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었다.
나를 향한 싸늘함은 어느 정도 사라진 듯했으나, 그뿐이었다.
오르카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는 오르카에게 다가가기를 꺼려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녀가 침식체를 썰러 나가고, 돌아오면 내가 초콜릿이나 마시멜로를 주고 다시 나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오르카와 서먹하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르카가 매일 다량의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소비한다면 내 가방은 금방 빌 것이다.
그리된다면 내 목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별 방법이 없다.
아무리 아이라도 오르카는 카운터
나 같은 놈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반항하면 찔리기밖에 더 할까 내 말을 듣지는 않겠지.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서...'
어제 오르카가 꼬치를 만들겠다며 뽑아온 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를 꺾었다.
마침 옆에 떨어져 있는 유리 조각을 옷으로 감싸 쥔 후 나뭇가지의 끝부분을 뾰족하게 갈았다.
그러자 나름 그럴싸한 창이 완성되었다.
굉장히 초라했지만 침식체를 상대로 조금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이걸로 오르카를 이길 수 있을까?'
잠시 기대를 품었으나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침식체를 단칼에 반으로 갈라버리는 카운터를 내가 무슨 수로 이기나.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한 생산적인 활동이여서 흥분했나보다.
생사가 오가는 곳에서 흥분은 곧 죄악이다.
곧바로 죽음으로 연결되는 감정이기에 그렇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창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봉이 하늘을 가른다.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쉬익, 하며 공기를 찢어버리는 파열음이 형성된다.
무언가를 휘두르는 게 얼마 만일까.
신체에 각인된 익숙한 동작을 반복하자, 저절로 기억하고 싶지 않던 과거의 기억이 상기되었다.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
강렬한 라이트가 비치는 그라운드에서,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빛을 내는 선수를.
부상으로 꿈을 놓기 전까진, 그랬다.
멍하니 창을 휘두르고 있자, 얼마 후 오르카가 돌아왔다.
또 얼마나 많은 침식체를 학살한 건지 침식체의 조각과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오르카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로 인한 아름다운 외모는 그대로 빛난다.
오르카는 내 나무창을 흘깃 쳐다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껏해야 초콜릿이나 마시멜로를 내놓으라 할 줄 알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따라와."
"예? 어디를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부터 오르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피가 뚝 . 뚝 떨어지는 오르카의 단검을 보면 존댓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르카는 내 반문을 무시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르카의 걸음은 매우 빠르다.
금방 따라가지 않으면 시야에서 놓쳐버린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나는 어느새 오르카가 사라진 현관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리곤 소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오르카의 말을 거스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 따르는 수밖에.
.
.
.
대략 20분 정도 뛰었을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침식체와 교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근처에 침식체 기척만 나도 "침식체는...죽인다!" 하고선 달려가 도륙을 내버리는 탓에 우려 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르카를 따라가 도착한 곳은 녹이 가득 슨 폐함선.
왜 함선이 여기 쳐박혀 있는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침식체랑 싸우다 좆됐다 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개연성이 없지는 않았다.
외형으로 봐서는 이게 무슨 함선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크기도 굉장히 작은 것으로 보아 인게임에 등장하는 함선은 아닌 듯했다.
오르카를 따라 함선의 안으로 들어갔다.
'꼭 이런데 들어가면 큰일 나던데...'
마음 같아선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에 혼자 있는 것이 더 위험했다.
오르카가 나에게서 멀어지면 사방에서 침식체가 날 덮쳐오겠지.
함선에 들어오자 먼저 조종간이 날 반겼다.
검은 모니터들은 조용히 빛을 삼키고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레버나 버튼들은 먼지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구석구석 거미줄이 가득했다.
'꽤 오래 방치된 건가?'
사람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함선은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적막함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오르카의 외침이었다.
"침식체는... 죽인다!"
나와 꽤 떨어져 있는지 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다만 내 신경을 경각시키기엔 충분했다.
'이곳에도 침식체가 있다.'
창을 손에 힘을 줘 쥐었다.
숨을 죽이고 모든 신경을 눈과 귀에 집중한다.
두근두근
어둡고, 적막한 함내에 심장소리가 울린다.
오르카의 전투는 요란한 소리를 동반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서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
침식체를 빠르게 처리했거나, 오르카가 당했거나.
'오르카가 당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러면 벌써 처리한 건가?'
그렇다면 빨리 오르카와 합류해야 했다.
처음 이세계에 온 이후로 오르카를 보고 반응했던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다.
이곳은 위험하다고.
터벅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그와 동시에 오르카에게 향하려던 내 몸이 경직된다.
공기의 흐름이 멈춘다. 세계의 소리가 없어진다.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열이 돋는다.
이것은 무엇인가?
오르카에게 느꼈었던 그 공포가, 아니 그 이상의 두려움이 닥쳐온다.
[크르르...]
뜨거운 숨결이 느껴진다.
다름 아닌 바로 뒤에서.
고개를 뒤로 돌려본다.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발을 움직여 본다.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팔을 움직여 본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미증유의 공포란 그런 것이다.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부정 되면서 동시에 죽음의 충동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죽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죽는 건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애석하게도 죽음이 닥쳐오자 생각나는 건 다름 아닌 오르카였다.
왜 오르카였는지, 하필 오르카 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단지 그녀를 생각하자 머릿속이 '살고싶다'라는 단어로 가득 채워졌다.
터벅
굳은 발 하나를 움직였다.
그러자 몸의 주도권이 내게 돌아왔다.
"오르카! 침식체!"
곧바로 소리를 질러 상황을 알리고 나무 창을 들었다.
등을 보이면 죽는다.
도망칠 수는 없으니 시간이라도 벌자.
전체적으로 검은 외형에 군데군데 붉은 조각.
이목구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인간과 닮아 보였다.
[크아아악!]
나와 눈을 마주치자 침식체가 괴성을 지른다.
시간을 주면 안된다.
발로 창을 휘두른다.
공중을 가르며 파열음을 내는 창은 침식체에게 명중했다.
...인 줄 알았다.
침식체는 아주 멀쩡했다.
녀석은 내 창을 잡아 손쉽게 가져가더니 곧바로 두 동강 내버렸다.
눈 밖에 존재하지 않는 녀석의 얼굴이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침식체는 곧바로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먹에서 가시가 튀어나오며 내 몸을 구석구석 꿰뚫었다.
쿨럭, 하고 기침과 함께 입에서 핏덩이가 튀어나온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흐릿해진 시야로 바닥에 쓰러진 채 하반신을 쳐다봤다.
처참하게 뚫린 구멍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 아 "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엉금엉금, 어떻게든 기어가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잘되지 않았다.
침식체가 마무리를 하려는 듯 주먹을 높게 들어 올렸다.
'...끝인가? 괜히 들어와서는...'
삶에 딱히 미련은 없었다.
이미 나락으로 처박힌 현실이니까.
게임 속에 들어와서는 절망했지만 나름 만족했다.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오르카와 지내며, 행복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런 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나보다.
이제. 그냥 편히 쉬고 싶다.
더 이상의 저항을 멈췄다.
천천히 녀석의 주먹이 나에게 닿기를.
하지만 이놈의 게임은 날 도와주는 일이 없었다.
"침식체는... 죽인다!"
오르카가 도착했다.
소녀는 망설이지 않고 침식체를 덥쳤다.
침식체가 급히 주먹을 휘둘렀지만 오르카에게 가시가 닿는 일은 없었다.
스치는 게 고작.
가시를 피하며 침식체에게 당도한 오르카가 단검을 휘둘렀다.
나와는 다르게 오르카는 유효타를 먹이는데 성공했다.
픽, 하고 침식체의 피가 솟구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미친 듯이 단검을 난도질 한다.
"죽어!!! 죽어!!! 죽어!!!"
침식체를 상대할 때에 오르카의 모습은 마치 광인 그 자체였다.
'이길 수 있다.'
오르카라면 이길 수 있다.
푸확!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소녀의 복부를 가시가 꿰뚫기 전까진.
오르카가 넘어진다.
믿음직 했던 구세주는 그렇게 쓰러졌다.
'어떻게...'
침식체의 상태도 정상은 아녔다.
온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멀쩡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와 오르카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마지막 힘을 짜낸 일격일 터.
바닥에서 꿈툴거리는 오르카를 마무리하려는 듯 침식체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때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져있는 깨진 나무창을 줍고선 침식체를 향해 달렸다.
침식체도 내 존재를 파악한 듯 했으나 .
-푸욱
너무 늦었다.
침식체의 배에 창을 찔러 넣었다.
[쿠와아악!]
녀석이 울부짖는다.
침식체와 나는 동시에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오르카의 고통스러운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
.
.
불행히도 높은 곳에 있으면 뭐든 잘 보이는 법이다.
비극또한 예외는 아니다.
세상이 불타오른다.
검붉은 화마에 건물과 사람들이 삼켜진다.
침식체들이 무참히 사람을 유린한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안고 가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다.
뭐지 이건?
시야가 불타오르는 세계를 지켜보는 남자의 시야로 고정되었다.
방금까지 침식체와 싸우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오르카는?
"이번 세계도... 실패군..."
"뭐 익숙하시지 않습니까."
내 한숨섞인 말에 안대를 낀 여인이 대답했다.
어딘가 익숙한 여인이었다.
"익숙하지만, 적응되지는 않는군"
"어련하시겠습니까... 다음 세계에 저나 잘 챙겨주세요"
그리 말하는 여성의 얼굴은 왜인지 침울해 보였다.
"물론이지. 특히 밤에 최선을 다하겠네"
"지금 장난이 나옵니까?"
"하하하...어헉!"
그리 말하곤 웃다가, 이내 여인이 내 등을 세게 때렸다.
그 고통에 나는 눈을 떴다.
.
.
.
낯선 천장이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관찰하는데, 익숙한 소녀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 놀란다.
붉은 눈, 흰 회색 머리
오르카다.
"...아! 괜찮아?..."
그러고는 다정한 말투로 나를 걱정하는데...
"뭐야, 너 오르카 맞아?"
아무래도 오르카가 이상해진 것 같다.
분량조절 실패...급발진... 전투씬 실패....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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