정부 기관에 잘못 걸렸다고 지레짐작했겠지.

정부 기관이면 자네를 죽이지는 못할 테니 적당히 못 이기는 척 곁다리에 불과한 정보나 나불거리면 좋다고 자넬 살려 줄 거라고."


심문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감이지만 전혀 아니다. 내가 네놈 같은 쓰레기를 상대한 게 오늘이 처음도 아닐 거고, 마지막도 아닐 거다.

네놈이 연기하는 겁에 질린 면상, 훌쩍임 아래에 이죽거리는 비웃음이 있다는 걸 아주 잘 알지.

한 가지 더 이야기해 주자면 자네가 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 신사적인 정부 기관 같은 데서 나온 게 아니야.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할 수 있는 위협의 전부인, 그런 친절한 곳에서 온 게 아니란 말일세."


"...누구야. 너희들 대체 누구야!"


그가 마구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소리쳤지만, 지금까지 그랬듯 심문자는 그의 질문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민병대 주제를 꺼냈을 때 자네는 여기가 못 이기는 척 우리 상대로 사기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겠지.

그게 자네의 태도가 파악당할 덫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우는 연기는 꽤 그럴싸하더군."


"누구냐니까!!!!"


"하지만 자네는 민병대같은 뜬구름 잡힌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아.

방화광 악마가 그 일당에 속해 있다는 소문도 별로 개의치 않지. 

자네 생각에 자네는 민병대 같은 하잘것없는 치들과 다르게 뒷골목의 황제가 맞으니까. 그렇지?"


이제 그는 그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심문자가 한마디 한마디를 더 내뱉을 때마다, 


그가 묶인 의자와 그가 함께 끝없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한 무서운 추락감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린 자네 생각을 조금 고쳐 줄 생각이다.

3분이다. 3분 내로 앨러노어 앨리스의 행방과 코핀 컴퍼니에 심어 놓은 첩자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정신이 또렷한 채로 발끝부터 머리털까지 자네를 천천히 구워 줄 사람을 이곳으로 직접 불러서,

자네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만들어 주겠다."


"미,민병대 같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정말 지역 자경단 내부에 

살인자 집단의 비밀 조직이 있다는 헛소문을 믿을 것 같아?"


"그렇다면 자네가 두려워할 만한 어떤 누구에게든 전화를 할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흠. 이건 어떤가? 내가 자네의 고용주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여기 밀고자 쥐새끼가 한 마리 있다고 연락하는 건?

마음에 드나?"


"이, 이봐! 

기, 기다려, 잠깐만잠깐만! 내가 확실히 뭔가 좀 숨기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말하면 맥스웰 컴퍼니에서 날 죽이러 온다는 건 진짜야!

아니, 맥스웰 컴퍼니뿐만 아니라 내 목숨을 취하러 올 사람이 한 무더기는 올 거란 말이야!"


"그건 내일 찾아올 죽음이지. 하지만 우리는 오늘 찾아온 죽음이다."


"이 개새끼야!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난 정말 목숨을 걸고 있다고!"


"2분 30초."


"씨발! 돈 문제가 아니야.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고! 내가 정말 죽는다니까!"


"2분 20초."


"내, 내가 잘못한 게 많긴해. 그건 사과할게! 하지만, 씨,씨발,

너희들 정말 어디 다른 블랙 네트워크 인간은 아니지?

어디 비밀 정부 조직에서 나온 거 맞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잠깐만, 이, 대답을 좀 해 봐! 나 겁 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겨,경찰을 불러줘! 서에서 뭐든지 말할 테니까! 자술서든 뭐든 쓸 테니까, 잠깐만, 잠깐만!"


"1분 50초."


"씨발, 내가 말하고 있잖아!

너희들 그거 허세잖아. 너희는 내가 없으면 정보를 알아낼 장소가 없잖아.

그렇잖아? 날 죽이진 못할,

내가 없,없으면. 곤란하지 않겠어? 잠깐만, 씨발, 시계 그만 쳐다봐!"


"1분."


"다시 이야기하지만 네가 얼마를 받고 여길 찾아왔던 간에, 그, 내가 더 줄 수 있어!

신뢰 관계가 문제인가? 내 쪽에서 앞으로도 계속 일을 주선해 주지! 구미가 당기지 않나?"


"30초."


"너희들이 그딴 식으로 나와 봐야 나는 안다고. 왜냐면 나도 이런 일을, 하루 이틀 일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허세는 얼,얼마든지..."


"10초."


...


"5초."

"4초."

"...2초."

"1...0. 끝이군."


그리고 곁에 선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문자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가 입을 떡 벌리고 넋이 빠져 있는 사이, 신호가 가는 소리가 유리벽 너머의 심문자 쪽 마이크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몇 번의 비프음 길이가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그건 사실 십 초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패키지를 보관하고 있다. 그쪽 '일거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실종 사건과 관련된 인간이다. 그래. 당사자야.

보안상의 문제가 있으니 언제나처럼 위치는 그쪽에서 직접 추적하도록."


그는 애써 생각했다. 허세겠지. 전화하는 척만 하고 있을 거야.


"...그래. 그리고 나머지는... 그래. 어떻게 불태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래. 불알부터 구워 버리든 눈깔을 뽑든 마음대로 하도록."


시간이 계속 흘렀다. 수화기 너머에선 알 수 없는 대화가 계속해서 오갔다.


"여전히 악취미군.

돈은 필요 없다. 

이번엔 그냥 개인적인 호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군."


한창 심문자의 살벌한 통화 내용이 심문실을 흐르던 도중, 마침내 외마디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씨발 알았어! 내가 졌다고!"

다 말할 테니까! 그만! 제발!"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심문자는 그의 패배 선언을 듣자마자 전화를 바로 끊어 버렸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같은 통상적인 인삿말도 없이, 그냥 핸드폰에서 통화가 끊기는 소리가 나는 즉시 그걸 내려놨다.


마치 계속해서 그의 항복을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보지."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는 걸 모두 이야기했다.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스파이의 목록, 코핀 컴퍼니에 심어진 첩자, 연줄을 가진 기업들의 인사,


자신이 십여 년 넘게 쌓아온 모든 커리어의 신뢰 기반을 모조리 실토했다.


그가 무언가 숨기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이거나,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느낄 떄마다 심문자는 귀신같이


그곳을 파고들어 바른 대로 말하라고 추궁했고, 그는 그걸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심문자가 어느 부분을 이미 알고 있고 어느 부분을 아직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심문자가 너무나도 유연하게 자신에게서 정보를 캐 냈기 때문에, 


그는 심문자 측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굳이 뭘 더해 말하는 과정조차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게 전부야..."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내가 말했다고는 말하지 마' 같은 아마추어 같은 대사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심문자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런 시덥잖은 부탁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이 업계에서 그런 건 숨기고 싶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정보 누설에 따르는 필연적인 피해를 되갚는 데는 증거에 입각한 철저한 조사 같은 과정이 선행하지 않았다.


그런 번지르르하고 공정한 과정이 뒤따랐다면 애시당초 '뒷세계'라고 불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부에 누군가 배신자가 있다면, 그 칼날이 어디로 향하든 누군가는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이 이해 관계에서 그 자신 이외에 이런 거대한 정보 누설을 뒤집어씌울 만한 거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됐나? 그럼 이제 날 두고 꺼져버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가 뇌까렸다.


이제 그 스스로에겐 어떤 이용 가치도 없었다.


심문자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면, 곧 다른 누군가 찾아오리라.


"...잘 들어라."


심문자가 이야기했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이렇게나 자각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기 짝이 없어.

네가 얼마나 위험한 불장난을 했는지 모르는 것 같군.

그거 아나?

네가 폭죽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수소 폭탄이었단 말이다."


심문자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


"코핀 컴퍼니는 잊어라. 

맥스웰이든 뭐든 그런 새끼들과는 연을 끊고 이것보단 안전한 직업을 찾아."


"직업? 너 때문에 이제 난 죽은 목숨인데, 이제 와서 내 직업까지 걱정해 주는 건가?"


그가 맥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건 여전히 네 태도에 따라 달려 있지.

내 말을 잘 들어라. 누가 자네의 커리어 전체를 곧 묻게 될 텐데,

그땐 내게 이야기했듯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라.

몇 년이 될지 모를 네 형을 충실하게 살고 나와.

병신 같은 어떤 기관이 지저분한 사법 거래를 자네와 하고자 한다면, 거기 응하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한동안은 감옥이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될 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들어라.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해라. 만약 네가 다시 허튼 짓을 시도한다면..."


심문자가 숨을 고르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널 다시 찾아낼 거다.

넌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겠지. 지금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날 이렇게 좆되게 만든 이 작자들이 누구일까?

이놈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하고 말이지."


그 말 그대로였다.


"빵에서 나온 다음, 어느날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 지도 모르지.

'그 새끼들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못 본 지 수십 년은 지난 것 같은데

슬슬 내 작고 사랑스러운 금단의 작업장을 다시 차려도 되지 않을까?'

같은 충동이 찾아올 거야.

그때 네가 이전과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심문자는 그 다음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들이다.

우리는 네 경쟁 조직의 우두머리고, 네가 어제 새로 뽑은 똘마니고, 

거래하는 기업의 임원이고, 정보 중개상의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다.

네가 꼬리를 숨긴 그림자 어디에든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라.

네가 어디서 또 시덥잖은 개수작이나 꾸미고 다니면... 우리가 찾을 거다.

찾아서, 이 장소로 네놈을 다시 끌고 오면, 거기에 두 번째는 없겠지.

이해했나?"


전혀. 그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하지만 그는 별다른 감흥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심문자가 무슨 이야기를 더 지껄이던 간에, 그가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었다.


그는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뒷목에 엄습하는 엄청난 충격을 마지막으로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