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원에서 살고 있는 박승태 씨에겐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바로 자기가 운영 중인 대형마트의 매출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범인은 명백하다건너편에 새로 입점한 다른 대형마트 때문이다저 상도덕도 없는 놈들은 오픈 기념행사라며 전 품목 세일이라는 미끼로 그의 소중한 고객들을 낚아채가고 있다

 

모름지기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은 물건의 질과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박승태 씨의 지론이다그렇지만 그 주장을 계속 이어나가기엔 상황이 심각하다방금도 단골 고객 한 명이 발을 돌려 경쟁 마트로 향하는 걸 본 참이었다.

 

그렇다고 물건 가격을 내리기엔 재정상황도 여의치 않다작년에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를 하느라고 이미 큰돈을 끌어 썼기 때문이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

 

만약 당신이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고객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겠는가?

 

일단박승태 씨는 이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XX 마트 2주년 기념 40% 특가 세일추첨을 통한 사은품 증정!

 

자기가 망하기 전에 저놈들이 망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라면계란양파마늘, 3분 카레... 뭐가 있더라.”

 

유미나는 쇼핑 중이었다행사 중인 마트는 자신이 원래 가던 마트보다 훨씬 저렴했다.

 

저번에 왔을 땐 공과금을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라 라면밖에 사지 못했다그때 얼마나 서러웠던가억울함에 며칠 동안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월급날이다통장에 찍힌 돈을 떠올려본 유미나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꽉 찬 카트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위태했다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슬금슬금 피해 다니는 듯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고민하던 유미나가 기어이 라면 두 봉지를 추가하고 나서야 쇼핑은 끝났다유미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게 야스지.

 

 

“2등 상품! 72인치 tv에 당첨되실 분은.. 42! 42번 고객님입니다다들 축하해 주세요!”

 

밖에선 마지막 행사인 추첨이 진행되는 중이었다수많은 인파 사이 한 여성이 추첨권을 손에 쥐고 환호하는 게 보였다.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딱히 당첨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이젠 대망의 1휴양도시 FH-8의 세계 최대급 테마파크네버랜드 자유이용권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이 티켓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유미나는 카트를 몰아 계산대 앞에 섰다산처럼 쌓인 물건을 보고 당황한 직원이 유미나에게 물었다.

 

“...이거 전부 손님이 계산하실 건가요?”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아뇨계산해 드릴게요...”

 

잠시 계산대를 쳐다보던 유미나의 귀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망의 1놀이동산 자유이용권에 당첨될 행운아는바로...! 축하드립니다, 113번 고객님!”

 

누군진 몰라도 운 좋은 사람이 당첨된 모양이다유미나는 별생각 없이 흘려들으려 했다사회자가 힘차게 외친 숫자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않았더라면.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구겨진 종잇조각이 만져졌다지난번에 라면을 사고 받은 추첨권이다유미나는 홀린 듯 종이를 꺼내 펼쳐보았다.

 

113

 

당첨이다.

 

“113번 고객님 안계십니까? 113번 고객님마지막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5, 4, 3..”

스토오오옵! 113번 여기 있어요오오!”

 

 

 

 * * * *

 

 

 

놀이동산에 같이 가자고요?”

신기한 일이군돈 없다고 매일 징징대던 네가 이런 사치를 부리다니.”

 

테이블 위에 다리를 뻗은 힐데가 말했다옆에서 서류작업 중이던 이수연이 눈을 찌푸렸다.

 

아하하어쩌다 보니 자유 이용권이 생겼거든. 3인 이용권인데같이 가면 안 되려나?”

저는 당연히 가야죠.”

당연히 나는 안 갈거다.”

 

엇갈린 대답이었다싱글거리는 주시윤과 달리 힐데의 표정은 반쯤 썩은 상태였다.

 

잊고 있나 본데난 너네 둘을 합친 것보다 오래 살았다놀이동산 같은 유치한 곳에 갈 나이는 지났다는 뜻이지.”

“...그래도 같이 가면 재밌을 거 같은데.”

 

시무룩한 표정의 유미나 뒤로 주시윤이 슬쩍 다가왔다입을 가린 주시윤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스승님은 그저 놀이동산에서 꼬맹이 취급 받을까 봐 저러시는 겁니다이건 비밀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

 

콰직!

 

“...쓸데없는 주둥아리 닫아라.”

 

날아간 볼펜이 벽을 부수고 꽂혀있었다이글거리는 눈빛을 마주한 주시윤이 입을 다물곤 조용히 물러섰다.

 

벽 수리비는 스승님 월급에서 제하겠습니다.”

소대장의 잘못은 소대 전부가 책임지는 법이지까인 월급만큼 펜릴 소대 공금에서 가져가마.”

“...물어본 내가 등신이지가자선배.”

 

한숨 쉰 유미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뒤따라 일어난 주시윤이 그 뒤를 따랐다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수연이 나직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군요내가 대신 가주-”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두 사람이 듣지 못한 것인지아니면 듣고도 무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이수연의 말이 씹혔다는 거.

 

푸훗.”

 

옆에서 힐데가 작게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이수연의 머리에서도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와장창!

 

뭔가 갑자기 시끄럽지 않아?”

냅두세요두 분이 저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한바탕 시끄러워진 방을 뒤로하고 유미나와 주시윤은 함께 갈 사람을 찾아 코핀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일행을 구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알트 소대는 작전 중이라 불가레나 씨와 클로에 씨도 불가마키와 나이엘은 아카데미 때문에 불가다른 사람들도 난처한 기색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사장이었지만... 그건 유미나 쪽에서 사양이다애초에 로봇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정말이지같이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그러니까 평소에 저처럼 인맥을 잘 쌓아두셨어야죠.”

한 명도 못 구한 건 선배도 마찬가지거든?!”

설마 지금 자기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건가요이야미나 양도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네요.”

됐어그냥내가 말을 말지.”

 

이대로라면 모처럼 받은 이용권도 못 쓰게 된다유미나는 한껏 우울해졌다

 

아쉬움에 괜히 땅만 발로 차던 그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죠미나 양이랑 저둘이서 갈까요?”

“..둘이서 가자고그치만 이 티켓은 3인용인데?”

최대 3인까지 입장 가능한 거지 반드시 3명을 모아서 갈 필요는 없잖아요?”

 

당황한 유미나가 급히 이용권을 꺼내 읽어보았다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설마 모르고 계셨나요그러면 지금까지 계속 돌아다닌 게 3명을 꼭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나도 알고 있었거든!”

 

실은 몰랐다놀이동산 티켓을 끊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찜찜하단 듯 유미나를 쳐다보던 주시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 양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그러면 언제쯤 가실 생각이세요?”

.. 그러니까혹시-

 

 

 

 

다음 주 월요일.

 

우와... 여기가 네버랜드구나...”

그러다 입에 파리 들어갑니다.”

 

테마파크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화려했다하늘에서 꽃망울이 터지고 화려하게 색칠한 드론들이 날아다니는 모습꽃 모양 가로등에선 진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앞서 들어간 사람들도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TV에서 본 광고보다 훨씬 화려해..”

이러고 있으니 예전에 놀이동산 갔던 기억이 떠오르네요그때도 단둘이서 갔었죠.”

으윽그때 이야기는 하지 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유미나가 고개를 뒤흔들었다잠시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흘려 넘긴 주시윤이 활기차게 말했다.

 

월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참 많네요우리도 슬슬 가 봐야 하지 않겠어요?”

“..말 돌리긴뭐부터 탈 건데?”

첫 순서론 미나 양이 타고 싶은 걸로 하죠뭐부터 타실래요?”

나부터으음그러면...”

 

잠시 고민하던 유미나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거?”

 

 

 

 

 

네버랜드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놀이기구들도 다양하다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최고 명물이라 불릴 법한 어트랙션이 있다바로 드래곤 버스터(Dragon Buster).

 

높이 192m, 강하 길이 158m. 최고속력 280km에 낙하각도 95°.

 

세계 기록을 몇 개나 갈아치우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롤러코스터.

 

유미나와 주시윤은 그 맨 뒷줄에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아파트 73층 높이에서 자유낙하한 뒤 7번의 360° 회전터널을 통과하고 다시 3번의 회전을 거친 후 130m 높이에서 2번째 자유낙하.

 

아무리 카운터라도 이 정도면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달리던 롤러코스터의 앞에 불기둥이 솟아났다화염이 롤러코스터를 집어삼키기 직전타오르던 불기둥은 사라지고 대신 물보라가 일었다뜨거워진 공기를 순식간에 식히는 물방울.

 

쳇바퀴처럼 크게 원을 돌고 꽈배기처럼 몇 번 비틀리던 롤러코스터는 이제 거꾸로 달리는 중이다.

 

남은 코스를 완주한 롤러코스터가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 유미나는 이미 반쯤 폐인이 된 모습이었다멈춰 선 롤러코스터에서 내린 주시윤이 힘없이 물었다.

 

미나 양... 괜찮아요?”

 

유미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이다

 

처음 탄 놀이기구가 이딴 흉물이니 그럴 만도 하지안쓰러워진 주시윤이 재차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유미나가 고개를 들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미나의 눈빛에 주시윤이 흠칫한 순간,

 

“...이거 완전 재밌는데?! 선배한 번만 더 타자!”

한 번 더 타자고요하하이거 참 곤란한데요..”

아직 줄도 없잖아빨리 와빨리!”

잠시만요갑자기 새끼발가락에 은은한 통증이... 와악잡아당기지 마세요!”

 

주시윤은 결국 내리 3번을 더 탑승해야만 했다.

 

 

 

“...미나 양잠시만 쉬면 안 될까요?”

뭐야벌써 지쳤어?”

 

막 자이로드롭에서 내려온 주시윤이 비틀거리며 근처 벤치에 걸터앉았다표정이 창백한 게 엄살은 아닌 듯 보였다유미나는 살짝 미안해졌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하지 그랬어.”

하하하... 미나 양은 안 힘들어요?”

나는 괜찮은데이렇게 된 거 잠깐 쉬지 뭐음료수라도 마실래?”

 

바로 옆에 자판기가 있었다유미나가 거침없이 음료수 하나를 뽑아 던졌다

 

잘 마실게요미나 양솔의 눈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청량해서 좋지 않아?”

“...하하.”

 

주시윤과 유미나는 나란히 앉아 음료를 마셨다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적당히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런 거도 나쁘지 않구나.

 

유미나가 잠시 지금을 즐기던 그때주시윤이 말했다.

 

미나 양저한테 좋은 제안이 하나 있는데요.”

제안뭔데?”

게임 한번 하시죠진실게임예전에도 했었죠?”

으엑선배는 진실게임 왜 그렇게 좋아해?”

하하그야 재미있으니까요그럼 저부터 질문혹시 회사에서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신경 쓰이는 사람?”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사장님이지만사람이 아니니 제외

 

아니그보다 사장 행세를 하는 로봇이 신경 쓰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애초에 회사의 남자라고 해 봐야 시윤 선배를 제외하면 몇 명...

 

시윤 선배?

 

 

딱히 없는데.”

“...우와실망인데요.”

 

주시윤은 진짜로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다행이다그 덕분에 붉어진 얼굴을 감출 수 있었으니까.

 

 

아니진짜로 신경 쓰인다는 건 아니고.

 

쪼금아주 쪼끔 생각나는 정도?

 

이 정도면 거짓말한 것도 아니지.

 

 

그러면 내 차례지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바나나우유요.”

“..소대 냉장고에 바나나우유 채워놓는 사람 선배였어?”

그걸 이제야 아셨다니소대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시네요.”

 

그 뒤로도 게임은 계속 이어졌다

 

제일 기분이 좋을 때는?

월급 들어왔을 때.

무서워하는 건?

스승님.

스승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귀엽다소대장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

 

꽤나 쉰 거 같은데마지막 질문 하고 슬슬 일어나시죠.”

 

그 말을 듣곤 잠시 머뭇대던 유미나가 작게 물었다.

 

선배는 혹시 회사에서 신경 쓰이는 사람있어?”

있어요.”

 

즉답이었다.

 

빠른 대답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속뜻을 이해한 유미나의 머리가 빙빙 돌았다.

 

있다고진짜누구?

 

설마혹시만약에어쩌면 그 사람이-

 

꿀꺽.

 

 

누군데?”

이런이런두 번 질문하는 건 반칙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그래서 더 애타는 말이기도 했다.

 

속으로 안절부절하는 유미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주시윤이 슬쩍 운을 띄웠다.

 

“...알려드릴까요?”

알려줘!”

 

즉답이었다.

 

작게 웃던 주시윤이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게 누구냐면요....”

 

 

 

 

 

“...스승님입니다.”

?”

실은 작전 끝내고 복귀할 때마다 제 부식이 몇 개씩 사라져서 말이죠스승님이 몰래 훔쳐먹는 거 같아서 예의주시 중입니다.”

“....진짜놀리지 마!”

 

그만 허탈해져버린 유미나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걸로 사람 놀리면 재밌어?”

어이쿠하하저는 진지한데요미나 양도 누가 자기 부식을 빼먹으면 신경 쓰이지 않겠어요?”

말이나 못 하면.”

 

그때 테마파크에 세워진 종탑에서 종소리가 들렸다정확히 11. 11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조금 이르지만밥이라도 먹으러 가실까요?”

“...밥은 선배가 사는 거다.”

하하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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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은 몰?루

열심히 쓰고 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