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애호해조] 고슴도치의 딜레마

 

고슴도치의 딜레마 5

 


* 6,7지 스포일러 있음. 안본사람 뒤로가기!




1편 2편 3편 4편








바로 눈 앞에서 보고 나서야 부정은 확신으로 바뀐다.

정말 창백했던 얼굴엔 이제 미소도 숨도 붙어있지 않았다.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고, 검을 쥔 손에는 분노가 서린다.

나의 검은 장갑이 검을 쥐면서 생기는 마찰에 거슬리는 소음을 낸다.

 

 

 




 

“그는 죽었습니다.”

 

 





 

아니야.

 

 




 

“당신이 아니었으면 여기서 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웃기지마.

 

 

 




“그를 죽인 건 당신이 한 것과 마찬가지죠.”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지 말란 말이야.

 

 

 

“너......”

“동료를 애도하는 모습이 이렇게나 보기 역겨울 수도 있군요. 당신이 저지른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겨우 이 정도로 슬퍼하는 건가요. 늑대여?

 







 

 



 

다시 한 번 또 잃는다.

 

 

 






 

고슴도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 다시 함께하지 못하고, 

 

 




 

“아, 어차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겠죠. 그것 참 편리한 변명이군요.”

“닥쳐......”

 

 




 

세워진 가시를 두려워하다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 당신을 위해 제가 친절히 가르쳐드리죠.”

 

 




홀로 추운 겨울을 맞는다.

 





뒤늦은 노력에도... 결국 나의 두 손에는 먼지만이 남는다.

모두 나의 옆을 떠난다.


자꾸만... 



떠난다...

 

 











 



“당신 때문에 죽은 그 소년은 용혈의 망령으로......”

“닥치라고 했어!!!!!”

 

 

 


성녀라는 여자의 끝없는 도발에 분노한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남겨진 고슴도치는 발악한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강하든 상관없어...”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에 핏대를 세우며 검을 치켜세워 성녀에게 겨눈다.

두려움이 아닌 절망감,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는 칼날에 스며들어 날의 끝을 떨리게 했다.

 

 

 

“내가 가진 힘... 그게 뭐든 전부를 걸어서라도...”

 

 

 

상실의 반복.

상실의 끝에 다다라 만난 분노는 갈 곳을 잃어버리고,

 

 

 



“널 쓰러뜨려 주겠어!!!”

 

 



 

눈앞에서 상실을 경험하게 한 장본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좋은 자세입니다... 늑대여.”

 

 




 

만족스럽다는 성녀의 미소에 분노를 참지 못한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여자는 공중에 떠올라 지팡이를 들어 올려, 끔찍한 침식파가 느껴지는 빛을 위로 모았다.

나에게 날아오는 빛의 구체를 쳐내 궤도를 틀어버리기 위해 검을 고쳐잡았다.

 

 

 

“크으윽...!”

 

 

 



내가 선배만큼 강했더라면... 아니, 선배가 살아있었으면!!

 

 


 

“네 까짓거!!! 죽여버리고도 남았어!!”

 

 



 

나는 빛의 구체를 쳐내고, 공중에 부유하는 성녀에게 참격을 가하며 인자를 폭발시켰다. 그러기 무섭게 성녀는 주위에 침식체들을 끌어모은 것인지, 융합체들을 앞세워 뒤로 천천히 후퇴했다.

 

이미 분노에 눈이 먼 나는 융합체에게 무차별적인 참격을 가하고,

신중히, 최소한으로 사용하던 인자는 어느새 쉴새 없이 허공과 침식체를 가리지 않고 연속적으로 폭발했다.

 

 



 

“죽어!! 죽어버려!!!”

 



 

 

달려든 융합체를 어느 정도 처치한 뒤. 나는 투명한 대리석 바닥이 부서질 만큼 CRF 출력을 발에 집중하여 공중으로 도약했다.

성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 위로 날아드는 나의 검을 지팡이로 가볍게 쳐내버렸고, 나는 지지 않고 낙법으로 착지하여 다시 CRF 출력을 올려 성녀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상실감에 눈이 뒤집혀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은... 그래, 저 여자의 말대로 이성을 잃은 늑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모든 것을 잃고 혼자 남아있는,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일 뿐이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살리지 못했어!!!”

 

 



 

금속과 금속이 만나 스파크를 일으키고, 키이잉-거리는 서늘한 소음이 내부에 메아리 쳤다.

성녀는 그런 나의 분노를 비웃으며, 다시 한 번 쥐고 있는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지팡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눈부신 빛이 번쩍이고, 쓰러졌던 융합체들이 다시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일어났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자아앙!!!!!!!! 죽어!!! 죽어버리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나는 목이 찢어질 기세로 절규에 가까운 욕설을 내질렀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길을 가로막는 융합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머리 같은 부분이 으깨지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목이 날아간다. 그들이 내뿜어 대는 구역질 나는 침식파는 나의 분노를 더 크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저 망할 여자를 죽인다. 복수한다.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가져간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구할 수 있었는데....!!! 너만... 너만 없었어도―!!!!”

 

 




 

다시 한번 금속과 금속이 부딪혀 소음을 낸다. 서로의 힘에 밀려 떨어지고, 나는 펄스 리볼버를 성녀의 머리 쪽으로 겨누어 CRF출력을 올렸다.


그러나 성녀는 나의 발악을 비웃는 것처럼 공중에서 가볍게 회피하고, 다시 한 번 빛의 구체를 나에게로 던졌다.

 

 

 

“방금까지 저급한 4종 침식체도 간신히 상대하는 수준이었는데......”

 

 

 

검을 고쳐 잡아 구체를 막는다. 구체가 밀어내는 힘에 대리석 바닥이 부서져 패이고, 뒤로 밀려난다. 연속된 전투에 지친 탓인지 이젠 궤도를 바꿀 수가 없다.

 

 

 

“짧은 시간에 급격히 성장했군요.”

“닥쳐... 닥쳐! 닥쳐! 닥치라고―!!!!”

 

 

 

구체의 출력이 꺼지자마자 나는 펄스리볼버를 겨누어 무차별적으로 성녀를 향해 난사했다. 성녀의 손짓에 융합체들이 다시 일어나 나의 공격을 대신 맞고 쓰러졌다.

다시 돌진해 성녀를 향해 참격을 가했다. 닿지는 않았지만 허공에 고출력의 인자를 터뜨렸다. 성녀도 출력량에 놀란 듯 잠시 뒤로 떨어졌다.

 




“이것도... 그 저주받은 늑대로서의 힘인가요?”

“늑대니 뭐니 그딴 거 몰라! 아니! 내가 알 바 아냐!!!”

 

 


 

나의 눈먼 공격에 성녀는 가뿐히 피하고, 나를 비웃었다. 그 비웃음에 난 눈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려보며 칼끝을 들어 성녀에게 겨누었다.

 

 


 

“지금 내가 아는 건... 여기서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




“너와 같이 죽겠어!!!!”





계속된 싸움. 어느새 나의 눈에는 상실감과 복수심에 북받쳐올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노려보면서도 그 눈물은 멈추지 않아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성녀는 여전히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조소를 띄워 보일 뿐이었다.





“후후...... 귀엽군요.”

 

 


 

또다시 내가 휘두른 검은, 장창을 든 침식체가 몸으로 받아내어버렸고. 성녀는 지팡이를 들어 하늘 위에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아직은 부족한 힘.”

 

 

 

그것은 마치 어딘가의 통로를 연상시키는 듯한, 아주 검고 짙은 구체였다. 지팡이의 끝에 응집되는 고출력의 에너지를 느낀 신체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해 떨리기 시작했다.

 

 

 

“그 이방인의 말대로 찌꺼기에 불과한 주제에 자신감만은 넘치는군요.”

“뭐라고..?”

“좋습니다. 장난은 이만 끝내기로 하지요.”

 

 

 

급히 저지를 해보려고 했지만, 길을 가로막는 융합체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선배를 죽인 장본인이 눈앞에서 날 비웃고 있다.

내가 죽더라도 저 여자만큼은...!!

 

 


 

“너도...”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몸뚱이뿐-”



“죽어버려ㅡ!!!!”



“뇌를 파내어 이지를 상실한 후에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가로막은 마지막 융합체를 쳐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검은 구체는 나를 삼킬기세로 점점 커지고, 가까워져갔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순 없는데...

 

 



 

찰나에... 나는 절망했다.

자포자기로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는다. 

 

 

 

“선배...”

 

 

 

나지막히 말하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BGM OFF)

 

 

 

 

 

 


 

 

 

 

 

 

“그만두시죠.”

 

 

“...!!”

 

 

 

아무 느낌도 침식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설마... 선...배...?”


“내 공격이 튕겨나갔어? 이 목소리는...”

 

 









 

당황한 성녀의 앞을 가로막고 선 그 형체는 외관이 좀 달라지긴 했어도, 분명한 선배의 모습이었다.

눈이 커지고, 심장이 다시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지금... 나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지......?”

 

 

 

성녀의 공격을 튕겨냈는지 빼들었던 검을 거두고, 선배가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계속 보았던, 기억하고 있는 그 미소였다

 

 

 

“하하, 물론이죠. 이번엔 정말로 위험하긴 했지만...”

 

 

 

변함없는 목소리로 선배는 멋쩍은 듯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심장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크게 들린다.

분노로 넘쳐버렸던 눈물은 다시 한번 안도감으로 흐른다.

 

 

 

“선배...!”

“그 상태에서 회복 따윈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글쎄요? 조상님들께서 쌓아두신 공덕 덕분이라고 해둘까요?”

“무슨 헛소리를...! 크윽?!”


“어이쿠,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성녀님?” 

 

 


선배는 다시 한번 성녀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곧 이내 다시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한치 거짓이나 가면 하나 없는, 푸른 눈을 뜨고 나에게 미소 지었다.

 

 

 

“이런... 미나 양, 제가 잠시 움직이지 못하는 새에 고생하셨네요.”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하, 미나 양의 이런 모습도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좋은 쪽은 아니지만. 미안해요.”

 

 

 

선배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장갑으로 눈물을 훔치는 나를 바라보았다. 선배는 나에게 위로든 뭐든, 무언가 해보려다가 영 아닌가 싶었는지, 양손이 어정쩡한 모습으로 허공에 떠있었다.

 

흘렀던 눈물을 닦아내고, 나는 그제서야 선배의 모습을 눈에 제대로 담았다.

못 보던 장비와 전투복, 왼쪽 어깨 위에 부유하는 독특한 헤일로-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참 듬직하고 멋진 모습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선배가 살아서 이렇게 돌아오면...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선배, 그 모습은 뭐야? 선배도 전투복을 받았던 거야?”

“아니요. 이건... 아마 제 먼 선조께서 사용하던 물건인 것 같네요.”

 

 

 

선배도 낯선 듯 자신의 검집에 꽂힌 검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좋은 거란 뜻이지? 잘 어울려 선배.”

“하하, 그럼요. 이건 제 유년기가 끝났다는 선물이기도 하니까요.”

 

 

 

나와 선배는. 우리는, 당황해 우두커니 서있는 성녀 쪽으로 돌아보았다.

빠르게 뛰던 심장의 고동이 안정된다. 

분노와 상실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함께 서있는 선배의 존재를 느끼며 나는 미소 지었다.

 

 


 

 

“......무사히 돌아가서,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

“하하, 그래요. 미나 양의 안목 기대할게요? 자, 그럼 이제부터 납치범을 같이 응징해 볼까요. 미나 양?”

“좋아. 어떻게 할까. 선배?”

 





 

표정이 일그러지는 성녀의 앞에 서서,


우리는 검을 쥐었다.

 

 


 

“간단해요. 언제나 했던 대로 하는 거죠.”

 

 

 


더 이상, 홀로, 외롭게 싸울 필요는 없다.

추운 겨울바람도 두렵지 않다.

 



 

“가세요, 미나 양.”

 


 

 

고슴도치는 자신의 가시를 눕히고

머리를 맞대어,

온기를 함께 나누는 법을 배운다.

 

 


 

“뒤는 제게 맡기시고요.”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의 온기로 겨울을 날 필요가 없는 고슴도치.

 

 


 


 

 

 



행복한

고슴도치.

 


행복해질 두 사람.

 

 

 






고슴도치의 딜레마 完.















 +)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우화는 결국 고슴도치가 외로이 홀로 겨울을 나지만

사실 우리가 알고있는 고슴도치는 가시를 접고, 머리를 맞대는 법을 알고있음

그래서 외로이 겨울을 날 필요가없지


6지는 원래부터 미나 위주이긴했고, 7지를 좀더 미나링에게 집중해보자는 관점으로 완전 엮는건 아니고 약간의 썸을 가미해서 썼는데...

미나가 5지이후로 비숍에대한 것은 털어냈지만, 작중묘사를 보면 아직 조금씩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이 있음

그걸 좀더 극대화 시켜보면 어떨까 싶어서 나온게 이 문학임

언니는 이미 처음부터 리타이어였으니까 초반에 나온건 사실상 훼이크고, 5지까지는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

그 이후는 주시윤과 더 가까워지면서, 가시를 접는 법과 머리를 맞대어 살아가는 성장기 정도로 해석하면 될것같아


글에 잘 안녹아드는 것같아서 디게 구질구질하게 사족을 좀 달아봤음...



미나링관련해서 언젠간 문학 꼭 써보고 싶었는데

마침 미나링 애호 대회가 열려서 이 기회에 써봐야겠다고 맘먹고, 열린 날 부터 겁나 달렸어ㅋㅋㅋ

배드엔딩으로 괴롭힐까 하다가 그건 애호가 아니니 해피엔딩으로~


좋은 대회열어주신 주최자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