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세실리아 신, 아니 신■■ 의 의식이 천천히 부상했다.
"....? 여기는 어디지? 그 고철덩어리는?"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낮게 혼잣말을 흘렸지만 목이 쉬어 픽픽 새는 바람 소리만 겨우 들릴 뿐이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을 억누르려는 듯이 그녀는 자신의 목을 매만지다, 뒤이어 깨달았다는 듯이 정수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분명히 그 고철덩어리에게 머리를 뜯겨서....할아범...할아범의 지식을...'
머리 한 구석이 송두리째 뜯겨나간 듯이 허전했다. 알고 있다. 멘탈 프린팅 기술의 부작용이다. <세실리아 신>을 소체로 작업했을 때, 기억의 강제적출에 의한 부작용을 이미 확인했었다. 그때처럼, 이번엔 자신의 머릿 속에서 망할 노친네의 기억만이 뜯겨나가진 것이다.
'빌어처먹을 자식들. 감히 도박꾼(갬블러)의 뒤통수를 쳐?'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생각했다. 패배한 갬블러만큼 쓸모없는 존재가 있겠냐고 했겠다.
아니, 천만에. 패배를 결정하는 건 나 자신이다. 이 게임은 매치 승부인 것이다.
고작 듀얼 한 판으로 모든 게 끝날 것 같아? 이제 두 판을 내리 이기면 결국 내 승리란 말이다. 평의회를 씹어삼키고, 뒤이어 바로 그 괴물같은 년을 다시 찢어발기면 결국 다시 나 갬블러의 가치를 돌아볼 수밖에 없을 걸. 그 때가 되면 다시 동료로 받아나 줄 것 같아? 기껏해야 장기말, 내 기물로 끝까지 부려먹다 버려버릴-
달칵.
"정신이 들었군, 세실리아 신."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명 하나 없는 방으로, 훤칠한 남성이 문을 연 채 들어오고 있었다. 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빛이 너무 강해 역광으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 두셋은 쉬이 울리고 다녔을 얼굴이라는 건 얼굴 윤곽만 얼핏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
"구출 당시의 바이탈 사인이 많이 위험한 상태였지. 지금도 상당히 쇠약한 상태니, 억지로 움직이려 하지 말게."
그는 느긋한 자세로 다가오더니, 물병을 세실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빛에 익숙해지자, 알파트릭스 바이오닉스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생수임을 알 수 있었다. 이면세계에 다이브하는 태스크포스에만 납품하기 위해 개발된 특수한 제품.
세실리아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을 움직여 물병의 뚜껑을 따려고 했으나, 이미 예상한 듯 물병의 뚜껑은 열린 채였다. 그녀는 급하게 갈증을 해결한 뒤, 목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죽을 위기를 넘겼군. 다이브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조난을 당하고 말았지 뭔가. 아마 자네가 아니었다면 시체도 건지지 못했겠지. 내 회사에 복귀한 다음엔 꼭"
"자네 또 실수를 하는군, 세실리아."
"실수라고? 그리고 또?"
순간 생각이 정지한 그녀를 두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가 왜 자네가 세실리아 신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 그 신상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나?"
그렇다. 그는 처음 방에 들어올 때부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신분을 특정할 물건은 원래 지니고 다니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또 다시 실수를 범했다'는 말.
"너 이 자식, 그 괴물 년의 한패로구나!!!!! 죽여버리겠-"
팔이 후들거리며 축 늘어졌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카운터로서의 힘조차도 사라져버린 것처럼.
기억을 뜯겨버린 부작용인가? CRF에 어떤 악영향을 준 거라고?
이래서야 마치 보잘것없는 십대 소녀가 아닌가.
"워, 진정하게. 나는 자네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그 이면세계에서 자넬 건져온 게 아니야. 이건 회장의 부탁이었다네."
"뭐? 망할 할아범이....?"
남자는 품을 뒤적여 소형 홀로그램 영사식 영상 재생기와, 메모리 칩을 건네주었다. 이건, 자사의 개발품인....
"설명은 필요없겠지. 읽기 제한은 이제 1회 남았네. 미안하지만 고인의 유지에 따라 내가 먼저 확인했어."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이제 곧 죽을 것 같은 몰골을 했던 할아범의 모습.
<그분에게 너에 대한 걸 부탁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결국 마지막까지 오니 네가 눈에 밟히는구나. 이 썩을 녀석아.>
하. 어련하시겠어.
2.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을 건져온 남자는 자신이 유언을 맡기는 사람이라는 것. 죽기 전에 그에게 괴물년이 자리를 잡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뒤치다꺼리까지 맡겼다는 것. 그것은 즉, 자신이 어떤 일을 벌일지 망할 할아범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할아범의 지식도 기억도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후후, 그래서 나를 건져왔다는 것인가? 여태 의지해온 나쁜 친구들에게까지 배신당해서, 만신창이가 된 나를?"
"무슨 일이 있긴 했겠다 싶더군. 설마 혼자서 이면세계에 널부러져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 괴물년과도 연줄이 닿아있다면, 이미 알고 있겠군? 내가 이미 할아범의......"
"기억과 지식을 흡수했다는 것 말이지. 물론 알고 있네."
"후후, 그렇단 말이지? 역시 자네는, 그 지식과 기술을 원하는 것이겠지? 알파트릭스를 세계 제일의 위치에 올려놓은, 돈의 망자가 지닌 노하우를?"
남자는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세실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자네의 지식을 원해서, 자네를 건져왔다고?"
"당연히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왜 나를, 알파트릭스 본사가 아닌 이런 변두리 태스크포스의 사옥 안에 숨겨둘 생각을 했겠나? 그 괴물년 몰래, 할아범의 지식을 빼가서 한 탕 해보려는 생각 아닌가?"
남자는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세실리아는 그의 반응을 보고서 정곡을 찌른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생수. 그라운드 원에만 제공되는 특수 브랜드지. 그리고 이 의료 장비들, 카운터용 특수 주문품들 아닌가? 그라운드 원에서 카운터용 장비들을 운용하는 곳이 대체 얼마나 있겠나. 바이오닉스 사장인 내 눈썰미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음, 확실히. 자네의 눈썰미는 대단하다고 할 만 하군. 지아 양의 고모라 그런가? 닮은 점이 있어."
"이, 이 새끼가""하지만 말이야."
남자는 세실리아의 분노를 억누르듯이 치고 들어왔다.
"하나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군."
"정정?"
남자의 모습이, 좀 더 뚜렷한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세실리아의 눈이 어둠에 적응한 것일까. 세상에 드디어 여명이 찾아온 것일까. 어째서인가 그녀는 순간 빛이 남자의 얼굴에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신 회장의 기술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이 없네."
3.
남자는 그 수시로 세실리아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말처럼, 세실리아에게 회장의 지식에 관한 어떠한 것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저 몸이 어떤가, 심심하지는 않은가 그녀의 신변잡기나 물어볼 뿐이었다. 세실리아도 처음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으나, 수 주에 가깝도록 그녀에게 아무 내색을 비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만에, 남자의 정기적인 방문은 세실리아의 특기인 체스를 두며 그녀가 사장의 근황을 듣는 시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런가, 그 유미나라는 직원은 듣기론 문제가 꽤 많아보이는군. 나였다면 기가 죽을 때까지 현장이 아니라 다른 임무에 배정했을 테지."
"하하,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미나 양은 적극적인 게 장점이거든. 아, 체크일세."
"직원한테는 그렇게 무른 주제에 체스는 정말 날카롭군 자네. 거기서 체크로 찔러들어오다니."

"하지만 이 세실리아 신에게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지. 자, 체크메이트."
남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이번에는 정말 이긴 줄 알았는데...역시 세실리아 양은 당해낼 수가 없군."
"후후, 그렇지? 내가 이겼으니 약속대로 다음 번엔 '유혹의 함교 극장판 디렉터즈 컷'을 보여주기네. 알겠지, 사장?"
"음....이제 외출도 무리 없을 정도로 회복되기도 했으니,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지. 일정을 비워두겠네."
"후후, 에스코트 기대하겠네. 사장."
"음...그런데 영화 타이틀. 정말 그걸로 괜찮겠나? 요즘엔 다른 기대작들도 꽤......"
"싫다네. 무조건 '유혹의 함교'를 보여주기야."
"으음...."
사장은 곤란한 듯 목을 쓰다듬었지만, 그 곤람함이 그저 부끄러움에서 발현된 표현이라는 건 세실리아의 눈으로 볼 때 자명했다.
4.
"영화관에서 느긋하게 앉아있던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끄응, 하고 세실리아가 기지개를 켜자 그녀의 유방이 가볍게 어깨를 따라 달싹 들어올려졌다. 브이넥으로 과하게 드러난 쇄골과 흘러내리는 듯한 가슴골이 더욱 강조되었다. 게다가 겨드랑이 쪽이 쭉 파인 복장이니, 아마 주변 뭇 남성들은 그 야릇한 라인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세실리아가 생각한 바이기도 했다.
"내용이 과격하긴 해도 스토리는 확실히 명작의 반열이긴 하네."
하지만 이 사장이라는 자, 대체 세실리아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목 아래로는 눈길조차 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뭐지? 왜 패배감이 드는 것이지?
"....잠시 꽃이나 따러 다녀오겠네."
"나는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해결하고 오게나, 세실리아 양."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더 신경쓰이잖나!"
세실리아는 씩씩대며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소피가 마려운 것은 아니었으므로, 적당히 화장을 고치는 정도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세실리아 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장은 내게....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 할아범의 기술도 지식도, 무엇도 물어본 적이 없었어."
그는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사장은 왜 나와 친구가 되어주었을까. 그 괴물년과 관련된 사건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 유언 때문에? 내 뒷바라지를 부탁했다는? 그는 왜 그걸 지켜주고 있을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이 젊은 몸이 목적인걸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사장의 말을 듣기로 그의 회사에는 매력적인 여성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해 그 노력을 들이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사장이 어지간한 색정마가 아니고서야....
그리고 그게 아니라는 것은 방금 확인한 바 아닌가. 조금 굴욕이긴 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다.
이런 고민은 계속해봐야 의미가 없다. 오포지션의 반복이 될 뿐.
무릇 갬블러라면 기물은 영리하게 움직여야지. 그 기물이 나의 마음이건, 상대의 마음이건.
...
생각보다 시간을 너무 오래 보냈다. 돌아가지 않으면 사장이 걱정할테지.
그렇게 생각하여 발길을 옮기려던 때.
"사장님, 지아를 만나러 와주신 건가요?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뻐요!"
그 목소리다. 그 목소리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 세실리아는 이미 벽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아, 그게 말일세 지아 양. 정확히는 지아 양을 만나러 온 건 아니네만......"
흉하게 젖소마냥 피둥피둥 찌운 젖통 두짝을 과시하듯이 사장의 팔뚝에 들이밀며, 그 괴물년이 사장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거의 가슴으로 핫도그라도 만들 기세에 가까웠다.
"그러신가요, 지아는 슬퍼요......요즘 회사가 너무 바빠서 사장님을 볼 시간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은걸요. 사장님도 지아를 보러 와주지 않으시고....."
"아니,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닐세. 우린 친구 아닌가. 지아 양이 나를 보고 싶다면 언제든 만나러 가줄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선약이 있으니 양해를 구하는 것일세."
"음, 지아는 착한 아이니까. 사장님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래요. 대신 나중에 꼭 저 보러 와주시기에요. 알겠죠?"
"물론이지. 시간을 내서 꼭 찾아가도록 하겠네."
그 후로도 줄곧 떠날 생각을 않던 그 괴물년은 오빠가 심어놓았던 그 스파이에게 이끌려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지만, 세실리아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한동안 벽에 기대 서서 곱씹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5.
"세실리아 양, 무슨 일 있었나? 먼저 돌아와있다는 보고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결국 세실리아는 사장을 두고 먼저 병실로 돌아왔다. 그녀의 외출을 인가한 건 외눈의 기가 드세보이는 여성이었으니, 혼자 돌아온 그녀를 보고 사장에게 연락을 한 것이겠지.
사실상 바람을 맞히고 온 셈인데도 따져 묻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해주는 점이 더 가슴을 후벼파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지아를 보았네."
"과연. 우연히 만난 장면을 본 모양이군. 아직 지아와 마주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네. 차차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일 테지만..."
"아니, 그게 아닐세!"
세실리아는 연약한 손으로 벽을 꿍 내리쳤다. 병실의 집기가 약간 달그락거린 정도였지만, 정적으로 가득찬 이 곳에서는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여전히...그 괴물을 용인할 수 없어. 그 아이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도 아닌 것이 그 망할 할아범의 관심은 다 빨아먹고 회장직까지 안배해놨다고 생각하면 치가 떨려."
"하지만 그게 아니야. 그래서가 아닐세. 자네는 그 때, 지아에게, 친구라서 언제든 만나러 가주겠다고 했었지?"
"그런 이야기까지 듣고 있었군."
"그리고 자네는, 나를 자신의 친구라고 해 주었지....자네는 내 목숨을 살려내고, 생활을 돌보아주고 있지 않나? 이것은, 이것은 자네의 친구된 자로서의 도리인가?"
"세실리아 양, 지아 양과의 사건이 오래지 않아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은 것 같네. 애초에 지아 양을 만난 것 자체가 예상 외"
"지금 지아는 중요하지 않네!"
다시금, 그녀의 주먹이 벽을 두들겼다.
"나는 나와 사장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네. 왜 지아의 이야기를 하지? 대답해주게. 어째서 내게 이렇게까지 대해주나? 망할 할배가 나를 부탁했기 때문인가? 일생일대의 도박판에서 패배하고 도망친 갬블러가 불쌍해서? 아니라면 내가 쓸만한 카운터 사원이 될 것 같아서? 정말 그 할배의 지식이 필요없나?"
병실 벽에 댄 손이 부들거리며 힘을 잃는다.
그녀는 외출 허가를 받았을 뿐, 완치된 것이 아니다. 외출만으로도 충분히 체력이 깎여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 됐군. 혹시 부하가 보고하지 않았나? 아직 눈치 못 챈 모양이지? 내 카운터 능력은 돌아오지 않았어. 멘탈 프린팅 기술의 부작용이지. 할아범의 지식도 기억도, 다 뜯겨나갔어! 그 망할 평의회 놈들에게 다 빼앗겼단 말일세!"
사장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쓰러지기 직전의 세실리아를 먼저 부축하려 했다.
"놔! 대답해주게. 자네, 자네는....계속 나의 친구로 있을텐가? 이렇게 쓸모없는 나는, 여전히 사장의 친구가 될 수 있나?"
"세실리아 양."
사장은 생각하는 바가 많아 보였지만, 이내 잡념을 떨어내듯 고개를 털었다. 지금에 집중하자. 그런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세실리아 양의 친구이고, 이는 앞으로도 절대 변할 일이 없네."
"하지만 나는-"
"왜냐하면 나는 세실리아 양의 친구이지, 카운터의 친구가 아니며 알파트릭스 최고경영자의 친구도 아니기 때문일세."
"사장..."
"나는 지아 양의 친구이지만, 알파트릭스 회장의 친구가 아니야. 싱귤러리티의 친구는 더더욱 아니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나?"
세실리아는 고개를 꾸욱 숙였다. 사장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으나, 억지로 보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실리아 양. 우리는 친구일세. 그리고 난 친구에게 제법 헌신적인 편이지. 만약 지금의 대접이 부담된다면, 나중에 베타트릭스로 대성해서 큰 턱으로 갚아주면 되는 것 아니겠나?"
꾸욱꾸욱.
긍정의 의미.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장은, 조용히 자리를 뜨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기다리게, 사장."
문을 열려던 사장을 불러세운 건 눈물을 닦고 일어선 세실리아였다.
"고맙네. 나를....친구라고 생각해줘서. 내가 재기할 수 있다고 믿어줘서."
"하지만 나는, 친구라는 알량한 관계만으로 자네의 호의를 계속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스륵.
"세실리아 양?"
똑. 똑. 똑.
"남녀의 관계라는 건, 정말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 나도 나름대로 한 미색은 하는 몸이라고....생각하네만?"
단추를 풀어헤친 세실리아가 옷을 끌러내리자, 사라락 내려가던 옷자락이 그녀의 가슴께에서 걸쳤다. 어느샌가 바짝 서버린 그녀의 양측 유두가 옷걸이마냥 옷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얇은 옷자락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도 유두의 모양도, 새끈하게 드러난 배꼽의 모습도 감춰주지는 못할 망정 색정 가득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오호."
자네도 마냥 쑥맥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만.
팽팽하게 솟은 사장의 그곳을 보자 세실리아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여자가 이렇게까지 하게 하고선....사장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만큼 무례한 남자는 아니겠지?"
"세실리아 양, 진심인가?"
"멍청하긴. 고작 호의에 대한 답례 따위로 몸을 낼 만큼 나는 싼 여자가 아니네. ....그저, 자그마한 핑계에 기대는 가련한 소녀라고 생각해주면 아니 되겠나?"
이제 그녀는 치마까지 끌러내려, 속옷 너머의 균열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러 있었다.
"......"
사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찰칵, 하고.
내부에서 문을 잠갔다. 그것은 틀림없는 승낙의 표시였다.
"오게, 사장. 내게 사장의....나의 마음을 증명해주게."
...
6.
지아야. 너는 이야기했었지. 기물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그 말이 꼭 맞더구나. 기물을 소중하고 영리하게, 움직일 국면에서 움직이는 것이....바로 승리의 비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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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시발 분명 야설 쓰려고 빌드업부터 시작한 거였는데 야스 묘사를 못 넣는 얘기가 돼버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