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으로


 

“여.. 여기에요, 제가 자주가는 식당..”

 

 

“호오.. 족발의 혁명 불로군 불족발이라..”

 

 

“헤헤.. 소박..하죠? 지금이라도 괜찮다면 연구소 근처의 좀 괜찮은 식당이라도..”

 

 

“아니, 나는 여기가 좋은 거 같은데? 너의 기운을 잔뜩 느낄 수 있거든.”

 

 

“으읏.. 확실히 자주 오기는 하는데..” “그렇게 내 몸에서 족발 냄새가 심하게 나나..”

 

 

“일단 들어가지?”

 

 

“..네”

 

 

 

“지수씨는 혹시 뭐 드시고 싶으신거라두..?”

 

 

“나는 너가 먹고 싶은 걸”

 

 

“ㅇ,에? 에.. 사장님! 여기 화끈하게 매운 불족발 중자루요!”

 

 

“네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흐음, 네 주변에는 저 얼굴을 한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군.”

 

 

“네? 그런가요? 저는 잘..”

 

 

“어쩌면 나의 악연과 너의 인연이 얽혀서 유독 자주 만나는 걸지도 모르겠지.”

 

 

“네? 네..”

 

 

“그나저나 정말로 여기로 괜찮으시겠요? 지난번 식사의 대접으로 자주 가는 식당을 가자고 하셔서 이 곳을 오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수씨는 이런 곳이란 어울리시지 않는게..”

 

 

“내가 비록 눈치가 없지만, 사장님께서 듣고 있는데 그런 말은 좀 어떨까 싶은데 말이지.”

 

 

“앗.. 괜찮아요 전 단골이라.. 헤헤..”

 

 

“그래서 좋다. 이곳 저곳에서 너의 향이 느껴져서 정겨운 기분마저 드는군.”

 

 

“역시 제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거였어요!?”

 

 

“그리고 꾸밈 없이 솔직하게 대해준 것도 오히려 기쁠 뿐이다.”
 

 

“족발 냄새가 난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으시는군요..”

 

 

“애당초 나는 족발이라는 걸 처음 먹으니 족발 냄새가 뭔지도 모른다. 단지 너의 배려해주는 듯한 따뜻한 내음이 느껴졌을 뿐이다.”

 

 

“지수씨는.. 설마.. 진짜로 절..”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응? 뭐라고 했나?”

 

 

“아, 아녜요..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오!??”

 

 

******

 

 

“그래서 어떠셨나요? 처음으로 족발을 드신 소감은요?”

 

 

“으음.. 뭐랄까.. 맵군, 맵고 약간 쿰쿰한 향도 나고, 매운 맛을 내기 위해 과하게 넣은 후추 향 때문에 코가 따가운 느낌이 들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감상은 전혀 만족스러운 내용이 아닌 거 같았는데요..?”

 

 

“..그나저나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아까부터 계속 이 쪽 눈치를 살피는 거 같았다만?”

 

 

“아뇨, 별 다른 건 아니구요.. 그동안 곰곰히 생각해 봤거든요. 지수씨가 보내주는 꾸밈 없는 호의의 원인이 뭘까..라는 생각이.”

 

 

“그래서?”

 

 

“처음에는 뭔가 저한테서 정보를 빼가려는 건 아닐까 했어요. 사원 정보를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정보.. 처음부터 자신을 스파이라고 소개해서 오히려 의심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을 보면 진짜 스파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흠, 말했다시피 난 딱히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아니었다만?”

 

 

“아하하.. 맞아요 정말 그랬죠, 단지 제 스스로가 의심이 많았을 뿐이니까요.”

 

 

“어찌 됐던 과거형이라는 건 그런 의심은 하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죠, 실제로 의심하고 싶어도 저한테 기밀을 물어 보지도 않고, 저 같은 말단 대학원 생 보단 차라리 박정자 교수님한테서 정보를 얻는게 좋을 테니까요.”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면, 글쎄.. 대장이라면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나중엔 제 몸이 목적인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도 해 봤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제가 갖고 놀기에 쉬운 여자라는 점을 빼면 아무런 메리트도 없고, 특히 지수씨 정도로 스타일이 좋으시면 동성이라고 해도 저보다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으실 거고..”

 

 

“단 한 번도 너를 가지고 놀 상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지수씨는 단 한 번도 저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신기해서 그런 거다. 라는 거예요.”

 

 

“으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지난번에 지수씨도 말씀하셨잖아요? 저와 지수씨는 완전히 정 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구요.”

 

 

“그랬었지.”

 

 

“음.. 예를 들자면 그래핀 같은 거예요.”

 

 

“그래핀?”

 

 

“으음… 그래핀이라는 건 honey comb structure를 가지고 있는 carbon monolayer material을 말하는데, 정의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그래핀이 굉장히 신기했다는 거예요.”

 

 

“계속 해 봐.”

 

 

“그래핀은 당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단순히 원자 한 층에 불과한데 상온 상압에서 굉장히 chemically inert하고 effective mass(m*)가 0이어서 전자가 carbon atom 주변을 돌 때 광속에 가깝게 이동을 한다든가, 그래서 intrinsic mobility가 200,000 cm2/Vs가 된다던가..”

 

 

“뭐 하여튼 별 신기하고, 신선해서 처음에 다들 많은 기대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차세대의 꿈의 물질이라고 기대했었죠, 당시로서는 거의 최단기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뭐.. 알고 보니 graphene은 bandgap opening이 안 돼서 on/off ratio가 너무 낮아서 반도체를 대체할 수 없다든가, 높은 intrinsic mobility를 가지고 있다고 한 거에 비해 실제 mobility는 기대치를 훨씬 밑돈다든가, 상온 상압에서 inert하다곤 했지만 perfect single crystalline이 아니면 외부 영향에 민감하게 변형된다든가 해서 금방 사람들은 관심을 잃고 시들해졌었죠.”

 

 

“그래서 너는 내게 그래핀 같은 존재라는 건가? 금방 관심이 사라질?”

 

 

“네..”

 

 

“아마도 지수씨 근처에 저 같은 사람은 없었겠죠, 매사에 눈치 보고 쓸데없어 보이는 거에만 관심을 갖고, 지수씨가 평소에 먹어 볼 일이 없는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하니, 신기해 보일 거예요.”

 

 

“…”

 

 

“하지만 저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실망만 하게 될 거예요, 눈치가 빠른 이유는 찌질해서 그런거고, 약간 아는 지식으로 아는 척을 할 뿐이고, 가난할 뿐이라서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아 다닐 뿐이라는 사실을요.”

 

 

“저, 저는 버림 받는 것조차 두려운 겁쟁이예요, 저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환멸하실 걸 생각하면 꿈속에서도 두려움에 떨어요.”

 

 

“그래핀이라는 보기 좋은 포장지로 쌓여있지만, 사실은 그저 연필에나 들어가는 흔하디 흔한 흑연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의 시커먼 탄소 덩어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 저를 더 환멸하시기 전에 호의를 걷어 주세요..”

 

 

“너는 언제나 남의 눈치를 보면서 정작 눈 앞의 현실은 눈 하나로 보는 나보다도 못 보는 구나.”

 

 

“..네?”

 

 

“내가 너에게 호기심을 품은 건 분명 신기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면 이런 솔직한 호의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널 좋아하는 건, 신기해서가 아니라.”

 

 

“너의 꾸밈없는 모습이, 너가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너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모습이.”

 

 

“너가 나를 생각해 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너가 자기 스스로를 흑연이라 부르더라도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특별한 한 조각이니까.”

 

 

“네가 말했듯이 언령이란 수리와 같아서 성긴 듯 풀리지 않는 족쇄가 되어 나를 조여온다.”

 

 

“한 번 좋다고 말로 내뱉은 그 순간부터 계속 사랑스러워 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고, 네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다.”

 

 

“지수씨…”

 

 

******

 

 

“이야~ 처음엔 네 띨빵한 머리로 어떻게 스파이 짓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연기력은 아주 수준급이잖아?”

 

 

“…”

 

 

“혹시나해서 하는 말이지만. 진심이라면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좋을거야, 지금 당장 그 녀석을 죽여서 비밀 동맹을 깨트리지는 않겠지만, 연구 성과가 ‘특이점’을 넘긴 순간 그녀의 목숨을 취하는 건 네가 해야 할 일이니까.”

 

 

“시끄럽군 노랑 원숭이”

 

 


“애당초 그녀와 나 사이엔 어떤 운명선도 연결 돼 있지 않은데 내가 진심이었을 것 같나?”

 

 

“예이~ 예이~ 분명 처음 임무를 맡았을 때도 그런 소리를 하면서 맡기는 했지만 말이야~”

 

 

“나로서는 그냥 중2병 걸린 헛소리로 들린단 말이지~? 묘한 본심을 숨기고서 말이야~”

 

 

“미개한 네놈은 모르겠지만 운명이란 절대적인 것이다. 너와 너가 그토록 지키려고 하는 ‘프리 라이더’라는 소꿉 놀이 친구들이 이어진 것처럼.”

 

 

“…프리덤 라이더즈라고.”

 

 

“이런, 실례, 나한테 잘난 듯이 임무에 감정 개입 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인간이 설마 이름 좀 틀렸다고 열 받아 할 줄은 몰라서.”

 

 

“..경험자의 충고였는데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서야 원~”

 

 

“명심해라, 망할 멧돼지,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그들 앞에 떳떳하게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단 사실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 말, 꼭 잊지 않길 바라지.”

 

 

“…”

 



원자만큼이나 가볍고 무거운 것 -FIN-


******


내일부터 격리 끝내고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글이 술술 써지자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