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금방 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것이 카운터인 오르카에게도 통용되는 법칙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 확실한 건 오르카가 이상해졌다는 것.
"저...저기..."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소녀가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붉은 눈동자는 세차게 흔들리고,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리며, 단검을 쥐던 작은 두 손은 꼼지락 거릴 뿐이었다.
그뿐이랴, 하는 말을 보면 이게 정녕 내가 알던 오르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괘...괜..."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이런 모습의 오르카는 게임에서도 보기 힘들 텐데.
"으...아..."
심지어는 혀라도 씹은 건지 말 사이에 균열이 일어났다. 그러곤 당황한 듯 허둥지둥 거리다 나와 눈을 마주치곤 멈추었다.
어디라도 아픈 걸까?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경이로운 재생속도를 지닌 오르카가 다칠 정도라면 우리가 마주한 침식체는 너무나 강력한 존재였을 테니까.
어찌 되었든 이런 모습의 오르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오르카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것이 매력적인 점이었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뻐서 뭘 하든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얼굴이 한계까지 빨개져 굳어 버린 오르카를 두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침식체는?"
답지 않게 인간 형태에 시뻘건 눈을 가지고 있던 녀석.
침식체를 떠올리자 찌릿, 하고 상처에 소름이 돋았다. 몸에 각인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부서진 나무 창을 놈에게 꽃아 놓은 것까진 알겠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르카가...녀석의 기운이 안 느껴진대..."
오르카의 말은 알아듣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애초에 숙주가 어린 소녀인 것도 있지만, 사념체인 오르카와 소녀의 자아가 공존하므로 그랬다.
소녀가 폭주하거나 하면 오르카가 소녀의 몸을 차지하는 형식이었다.
아마 지금은 소녀가 오르카의 말을 전하는 거겠지.
"...그래?"
소녀의 대답에 나는 짧은 의문을 표했다.
그 무지막지한 녀석이 나뭇조각 한 번 꽂혔다고 죽었을 리는 없겠지. 그렇다면 아예 사라졌다는 건데.
'그게 가능한가?'
어쩌면 도시 멸망의 원흉인지도 모르는 녀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무거울 수록 발자국이 깊게 찍히는 법이다. 무언가 단서가 남아 있을 것이다.
'함선도 뭔가 이상했어.'
사람 하나 없는 유령도시, 도시 한가운데 추락한 함선, 그곳에서 등장한 유례없는 침식체.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었다.
몸이 회복되면 언젠가 다시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굳이 내가 나설 일은 아녔다. 내가 함께해 봤자 방해만 될 테고,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확인해야 했다
어째서 그런 게 함선 안에 있었는지를.
한 번의 문답이 끝나자, 방 안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어째선지 오르카가 내 눈을 피하며 입을 열지 않은 탓이었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당장 침식체와 싸우기 전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이런 관계는 좋지 않았다. 차라리 명확한 주종관계가 마음이 편했다.
초콜릿을 달라고 하면 초콜릿을 주고, 마시멜로를 달라고 하면 마시멜로를 주고, 까라면 까는 등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면 되니까.
수평적인 관계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조금 틀어졌을 뿐인데도 삐그덕 거리니까.
이런 내 기분을 알까 오르카는 멍하니 입을 움찔거릴 뿐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신호였다.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건 그녀 또한 적막이 부담스럽다는 뜻이겠지.
"초콜릿 먹을래?"
결국 또다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르카가 원하는 거야 안 봐도 뻔했다.
"...!!"
예상이 적중했다.
오르카는 일순간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잔뜩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으...응..."
오르카에겐 이게 약이었다.
예전부터 아무리 싸늘한 표정을 짓다가도 초콜릿이나 마시멜로 하나면 금방 풀리곤 했다.
'오르카가 맞구나. '
며칠 만에 본 사람이 평소와 정반대의 행세를 취하면 누구나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침식체가 변장한 게 아닐까, 머리를 크게 다친 게 아닐까.
뭐, 지금 반응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침대의 머리맡 쪽에 손을 뻗어 가방을 짚었다.
짙은 검은색의 가방. 초콜릿과 마시멜로가 가득 담겨 있는 그 가방이었다.
다행히도 침식체와의 전투에서 가방이 손상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만약 그리 됐다면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겠지.
팔과 다리가 관통됐음에도 가방은 관통되지 않은 행운에 나는 안심하며 가방을 열었다.
오르카에게 초콜릿 몇 개를 쥐어 줄 생각이었다.
쓰러져 있던 나를 걱정해준 것도 기특하고, 따지고 보면 오르카도 다친 입장이지 않은가. 아무리 카운터라도 그렇게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니 분명 후유증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오르카가 저러는 것도 그 후유증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잔뜩 오르카를 생각한 나를 반긴 것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텅텅 빈 가방의 내부였다.
"...?"
절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쓰러지기 전에는 초콜릿과 마시멜로가 반 이상은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방 바닥에 깔린 먼지가 날 반겨줄 뿐이었다.
본래 다른 가방보다 훨씬 거대한 대형 가방이었기에 바닥이 보인다 해서 그렇게 적은 양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심리적 부담감이 가중될 뿐.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몰래 빼먹은 건가?'
유력한 용의자는 당연 오르카였다.
상황을 짐작해 볼 때 나를 치료해준 사람을 포함해서 다수의 사람이 이곳이 있는 것 같은데, 설마 그들이 내 가방을 탐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성인일 테고, 남의 가방을 터는 것은 어린아이가 하는 짓이니까. 뭐, 정신연령이 어린아이면 모를까.
아마 범인은 오르카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티 내 꾸짖진 않았다. 그럴수록 내가 불리해지는 상황이었다. 오르카의 기억 속 나는 초콜릿과 마시멜로를 소환할 수 있는 카운터일 터. 여기서 화를 내거나 하면 되려 의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르카는 뻔뻔하게 잔뜩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입을 벌리는데...
"...너 뭐하냐?"
너무나 당황스러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쟤 지금 먹여 달라는 거지?
역시 머리를 다친 게 맞았어.
초콜릿 하나를 집어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겨 냈다. 그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오르카의 입 쪽으로 가져갔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벽 너머 어딘가 에서 들려오는 침식체의 괴성은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잔잔히 흐르는 공기의 기류가 뚝, 끊어지고, 달과 태양이 겹치는 듯한 착각이 들 때, 묵은 감정들이 오르카의 새빨간 눈동자에 잠겨 불타 사라질 때. 세상에는 나와 소녀 단둘만 존재했다.
어느새 내 손은 소녀의 입 앞에서 멈춰 있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흰 머리, 붉은 눈, 새하얀 피부 그리고 입술. 그것을 마주한 순간 내 손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죄책감일까 공포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무언가가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르카는 기대하던 초콜릿이 들어오지 않은 것에 의아하며 친절하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다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넣어줘..."
"오르카 이것 좀 보..."
진짜 미치겠네.
문을 열고 노란 머리의 여자가 들어왔다.
툭, 하고 무언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기겁은 폐아파트를 뒤흔들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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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생할 바쁨, 이번에도 여자칭구 글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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