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워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각성의 순간에는 주변에 폭풍이 휩쓸고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뭐 그런 소문들이 많았지만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소문과는 달리 나는 굉장히 조용히 카운터로 각성한 편이다.
어느순간 본 적 없는 시계가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고
그 시계를 주워들자 자연스레 카운터로 각성했음을 직감했다.
그날 밤 설레여서 잠도 못잔채 달려가 카운터로 신상정보를 등록하면서
내 능력을 확인했을때는 조금 김이 샌 편도 없잖아 있었다.
단순한 신체강화, 그것도 C급 수준의, 능력으로 별다른 초능력은 없었다.
그나마 그걸 계기로 삼류 태스크포스에 전투원으로 취직하게되어
주말까지 쉬지도 않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삶에선 벗어났지만
같은 팀에 속한 용병 아저씨가 내린 평가는 참담했다.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다.
카운터가 되기 전 25년 평생을 무술의 무자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있어
카운터 연수와 견학에서 속성으로 배운 전투 교범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며칠간 이면세계를 따라다닌 결과 나는 지독히도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총도 어느정도 연습을 해야하지 않아요? 게임도 아니고
군대처럼 200사로 봐 하면서 튀어나와서 5초 기다려주는 것도 아닌데"
아저씨는 자기가 쓰고 다니던 총을 건네주더니 건너편의 그루터기를 가리켰다
총을 들어 올리자 군대에서 느껴본 그 묵직함과는 달리 굉장히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침착하게 조준경을 가져다대고 방아쇠를 당기어 곧 눈 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카운터로 각성해서 그런지 총기의 반동 자체는 미약한 수준으로 느껴졌지만
소리, 빛, 산산조각 난 그루터기가 내 손에 쥔 것이 살상무기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이거 봐라, 애매하게 각성한 놈들은 그냥 총이나 쏘는게 맞다니까.
침식체 대가리에 가져다대고...... 빵! 어때? 하나 알아봐주랴?"
그날 바로 계약금을 넣어둔 통장을 들고 총포상을 방문했다.
어린놈이 당돌한게 꼭 자기 젊었던 시절을 보는거 같다며 좋아하신 아저씨는
흔쾌히 총포상까지 따라와 여러 종류를 추천해 주면서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아저씨의 권유로 사격장까지 동행하고 술도 얻어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총과 함께한 첫 출전에서 톡톡한 성과를 거두었다.
카운터라 몸 걱정할 필요없이 뛰어다니며 침식체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다녔고
신입답지않게 앞에서 침식체를 갈아버리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들어온 보너스는
이 맛에 다들 용병일을 그만둘 수 없는거구나 느낄 정도로 거대했다.
그렇게 꽤 많은 다이브를 거치고 통장에 0이 쌓일 즈음엔
팀원들과 더욱 친해졌고 팀에서도 꽤 중요한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슬슬 이면세계의 공기가 익숙해질 즈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우리보다 중심부를 정리하던 3팀에게서 구조신호가 들어오고 이내 연락이 두절되었다.
침식파를 관측하던 본부에선 대량의 침식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고
가까이 있던 우리 팀에겐 3팀을 구조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하...... 팀장님 이거 맞아요? 우리가 뺑이 치는게 맞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냐? 남은 탄약이나 확인해, 곧 도착한다."
덜컹거리는 고철덩어리를 타며 오프로드를 달리던 중 침식체가 보였다.
그런데 다른 침식체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정찰하는듯 한......
아저씨가 총구를 가져다대자 금새 바위 뒤로 숨어 모습을 감추었다.
몇번이고 다이브를 하면서 도망을 치는 침식체를 본 건 몇번이나 있었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정찰병이라 느껴지는 침식체는 처음이라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송신한 구조신호에선 중앙의 빌딩에 숨어있다고 했으니
천천히 외곽부터 침식체들을 정리하면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침식체 수는 적었고 강력한 개체도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를 세워두고 달려드는 침식체들의 머리에 구멍을 내면서 건물을 향해 걸어가자
어느정도 가까워졌는지 3팀에게 맞춰놓은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조 바랍니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조 바랍니다."
우리의 목소리도 들릴까 싶어 이쪽에서도 무전을 보내 봤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지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무전을 보내기만 하였다.
마침내 좌표에 찍힌 건물까지 도착했으나 구조요청을 보내는 것 치고는 굉장히 조용했다.
아까 우리를 정찰하던 침식체들도 그렇고 어디 강력한 침식체들이 숨어있는걸까?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조 바랍니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조 바랍니다."
다시금 들려오는 무전을 듣고 진입하기로 결정한 우리는
최소 인원만 건물 밖에 남기고 조용히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마지막 구조 신호가 파악된 위치로 천천히 탐색을 거듭하며 전진하자
구조 신호가 나오던 방의 문을 열자 앞에 보이는건...... 침식체였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조 바랍니다.
여기는 델타. 여기는 델타. 구. 구조. 구조! 구조!!!!!!!"
사람처럼 보이는 침식체는 우리를 보자마자 무전기를 버리고 달려들었다.
침착하게 머리를 쏴서 맞추자 그대로 박살나 시체가 주변에 흩어졌다.
경계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제서야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피웅덩이에서 배를 쥔채 쓰러진 3팀장...... 항상 한턱 쏘라며 엉겨붙던 3팀 아저씨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있는걸 보자 헛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아저씨도 무전을 쥐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침식체가 무선을 쓸 지능이 있었을 줄이야......
일단은 이대로 복귀하자. 밖의 팀원들부터 합류시키고 함께 움직이지.
아아, 여기는 베타 진입조. 응답바람. 여기는 베타 진입조. 응답바람."
그순간 건물 밖에서 폭음과 함께 침식체의 거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표정을 찌푸린 아저씨는 예정을 바꾸어 대기조를 구출하러 달려가자 하였다.
주위를 경계하며 밖으로 달려나가자 우리는 폭음의 원인과 금방 마주할 수 있었다.
집채만한 사이즈에 붉게 물든 거대한 침식체 , 식별명 : 타이런트 소드
교범에서만 볼 수 있었던 3종 침식체를 보게되자 그 위용에 순간 몸이 굳었다.
대기조가 지키던 자리에는 곤죽이 된 핏덩어리와 잔해만이 남아있었고
곧이어 그게 대기조였던 무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발......! 재수가 없으려니! 산개해!
주변 침식체부터 처리하고 소드를 노려라!"
그 말을 들은 우리 팀은 멀리 퍼져서 총알을 퍼붓길 시작했으며
나도 내가 맡은 포지션대로 앞으로 달려가 소드 근처의 침식체들을 노렸다.
소드가 천천히 팔을 들어 내려치려는 모습을 보고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구르자
내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칼이 내려꼽히고 지면이 무너져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카운터로 각성하고 여태껏 침식체를 잡으면서 다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죽음의 위기를 겪은 것은 처음이었다.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 멘탈이 무너지는 사람부터 죽기 마련이었음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고 소드의 주위를 돌며 침식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총을 쏴댈수록 놀라울 정도로 침착해지는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부분 침식체들이 사라지고 소드만이 남았을 때 아저씨가 수류탄을 콜했고
거리를 벌리자 뒤에서 수류탄이 날아가 소드의 붉은 핵을 향했다.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며 생긴 풍압에 의해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소드도 굉장히 큰 피해를 입어 팔을 든 채 움직임을 멈췄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다.
모두가 안도한 그 순간 소드가 나를 바라보며 팔을 더욱 치켜들었다.
분명히 아까전에는 팔을 치켜들고....... 나 죽는건가?
"안된다 이놈아!"
사람은 흔히 죽게될 때 주마등을 겪는다고 했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 없게되었고 죽음을 직감한 그 순간,
뒤에서 아저씨가 달려와 그대로 나를 집어던져서 밀쳐냈다.
'이러면 내가 아니라 아저씨가! 안돼!'
곧이어 처형인이 내 옆에 단두대를 떨어트렸고 그대로 아저씨를 집어삼켰다.
최후의 일격을 가한 처형인은 성불하듯이 사라졌고 나는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다.
하반신이 완전히 뭉개진 아저씨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방탄조끼를 열어 안에 손을 넣더니 나를 향해 주먹을 내밀고 웃었다.
그렇게 눈을 감은 아저씨의 손을 펼치자 안에는 쪽지가 남겨져있었다.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저씨의 쪽지를 펼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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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잘읽고 아레나 잘치는 카붕이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