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counterside/41713701










"다녀왔어."


"...! 대장! 어떻게 됐어?!"



버튼을 누르는 소리와 함께 서윤이 알트 소대의 기숙사의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자,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여성이 뛰쳐나왔다.


서윤은 헐레벌떡 문 앞으로 달려나온 그녀의 차림새를 스윽 훑어보았다.


다소 빈약해보일 수도 있는 몸매를 커다란 회색 후드로 가리고 선분홍의 파자마와 슬리퍼를 신은, 이 헝클어진 흑발의 여성은 서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린."


알트 소대의 저격수 샤오린.


그녀는 어쩌면 알트 소대의 멤버들 중에서, 아니 이 회사 내에서도 드물게 자신만큼이나 사장과 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몇 차례 개인적인 상담을 받기도 했고, 사장도 그녀에게 따로 특별한 임무를 믿고 맡길만큼 나름의 돈독한 사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야밤 중에도 혹시나 자신이 사장에 관한 정보를 얻어왔을까 잠도 안 자고 기다렸을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서윤은 적잖게 당황스런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아무런 정보도 못 찾았어."


"...그래?"


안타깝다는 미소로 눈꼬리를 축 내리며 서윤이 그리 대답하자, 린은 물에 빠진 고양이라도 된 마냥 눈에 띄게 축 늘어졌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그녀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사라졌을 사장님의 흔적을 찾고 다닌 인물이니까.


그런 와중에 사장님의 정보를 찾겠다고 이 오밤 중에, 그것도 이렇게 오랜 시간 밖에 머무르다 돌아왔으니 그녀가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도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답해줄 것은 없었다.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들려줄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그녀가 듣기엔 너무 무거운 이야기였던 것도 있거니와, 

이런 상황에서 마저 자신은 그의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그녀와의 차별점을 두고 싶은 일종의 욕심 탓이었다.


위선을 품은 허영심. 그리 불러도 좋을만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서윤은 축 처진 린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매만졌다.


시간이 늦었다며 들어가서 쉬자고 말을 건넸지만, 린은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잠깐의 침묵을 가진 후 눈물 방울이 맺힌 눈을 위로 치켜올리며 서윤을 바라보았다.



"정말...아무 것도 없었어...대장?"


양심에 찔렸다.

여지껏 생과 사를 함께 해온 전우의 글썽거리는 붉은 눈망울.


그 눈망울을 보자 서윤의 마음의 벽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뭣도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해 그녀의 아픔을 짓밟고 올라서는 일을 서윤은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서윤은 조금의 시간을 둔 뒤, 그녀에게 대답했다.


"...부사장님을 만나기는 했어."


"...?!"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서윤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래도 너무 그렇게 기대하지는 마. 부사장님의 답변도 별반 다를 건 없었으니까. 아무런 소득도 없었어."


반은 진실이며, 반은 거짓.


눈 앞의 소녀를 위로하기 위해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그녀만의 역설적인 감정.


그러나 소녀에게 대답은 이 정도면 충분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렇구나..."


그녀는 슬픈, 그럼에도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대답했다.


말을 마친 뒤, 린은 다시 자신이 뛰쳐 나온 방 안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뒷모습이 다소 쓸쓸해보이던 찰나, 그녀가 방문 앞에서 멈춰선 후, 뒤를 돌아보며 서윤에게 말했다.



"수고했어...대장. 그리고, 고마워."




고맙다니, 뭐가?


그런 대답이 목구멍까지 치솟아오르는 서윤이었지만, 구태여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린은 그 말을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갔고, 서윤만이 멍하니 현관에서 그녀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오늘 있었다는 일이 너무나 피곤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녀는 방 한 켠에 있는 커다란 매트리스에 몸을 힘껏 던졌다.


통증은 없었다. 그저 맞닿아 있는 푹신한 감촉에 마치 자신이 구름의 바다를 유영하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그녀는 팔을 힘껏 벌린 채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아니, 자고 일어났을 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꿈이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그런 희망찬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서윤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렇게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으니 아까전 대화를 나눴던 린의 모습을 떠올랐다.


영화의 필름을 감듯 그 모습을 감상하던 도중 서윤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린은... 무언가를 눈치챘을까.


'학교' 시절부터 쭉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봐왔던 그녀였다.


어쩌면 서윤이라는 인물의 됨됨이를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인물 중의 한 명인,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똑똑하며 이성적인 인물인 그녀가,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마 아니겠지.


그런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던 광경이 다시금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서윤은 그 모습이 너무나 추악하게나 느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게... 나인걸...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애정이란 것이 철저히 배제된 탓이었을까.


혹은 서로가 서로를 조금도 믿지 못할, 의심암귀의 상황에서 자라나온 탓이었을까.


그 시발점이 어디인지를 명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녀에게 있어 단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본인의 과거에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그 순간부터,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진실되도록 누군가를 대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가면을 썼고, 본연의 감정은 가면 속에 철저히 숨기었다.


설령 가장 가까운 친우일지라도.


그것이 설령 동경하고 존중하며, 본인 스스로조차 인지하지 못한 애정을 품고 있는 상대에게 일지라도 말이다.



그녀 스스로도 그녀가 어딘가 비틀려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 무언가 극단적인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단순한 인식,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각은 그녀의 숨구멍을 조여드는 올가미였다.



추악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역겹게 생각하는 또 다른 자신.



그것이 서윤이었고,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우울한 밤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서윤은 팔목을 눈 위에 겹대며, 외로이 홀로 눈물을 훌쩍이기 시작했다.




"사장님...대체 어디 가신 거예요..."


언제나 평온함을 연기하는 그녀의 뺨에 작은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하늘을 미끄러지듯 사라져갔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 다음엔 1주일이 지났고,



1달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로...몇 개월 째일까.




따가운 햇살이 책상에 놓인 달력을 감싼 덕에, 서윤의 눈길은 자연스레 그 달력을 향했다.


XX월 XX일 목요일.


오늘은 사장님께서 사라지신지도 약 5개월 가량이 지난 날이었다.


모두가 사장이 없는 하루에 적응해갔다.


마치 그것이 일상인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듯 평범한 아니, 평범해보이는 하루하루를 코핀 컴퍼니의 모두는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5개월이었다.



자고로 오랜 시간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만든 불길을 사그라뜨리기에도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서윤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약 없는 행방, 알 수 없는 진실.


몇 개월에 걸쳐 반복되는 시간의 연쇄에, 그녀마저 조금씩 지쳐감을 피할 수 없었다.




달력을 보며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과 무력감에 휩싸이자,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지금 코핀 컴퍼니의 탕비실에 위치하고 있었다.


책상을 경계로 두고, 얼굴을 숙이고 있는 린과 대치한 채로.






"미안해, 대장.."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지만,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정신이...없었던 것 같아. 정말 미안..."


"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서윤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갑작스런 부름에 앞에 앉아있던 소녀는 몸을 흠칫 떨더니, 숙인 얼굴에서 눈동자만 살짝 올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서윤이 말했다.


저격수는 언제 어떤 일이 있어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팀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해. 너도 아는 사실이잖아?"


"..."


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더욱 내려깔 뿐이었다.


"미안..."


그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는 몇 시간 전 수행하고 온 다이브에 그 원인이 있었다.


서윤은 눈을 감고 조용히 그 장면을 생각해냈다.




**




약 3시간 전, 조금의 실수가 생명의 위협으로 귀결되는 이면세계의 한 가운데에서 알트 소대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리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침식체들을 처치하며 이터니움과 몇몇 물품들을 수집하는 평범한 다이브.



이에 알트 소대는 오늘도 똑같은 포지션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혈질에 돌격형인 유진이 최전방에서 앞장서면, 소빈이가 그 뒤를 따르고, 서윤과 린은 중후방 지역에서 그들을 엄호했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치뤄지는 이 전술은, 오늘도 수많은 침식체를 처치해내며 톡톡히 그 효과를 증명해냈다.


그러나 오늘은 마지막에 이르러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다.


"유진아! 뒤를 봐!"


한창 최전방에서 양손에 든 권총으로 침식체들을 학살하던 유진에게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른 것은 김소빈이었다.


유진이 그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매우 창백해진 표정으로 그녀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서늘한 감각이 온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때는 이미 조금 늦은 상태였다.




"크와아아아악!!"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커다란 형태의 검은 침식체.


2종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보이는 듯한 녀석이 유진의 목덜미를 찢으려 질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동물적인 감각으로도 피하기엔 간격이 너무 좁혀져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타개책은 하나 존재했다.




바로 저격수의 총탄.




유진은 곧 그녀의 총알이 날아올 거라 생각하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상하게도 날아온 것은 총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태.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그녀가 항상 봐왔던, 가녀린 소녀의 등이었다.



"...얼터그레시브 모드 활성화."


작은 목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눈앞에서 뿌연 연기가 흩뿌러져 나왔다.


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처음엔 흙먼지에 가려 눈앞의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먼지가 걷어지자 상황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침식체는 넝마가 되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눈앞에는 둥둥 떠다니는 소총들과 함께 검은 옷을 펄럭이는 그녀의 대장이 서있었다.


'고마워, 대장!' 이라는 말과 함께 그녀에게 달려가려는 유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발을 멈추었다.


그녀가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린, 지금 뭐하는 거야?"



앞에 서있던 그녀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확히는 아주 멀찍이 떨어진 뒤를 바라보며.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직 조금의 떨리는 창백한 숨소리만이 그들의 통신기 너머로 전해질 뿐이었다.


"...멸치...?"










**









린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더이상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그녀에겐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기에, 서윤은 그녀를 내버려두고 탕비실 밖으로 나왔다.



탕비실의 문을 닫고 나오자, 서윤은 그녀를 문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유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직 자신이 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기에, 그녀는 유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해, 유진아?"


"으악, 깜짝이야!!"


이는 보는 사람도 놀랄 정도의 소스라침이었다.


서윤 또한 조금은 놀랐지만, 굳이 이를 드러내진 않았다.

그저 언제나와 같이 적당한 쓴웃음만을 짓고 그녀를 대했다.


그러나 유진은 그러한 그녀의 쓴 웃음을 간파할 정도로 명석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유진은 혼자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서윤의 손을 와락 움켜쥐었다.



"대장!!"


"으, 응?!"


"멸치 저 녀석이 요즘 좀 저기압이긴 해도 곧 기운차릴 테니까 걱정하지마!"


뭐야, 그런 거였나.


맨날 티격태격하긴 해도 이렇게 서로에게 일이 있을 땐 걱정해주는 이들이 서윤에겐 마냥 귀여워보였다.


"그래, 나도 알아. 린도 곧 기운을 차리겠지." 서윤이 말했다.


"응! 사장님만 돌아오면 다 해결될 거야!"


"사장님...?"


순간 들려온 그 한 단어에 서윤은 자신의 미간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장님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서윤이 물었다.


"그 왜, 내가 바보긴 해도 대충은 눈치란게 있거든? 저 멸치가 사장님이 사라지고부터 맨날 우울해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해서. 헤헤."


유진이 머쓱하다는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니까! 내가 또 한 눈치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거냐하면..."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녀가 하는 말은 서윤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장님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 린이 저렇게 된 걸 몰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소대원들의 편의를 신경쓰는 소대장이었고, 그정도의 인과관계를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못 본 체 했다.


내심 사장님이 그녀에게만 특별한 인물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린에게 사장님이 특별한 인물이 아니기를, 그리고 사장님에게 린이 특별한 인물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녀는 성숙했지만 어린 인물이었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독점욕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진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도중, 서윤은 건물의 문 앞에 멍하니 서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화려히 휘날리는 은빛깔의 머리에 번쩍이는 호박색 눈동자.

티비에서도 몇번 본듯한 인물이 그녀의 앞에 서있었다.


아마 인기 아이돌 그룹인 하트베리의...가은이었던가?



사장님의 행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 몇 번 얼굴을 마주했던 기억이 난 서윤은, 그녀에게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그녀의 인상은 5개월 전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눈동자에는 피로가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사람에게 전체적으로 그림자가 드리운 듯 퍼지는 침울한 향취가 코끝을 자극했다.



뭐랄까,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곳이 비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의 대답 또한 오아시스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메마른 사막과도 같이 무미건조했다.



"요즘 잘 지내시죠?"



"....네."



"티비에 잘 안나오시던데 휴식기이신 건가요?"



"....네."



"여기에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이렇게 질문을 하고나니 서윤은 문득 자기 자신이 파파라치 기자와 매한가지처럼 느껴져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질문의 청자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대답하면서도 계속 건물을 응시하던 시선을 서윤에게로 향하고는 말했다.



"....와요."



"네?" 그녀가 말을 흐린 탓에 서윤이 재차 질문했다.



"매일 와요....여기..."



"..."



"선생님은...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신 건가요..?"



"...그런 것 같네요."



그런 서윤의 대답에 그녀는 일말의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린에게선 순간순간의 움츠림을 확인할 수 있기라도 했지만, 그녀에게선 그런 것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감정의 뿌리를 절제당한 사람과도 같았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라면 사원들 사이에 퍼진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사장님에게 도움을 받았고, 그 사장님을 최근에 다시 만나게 되어, 그를 만나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회사를 방문한다고 했던가.


뭐, 최근이래봤자 이젠 5개월이나 지난 이야기였지만.


어찌됐든, 참으로 로맨틱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우연이나 운명 따위의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필연적인 만남이라니.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필연마저 또한 '사장이 사라졌다'라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휩쓸고 간 급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서윤은 그녀가 부러워보였다.



사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녀는 그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짓고만 마는, 필연적으로 갖춰진 그녀만의 견고한 방어 태세. 


그러나 그녀와, 아까의 린은,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그러지 못 했을지도.


그들은 그들의 감정에 솔직했고, 그 감정을 표출하는데 있어 서슴이 없었다.


그것이 서윤은 부러웠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순간 린에게 품었던 열등감, 혹은 질투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대화를 마치고 쓸쓸한 표정으로 가은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누구에게나 외롭고 쓸쓸하게만 비칠 만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객에게 있어선, 그 모습은 어둡지만 역설적으로 찬란히 빛을 발하는 역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행선지를 달리한 가은을 뒤로 하고, 서윤은 기숙사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금은 피곤한 하루였다.

욕조에 들어가 생각이라도 정리할 겸,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그녀와 마주쳤다.




"뭐야, 서윤. 너 여기서 뭐하냐?"




어깨에 박혀있는 늑대의 마크.

뒤로 머리를 묶은 포니테일의 흑발 여성.



유미나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윤은 본능적으로 단 한 가지 생각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이런.


제일 만나기 싫은 사람과 만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