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원본 (https://arca.live/b/counterside/49003030)



"응? 뭐 그렇지. 거 안주도 없이 술 잘 먹는구만. 같은 걸로 한 잔 더 하겠나?"


고개만 한 번 끄덕이자 바텐더가 온 더 락으로 따른 위스키를 강민우 쪽으로 밀었다. 

은은한 조명. 십 년쯤 전에 유행했던 로큰롤. 살짝 손때는 탔지만 신경써서 관리한 가구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분위기의 동네 바였다.


"전혀 안 닮으셨는데요. 부인 쪽이 미인이셨나?"


"다들 그러는 구만. 그래. 친딸은 아니야."


"그래요? 어쩌다 만났습니까?"


잔 하나를 꺼내 닦으며 바텐더가 눈썹을 위로 으쓱 올렸다. 


"내가 일하던 곳 근처에서 화재사고가 났었거든. 나중에 들었더니 방화랬던가. 아무튼 슬쩍 가 봤더니 부모는 다 죽고 걔만 살아있지 뭐야. 딱해서 데리고 나왔지. 이 흉터도 그 때 얻었어."


강민우는 남자의 얼굴 한쪽을 가리는 화상의 흉터를 바라보며 한 모금을 머금었다. 꼴깍. 술 맛은 나쁘지 않았다.


"괜히 변덕 한 번 부렸다가 코가 꿰이고 말았지 뭐야."


너스레를 떠는 것 치고는 남자는 퍽 행복해 보이는 웃는 얼굴이었다.


"아. 혹시 요즘 사진도 볼텐가? 올해 고등학생이 됐어. 슬슬 머리가 커져서 말도 안 듣는다니까."


"굳이 보여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그러지 마시고. 한 번 봐. 내가 아무나 보여주는게 아니라니까."


남자는 지갑 맨 앞에 꽂힌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어색하게 웃는 정장 차림의 남자와, 밀가루로 범벅이 된 교복에 꽃을 가슴에 안고, 활짝 웃는 여자아이의 사진.

중학교 졸업식일까. 두 사람은 한 발짝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어때. 존나 귀엽지? 내가 아빠지만 솔직히 이 정도면 그라운드 원에서 손꼽힐만 하다니까. 미래가 보여서 걱정이다. 따라다니는 새끼들 몰래 다 죽여버릴거야."


"따님이 좋아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 아버지의 마음을 그쪽이 알기나 하겠어? 난 정말 곱게 키우고 싶었는데 요즘은 경찰이 되겠다고 난리야. 나부터 체포해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니까."


"체포?"


"아, 한때는 꽤 더럽게 살았었거든. 어디보자, 대략 십 오년 쯤 됐나? 팔면 큰일나는 것들을 이것저것 많이 팔았지. 주먹도 많이 썼고. 근데 애 키우면서 더럽게 살 수는 없겠더라고. 그래서 손 씻었어. 빠져나오느라 힘들었지. 한 세 번 쯤 죽은 거 같다."


"그렇습니까."


"응.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정식으로 입양은 안 했어. 내 이력이 애 발목잡으면 안되니까."


꼴깍. 크게 한 모금 위스키를 삼켰다.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화끈한 감각에 몸이 점점 깨어났다.

전신을 긴장시켜두어야 했다. 곧 시작할지도 모르니까. 녹기 시작하는 얼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민우는 입을 열었다.


"주인장. 오늘 이 가게에 처음 왔는데 말입니다."


"응. 처음 봐. 너랑 저쪽에 혼자 앉은 여자애."


이유리도 눈치채고 있었나.


"…원래 술술 다 얘기하시는 편입니까?"


탁. 깨끗이 닦은 잔을 내려놓은 바텐더가 어느새 무표정히 굳어진 얼굴로 강민우를 내려다보았다.


"전부 조사하고 온 거 아니었냐?"


"ㅡ!"


"잠시만."


품에 숨겨둔 총을 꺼내려던 손을 붙잡혔다. 피부에 닿은 차가운 강철의 느낌. 의수였다.

강민우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본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조직을 나오는 대가였지. 못해도 팔 하나는 놓고 가라더라고. 자, 급하게 굴지 마. 한 잔 더 하면서 잠시만 기다려."


쪼르륵. 마시던 잔에 술이 새로 부어졌다. 대략 세 모금 정도일까.


카운터를 나온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가, 구석자리에 앉은 손님의 등을 툭툭 쳤다.


"어이 김춘식이. 이제 집에 가."


"뭐어? 아니, 이제 겨우 아홉시가 넘었는데 뭔 소리야?"


"그냥. 오늘은 좀 일찍 닫을거야."


"드디어 장사 접냐? 뭐어야 새꺄. 유미가 술 파는 아빠는 쪽팔린대? 닭장사로 바꿀거냐?"


"아이, 가오 상하게 뭔 개소리야. 개인 손님들이 오셔서 그래."


"개인 손님? 그러니까 착하게 살았어야지!"


"좆까고 신경 끄셔."


ㅡ어쩔거요, 대장? 눈치챈 거 같은데.


귀에 낀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앞 건물 옥상에서 저격 포인트를 잡고 대기중인 대원이었다.


"신호할 때까지 대기해. 최지훈."


ㅡ난 기다릴 수 있어. 근데, 음. 유리는 아닐지도.


최지훈의 말에 강민우는 고개를 돌렸다. 입구 근처에 혼자 앉은 여자를 흘끔 바라보았다.

후드를 뒤집어 쓴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이유리. 신입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원이었다.

실력은 좋았다. 각오도 충분했다. 단지 정신이 좀 불안정한 게 흠이었다.


이번 작전에 데려오고 싶지 않았으나 본인이 너무 간절히 원해서, 지시에 무조건 따른다는 조건 하에 동행했었다.

정보대로라면, 이 남자는 과거에 A급 카운터였으니 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잘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은.


구석구석을 차지했던 단골손님을 전부 내보낸 남자는 푯말을 닫힘으로 바꾸고 돌아왔다.

강민우를 지나 카운터 안으로 들어간 다음, 사진 뒤에서 장갑 한 쌍을 꺼냈다.

장갑 낀 손으로 사진을 천천히 한 번, 쓰다듬은 남자는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돌아섰다.


"시작할까? 아님 궁금한 게 있어? 딸을 건드리지 않았으니 성실히 답해주지."


"우린 그런 식으로 일 안합니다."


"아, 그래? 사과하지. 평의회 애들이 아니었구만."


트랙이 바뀌었다.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먼저 깔리고 남성 보컬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이것도 이십년 쯤 전에 유행했던 노래였던가. 취향이 꽤 올드하군. 잔을 들었다. 꼴깍. 두 모금 남았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꼴꼴꼴, 남자는 테이블 위에 두었던 잔에 위스키를 니트로 가득 따랐다.


"처음부터. 어디서 왔는진 몰라도 화약 냄새가 너무 나잖아. 이 동네엔 그런 애들 없다."


"개코십니다."


"몸이 기억하는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저쪽의 여자가 날 죽이고 싶어하는 티를 풀풀 내고 있고. 저거야 말로 모른 척 하기엔 너무 따가운걸."


이유리가 고개를 돌렸다. 후드 속에서 눈이 번들거렸다. 으드득, 이빨을 가는 소리. 강민우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제발 참아주길, 잘못 짚은 것일수도 있었다. 강민우는 현실주의자였다.


지금 당장 죽여야 하는 개새끼들이 너무 많았다. 과거의 죄까지 포함해 모든 범죄자를 단죄하려는 얄팍한 생각은 없었다. 

오해라면, 협조를 구하면 그만이다.


"뭐 좀 물읍시다. 이번이 진짜 질문입니다."


"얼마든지."


"당신은 지금 '성냥팔이'요?"


음악이 뚝 끊겼다. 트랙이 바뀌는 타이밍이었다. 남자는 수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술 파는데? 애 학원비가 올라서 세금 내기도 빠듯해. 자. 짠."


가볍게 건배했다. 이제 한 모금 남았다. 남자는 도수가 낮은 술을 마시는 것처럼 거의 반을 들이켰다.

쟈가쟝. 시끄럽고 빠른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 소리와 뒤따르는 드럼 소리. 빠른 템포의 곡이 시작됐다.


"암시장에 성냥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요. 추적하던 사람이 여럿 당했죠. 그리고 인신매매도 늘었습니다."


"크으으으, 아. 좋다. 난 모르는 일이야. 관둔 지가 언젠데."


"전부 당신이 꽉 잡고있던 일입니다."


"모른다니까. 그런 이유로 온 거라면, 너희가 누구인지 알겠는 걸. 들어본 적 있다. 민병대지? 


강민우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빠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짠 하자고. 자네가 대표로. 셋이나 온 걸 보면 좋게 끝날 것 같지 않네."


무전기에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우의 몸도 긴장으로 곤두섰다. 최지훈까지 눈치채고 있었나.

과거에 A급 카운터였다는 정보는 정확한 모양이었다.


"좋게 끝낼 수도 있습니다."


두 남자는 빈 잔을 내려놨다. 연거푸 술을 들이켜서일까. 취기가 훅 올라왔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목숨을 걸고 싸우기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특히나 이빨이 살아있는 맹수와 싸우기에는.


"후우. 그럼 나야 좋지. 잡혀갈 만한 짓을 꽤 많이 하긴 했는데. 그땐 너희들이 급식충이던 시절 쯤일 걸. 요즘은 정말 아냐. 오해라고 말하면 믿을래?"


"지랄은 거기까지 해. 살인자."


탕, 테이블을 친 이유리가 일어났다. 후드 속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연보랏빛 눈동자는 증오와 분노로 얼룩져있었다.


"음, 아가씨는 모르는 얼굴인데."


강민우도 벌떡 일어나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들이 모았던 정보들은 전부 과거의 것들.

성냥팔이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뒤에 있을 가능성은 실제로 낮을 수도 있었다. 


아무나 의심가는 대로 죽여버리는 건 민병대의 방식이 아니다.


"그만 둬. 이유리."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냥팔이가 크게 움찔했다. 이유리, 라고? 작게 되뇌였다.


"더는 못 기다려."


"...내가 아가씨 가족을 죽였나?"


두 사람은 강민우를 중간에 세워두고 시선을 부딪혔다. 흔들리는 눈빛의 성냥팔이와, 확고한 증오로 타오르는 이유리.


"그래. 내 기억은 거의 다 불타버렸지만 내 부모님, 내 동생. 전부. 전부 죽었어. 그 불길 속에서."


"음, 그것도 모르는 일인데."


"거짓말. 거짓말거짓말이야! 거짓말! 난 당신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 더는 못 참아."


"그만두라고 말했잖아. 성냥팔이는 손을 씻었다고 직접 얘기했어. 그리고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보가 더 필요해."


"대장이나 그만둬!"


이유리가 강민우를 밀쳐냈다. 쿠당탕, 비능력자인 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간 카운터의 완력을 버티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능력이 발현되었는지 불씨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크윽, 안 돼, 이유리! 멈춰!"


"손을 씻어? 웃기는 소리. 죄는 사라지지 않아! 이 새끼는 살인자야. 이 새끼가 죽였던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거야? 정보가 부족해? 그냥 이 새끼가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는게 증거야!"


성냥팔이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 분노를 불태우는 미친 여자의 얼굴은, 좀 뜯어보면 그의 의붓딸과 많이 닮았다.


그래, 나같은 악당에게 너무 형편좋게 전개된다 싶었다.


"하. 씨발거. 이런 끝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최지훈! 이유리를 막아! 쏴!"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성냥팔이!"


가게는 발작적으로 터져나온 폭염에 휩싸였다.


* * *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시끄러운 앰뷸런스 소리. 좁은 길목을 가득 채운 소방차들.

그 사이에 쏜살같이 달려온 택시 하나가 멈추었다.


벌컥 열린 차 안에서 소녀 하나가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을 기어가듯 튀어나왔다.


"안 돼,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두 갈래로 땋은 연보랏빛 머리를 휘날리며 소녀는 인파를 헤치고 달려나갔다.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밀치듯 달린 소녀는 새까맣게 그을린 가게 앞에 멈춰섰다.


발을 동동 구르던 단골손님 하나가 그녀를 알아보고 황급히 다가왔다.


"유, 유미야."


고장난 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만 돌린 소녀가 물었다.


"아저씨는요?"


새까맣게 죽어버린 눈이었다.


"그게, 그게 말이다."


"아저씨는 어디있냐고요!"


"그, 저 안에... 그런데 가면 안, 유미야!"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소녀는 앞을 가로막는 폴리스 라인을 훌쩍 뛰어넘었다.


"시민께서는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


"가족이에요. 제발 비켜주세요. 제발."


"밖에서 대기..."


"죄송해요."


"카, 카운터?"


길을 막는 경관 몇 명을 엎어치고 가게로 들어갔다. 오래된 포스터들이 붙어있던 벽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좀 치우라고 구박을 줘도 넌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걸, 하며 절대 치우지 않았던 LP판이나 시대가 지난 피규어들이 놓였던 찬장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온기로 가득했던 모든 것은 잿가루가 되었다.


비틀, 비틀. 그리 넓지 않은 가게였기에 이유미는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새까만 비닐로 덮힌 사람이 거의 다 타버린 카운터 앞에 누워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짚었다. 뿌리쳤다. 붙잡혔다. 뿌리쳤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닐을 치웠다.


구역질이 솟아올랐다. 끔찍한 화상의 흉터들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녀의 의부는 죽었다.



누군가 다시 어깨를 짚었다. 비틀, 다리에 힘이 풀려 미끄러지고 말았다. 경련이 온 다리가 버둥거렸다.

사방에서 시끄러운 고성들이 들린다. 


뭐하는거야.빨리 내보내.가족에게 보여줄 만한 게 아니야.빨리 이분 데리고 나가.가족 분 괜찮으세요?일으켜드릴게요.


붙잡는 손을 전부 뿌리쳤다.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볼을 타고 흐르는 건 눈물일까, 아님 혈관이 터져서 흐르는 핏물일까. 무엇이 됐든 문질러 닦았다.


일 초라도 더, 남자의 얼굴을 담아두기 위해서.


이건 자연스럽게 난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는 누군가가 가한, 잔인한 폭력의 잔재들을 하나하나를 기억했다.


또 빼앗기고 말았어. 용서 못해. 절대로.


절대. 절대 용서못해.


누가 됐든. 반드시, 반드시 찾아내서.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ㅡㅡㅡㅡㅡ

유행타는 세탁메타에 IF느낌으로 한숟갈 들이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