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패스파인더 시리즈

 

 

패스파인더 4. 우리는 천생연분이다. 完


전편을 읽고 오면 좋아요!

1편 당신은 최악이었다 (주시영)

2편 당신은 최고였다 (카린웡)

3편 우리들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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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하루종일 카린이 시영의 손에 이끌려 피난지구 이곳저곳을 끌려다니다가 도착한 곳은 작은 놀이터였다. 있는 건 고작 작은 미끄럼틀 하나, 그네 두개, 시소 하나가 전부였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가는 탓인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성인 여자가 보기에도 한없이 작은 놀이터임에도, 시영은 마치 거대한 놀이동산에 놀러온 것처럼 그네 쪽으로 달려나갔다.

 

시영은 아이처럼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능숙하게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카린은 어정쩡하게 서서 점점 붕붕거리며 올라가는 시영을 바라보았다. 지냈던 시설에서 놀이기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적 대부분은 집이나 시설 안에서 책만 읽고 일찍 군사훈련을 받으며 자란 카린에게는 한없이 작은 놀이기구들이 그다지 친근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반면 이런 놀이기구들은 시영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용병이 되기 전, 죽을 고비를 넘기기 전의 어릴 적 향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

시영은 앞뒤로 부는 바람을 느끼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

살아돌아왔으니 느낄 수 있는 과거의 향기. 그네의 반동에 따라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뺨을 때렸다.

 

새삼 다시 한 번 살아있음을 느낀다. 또 다시 오늘을 살고 있음에 만족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시영이 바람을 느껴보려고 감았던 눈을 뜨고, 어색하게 서서 그네를 타는 자신을 보고있는 카린을 보았다.

 

 

 

"카린 양도 같이 타요!"

"나 참... 애도 아니고."

"아하하! 혹시 탈 줄 모르는 거 아니죠?"

"아니거든요?!"

 

 

 

도발 아닌 도발에 발끈하며, 카린이 마지 못해 시영의 옆에 있는 빈 그네에 걸어와 앉았다. 다리를 쭉 펴서 뒤로 잔뜩 뺀 다음, 발을 뗀다. 반동을 따라 흐름을 탄다. 점점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진다.

 

거의 처음 타는 것과 다름 없다보니, 내색하진 않았지만 카린은 그네에 흥미를 붙였다. 그리고 어느새 시영 못지 않게 높이 오르고, 규칙적으로 두 그네가 교차했다.

 

시영이 잠깐 옆을 흘끗 보았다. 카린의 흑갈색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가려졌다가 보여지는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있었다.

 

결국 즐겁게 놀 수 있으면서, 왜 매번 인상을 구기고 있을까.

시영은 카린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곤 미소지었다.

 


 

"카린 양, 있잖아요. 저는 원래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

 

 

 

갑작스러운 진지한 이야기에 카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영이 있는 쪽을 보았다.

교차하며 움직이던 두 그네가 조금씩 엇박으로 바뀌어갔다.

 

 

 

"그냥 부모님이랑 함께 살아가고, 친구들과 함께 놀고, 맛있는 걸 먹고... 지극히 평범한 거 잖아요? 근데 저희가 사는 세상은 그런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희들도... 그 세계처럼 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평범하게 살고 있을까요?"

"...그랬다면, 저희 둘이 만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엇박으로 교차하던 그네가 점점 같은 방향으로 맞추어지고, 한 그네가 먼저 멈추었다.

시영의 그네가 멈춘 것을 보곤, 카린도 점점 속도를 줄여 같이 멈추었다.

 

 

 

"아하하... 살아돌아왔고, 계속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니까. 또 일하게 되면 바쁘잖아요? 그래서... 그냥 놀고 싶었어요.

 용병일을 하고 나서는 친구 사귈 틈도 없었고, 또래 친구 만날 일도 없었으니까. 프리랜서로 바꾸고 나서는 더더욱?"

"......."

"그거 알아요? 저 처음에 카린 양에 대해서 들었을 땐, 좀 기뻤어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또래라서. 근데 알고보니 완전 꽉 막힌 애늙은이라서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하하하!"

"뭐, 뭐라고요? 꽉 막힌? 애늙은이?!"

 

 

 

카린이 발끈해 자리에서 일어나 시영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시영은 카린의 격한 반응이 재밌는지 한 손은 그네줄을 다른 한손은 카린에게 삿대질을 하며 박장대소했다.

차마 사람을 때릴 순 없고, 카린은 씩씩거리며 아니라고 시영에게 큰소리로 외치며 부정했다.

 

 

 

"하하하하! 아흐학...!"

"진짜! 저도 유능하다길래 믿고 일 맡겼더니 완전 경박하고, 농땡이 피우고! 정말!"

"어어어- 난폭해, 난폭해! 하하하!"

 

 

 

카린이 성큼성큼 걸어와 시영이 타고있는 그네줄을 붙잡고 외치며 마구 흔들었다. 시영은 그것마저 재밌는지 여전히 숨넘어갈듯 말듯한 웃음소리를 낼뿐이었다.

씩씩거리며 그네줄에서 손을 떼고, 시영도 다 웃었는지 숨을 고르며 말을 다시 이었다.

 

 

 

"아흐흐... 제가 설마 나쁜 말만 하겠어요? 그래도 우리 합은 잘 맞았잖아요~"

"그런 흠잡을데 없는 실력을 대의를 위해 성실하게 쓰면 얼마나 좋아요?"

"아하하! 주는 만큼 열심히 하는 거라고요?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는건데?"

"...하아-"

 

 

 

졌다는 듯 카린이 한숨을 푹 내쉬곤, 앉아있던 그네로 돌아가 앉았다. 나란히 그네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 동안 그저 해가 뉘엿뉘엿 떨어져 붉게 물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카린 양. 고마워요."

"네?"

 

 

 

이번엔 뜻밖의 감사표현에 카린이 또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시영은 거짓하나 없는 진심이 담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있었다.

 

 

 

"뭐... 제가 조건으로 건 것도 있지만, 애초에 저희는 친구사이로 만난게 아니니까 거절하고 다른 용병을 써도 되는 거였잖아요? 근데 개인적인 휴가까지 투자해서 같이 와준게 좋아서요."

"그런가요?"

"응. 앞으로도 계속 저희는 용병으로, 군인으로 일하면 이럴 시간 없을테니까... 한 번쯤은 다시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었어요. 이제 제 주변에 또래라곤 카린 양밖에 없어요."

 

 

 

처음 들어보는 시영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카린이 잠깐 생각에 잠겨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

 

처음 시영이 말했을땐 어색하고 낯간지럽기만 했다. 어차피 강제로 받을 포상휴가이긴 했어도, 할일이 산더미인데 미루고 귀찮은 조건까지 걸어서 먼길을 가야한다는 것부터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 곳에 와서 옛 기억을 회상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며 조금씩 줄어들었다.

진심 어린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의 차이를 좁혀갔다.

 

 

 

"아하하! 역시 이런 이야기는 좀 그렇죠?"

"저는... 옛 기억 중에 즐거웠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아요. 부모님은 일찍 행방불명되시고, 친구도 딱히 없었거든요."

"......?"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려는 찰나, 이번엔 카린이 말문을 열었다.

항상 침식체와의 전쟁통에서 바삐 움직여야할 평소라면 듣기 힘들 이야기들.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저에게 그나마 즐거웠던 기억은... 이미 전사한 동료들이 아직 살아있을 때에요. 시영 씨에겐 그저 군대가 고리타분한 집단으로 보일진 몰라도, 저에게 있어서 군대는, 델타세븐은... 앞장서서 대의를 지키고, 세계를 수호하는 집단......"

"그말이 그말 아니에요?"

"끝까지 들어요! 제 삶의 이유중 하나라고요!"

"아~ 그래서 전출되는게 싫었구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발끈하던 카린이 대답대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살아돌아올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름이 사라지는 건 차마 볼 수 없었다.

혼자 남아있는 군부대를 부대라고 대하고 운영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기에 또 다시 믿고 같이 움직일 사람이 필요하다.

 

 

어렴풋이 느꼈던, 숨겨진 진심에 확신이 들었다. 속마음을 비치는 솔직함이 낯간지러워 고개를 돌려버린 카린 몰래 시영은 풉하고 한번 웃곤 장난을 쳤다.

 

 

 

"카린 양, 삐졌어요?"

"아니거든요! 하, 됐어요. 그냥 저도 덕분에 부대유지 할 수 있으니까 고맙다는 이야기 하려고 한거에요."

"와~ 정말요?"

"뭐에요? 그 영혼 하나 없는 감탄사."

"아하하! 그럴리가요! 전 항상 진심인데."

 

 

 

시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툭툭털었다.

어느새 태양은 지평선너머로 떨어져 하늘이 점점 검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잘부탁해요?"

"......그래요. 저도 잘부탁해요. 시영 씨."

 

 

 

뒤죽박죽한 흐름 끝에는 진심이 통하고, 지금 그녀들 위에 떠있는 밤하늘에는 별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 여자에겐 마치 마치 은하수가 뜬 것처럼 은은하고, 포근한 밤이었다.

 

 

 

"해도 떨어졌으니까 돌아갈까요?"

"그래요. 걱정하시겠어요. 아! 팔짱끼지마요! 걷는데 불편합니다!"

"에이, 뭘 부끄러워해요? 같은 여자끼리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부비지마요! 밀착하지 말라고!"

 

 

 

시영이 은근슬쩍 카린의 옆에 붙어 팔짱을 가장해 바짝 붙어오자, 카린이 오만상을 쓰며 자유로운 다른 팔을 들어, 기대고있는 시영의 머리를 살짝 밀었다.

그래도 힘싸움은 역시 시영이 살짝 위인것은 변함이 없었다. 카린이 밀든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시영은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카린의 어깨에 부벼댔다.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고. 카린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 치근덕거림을 받아들였다.

 

 

"에휴, 맘대로 하세요. 맘대로..."

"히히히. 그거알아요? 저녁에 삼겹살이래요."

"진짜?"

 

 

 

도서관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그 어느곳에 서있더라도 두 사람은 완벽한 친구이자 등을 맡댈 수 있는 전우일 것이다.

 

 

 

 

 

 

 

*

 

 

 

 

 

 

 

 

 

"아, 별거 안했는데도 첫 날이 다 지났어..."

 

 

 

시영이 방바닥에 대(大)자로 뻗어 누운 채로 투덜거렸다.

배도 부르고, 등도 따뜻하지만, 흘러가는 휴일에 대한 미련은 어쩔수가 없었다.

 

카린은 그 옆에 기대어 앉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시영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제가 그렇게 좋아요?"

"대체 그런 능글맞은 말들은 누구한테 배운거에요?"

"저랑 있다보면 알지 않을까요?"

"흥. 그보다 그렇게 먹고 누워있으면 살쪄요."

 

 

 

카린이 도끼눈을 뜨고 내려다보며 하는 악담(?)에도 시영은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괜찮다며 손사레를 쳤다.

어차피 먹고, 바로 드러누워 자더라도 일하다보면 살찔시간이 없다며.

딱히 틀린말도 아니었기에 카린은 더 반박하지 않고, 다리를 모아 쪼그려 앉을 뿐이었다.

 

 

 

"우리 앞으로 더 바쁘겠죠?"

"로널드 리 박사가 저희가 가져온 장비를 분석하고 있나봐요. 역설계가 가능해지면 양산이 가능해질거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 할 수 있을거에요. 그러면 저희 말고도 모두가 바빠지고, 어쩌면... 더 위험해 질지도 모르죠. 그래도 우린 해야해요."

 

 

 

카린의 표정은 나름 비장한 각오인 듯, 결연해 보였다. 시영은 여전히 웃으며 카린의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와 한 손을 카린의 머리 위로 뻗었다.

카린은 재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빼 그 손을 피해버렸다.

 

 

 

"왜요? 기특해서 칭찬해줄려고~"

"머리 헝클어지니까 하지마요! 그리고 어차피 해야할일이니 칭찬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시다면야-"

 

 

 

 

쓰다듬는게 안된다면 다른 걸 해야지.

 

시영은 상체를 일으켜, 다리를 모아 쭈글하게 앉아있는 카린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카린은 그 끈기에 이미 포기한듯 자신의 옆을 내주었다.

부모님 두 분이 혹시 돌아올지 모르는 자신의 딸을 위해 남겨놓은 작은 방안. 두 사람은 벽에 등을 대고, 바짝 붙어있었다.

 

 

 

"만약에 혹시 또 올 수 있으면, 같이 와요."

"우리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모르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사람이 일만하고 살아요~"

 

 

 

카린은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내색 하진 않았지만, 시영이 내건 고용조건 때문에 반쯤 억지로 오긴했어도 카린은 오늘의 경험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 느낄 수 없다면 조금 많이 아쉬울지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먼길을 달려온 딸을 마중나오는 어머니, 차려주신 따뜻한 저녁밥상. 아버지가 퇴근하며 사오신 간식거리.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느끼는 단란한 가정집의 모습.

오로지 가족만이 전해 줄 수 있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성인되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간접적으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재밌었죠?"

"......"

"카린 양?"

"네, 우리 또 기회되면 와요."

 

 

 

뜻밖의 대답에 시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서로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소녀들처럼 꺄르르거리며 웃는것 보단, 서로의 이야기에 슬픈 눈을 하거나 전혀다른 성향에 티격태격 하기도 했다.

원래 고용주와 용병의 사이라면 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며, 고요한 새벽시간을 흘려보냈다. 제풀들에 지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잠들때까지 그렇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

 

 

 

 

 

해가 뜬, 이른 아침. 혹시 깨어있나 확인해볼 겸 시영의 어머니가 방문에 노크를 했다.

노크에도 별 반응이 없어 시영의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들여다 보았다.

 

 

 

"어머...! 이 아가씨들 봐. 감기 걸릴려고."

 

 

 

이부자리도 제대로 펼치지 않고, 바닥에 대충 널브러져서는 덮는 이불도 없이 잠든 시영과 카린을 본 어머니가 깜짝 놀라 들어와 방안의 이불을 꺼내들었다.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고 베개를 넣어준 뒤, 이불 한 장을 펼쳐 두 사람위로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세상모르고 편안하게 잠든 두 여자의 얼굴을 보며, 시영의 어머니는 새삼 또 다시 느꼈다. 몸만 커버린 아이들 같아 보이는 두 소녀에게 세상은 무엇을 짊어지게 한 것이냐고.

 

그게 속상한 듯 한숨을 한 번 쉬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아주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꿈속을 헤엄쳤다.

죽을 걱정도, 누군가를 지켜야만 한다는 강박감도 잊고, 전우이자 친구와 함께 계속 달콤한 수면을 취했다.

 

 

잊지 못할 귀중한 휴일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

 

 

 

 

 

 

 

 

달콤한 3일간의 휴가는 빠르게 지나가고, 작별인사를 해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설렘반, 긴장반으로 밟았던 기차플랫폼은 이제 아쉬움과 함께 떠나야했다.

 

 

 

"저 갈게요. 시간되면 또 올게요. 엄마, 아빠."

"이제 돌아가보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두 소녀의 인사에 부모님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들이 떠난다는 것은 다시금 위험한 전쟁통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영의 어머니는 나란히 서있는 시영과 카린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양팔가득 두 사람을 안아주었다.

 

 

 

"둘 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시간되면 같이 쉬러오렴."

"응! 조심할게요.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시영아. 아빠가 말 안해도 알지?"

"당연하죠!"

 

 

이제는 정말로 떠나보내야 할 시간. 두 팔을 풀고 어머니는 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시영이 속상한지 왜 우냐며 반대로 웃어보였지만, 어느 부모님이든 자식걱정은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기차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부모님에게 시영은 손을 흔들고, 카린은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했다.

 

창밖으로 부모님이 보이지 않게 되고, 기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대화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시영은 괜히 어색해 머리를 긁적이며 나란히 옆에 앉은 카린을 쳐다보았다.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에 시영은 굳이 말 걸지 말까 싶다가, 조용히 입을 떼었다.

 

 

 

"이제 다시 고용주와 용병이네요."

"...?"

 

 

 

카린이 의아한 눈으로 시영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는 시영의 반응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눈치 채고 대답했다.

 

 

 

"꼭 그렇게 정의할 필요는 없잖아요?"

"네?"

"꼭 그렇게 정해 놓을 필요 없다는거에요. 어느 쪽이든 의지만 되면 상관없지 않아요? 으, 역시 갑자기 낯간지러운 얘기는 좀-"

 

 

 

카린이 이마를 짚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시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마음에 들었는지 카린의 어깨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붙지 마요!"

"에이, 카린 양 어깨가 기대기 딱 좋다 구요?"

".........네, 네. 맘대로 하세요."

 

 

 

카린의 빠른 포기에 시영은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진짜 재밌었죠?"

"......네, 재밌었어요."

 

 

 

...

 

한참동안 달리고 있는 기차 객실 안,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의 어깨와 머리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

(BGM OFF)

 

 

 

 

 

 

 

 

복귀 후. 두 사람은 투기 작전 전보다 더 바쁜 날을 보내야했다.

침식체와의 전투는 물론 틈만나면 새로만은 시제품의 테스트도 도맡아서 해야 했다.

두 사람이 다시 꿈만 같았던 휴식을 취할 수 있는지가 불투명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카린 양. 우리 5분만 쉬면 안돼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인거 아시죠?"

"아아- 왜 이럴 때 민간인 거주 쉘터를 습격하냐고오..."

 

 

 

역시 박봉이여도 다른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았어야했나...

 

연속작전으로 지친 시영이 볼멘소리를 냈지만, 카린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영의 팔을 잡아끌었다. 원래라면 5분도 아니고 남은 시간은 휴식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침식재난에 별동대인 두 사람이 먼저 움직였다.

 

지원용 헬기를 타고, 빠르게 작전지역을 향했다. 작전브리핑은 따로 듣지 못하고, 카린이 상공에서 육안으로 육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스럽게도 민간인들은 무사히 대피했고, 병사들이 방어선을 만들어 거주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강하하기위한 적당한 위치를 잡고, 신호에 맞춰 두 사람이 강하궤적을 그리며 강하했다.

착지하기가 무섭게 카린은 빠르게 무기에 특수화기를 장착했고, 시영은 자신의 검을 꺼내들어 앞으로 튀어나갔다.

 

 

 

"2종의 타격은 저희 별동대가 맡겠습니다! 전 대원들은 1종을 요격해주세요!"

"예! 대령님!"

 

 

 

모두가 익숙한 듯, 카린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전장엔 총성, 침식체들의 비명이 가득했다.

 

별동대의 두 여자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말도 오가지 않는데도 합이 잘 맞아떨어졌다. 시영이 침식체의 시선을 끌어 머리를 돌리면, 카린은 강한 화력의 중력탄을 쏟아 부어 지독한 괴물들을 무력화 시켰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합이 무색하게, 몰려들어오는 침식체들의 수는 좀처럼 줄지를 않았다.

 

시영은 위험한 난전 속에서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군집의 중심이 되는 놈을 찾기 위해서였다.

 

 

 

"카린 양! 지원은요?"

"앞으로 5분!"

"에이! 진짜!"

"너무 앞으로 가지마세요! 방어선만 지키면 된다고요!"

 

 

 

시영이 짜증을 내며 과감하게 더 파고들어가는 모습을 본 카린이 당황해 외쳤지만, 이미 확실한 원인을 잡아내는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시영이 더 과감하게 속도를 내었다.

 

 

 

"시영... 아앗?!"

 

 

 

다시 한 번 시영을 말리려고 외치려는 순간, 갑자기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 다른 군인장병들도 당황한 듯 서로 눈앞의 빛을 가려내기 바빴다. 카린이 상황파악을 위해 억지로 눈을 뜨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시도였다.

몇 초가 지났을까. 조금씩 빛이 사그라들고, 카린이 간신히 다시 눈을 떠 방어선 앞을 보았다.

 

 

 

"어...? 시영 씨..? 시영 씨!"

 

 

 

몇몇 2종 침식체들 그리고 카린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시영의 모습은 사라져 온데간데 없었다. 당황한 카린이 주변을 계속 두리번 거렸지만, 머리카락 한올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을 더 파악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침식체들이 다시 방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대령님!"

"괜찮습니다! 기존의 방법으로 계속 진행해주세요!"

 

 

 

카린이 급히 만일을 대비에 준비해 두었던 전술방벽을 설치하고, 주 타겟을 향해 집중했다. 눈은 전황을 파악하는데 집중했지만, 마음과 머리는 점점 초조해져갔다.

 

 

대체 어디로 갑자기 사라진거지? 어째서? 왜? 뭐가 문제를 일으킨거지? 아까 투덜거리더니 설마..!

 

 

 

의문이 꼬리를 계속 물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사라진 시영을 찾아보고 싶어도, 약속된 지원이 오기까지 방어선을 지키는게 제일 우선이었다.

 

 

 

"이 망할 인간이...! 어디로 간 거야! 땡땡이면 가만안둬!"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켠에는 걱정이 앞섰다.

 

순간적으로 CRF출력이 오르고, 카린의 탄에 맞은 침식체의 머리가 잔인하게 터져버렸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에 분노가 가득 담긴다. 아직 아무것도 단언 할 수 없었지만, 전장을 보는 카린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점점 총성의 간격이 짧아지고, 혹시 모를 불안함으로 표정이 점점 사납게 변했다.

2종도 사라지고, 1종들이 널린 전장에서 카운터 단 한 명이 빠졌을 뿐인데, 전선에 서있는 사람들 모두가 더 바짝 긴장하고, 긴장감에 숨도 편하게 쉬지 못했다.

 

 

 

"대령님! 지원입니다!"

"다행... 어?"

"어어- 대령님!!!"

 

 

 

지원이 도착했다는 말에 안심한 순간, 방금 전 보았던 빛이 다시 나타났다.

마치 섬광탄이 터진 것처럼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침식체들도 그 빛에 먹혀 점점 사라져갔다.

 

말도 안되는 광경에 카린이 경악했다. 하지만 이내 시린 눈을 더 이상 뜨지 못하고 팔로 눈을 가렸다.

 

 

 


 

 

...

 

 

 

 

 

쿵!!!

 

 

 

"으윽... 머리야... 침식체들도 사라지고... 나까지... 상황이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거지?"

 

 

맨바닥에 떨어진 충격에 카린이 앓는 소리를 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불만 섞인 혼잣말을 뱉었다. 뒤이어 들리는 소리에 카린이 귀를 기울였다.

 

 

 

"이건... 파도소리?! 바다잖아?"

 

 

 

분명 자신이 있던 곳은 우중충한 민간인 거주 쉘터였는데, 손에 집히는 모래와 시원한 파도소리가 카린을 반겨주었다.

 

 

 

"그런데, 바다가 어떻게 이렇게 푸를 수가 있지? 설마... 여긴..."

 

 

 

 

 

 

 

 +++



제목이 천생연분인 EU.

혹시 보빔기대했다면 미안... 사실 친구먹는 문학임ㅋㅋㅋㅋㅋ


놀랍게도 이게 진짜 완결임...ㅋㅋㅋㅋㅋ

이 글의 끝에는 바캉스이벤트와 이어진다는 설정이라서.


고작 4편쓰는 주제에 겁나 질질끌어서 미안하다... 앞으로 계획없이 다른 문학쓰면서 또 늘리는 짓 안하겠음...

계속 쓰면서 퀄떨어지는 느낌받더라... 원래도 좋은 글들이라 하기엔 좀 많이 긴가민가하지만ㅋㅋㅋ;

이제 유미문학 집중해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