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는 아슬아슬하게 출근한다.

능글 맞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지만 그다지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은 없다. 하긴 혼내야 할 소대장도 가방을 막 내려놓은 참이라

꾸짖을 만한 정당성이 없다는 것도 그가 당당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구원기사단과 얽힌 일련의 사건 이후, 주시윤이 극적으로 변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여전히 그는 최선을 다하는 '척' 했고,

여전히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여전히 실눈 캐릭터를 

유지했으니까.

극적으로 바뀐 건 아니지만, 서서히 바뀐 것은 하나 있었다.

바로 유미나가 주시윤을 바라보는 시선.


첫 인상과 다르게 친절하고,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섬세한 그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주시윤과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게,

퇴근하며 같이 걷는 게 기다려지고 기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업무중에도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게 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주시윤은 그런 후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마주칠때마다 살짝 미소를 지어온다.

그 미소가 유미나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유미나는 그럴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고생이었다.


사실 유미나는 몰랐지만, 주시윤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미나의 첫 인상은, 물론 사전에 인적사항을 확인한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최악에 가까웠다. 미숙한데다 돈은 밝히고 건방진 후배.

지시사항은 어기는게 일쑤고 이상하게 사장의, 소대장의 편애를

독차지하는 점까지.


하지만 유미나는 실력도, 인격도 성장했고 회사에 적응하며 성격도 많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도 주시윤의 마음에 강하게 와 닿은

것은 자신이 붙잡혀 있을 때 유미나의 행보였다.

그녀의 안위보다도 주시윤을 구하러 달려와준 것에 대한 감동과

선배, 선배 외치며 강아지처럼 그를 따르던 모습. 


주시윤은 눈을 감으며 그녀가 이토록 귀여웠었나 돌아보았을

지경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선배가 되어서 자기살자고 후배를

쏠 순 없는 노릇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모두 잘 해결되어서

다행인 건 맞지만, 다행이지 못한 것은 유미나의 존재가 주시윤의

마음 속에서 너무 커져버린 것이었다. 어째선지 최근엔 눈이 

마주칠때마다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그녀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시간이 제법 흘렀다.


한 해도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12월 말, 재정상황 건강한

회사라면 직원들에게 두둑한 보너스와 휴가를 지급했겠지만

코핀컴퍼니의 상황은 여전히 여유롭지 않았다. 물론 상황이 여유롭지

않은 데에 가장 비중이 컸던 건 여유롭지 못한 부사장의 마음씀씀이였다.

그래서 사장인 관리자는 연말에도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 내 

최대 전력을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미안하게 됐네."

"..쯧."

"시윤 군, 힐데 소대장이 굉장히 언짢아 보이는데 맞나?"


머신 갑은 소대에서 가장 상식인포지션을 맡고 있는 주시윤에게

확인을 구했고 주시윤은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아마 사장님이 보신게 정확하실겁니다."

"그래서? 지금 남들 다 노는 연말에 저 섬구석에 처박혀 일이나

하라는 게 맞는건가?"

"크흠, 크흠. 그 섬이 참 풍경이 좋다는군. 놀러가는 셈치고

갔다 오는 건 어떤가?"

"...저 빌어먹을 깡통을 그때 부숴버렸어야 했는데..."


조그만 체구였지만 힐데는 온 몸에서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옛날엔 안 이랬느니, 회사가 왜 이 모양이 됐냐느니 하며.


"으응... 나는 돈만 벌면 되니까..."

"시윤 군, 미나 양도 굉장히 의욕이 없는 것 같은데 맞나?"

"하하.. 제게도 그렇게 보이네요.."

"미안하네.. 회사 상황만 여유로웠어도.. 다같이 산장이나 하나

빌려서 파티를 여는 건데..."


머신 갑은 패널 화면에 우는 이모티콘을 띄워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것은 먹혀들었다. 부사장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장님이 머신 갑 골드바 에디션을 제작하는 데 회사 돈을 허투루

쓰지만 않으셨어도.."

"쉿, 쉬잇! 부사장, 거의 넘어갈 뻔 했었는데!"


더 듣고 있어봤자 달라질게 없다는 것을 직감한 힐데는 소대원들을

챙겨 사장실 밖으로 나가며 불만스러운 만큼 문을 거칠게 닫았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구만. 내 짬에 이런 것 까지 해야 되겠냐, 

제자야?"


주시윤은 왜 사장이고 소대장이고 자신에게만 묻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말을 해도 스승의 기분을 달랠 수 없을 것 같아 다시금 멋쩍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수송선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주시윤은 그를 사이에 두고 앉은 힐데와 유미나의 부정적오오라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욕지거리를 질리지도 않고 내뱉는 힐데보단

그나마 우울해하기만 하는 유미나쪽이 나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유미나쪽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 살짝 미소지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돌리는 후배에게 상처받아 우울함이 옮을 것만 같아졌다.


유미나는 유미나대로 굉장히 울적했다. 

이제 곧 최고의 이벤트, 크리스마스였다. 함께 보낼 연인이 없는것도 

서러운데 임무파견, 그것도 섬이라니.

사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용기를 내 주시윤에게 일정을 물어볼 예정이었다. 

고백까진 힘들더라도 유사데이트정도는 즐겨보고 싶었는데...


그때 유미나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단둘이는 아니지만 어쩌면

이번 임무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풍경이 좋다고 했으니 눈이 쌓인

설경은 그야말로 로맨틱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유미나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로 마음먹었고,

조금씩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그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잡느냐 인데...


***


임무는 싱겁게 끝났다.

물론 침식체들의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잔챙이는 절대 아니었지만

상대가 나빴다. 코핀컴퍼니의 최대 전력이라는 단어로 국한하기엔

펜릴 소대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나 원.. 이렇게 시시할 줄 알았으면 애초에 너희들만 보내는 거였는데."


힐데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조용히 혀를 찼다. 


"음, 그러게요. 이제 미나 양을 단순한 신입취급하기엔 너무나 

강력한데요? 너끈히 소대하나를 이끌 수 있을 것 같기도.. 아,

이미 '미나 소대'의 소대장이셨나."

"서,선배! 그건 누구한테 들은거야!"


유미나는 얼굴이 붉게 물든 채 주시윤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이조차 예지한 듯 '어이쿠' 하며 피해내는 주시윤. 힐데는 그런

둘을 보며 젊음이 좋긴 좋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피곤하군. 돌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라운드 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어마어마한 폭설에 수송선이 뜰 수 없었던

것이다. 힐데는 괜히 애먼 김하나 관리부장과의 통화에서 이빨을

드러냈고, 주시윤은 김하나를 측은히 여기며 복귀할 때 선물이라도

하나 사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젠장.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묵어야 할 것 같다. 가까운 숙소가.."


힐데는 폰을 집어들고 무언가 열심히 조작했지만 영 진전이 없었다.

눈이 쌓이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힐데에게 숙소찾는 걸 맡겼다간

그녀의 키만큼이나 눈이 쌓여 파묻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유미나는 급히 자신의 폰을 켜서 가까운 숙소를 검색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거리에 그럭저럭 봐줄만한 숙소가 있었고 머쓱해하는 힐데와

주시윤은 유미나의 안내를 받아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손님들, 현재 남은 방이 두개밖에 없습니다."

"뭐야?"


숙소의 사장은 접객에 닳고 닳은 베테랑이었는지 한참 어리게 생긴

힐데가 눈을 부릅뜨고 반말을 찍싸는데도 표정을 구기지 않았다.

주시윤은 그의 스승이 몸에 쌓인 눈을 로비앞에서 털어내는데도

비즈니스 스마일을 유지하는 사장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참이었다.


"날이 날인지라..."


사장의 말대로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숙소에 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일 정도로 로비부터 붐볐다. 게다가 이 섬은 사장이

추천할 정도의 관광명소, 다른 숙소를 찾아봐도 거기서 거기일게 뻔했다.


"으음. 어떡하지,소대장?"


사장에게 받은 방 열쇠 두개를 손에 들고 곤란하다는 웃음을 짓는

유미나가 주시윤은 귀엽게 보였다. 그야말로 유미나 다운 표정.

이럴땐 보통 여자둘이 같은 방을 쓰고 남자 혼자서 방을 쓰는 게

합리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 힐데가 열쇠 하나를 채갔다. 


"나는 누구랑 같이 잠을 못자는 성격이다. 잠자리가 예민해서 말이지. 

신입, 주시윤. 둘이 알아서 합의 보고 자도록. 그럼 난 피곤해서 이만."


자기 할말만 마친 힐데는 총총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다 큰 남녀에게 동침하라는 투의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어이가 없어진 주시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지만 

그 뒷모습조차 완고해보였다. 주시윤은 난처함에 머리만 긁적였다.


"-이렇게 됐네요. 하하... 미나 양. 편히 주무세요. 저는 근처 

찜질방같은 곳이라도 찾아보겠습니다."


주시윤이 살짝 웃어보인 뒤, 피곤한 몸을 일으켜세운 찰나,

유미나가 그녀 답지 않은 소심한 손동작으로 주시윤의 코트자락을 

붙잡았다.


"미나 양?"

"그... 난 괜찮으니까, 이 방에서 같이 쉬자. 선배..."


놀란 주시윤과 쑥스러워하는 유미나의 눈이 다시 한 번 마주쳤다.

이번엔 서로 피하지 않는 눈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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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는 미나.시윤이었고 아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