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다.
온통 어둡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쉴 틈 없이 발을 움직여도 사라지지 않는 어둠.
마치 안개가 낀 듯, 그러고는 들려오는 목소리.
-자 어서 저 역겨운 것들을 베러 가자고
탐욕과 악의가 가득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목소리에 담긴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은 너무 어린 소녀가 느끼기에 그 목소리는 너무나 자애롭고, 아름답고, 포근해서.
소녀는 작은 검을 쥐고 뛰쳐나갔다.
그것이 소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을 때 일어난 일.
그 후로 소녀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영원히 이런 삶을 보내겠구나.
소녀는 생각했다.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주어진 것이 운명이라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리.
소녀는 감정을 버렸다.
침식체를 향한 분노를 담았을 뿐
소녀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애초에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이 없었기에.
오직, 침식체를 베기 위해 살아갈 뿐.
소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침식체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곳으로.
그러길 몇 년.
"죽인다!"
어김없이 침식체를 찾아 떠도는 소녀의 가슴속에는 이상한 공허함이 자리 잡았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점점 불어나는 감정은 균열을 만들었다.
균열은 곧 불완전함을 의미했다.
"침식체는...죽인다..."
하지만 소녀가 지칠 때마다 목소리는 재촉을 반복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네 몸을 뺏어버릴 거야
목소리의 이름은 오르카.
카운터워치, 혹은 그 안에 담겨 숙주를 찾아 옮겨 다니는 사념.
숙주에게 한평생 침식체와 싸우다 죽게 만들고, 다른 숙주를 찾아 나서는 도시전설 같은 존재.
오르카는, 소녀는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침식체의 시체를 산처럼 쌓아 놓은 오르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역겨운 냄새를 느꼈다.
코를 지르는 진한 악의, 혐오.
이렇게 강한 냄새는 처음이었다.
"침식체는... 죽인다!"
필시 상대는 침식체일 것이다.
이런 냄새는 침식체에게서 공통적으로 나는 냄새와 닮아있었으므로.
단지 그 냄새가 굉장히 강할 뿐.
그렇다 해도 예외는 없었다.
상대가 누구든, 얼마나 강하든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니까.
침식체를 죽이는 것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자 숙명이니.
20분 정도 달리자 냄새가 한층 더 짙어졌다.
아마 근처에 있다는 거겠지.
오르카는 평소보다 강하게 힘을 주어 단검을 쥐었다.
계속해서 냄새를 쫓자 얼마 가지 않아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정체를 파악한 오르카는 적잖게 당황했다.
'...인간?'
침식체의 형상이... 너무나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것도 꽤 잘생긴.
인간에 미의 기준은 모르지만, 본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그러했고, 삶의 갈망이 그러했으며, 미를 추구함이 그러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침식체가 있었나?
'분명히...있었어...'
오르카는 기억을 되새겼다.
자신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기억 깊은 곳에 인간의 모습을 한 침식체는 분명히 있었다.
다만 눈앞의 남자와는 분위기 자체가 확연히 달랐다.
남자에게는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겨운 기운이 없다.
분명히 침식체의 냄새는 그 무엇보다 진한데 무언가 느낌이 침식체 같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차가운 길바닥에 꿇어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뿐.
'만약...인간이라면?'
아무리 오르카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데에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 또한 차마 버리지 못한 본능이었다.
'처음도...아니고...'
사람을 죽이는 게 처음이 아니지 않나.
이미 한껏 더러워진 손.
피 몇방울 더 묻힌다고 티가 날까?
'증명을...하면...돼'
침식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그리한다면 가슴속 불편한 느낌도 사라질 터.
뭐 굳이 침식체가 아니더라도 저런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선할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르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단검을 꽉 쥐며.
예로부터 이게 약이었다.
"너...침식체...?"
물론 친절한 질문도 잊지 않았다.
.
.
.
푸욱
"..."
무뎌진 단검을 꽃을 때마다 붉은 선혈이 줄줄 흘러나온다.
이미 바닥에는 붉은 액체가 비 온 듯 고여 있다.
아무리 고통을 줘도 남자는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남자의 원망 어린 시선을 받던 오르카는 덜컥 의문을 느꼈다.
'냄새가...느껴지지 않아...'
남자에게 느껴지던 악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정확히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부터.
하지만 그건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기본적으로 카운터는 일반적인 인간보다 감각이 훨씬 우월하다.
그중 오르카는 특이하게 후각이 예민한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인간은 악취가 난다.
위생과 관련된 개념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형상화 되는 것.
그것이 악할 수록 냄새가 짙어진다.
모든 인간은 흑심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므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건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나지 않던 것도 아니고, 갑자기 없어졌으니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침식체가 아니었어...'
남자에게서 느껴졌던 악취는 내 착각일 뿐이었나.
처음 겪는 충격적인 경험이 연쇄되자 오르카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역시...요즘...침식체를...너무...덜...죽인 건가...그냥...도망가는 게...'
그렇게 생각하며 오르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짤 때.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방을 열더니 정체 모를 것들을 한움큼 쥐어서 건넸다.
평소의 오르카였으면 가방을 움직이는 것 만으로 칼을 들이밀며 제지했겠지만, 오르카에겐 정신이 없었다.
-야! 저새끼 뭐 이상한 짓 하는데?
소녀를 타박 하는 목소리도 오르카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망부석처럼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을 뿐.
그런 소녀를 움직인 것은 그림자.
자신의 앞에서 무언가를 건네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였다.
"이건...뭐..."
생에 처음 보는 물건 이었다.
조그마하고 네모난 갈색 조각, 원기둥 모양에 흰색 푹신푹신해 보이는 것들을 남자가 내게 건넸다.
'왜...이런걸 나한테...'
"맛있는 거야 먹어봐"
독이 있지는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카운터인 자신에게 독 같은 건 통하지 않았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것을 건네는가 의문이 들었으나 오르카 나름으로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걸 함부로 받으면...
대충 받아주면 남자에게 빛이 생기는 셈이니 그대로 자리에서 벗어나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 하고선 어느새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들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
달콤한 것들이.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것들이 혀에 닿는 순간 오르카는 크나큰 충격을 느꼈다.
침식체를 찾아 떠돌기 시작한 이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가끔 구할 수 있는 전투식량은 맛이 없다.
대부분의 음식은 썩었고, 형체가 분명하지 않았다.
카운터의 몸 구조로 그런 것들을 먹어도 문제는 없었지만, 맛은 꽤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떠돌며 그런 것들을 먹어온 오르카는 '맛' 이란 걸 느끼지 못한지 오래였다.
그래서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진정한 '맛'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달콤한 것들이 침과 뒤엉켜 녹아내린다.
꿀꺽, 하고 넘기자 어느새 입속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거...내놔"
저절로 손이 움직인다.
내 의지가 아녔다.
손의 검을 쥐고 남자의 목에 가져다 댄다.
'오르카...멈춰'
범인은 목소리. 사념체인 오르카가 나선 것이다.
단맛의 위력은 강력했다.
너무 강력한 것이 문제였다.
물론 목소리 오르카가 나서게 한 연유가 그것뿐은 아니었다.
세상의 악취에 지쳐 있던 소녀가 처음으로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으니까. 심지어는 향긋한 냄새마저 났으니 떠나기를 망설였던 소녀가 마음에 틈을 깊게 만든 것이다.
-저 가방만 뺏고서 돌려줄게 기다려 봐.
그러렇게 소녀를 달래는 목소리는 탐욕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소녀의 몸을 차지한 오르카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난 카운터야.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소환하는 능력이지. 내가 없으면 그거 못 먹어"
그런 카운터도 있었나?
소녀는 궁금증이 들었으나 이 세상은 기상천외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소환하는 카운터 정도는 충분히 있을 만 하지 않을까 하고 수긍했다.
-젠장...
목소리도 수긍 하고는 몸의 제어권을 소녀에게 돌려줬다.
단것은 잠깐의 유흥일 뿐 굳이 고생을 감수하며 얻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몇 년이고 살아갈 테니까.
몸을 돌려받은 소녀는 급하게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소녀는 초콜릿을 떠올렸다.
딱딱함과 달콤함의 대비.
마시멜로를 떠올렸다.
하늘의 구름 같은 느낌에 천상의 달콤함.
남자를 떠올렸다.
마치 늑대 같이 날카로운 눈매에 잘생긴 얼굴.
향긋한 냄새.
역겨운 세상에 잠시나마 느낄 수 있던 편안함.
결국 소녀는 다시 등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말하고 있자면 얼굴이 빨개지는 듯한 느낌을 억누르고, 쥐어 짜내며 말을 꺼냈다.
"...뭐...해...? 안 따라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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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떡상이라고요??????????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