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애호해조] 고슴도치의 딜레마

고슴도치의 딜레마 2

 


* 6,7지 스포일러 있음. 안본사람 뒤로가기!



전편(1편)











 

뒤숭숭한 기분으로 다녀온 실전다이브에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미 토벌했던 4종 침식체, 네르비에를 만나는 것도, 가물거리지만 내 것이 아닌듯한 나의 기억을 떠올린 것도 모두 이상하고, 당황스러웠다.

 

개중엔 나이엘이 사고를 친 것도 있었지만. 본인도 반성하고 있고, 퇴각할 때 같이 싸워준 덕에 부상자가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난 그 일에 대해서 처벌을 줄여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런 일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선배와 나누면서 서있는 이 헬리포트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방금 한 나의 이야기에 선배는 대답 대신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뭐, 뭐야? 왜 그렇게 쳐다 봐?”

“아닙니다. 전 또 나이엘 양의 저축을 탈탈 털었다거나 하는 이유였나 했거든요. 서윤 양이 들으면 섭섭해 하시겠네요.”

“그, 그때 이야기는 좀 하지 말라니까!”

 

 

 





나의 반응에 선배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예전에 강렬한 첫인상 이야기도 그렇고, 선배가 자꾸 흑역사 같은 걸 들춰서 그런 걸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선배를 째려보며 화끈거리는 얼굴에 괜히 손부채질을 했다.

 

 

 

“하하하, 그런데 그 레이 선배라는 분은 아직 연락이 안 되나요?”

“어? 으응, 돌아는 왔다는데 전화를 안 받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네르비에와 싸울 때 분명 선배를 본 것 같거든? 그런데 그때 상황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

 

 

 

그러고 보니 레이 선배는 괜찮은 게 맞는 걸까. 돌아는 왔다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사라진 것도, 다친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등교하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그렇군요.”

 

 

 

오늘은 언니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하니, 소대장이 가는 길에 내려준다 했다.

아마 곧 있으면 수송기가 도착할 것이다.

 

...

또다시 마음이 뒤숭숭하다. 자꾸만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 멀어져만 가는 주변인.

 

말해볼까.

또 따로 만나 얘기하자고 하면 이상할까? 고민 상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이건... 푸념에 가까운데.

 

물어볼지 말지 갈등하면서, 나의 입은 뻥긋하고, 다물기를 반복했다.

 

 

 

“선ㅂ...”

“수송기가 도착했다. 신입. 얼른 탑승해.”

“...아, 알았어! 소대장! 지금 갈게!”

 

 

 

그런 고민은 소대장의 목소리에 별 수 없이 속으로 삼키고, 나는 다급히 수송기에 탈 준비를 했다.

 

 

 

“어라? 오늘은 스승님이랑 같이 퇴근하시나요?”

“응. 내일은 비번이라 언니 병문안 가기로 했거든. 소대장이 중간에 병원에서 내려준대.”

“그렇군요. 오늘 왠지 스승님 표정이 좋지 않던데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선배의 배웅에 나도 조심히 들어가라며 손을 흔들고, 수송기에 탑승했다.

 

 

 

“선배도 조심해서 들어가. 다음 주에 지각하지 말고.”

“하하, 물론이죠.”

 

 

 

헬리포트에 서있는 선배의 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다.

 

 

음, 타이밍이 조금 나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중에 따로 연락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선배가 나에게 따로 보자며 연락했을 때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

 

 

갑자기 목덜미로 끼치는 소름에 나는 반사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미 너무 멀리 떨어졌는지 선배가 서있던 헬리포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대장이 왜 그러냐며 묻는 말에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로 대꾸하곤, 괜히 머리를 매만지며 언니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한참 동안 창밖을 보았다. 소대장이 이따금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선배의 말이 기억나서, 눈을 살짝 굴려서 본 소대장의 낯빛은 꽤 어두웠다. 이런 것에 좀 무딘 나도 한 번에 느껴지는 얼굴의 그림자였다.

 

소대장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까.

 

이젠 더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누구든 더 이상 신변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

 

한참 뒤, 수송기가 천천히 하강하는듯한 느낌에 나는 창밖을 보던 자세를 풀고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도착했다. 신입. 조심해서 가봐.”

“응. 고마워 소대장.”

 

 

 

“아, 그리고...”

“?”

“안 좋은 일 있는 것 같은데, 잘 해결되길 바랄게.”

“...그랬으면 좋겠군.”

 

 

 

나는 간단한 감사인사를 남기고, 수송기에서 천천히 내렸다. 곧, 수송기가 떠나며 부는 강풍에 머리카락이 빠르게 휘날렸다. 바로 병원으로 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오늘은 무의식적으로 헬리포트에서 떠나는 수송기를 올려다보았다.

 

 

 

“...하하.”

 

 

 

바보. 나 자신 간수하기도 힘들면서, 남 걱정을 하고 있다. 호구처럼 그런 걸 다 떠안는다.

 

수송기가 조금 멀어지고, 나는 천천히 병원으로 발걸음을 뗐다.

일단 언니가 잘 있는지부터 보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건 그때 생각하는 거야.

 

...

그렇게 생각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선배에게 언제쯤 연락하는 게 좋을지를 고민했다.

못 미덥긴 해도 푸념 정도는 괜찮으려나...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 위를 걸으며, 나 자신도 모르게, 정말,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차라리 지금 해보자. 

여태껏 선배가 먼저 연락을 했으니, 내가 먼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계속 미루면 고민하다가 주말이 다 가버릴게 뻔하니까.

 

나는 주머니에 꽂아 넣은 핸드폰을 들어 최근 통화목록을 띄웠다.

 

‘ 주시윤 ’

 

제일 윗줄에 표시된 이름 옆 통화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러, 귀에 가져다 대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ㅡ

 

 

 

바쁜가? 근데 맨날 뺀질거리는 사람이 바쁠 리가 있나? 그런 가벼운 생각과 함께 종료 버튼을 눌렀다.

레이 선배도 그렇고, 선배는 아까 대화도 했고, 바쁠 일도 없을텐데 왜 전원이 오프인 거야.

 

......

 

 

 

“...자꾸 딴 데 정신이 팔리네. 하아.”

 

 

 

미쳤나 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잊어버리고, 정말로 언니 먼저 잘 있는지 가보자.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ㅡ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ㅡ

 



전화기가 꺼져있ㅡ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

 

 


 

우중충한 방안 침대에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맞으며, 대(大)자로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은 화면만 꺼진 채로 무미건조한 음성을 내보내고 있었다.

 

원래 핸드폰 잘 안 보나? 왜 꺼놓는 거야?

 

몸을 돌려 베개에 턱을 올리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괜히 사라졌었다던 레이 선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다.

선배라는 인간들이 말이야. 특히 직장 상사...

 

그렇다고 해도 연락을 왜 안 받냐고 따질 순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부터 연락하겠다고 미리 말한 것도 아니고, 선배가 굳이 내 연락을 꼭 받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흥.”

 

 

 

그대로 고개를 숙여 베개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푸념을 하겠다고. 아니, 그냥 남한테 말할 이유가 없잖아. 새삼스럽게 무슨.

 

그냥 잊어버리고, 출근하면 간단하게 물어보면 되지.

왜 연락 안 받았냐고.

 

 

그냥 잊어버리고 쉬는 거야. 귀한 주말 시간을 마음 졸이면서 보내버릴 순 없으니까.

잊어버리자.

 

 

 

“점심... 그냥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빠르게 일어나서 주방 쪽으로 갔다. 뭘 더 해먹을 기분은 아니니, 찬장 안에 아껴두었던 컵라면 하나를 꺼내들었다.

전원이 켜진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데워질 때까지 조용히 내려다본다. 조금씩 부글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

 

 

근데 왜 연락 안 받았냐고, 물어보면 이상하려나?

 

 

 

“아.”

 

 

 

작은 탄식을 뱉었다. 이게 뭐라고 또 신경 쓰고 있는지.

 

그냥. 저번에 아카데미 수업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괜히 모든 게 신경 쓰이는 거라고.

미리 뜯은 컵라면에 물을 부으며,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

만약 별일 없는 게 맞으면, 저번에 선배가 사준 게 있으니... 나도 맛집이나 찾아놔볼까.

 

 

 

주말. 황금 같은 시간.

 

일단 신경 끄고 잊으려 애쓰려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을 잊는 걸 반복했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탓에, 솔직해지지 못한 감정은 심장의 고동과 답답함이 되었다.

 


그래서, 계속 잊는 건

잊자는 그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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