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비실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주시윤."



스승님이었다.



"네, 스승님."



탕비실 문을 열고 들어온 스승님의 표정은 목석처럼 굳어있었다.


정확히는, 불처럼 타오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활성화된 클리포트 인자가 감지됐다."



클리포트 인자가?



"...그런가요?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죠?"


"따라와라."


"네?"



스승님은 그대로 다른 설명도 없이 내 팔을 잡아 이끌었다.



"스승님? 악! 너무 세게 잡으셨어요!"


"조용히 하고 따라와."


"......"



평소 행실부터가 개차반이었던 스승이었으니, 그러려니 싶기도 하지만...

오늘따라 인성이 쑥대밭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아무리 클리포트 인자가 활성화됐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던 그녀였다.


평소같았으면 활성화됐으니, 처리하고 오겠다.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렇게까지 많은 양이 감지된건가? 아니면...



"스승님."


"왜."


"스승님이 하시는 생각, 한 번 맞춰볼까요?"


"스승 생각 읽는 거 아니다, 주시윤. "


"본 적 있던 형태의 입자인가요?"


"...정답이다. 그리고 생각 읽지 말랬지."


"이젠 용혈도 없는걸요. 스승의 뜻도 못 읽는 제자가 쓸모있겠어요?"



사실이었다.


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더이상 용혈의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으니까.



"...뭐, 그건 됐고. 작년 봄 초에 둘이서 사냥 나갔던 건 기억하나?"


"기억하고 말고요. 얼마나 불쾌한 기억이었는데요."



기억한다.


나와 닮은... 아니, 다른 세계에서 온 나와 대면한단 건, 상상 이상으로 불쾌한 경험이니까.


나처럼 행동하고, 나처럼 말하는...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다니.



"아, 혹시..."


"그때 감지됐던 클리포트 인자의 파형과 유사한 클리포트 인자가 검출됐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


"그놈들이 다시 차원 통로를 열었을 거야.

내가 경고했건만..."



이제서야 스승님이 그리 굳어계셨던 게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때보다 더 진해진 클리포트 인자의 농도...


이건 더 할 말이 없다.



"제 생각이 틀렸길 바랍니다, 스승님."


"호오? 이번엔 내가 맞춰볼까?"


"말씀하시죠."


"그 세계는 곧 멸망할거다. 그리고... 그 파동이 여기까지 닿겠지."


"...정답입니다."



같은 세계에서 발견된 클리포트 인자의 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차이가 생겼다.

그리고, 과도한 클리포트 인자는 침식 현상을 앞당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세계엔 4종 침식체의 알이 몇천개나 남아있다.

만약 그런 게 수천마리씩이나 여기로 건너온다면...


막아야한다.



"어떻게 하실겁니까, 스승님."


"어쩌긴 뭘 어째. 가서 게이트를 닫고 온다."


"같이 가시죠."


"...데려갈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순순히 따라나설 줄은 몰랐는데."



조금 밉상인 스승이였다.

하지만, 스승은 스승이었다.


스승이 위험한 곳을 간다는데, 따라나서지 않을 제자가 어디 있겠는가.

최소한 짐이라도 들어줘야 제자 된 자의 도리겠지.



"스승님이 위험한 곳으로 가시는데, 제가 안 가면 뭐가 되겠어요?"


"호오... 너 좀 변했다? 평소엔 뺀질거리며 뺄 놈이."


"사람은 누구나 변하죠."


"그래? 그런걸 아는 놈이 몇년동안 뺀질댔냐?"


"뭐, 그럴 수도 있잖아요? 잡담은 그만하고 가죠."


"그래."











"스승님."


"왜."



이수연은 앉은 채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힐데를 바라보았다.



"할 말 있나?"


"이번엔 혼자 가십니까?"


"아니. 주시윤과 함께 간다."


"아무리 스승님과 시윤 군이라도, 이번엔 다른 카운터들과 함께 가는걸 추천합니다."


"괜찮아. 나와 주시윤 둘이서 해결 가능한 레벨이다."



이수연은 서랍을 열어서 무언갈 확인하곤, 힐데에게 말했다.



"...스승님, 주머니 좀 뒤져봐도 되겠습니까?"


"......"


"......"



저번에, 힐데는 이수연의 법인카드를 훔친 적이 있었다.



"후우, 눈치가 빠르군. 내가 잘 가르쳤어."


"주시죠."


"그래, 알았다 알았어."



힐데는 순순히 주머니에서 법인카드를 꺼내서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럼 다녀오마."


"다녀오세요."








"하아... 하아..."



붉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요근래 내리는 비는 모두 붉은 비였다.



카앙!!!



"읏!"



더이상 피와 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가끔은 정말 피가 비처럼 내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버텨야만 해... 카린 양이 올 거야.'



눈 앞이 빨간건지, 아니면 진짜 배경이 빨간건지,

이젠 모르겠다.



"우욱!"



피가 확 올라오는 바람에 바닥에 엎어졌다.

일어서야만 한다.


하지만...



"아..."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네피림이 눈 앞에 있었다.

뒤로 물러나서, 빨리 자세를 잡아야한다.

하지만... 네피림은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공포.

죽는다는 공포.

카린 양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


그것 때문인지,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살아볼걸."



그때, 허공에 떠있는 검이 한 자루 보였다.

마치, 내 검과 흡사한 디자인의 검이.



"...검?"



그 검을 기준으로, 나와 네피림 사이의 공간이 갈라졌다.



"...어?!"



분명 공간에 관한 능력은 내 능력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한 짓도 아닐 뿐더러, 내 검조차 내 옆에 있는데...


...이제 보니, 공간 사이로 공같은 게 날아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치 사람같은데...



"어...어어??"


"으윽!"


"아..."



공간 사이로 사람 두명이 나와서 엎어졌다!



"우욱... 차원 통로는? 어떻게 됐나?"


"차원 통로 채로 공간을 분리시켰습니다.

어느정도 지나면 자연적으로 붕괴될 거에요."


"능력 활용이 좋아졌군, 주시윤. 잘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공간 사이에서 나온 두 사람은, 놀랍게도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여기 어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