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1894)] |
| 광서(光緖) 20년 갑오(甲午) 4월에 조선 전라도 동학당(東學黨) 괴수 최시형(崔時亨) 등이 무리를 지어 난을 일으켜 전주성을 점령하였는데, 조선 군사의 토벌이 실패하여 온 나라가 크게 놀랐다. (조선) 국왕이 우리나라의 조선상주(朝鮮常駐) 상무총리(商務總理) 특수절강온처도(特授浙江溫處道) 위정(慰廷, 원세개의 자) 원세개(袁世凱) 관찰(觀察)과 상의한 뒤 전보를 보내 위급함을 알려 오니,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이 황제에게 상주(上奏)한 뒤 사성(士成, 섭사성)에게 직례제독(直隸提督) 섭지초(葉志超) 군문(軍門) |
| 그때 마침 러시아와 조선의 변경 지방을 두루 돌아보고 방금 돌아왔는데 명을 받고 곧바로 노방(蘆防, 蘆臺 지방의 防營)의 기병과 보병 800명을 뽑아 선봉으로 삼고 5월 초 3일(서기 1894년 6월 6일)에 노대(蘆臺)에서 어머니와 하직한 뒤 출발하였다. 기차를 타고 천진에 도착해 부상 이홍장을 만나 하직하고 다시 기차역에 도착하니 예정(藝亭, 潘萬才의 자) 반만재(潘萬才) 군문, 치선(致先, 陳景熙의 자) 진경희(陳景熙) 직자(直刺)가 배웅을 나와 급히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작별해 기차에 올랐다. 당고(塘沽)에 도착하니 영변(營弁) 위가훈(魏家訓) 등이 이미 부대를 이끌고 기선에 탑승해 있었다. 곧바로 작은 기선 비마호(飛馬號)를 타고 항구를 벗어나니 대고구(大沽口)의 여러 포대에서 모두 깃발을 올리고 포성을 울리면서 바래 주었다. 바다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7시가 되었다. |
| 도남호(圖南號) 기선에 오른 뒤 곧바로 출발하도록 명하였다. 함께 탑승한 사람들로 평재(平齋, 程允和의 자) 정윤화(程允和) 군문, 청천(淸泉, 袁世廉의 자) 원세렴(袁世廉) 직자, 수행원 동지(同知) 소재(筱齋, 史雲龍의 자) 사운룡(史雲龍), 막료(幕僚) 지현(知縣) 육상(毓祥, 羅秉楨 의 자) 나병정(羅秉楨), 현승(縣丞) 조화(藻華, 陶子綬의 자) 도자수(陶子綬), 곡생(谷生, 李寶森의 자) 이보삼(李寶森) 등이 있었다. 8시에 저녁을 먹었다. 이날 하늘은 맑고 공기가 시원했으며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다. |
| 초4일 아침 8시에 배는 연대(燕臺)를 지나 12시에 바다로 나가 동쪽으로 향하였다. 점심 후 정평재(程平齋), 원청천(袁淸泉)과 시국(時局) 이야기를 늘어지게 하느라 지루한 줄 몰랐다. 이날도 바람이 없어 뱃길이 매우 평온했다. |
| 초5일 새벽에 일어나 배의 조타실에 올라 보니 100마리가 넘는 큰 물고기들이 배 양쪽에서 파도를 가르면서 배를 따라오는데 모두들 신기해하였다. 7시 무렵 푸른 산들이 구름과 바닷물 사이로 부침하며 어슴푸레 보이니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큰 안개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1시간 정도 배를 멈추었다가 안개가 사라진 뒤 다시 출발하여 천천히 나아갔다. 상무위원(商務委員) 원극관(袁克寬)이 조선의 작은 기선 강제호(康濟號)를 타고 와서 항로를 안내하였다. 배가 홍주(洪州) 내항(內港)의 면구(沔口)에 도착한 뒤 평원호(平遠號) 군함의 관가(管駕, 함장) 이화(李和)가 삼판선[거룻배]을 타고 와서 인사한 뒤 곧바로 닻을 내렸는데 벌써 신시(申 時)가 되었다. 조선 국왕이 파견한 관원이 마중 나와 선박을 마련해주어 상륙하였다. 이날 늦게 여러 배들이 모두 마삼포(馬三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