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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의 진면목을 깨닫고 무너져 있던 나를 일으켜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래디씨였다.


내가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나온 것인지 그가 나를 일으켜주며 말했다.



"대시 양이 너무 심하게 말한 모양이군. 대신 사과하겠네."


"심한 말이요? 어째서요? 싸장님이 가르쳐주신거잖아요!"


".....대시는 너무 강해서 문재라네."


"너무 강해요? 사장님도 그렇고 리타 언니도 그렇고 다들 저보다 훨씬 강한걸요?"


"그렇지. 하지만 적한테 망설임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건 자네일걸세."


"...."



대시는 트래디 씨의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 있는지 얌전히 있었다.

그 말대로 대시라는 여성은 모두에게 상냥했던 대신 자신을 상처입혀왔다. 그리고 지금은 역으로 모두에게 상처입히는 것으로 그 상냥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나진 군. 일어날 수 있겠나?"


"....."


기운이 쭉 빠진 나는 순순히 트래디 씨의 도움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여기서 나가봤자 나는 그냥 단순한 외국인 부랑자 1 밖에 안 된다.


무기력하게 방을 올라가던 그 때 트래디 씨가 내 정신을 확 깨우는 한 마디를 했다.



"그....혹시 나진 군은 아이돌에는 관심이 없나?"


"아이돌이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면 조금 더 내 말을 쉽게 믿지 않을까 싶은데....혹시 하트베리라는 그룹에 대해 아나?"


"당연히 알죠!"



나도 모르게 흥분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트베리. 특이하게도 멤버 5인 전원이 카운터라는 파격적인 구성을 한 아이돌 그룹이다.

사실 아이돌 그룹이라 하기에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콘서트도 열지 않아 사실상 방송인같은 느낌이다.

실제로도 자신들이 방송이 더 잘 맞는다고 밝힌 적도 있었고.

어찌됐건 하트베리의 각 멤버들은 각양각색의 매력을 발산하며 지금은 명실상부 현 그라운드 원의 탑 아이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트래디 씨의 입에서 그 그룹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숨조차 참고 트래디 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먼저 묻겠는데 나진 군은 어떤 멤버를 가장 응원하나? 모두,라던가 같은 형식적인 대답은 듣고 싶지 않네."


"어....저는 루미요."


"그런가. 다행이군."



트래디 씨는 작게 웃었다. 계속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에서 잠깐 보인 그 미소는 너무나도 고혹적이라 순간 나도 흠칫할 정도였다.


트래디 씨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방에 돌아와 컴퓨터를 키고 트래디 씨와 나란히 앉아 마침 라이브 중이던 하트베리 방송에 들어왔다.


멤버 전원이 생활패턴이 제각각이기에 왠만해서는 하트베리의 방송은 늦은 새벽을 제외하고는 항상 켜져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운좋게도 오늘은 멤버 전원이 모여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야가 말하기를,우으 보미 선생님! 전 못하겠습니다. 라고 했지. 그러니까 보미가 말하기를 보미 폐하라 불러라! 그러는 거야."



-폐하

-뭘 할깝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야는 합니다!

-아이고,보미 폐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그만 말해 루미야.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비굴해지지는 않거든요?"


"거짓말....휴가 타낼 때 이나 언니한테 너무 어려보여서 반말쓸 뻔 했다고 아부하는 거....다 들었어."


"엑? 그,그걸 어떻게?"


"루시드가 알려줬어."


" 헨젤을 같이 데리고 가라 했던 게 설마!"


"미야는 너무 순진하다냥. 상식적으로 루시드가 아무 이유없이 행동할리가 없잖아....냥."


-ㅋㅋㅋㅋㅋㅋ

-보미 컨셉 지키라고 아 ㅋㅋ

-이건 뭐 보미가 댕댕이 파로 전직했다 봐야.

-이제 말끝마다 멍 붙이는 거임?

-오

-오히려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미야 바로 구라 들통나죠?

-메모....이나 눈나는.....미야보다 어리다.

-아닌데?

-메모...최이나는.....아줌마다.....

-삭제됨

-삭제됨

-삭제됨

-ㅋㅋㅋㅋ그 발언 떳네

-전 항상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아,안녕하세요. 이나 언니.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음, 오늘도 여전한 방송텐션이다. 보통 팬과 아이돌 사이에선 팬이 더욱 갑인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하트베리와 같은 경우는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다른 일을,아니 오히려 카운터로서의 삶이 더욱 권유되었기에 역으로
팬들은 하트베리외 친근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선은 넘지 않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였다.


까놓고 말해서 악플을 달았다가 멤버중 누가 죽이러 와도 그 멤버는 카운터 특사로 금새 풀려날 게 뻔했기에.



나도 모르게 킥킥대며 정신없이 방송을 보던 중 트래디 씨를 힐끗 쳐다봤다. 그의 눈은 고요하게 멤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네?"


"내가 저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아,그건 그냥 챗을 치시면 돼요."




그러고보니 하트베리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트래디 씨였지. 트래디 씨가 무슨 내용을 치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딸깍-



채팅입력칸애는 챗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다


-기분나쁜 욕설금지!
-성희롱,음담패설 금지!
-그외 멤버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내용 금지!
-최이나는 누나입니다.
-'선생님' 언급 금지!


키보드를 두드리려던 트래디 씨의 손이 하공에서 멈췄다.



"이....선생님 언급 금지라는 건 뭐지?"


"아, 그거요? 가은이랑 루시드가 예전에 선생님이라는 한 남성분한테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구요. 방송 일도 그 분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구요."


"말만 들어서는 좋은 이야기같은데 아닌가?"


"그야 그렇죠. 그런데 그 이야길 방송에서 해버리니까 온갖 악질들이 다 그 선생님을 사칭해서 오는 경우가 너무 많아져서요. 가은이랑 루시드가 그냥 깔끔하게 선을 그었죠.
자기들 때문에 방송을 망칠 순 없다고."



"그....그러면 그 내용을 채팅으로 치면?"


"아마 바로 쫓겨날걸요? 게다가 가은이랑 루시드는 그 이야기하는 사람있으면 바로 괘씸죄로 영구적으로 정지먹이기도 하고요."



트래디 씨의 손은 잠시 키보드에 머무르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자,잠시만 시간을 주게."


그렇게 말하더니 트래디 씨는 턱에 손을 짚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방송은 계속 진행됐다.


대규모 vr게임 앞광고영상이었는데 사로 티격대며 싸우는 모습이 또 재미있었다.



"그래. 그거면 되겠군."


트래디 씨는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가은 양, 눈은 괜찮은가?



그리고 그 채팅은 마침 미야가 뒤로 자빠짐과 동시에 수많은 ㅋㅋㅋㅋ의 채팅에 묻혀 사라졌다.



"음...."



"후원을 해보실래요?"


"후원?"


"네. 여길 이렇게 누르고 이렇게 하면....지금 방송을 하는 사람들한테 금전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쓴 채팅을 프로그램이 읽어주고요."


"오."


트래디 씨는 내게 고맙다 말한 후 자신의 단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갑'없는 사장님이 1크레딧 후원!]
후원은 이렇게 하는 거로군.


실로 평범한 메세지. 하지만 그럼에도 멤버들은 새로 오신 분 반갑다느니 하는 등의 멘트를 착실하게 던져주었다.


['갑'없는 사장님이 1000크레딧 후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네.


상상을 초월하는 후원 금액. 그것도 단 한 번 채팅으로.


채팅창은 순식간에 불붙기 시작했다.



-아니 씨바 뭐임?

-후원 멈춰~~~~

-린저씨 멈춰~린저씨 멈춰~린저씨 멈춰~

-ㅋㅋㅋㅋㅋ개백수엠생들 오열 시작 ㅋㅋㅋㅋ




잠시동안의 침묵 후 미야가 입을 열었다.


"어...겁없는 사장님. 1000크레딧 후원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가 식비랑 이벤트 비용으로 잘 쓸게요! 와,와아...갑자기 이런 큰 돈이라니 우으으...."


"미야는 너무 겁쟁이인게 문제야. 우리가 좋아서 저 금액을 주신 거잖아? 우리가 괜히 주눅들 필요없어."



가은의 쿨한 멘트를 뒤로 채팅창은 진정되었다.

트래디 씨와 방송을 보기를 몇 십분, 정규 방송은 마무리 되는 시간이었다.



"자, 그럼 오늘도 일단 해 보는 무엇이든 질문 타임!!!"


"또 이상한 거 나올 것 같은데....."


"아하하. 그런 건 이나 언니가 알아서 잘라주겠지냥."


트래디 씨는 뚫어져라 방송을 보며 내게 물었다.


"무엇이든 질문은 그 의미 그대로인가?"


"네. 후원 금액이 그 날 제일 많았던 사람한테 질문할 권리 3개를 줘요. 근데 큰손들이 엄청들 써서 일반 시청자가 따기에는 무리가 있-"



['갑 '없는 사장님이 1만 크레딧 후원!]


"어? 어어.....????"



다시 한 번 굳어버린 멤버들과 무수하게 찍히는 채팅창의 갈고리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던가.

겨우겨우 분위기가 진정되고 질문을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럼 어서 질문해주세요. 미리 말하겠지만 채팅창이랑 비슷한 규칙을 따라요. 예이~"


가은이 기운없는 멘트를 던졌다.


"나진 군. 묻고 싶은 질문이 있나? 나는 하나만 물어보면 된다네."


"네? 저,저요? 저는....."


잠시 생각한 나는 내 질문 2개를 트래디 씨에게 전해주었고 트래디 씨는 나 대신 질문의 답을 얻어주었다.


"뭔가....되게 허무하네요. 이런 게 질문권? 내 기대는 대체."


"원래 인생이란 게 다 그렇다네. 혹시 이 질문,얼굴을 마주보고서는 못하나?"


"마주보고요? 가능이야 한데 저런 애들 앞에서 얼굴 공개를 하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아."



그 순간 나는 내가 누굴 보고 있는지 깜빡했다.
저 애들한테 얼굴공개가 쪽팔린다고?

적어도 트래디 씨만큼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자부해도 좋다.

나는 웹캠을 켜 트래디 씨가 보이게 비춰주었다.


그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와...."


그와 반대로 채팅창은 뜨거웠지만.


-씨발 죽어죽어죽어죽어

-엄마 난 왜이래? 엄마 난 어ㅐ이래?

-ㅋㅋㅋㅋㅋ

-한강 물 어떠냐

-저 와꾸에 1만 크레딧 쾌척? 내 인생은 대체....?

-이딴 게 인생?

-아 개좆망겜이네. 나도 인생리세하러 간다.



트래디 씨가 조용히 키보드를 두들겼다.


'가은 양과 루시드 양에게 묻고 싶네. 자네들은....행복한가?'



그 순간 루시드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얼굴....약간 틀리기는 하지만 분명히....아냐,설마 그럴 리가...."


'대답을 듣지 못했네.'


"네. 행복해요. 루미는 좀 틱틱대긴 해도 착하고 보미는 뭐 잘 자고 루시드도 잘 대해주고 헨젤은 이제 굴러도 할 수 있고...."


계속해서 카메라를 노려보던 루시드 대신 뒤에 있던 가은이 대답했다. 다른 멤버들은 루시드가 왜 저러나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가."


트래디 씨가 마이크를 켜고 육성으로 말했다.
살짝 웃으면서.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그거 다행이군."



가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메라로 다가왔다.


"선ㅅ-"


바로 다음 순간 트래디 씨는 웹캠과 마이크를 껐다.



"미안하군 나진 군. 나도 아직 어른은 못 된 모양이야. 아직까지도 부끄러울 줄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눈치못채면 내가 바보다.



"당신이 그 선생님....? 가은이랑 루시드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딱히 한 것도 없는데 그렇게 치켜주면 이 쪽에서 부끄럽다네. 애초에 내가 생각해서 한 일도 아니고."




트래디 씨는 충격적인 사실의 연속에 멍하니 있는 내가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여기서 제안인데 저들과 직접 만날 기회정도는 얼마든지 주선해줄수 있다네. 어떤가? 하트베리의 아이들과 이야기한 후라면 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줄 수 있겠지?"



"그...."


"편하게 말해도 된다네."


"그......야....."


"음?"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그는 신이야!"






심각한 이야기? 원래 죽을 운명? 그게 뭐 어쨌다는 이야기인가? 하트베리와 팬미팅? 그것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다가 가은과 루시드의 은인인 선생님인 트래디 씨까지 대동하고 가면 나는 무적이다.



이걸 참아???????







"지금이라면 난 트래디 씨가 하는 무슨 말이라도 믿을 수 있어요."




"다행이군. 자네 누나를 구하고 전 세계를 멸망의 위험에 빠뜨릴지,
아니면 자네 누나를 유미나가 죽이는 것을 방관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는데.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네 마음의 짐이 덜어진 느낌이야."
















어.  그렇게까지 심각한 이야기일 줄은 몰랐는데.






쓰다보니 어째 점점 멘스랑 멀어지는 기분.
코핀 언제 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