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협은 죽었다.
오래된 생각이다.
오늘따라 날이 좋아 문득 산책을 나섰다. 낡은 단화를 고쳐 신고 공원 양지바른 터를 걷고 있으니 웬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까이서 보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시시덕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고얀 마음에 성큼 다가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어린 새끼들이, 나이를 얼마나 처먹었다고 벌써부터 연초질이냐!”
그런데 이것들 봐라, 들은 체도 않는다.
“이놈 새끼들이. 어른이 말하는 데 들은 체도 않는구만. 내 너희를 친히 벌하고 이 땅에 법도를 바로 세워야겠다.”
“푸핫,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
다리를 넓게 벌리고 주먹을 말아 쥐니 곧 천왕권이라. 허나 이런 내 모습을 보고도 예의 없는 놈들은 비웃으며 저들끼리 낄낄댈 뿐이었다.
이젠 정말 실력행사뿐이다.
“받아라! 벽력신장!”
와장창!
“으아아악!”
“꺄아아악!”
힘껏 팔을 뻗으니 대번에 녀석들이 뒤로 넘어가며 혼비백산한다. 담뱃불이 꺼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흡족해진 내가 뒷짐을 지고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쳐다보는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릇 고수라면 이미 끝난 일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이 도리니까.
“일어나라. 녀석아. 좋게 말할 때 담배를 껐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느냐.”
“....가.”
“음? 뭐라고 하는 게냐?”
“이 미친 할배가!”
덥석. 반응할 새도 없이 손목이 잡혔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면전에서 내뱉은 모욕에 당황한 사이 다른 놈이 다리를 걸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몸뚱이. 그 뒤는 일방적인 린치였다.
퍽! 퍽! 퍼억!
“말로! 하면! 될 것이지! 왜! 사람을! 열받게 하고 난리야!”
“아 씨발. 이거 새 가방인데 진흙 묻었어. 좆같네 진짜.”
“야.. 근데 저 틀딱 카운터 아냐? 아까 보니까 손에서 막 장풍 나가던데?”
“괜찮아. 카운터면 오히려 우리 못 때려. 카운터가 일반인 때리면 깜빵행이야.”
“억! 어억! 이놈들아 너희는 애미애비도 없느냐!”
이것들을 확 때릴 수도 없고.
노인의 몸부림도 주체가 카운터라면 일반인이 휘두르는 둔기 이상으로 위협적이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놈들을 불구로 만들 게 아니라면 가만히 맞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온몸을 새우처럼 말고 가만히 버티고 있자니 곧 때리다 지친 녀석들이 자리를 피했다. 신나게 때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달려 도망치는 걸 보니 후환이 두렵긴 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툭툭 터니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이래서야 산책 나온 노인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빌어먹는 거지꼴이 아닌가. 하는 수없이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을 열었다. 단화를 벗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영락없는 거지 모양새였다. 대책 없는 헛웃음에 허허롭게 웃고 있자니 생각나는 자세가 있어 대충 아무 막대기나 주워 몸을 비틀었다.
“하아아압! 타구봉법, 봉타쌍견!”
휙휙. 좌로 우로 봉을 휘두르니 제법 그럴듯했다.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음에 만족하고 마저 단화를 벗으려는데 영 발가락이 휑한 게 아닌가. 허리를 굽히고 살피니 앞코가 크게 벌어져 달랑 달랑거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생각하니 아까 다구리 맞을 때 발에 묘한 감촉이 느껴졌던 거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멀쩡한 신발이 떨어졌을 리 없잖은가.
“....이런 썩을 놈들.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고수로서의 배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타오르는 분노에 곧장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연타하기 시작했다. 물론 때릴 때마다 기술명을 외쳤음은 당연한 일이다. 고수가 기술을 쓸 때마다 기술명을 외치는 건 당연한 법도니까.
“이야아압! 벽력신권!”
“당랑권!”
“비각 3회전!”
“정권 108연타!”
한참을 때리니 겨우 마음에 안정이 돌아왔다. 철푸덕 앉아 명상을 시작하니 운기조식이라. 가부좌 대신 양반다리를 하고 손을 허벅지에 내려놓은 뒤 마음을 깊게 가라앉힌다. 단전에서 심장을 왕복하는 원을 그리며 심호흡.
“후우우우...”
낮게 내쉬니 상쾌함이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오늘따라 명상빨이 잘 듣는 기분이다. 어린 것들의 버릇을 고쳐주고 또한 무익한 폭력을 행하지 않았으니 하늘에 덕이 닿은 모양이다. 어쩌면 득도해서 신선이 되는 것도 헛된 꿈은 아닐지 모르겠다.
기분이다,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들이켰다. 쌀을 발효시켜 만들었으니 곡식이라 할 것이오,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니 물이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막걸리 2잔이면 밥과 물을 동시에 먹었다고 할 수 있노라. 오늘 식사는 여기서 끝이다.
무릇 신선이 되려면 몸이 가벼워라 할지니. 여기서 몸이란 비단 부도덕 같은 허물이 아니라 몸무게도 포함이 된다 하였다. 은발에 은색 눈을 한 귀인에게 들은 말이니 정확할 것이다. 이름이 아마 클로에였나 그랬던 거 같은데.
내친김에 부적도 한 장 꺼냈다. 역시 귀인에게 받은 귀물이다. 이마에 붙이면 각종 액운이 떨어져 나간다고 하였다. 무려 80만 원이나 주고 산 것이니 효과는 확실할 것이다.
부적을 붙이려는 데 아직 몸을 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몸을 씻고 옷을 단정히 한 뒤 비로소 부적을 붙였다. 착 달라붙는 감촉이 이루 말할 데 없이 든든했다.
주섬주섬 옷을 모아 세탁기 안에 집어넣고 돌리려니 아뿔싸, 며칠 전에 고장 난 걸 깜빡하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빨래방으로 향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무료함에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으니 바깥에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하아아압!”
일부러 크게 기합하며 팔을 휘둘렀다. 음과 양의 조화가 손끝에서 펼쳐지며 부드러움의 묘리를 그린다. 신묘한 손놀림에 바깥에서 웅성거림이 더욱 강해졌다. 내친김에 초식도 몇 번 보여 주었다.
휙휙휙휙!
한참을 집중하고 있으니 마침 빨래가 다 되었다. 아쉽지만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인 걸로 하고 옷을 챙겨 나오니 어림잡아 십여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근엄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슬쩍 귀를 기울여 보니 저들끼리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아저씨 이마에 붙인 건 뭐래?”
“부적이겠지. 컨셉인가 봐.”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네.”
“야, 근데 저러고 있으니 꼭 강시 같지 않냐?”
뭐라? 강시?
내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갈!!!!!! 어디 그런 사악한 사술과 본인을 비교하느냐!!!”
크게 호통치니 놀라 도망치는 모양새가 꼭 범 앞의 하룻강아지와 같았다. 따라가 크게 야단이라도 칠 생각에 땅을 박차려는 찰나, 마침 근처에 있던 유리창에 시선이 닿았다.
유리창 안에는 웬 늙고 추레한 노인이 이마에 부적을 달고 서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가 괜히 콩콩 뛰어 보았다. 머리를 옆으로 젖혀 보기도 하고, 괴상한 신음을 흘려 보기도 하고. 종국에는 두 팔을 앞으로 뻗고 콩콩 뛰니 진실로 강시 하나가 유리창에 비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엉성하게 붙여놓았던 부적이 결국 떨어져 나풀거렸다. 내 눈은 그저 그 궤적을 쫓을 뿐이었다. 떨어지는 모양새가 내 처지 같아서,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대충 옷을 던져두고 침대에 누웠다. 일과 뒤에 해야 할 루틴이 남아 있었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멍하게 누워 있자니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서랍을 열었다. 부적이니 단약이니 하는 것들을 싸그리 모아 쓰레기통에 처박고 다시 쓰러져 누웠다.
역시 세상에 무협이란 없었다.
내가 무협이란 걸 접한 때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다.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침식체니 뭐니 하는 괴물들과 서로 악다구니를 쓰며 부딪치던 시절.
그때 나는 은퇴한 가장이었다. 자식 둘 키워 하나는 서울 보내고 하나는 유럽 무슨 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늘그막에 농사나 지으며 살려고 했다.
그러나 허공에 균열이란 게 생긴 뒤로 내 꿈은 박살났다. 서울에 살던 놈은 죽고 유럽에서 피난 간다던 놈도 죽고 징글징글한 마누라도 죽었다. 그리고 나는 괴상한 카운터인지 뭔지가 되었다.
슬퍼할 새도 없었다. 살아남기 바빠 악착같이 싸웠다. 괴물들 사이에서, 때로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러다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홀로 남은 목숨이다. 죽는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도 없었다. 소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밧줄 하나 들고 으슥한 건물로 들어갔다. 목이나 매달고 죽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쓸데없이 튼튼해진 몸뚱이는 밧줄 정도론 제대로 조일 수도 없었다. 한참을 씨름하다 포기하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그때, 무협을 처음 접했다.
죽으려던 놈이 무슨 책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 일을 어쩌겠는가. 부서진 책장 사이 웬 책이 떨어져 있길래 호기심에 주워 읽었다. 그리고 홀린 듯이 그 자리에서 3번을 내리읽었다.
책 속 세상엔 무가 있고 협이 있었다. 무공으로 적을 제압하니 무, 협의가 있어 불의를 참지 않으니 협이라. 이 둘을 합쳐 무협이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은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졸작이었다. 그러나 삶에 지친 내게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무와 협. 그리고 협객. 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단어인가.
그 뒤로 협객을 자처하며 온갖 괴물들과 싸웠다. 나이 오십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고. 떠나며 당부하는 말은 한 가지였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부디 도우라고. 내가 지금 당신을 도운 것처럼.
삭막한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언젠가는 이 땅에 법도를 바로 세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웬 남자가 피를 철철 흘리며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급히 달려가 상태를 살피니 칼에 찔린 상처가 심각했다. 급한 대로 옷이라도 찢어 지혈하고 주변을 살피니 저 멀리 이곳을 살피는 수상한 인영이 하나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도망치기 시작하니 곧장 잡아 제압해 복면을 벗겨 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며칠 전에 목숨을 구해준 남자였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남자가 용서해 달라며 몸을 비틀었다. 겨우 입을 열어 이게 무슨 일인지 따져 물으니 저 사람이 가진 통조림 하나가 먹고 싶었다고 한다.
배급이 날마다 나오는데 왜 통조림이 필요하냐 물으니 배급은 맛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찔러 죽이려고 했느냐 호통치니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그곳을 떠나 정처 없이 걸었다. 3일 밤낮을 걸으니 헌 집이 있어 대충 바람 샐 곳만 막고 살기로 했다. 그렇게 이 동네에 정착했다.
그날 이후론 죽은 듯 살았다. 카운터란 게 일반인과 확연히 다른 종자라 티가 나지 않을 순 없었지만 그뿐이었다. 미친 노인처럼 살고 컨셉에 찌들어 사니 특이한 늙은이라 여기면서도 건드는 이는 없었다.
‘무협을 너무 많이 본 노인.’ 그게 나에 대한 평가였다.
다 잊고 살고 싶은 욕심에 정말 그렇게 행동하기로 했다. 백주대낮 길목에 앉아 웃통을 까고 명상을 하거나 태풍이 부는 날 비바람을 맞으며 가로수를 때렸다.
그게 어연 20년. 정신을 차려 보니 시름하는 중년은 온데간데없고 괴팍한 칠순 노인만 남았구나. 세월의 무상함에 한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누워 있으니 눈꺼풀이 무겁다. 슬프다 괴롭다 하는 주제에 잠은 잘도 오는구나. 늙은 몸뚱이가 야속할 따름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