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 코세이에게.
당신은 심한 사람입니다 굼뜨고 둔하고 멍청이.
제가 처음으로 당신의 연주를 본건 5살 때, 당시에 다니던 피아노 교실의 발표회였습니다.
어색하게 등장한 그 아이는 의자에 엉덩이를 부딪혔고, 아주 큰 피아노를 향해 한 음을 연주한 순간 저는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은 24색 팔레트처럼 화려했고 멜로디는 춤을 췄습니다.
옆에 있던 아이가 울어버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피아노를 그만뒀고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해놓고 너무한 사람입니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걸 알게 되었을 땐 기뻤습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들어줄지, 매점에서 빵을 사러 들려볼지
하지만 결국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왜냐면 모두 사이가 너무 좋은걸, 내가 들어갈 공간은 없는걸.
어릴 때 수술을 받고 정기적으로 통원하고 중1때 쓰러진걸 계기로 입원을 반복해서
병원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는 중학교엔 못 가는구나 하면서.
자신의 몸상태가 좋지 않은 건 알고있었습니다.
후회를 천국에도 가져가지 않기 위해 마음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웠던 콘텍트 렌즈, 체중이 걱정이라 못 했던 실컷 먹어대기, 잘난듯이 지휘하는 악보도 저 답게 연주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딱 하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미야조노 카오리가 와타리 료타군을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거짓말은 제 앞에 당신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츠바키에게도 사과해주세요.
저는 스쳐지나가는 인간이라, 이상한 화근을 남겨두기 싫어 츠바키에겐 부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아리마군을 소개시켜줘. 라고 부탁해도 분명 좋은 대답은 못 받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츠바키는 당신을 엄청 좋아하니까.
모두 이미 알고 있으니까, 모르는 건 당신과 츠바키 뿐.
저의 고식한 거짓말이 데려온 당신은 제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생각보다 어둡고 비굴하고 고집쟁이에 집착하고 도촬마.
생각보다 낮은 목소리, 생각보다 남자다웠고 생각보다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담력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린 강은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차에 진심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달리기도, 만두같이 맛있어보인 음악실에서 엿보였던 달도
둘이서 불렀던 동요는 음정이 어긋났고 성악은 절망적이었지.
밤의 학교는 분명 무언가가 있었고,
눈은 벚꽃과 겹쳐보였고.
당신은 어땠습니까? 난 누군가의 마음속에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당신의 마음에 살 수 있었을까
너의 의사는 존중하지 않고 만났어
조금이라도 나를 떠올려줄까
잊어버리면 다른 모습으로 기억하는 주제에.
리셋같은 건 싫어, 잊지 말아줘, 약속했으니까.
역시 너였어서 다행이야. 닿을 수 있을까? 닿으면 좋겠네.
아리마 코세이.
당신을 좋아합니다.
좋아합니다.
좋아합니다.
카누레, 전부 못 먹어서 미안해.
계속 때려댔던거, 미안해.
응석만 부려서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고마워.
추신,
제 보물을 봉투에 담아두었습니다.
필요 없으면 찢어서 버려주세요.
곧 봄이 온다.
너와 만났었던 봄이 온다.
너가 없는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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