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릉....쿠르릉.....
학교가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서서히 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남녀 셋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남성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옷매무새에 말끔한 정장을 좍 빼입은 그의 모습은 흡사 그리스 신화대의 조각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괴롭다는 듯 찌푸려져 있었다. 마치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시작됐군."
그런 남자의 말에 담긴 머뭇거림을 눈치챈 것일까, 그의 옆에 서 있던 녹색 머리카락의 늘씬한 미녀가 다그치듯 말했다.
"그렇게 망설일 거면 구하러 가지 그래?"
거기에 찬동하듯 흑발의 소녀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전 리타 언니 말에 전적으로 찬성이에요!"
그러나 남성은 잠시 고개를 흔들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야 해. 그래야만 미래가 올바른 방향으로 굴러갈 수 있어."
리타라고 불린 녹색 머리칼의 여성은 남성을 보며 농담스럽게 말했다.
"그게 바로 그 '인과율'이라는 건가? 운명론자가 되고 싶진 않다고 했건만 어째 생각하는 건 점점 그 녀석을 닮아가는군."
그 녀석. 리타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보지않아도 뻔했다.
합리성의 괴물이자 지금의 남성이 필사적으로 애를 쓰며 흉내내고자 하는 존재. 관리자임이 틀림없으리라.
그 지략은 그야말로 세계의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
무려 세계의 적 그 자체인 마왕마저 속여넘기며 무사히 세계를 유지해온 숭고한 인물이자 동시에 희망이 없다 싶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세계 그 자체를 버리는 냉혹함까지.
그런 그와 자신을 잠시 비교해본 남성이 인정하기 싫다는 듯 내뱉었다.
"......방법이 없어."
짤막한 한 마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그의 고뇌를 알아차린 것인지 리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동안의 침묵. 그 침묵이 어린 나이에 견디기 불편했던 것인지 흑발의 소녀,대시가 물었다.
"그런데 싸장님!"
"그러니까 사장님이 아니래도. 난 그냥 사장대리일 뿐이야. 너희 사장은 아직 엄연히 저기 사무소에 계시고...."
"그래도 싸장님은 싸장님인걸요. 저희가 싸장님이랑 같이 전세계를 누빈지도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도 트래디멘트씨,트래디멘트씨 하고 부르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그 트래디멘트라는 것도 가짜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 이름을 대역이라는 이름으로 짓겠어?"
"하하...."
남성,트래디멘트이자 관리자의 몸을 뒤집어 쓴 이가 작게 웃었다. 트래디멘트라는 이름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었기에.
처음 자신이 이 세계에 오게 된 날을 떠올렸다.
즐겨하던 게임을 하다 잠든 후 눈을 떠 보니 느딧없이 게임속 세계의 주인공으로 내던져졌다.
세계는 곧 멸망하기 직전,그리고 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인공인 나 뿐.
그런 아이와도 같은 망상만으로 버티기에 '관리자'라는 명칭이 주는 압박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자신이 떨어진 곳이 과거 이탈리아라 불린 곳이라 알았을 때엔 그야말로 운명이라 느꼈다. 게임이었기에 구하지 못한 이들도 지금이라면 구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는 해냈다. 원래의 이름대신 트래디멘트, 대역이라는 우스꽝스러운 가명을 댄 채로.
호라이즌 파이낸셜의 사원으로 들어와 사무소의 일원으로 그들과 가까워졌다.
성냥팔이의 책략에서 리타와 함께 빠져나왔다.
대시의 부모를 대시와 함께 보며 오랜 기억을 정산했다.
호라이즌을 설득해 리타와 대시를 윌버의 원정에 같이 참가시켰다.
그는 둘을 무사히 구해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느꼈다.
그가 도우려 한 고아원에서 레이첼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갑작스레 나타난 침식체때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성냥팔이와의 인맥을 이용해 베로니카와 릴리를 맨션 마스터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CIA의 비밀임무 수행 중 리코리스라는 한 요원이 리플레이서 나이트와 싸우다 전사했다는 첩보를 훔쳐들었다.
그로니아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가은과 루시드를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제프티바이오테크 실험실에서는 몸 하나에 여러 개의 팔과 다리가 덕지덕지 엉겨붙은 채 죽어있는 금발의 여자아이 시체가 발견돼 논란이 되었다.
그가 구하면 구할수록 세계는 그만큼 많은 인원을 그의 손에서 앗아갔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그는 더 이상 원래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어차피 맡은 역할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이한테 아직까지 불릴 이름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 차례 과거를 회상한 후 트래디멘트는 조용히 학교를 바라봤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진입하면 되는 거지? 미라 말해두겠지만 나랑 꼬맹이 둘이라면 지금이라도 전원 탈출시킬 수 있어."
리타의 말을 못 들은 척 흘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하지 않는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다.
궤변이다.
그런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예상한 죽음만이 일어날 뿐이라며 마음속으로 안도하고 있는 비겁자인 자신이 있다.
예상외의 사태에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선택했다.
목소리가 갈라져나왔다.
"....학교가 완전히 붕괴하고 나면."
"....."
"........"
대시와 리타. 그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의 선택에 구원받은 그녀들이었으며 그가 어떻게 망가져왔는지를 봐왔기 때문에 그녀들은 침묵했다.
"학교가 붕괴하면."
트래디멘트가 침묵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말을 이었다.
"강력한 각성반응이 일어날거고 침식체들이 우르르 몰려올 거다. 아마 대부분 죽겠지.
그렇게 되면 말했던 학생들을 찾아.
유미나라는 갈색 포니테일을 한 여학생이랑 신나래라는 트윈테일을 한 여학생이다.
유미나는 위험한 상황이면 구하고 신나래는......"
입안이 썼다.
"남동생이 죽는 걸 그녀가 봤다 확신하면 그녀를 몰래 따라가."
"그것 참. 대단하신 사후케어군."
참을 수 없다는 듯 튀어나온 리타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트래디멘트가 말했다.
" 그녀가 누구와 말하는지,그녀에게 누가 접근하는지,그녀가 어떤 계약을 하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어떠한 힘을 주는지 감시해서 그녀를 보다 쉽게.....처리한다."
"......이런 거 맘에 안 들어요."
"그러게 꼬맹이 너는 그 깡통이랑 같이 있으랬잖아."
"그렇지만 거기 있으면 베로니카 언니가 자꾸 야채만 먹이려 드는 걸요."
자신의 옆에서 티격태격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는 살짝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 누가 뭐래도 자신은 이들을 구해냈다.
그러니까 그것만 생각하자. 잃은 이들,앞으로 잃을 이들을 생각하면서도 나아갈만큼 그는 강하지 못했으니까.
콰과과광! 학교의 벽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메인스토리의 시작이었다.

웅앵웅 장편쓰고 싶어.....
응애 나 아가챈럼 필력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