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꿀꺽.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중단발에 흰색 헤어핀을 꽂은 소녀가
긴장감에 떨며 옆 사람에게 들릴만큼 큰 소리로 침을 삼켰다.
"크리스 씨? 그렇게 긴장 안 하셔도 돼요. 사장님은 조금 괴짜지만,
좋은 분이시니까."
"아, 아아? 네,넵."
크리스티나 브레히트, 크리스는 류드밀라의 소개로 코핀 컴퍼니에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를 사장실로 안내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부장
김하나는 크리스가 귀엽다며 첫 만남부터 거리를 마구 좁혀와서,
Mbti 성향 검사 ISFJ에 빛나는 크리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선사했다.
애초에 크리스는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고 싶은 전형적인 소시민이었다.
어쩌면 미약하나마 카운터 능력을 각성한 이상, 평범한 일반인의
삶따윈 꿈꿔선 안 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후, 후하.. 스읍~ 후..."
"후후, 그렇게 심호흡까지 하실 필요 없는데."
김하나는 그런 그녀에게 귀여운 동물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냈다.
정말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초면인 사람을 만날 땐 긴장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심지어
지금은 거의 면접에 가까운 상황인데 말이다.
크리스는 떨리는 손으로 사장실을 두드리고, 조심스레 문손잡이를 돌렸다.
"오, 크리스 양인가. 어서 오게! 하.하.하."
"저기.. 하나 씨. 이건..?"
크리스는 긴장감이 대번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요란하게
움직여대는 네모나게 각진 검은색 깡통을 가리켰다.
"후후, 코핀 컴퍼니의 사장님이세요."
"네..? 이 네모난 깡... 로봇이요?"
"그렇다네! 최첨단 테크눨로지의 집약체. 머신 갑일세. 잘 부탁하지."
머신 갑은 로봇 팔을 내밀었고 크리스는 얼떨결에 그것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다.
"음, 일단 어디든 팀에 속하는 게 좋겠지? 하나 양, 서윤 양을
불러와 주겠나?"
시원시원한 웃음과 함께 네, 라고 대답한 김하나가 나가고 나서 얼마 뒤,
또 다른 큰가슴의 미녀가 어쩐지 요망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부르셨나요?"
"서윤 양! 새로운 소대원 어떻게 생각하나?"
"소대원이요? 저희는 일단 4명이서 오랜기간 전장을 헤쳐와서,
딱히 새로운 인원 충원은.."
서윤은 그렇게 말하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매우 불편해 보이는
크리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웃었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필요하진 않지만, 사장님의 의견이 그러시다면, 따라야겠죠?"
"역시 서윤 양이야. 서윤 양, 이쪽은 크리스티나 브레히트 양일세.
크리스 양, 알트 소대의 리더, 서윤 양이라고 하네."
"안녕? 서윤이라고 해. 귀엽게 생겼네. 언니라고 불러도 돼."
크리스는 거침없이 그녀의 마음 울타리를 뛰어넘는 또 한 명의
침입자덕분에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몇 살인데... 요?"
"글쎄, 너보단 많지 않을까 싶은데."
"크리스 양, 서윤 양. 이 인선은 확정이 아니라 임시일 뿐이니,
언제든 조정 될 수 있다는 것은 명심해주길 바라네. 오티를 해야
할테니, 알트 소대는 조퇴할 수 있도록 해두지."
"와! 사장님 최고!"
서윤은 펄쩍 뛰어 머신 갑을 끌어 안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슬쩍 팬티를 노출하고, 머신 갑의 렌즈부분에 정확히
가슴을 위치시키는 것을 보아 이 서윤이라는 여자는 여간 고단수가
아니라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
크리스는 영 불편했다.
자꾸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질 않나,
길도 모르는 자신의 손을 꼭 쥔 채 이리저리 이끌어대질 않나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벌써 녹초가 되는 것 같았다.
"참, 우리 크리스는 카운터 능력이 뭐야?"
"그 '우리' 는 좀 빼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좀 낯가림이 심해서."
"왜애, 이제 한 팀인데."
서윤은 찌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는 크리스의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이 여자, 학창 시절에 한따까리 했을 것만 같다.
"으브브.. 크은트능륵.. 그븕은근드.."
"어머, 너무 세게 잡아 당겼나, 미안미안."
물론 전혀 미안한 표정은 아니었다.
"카운터 능력.. 귀 밝은 거에요. 무쓸모라고 하셔도 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깐."
"흐응~? 귀가 많이 밝니?"
"네, 좀 밝긴 한데요..."
서윤은 예의 그, 꿍꿍이를 잔뜩 숨기는 듯한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고 크리스는 본능적으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쓸모 없다니, 다~ 쓸데가 있어. 아, 다 왔다. 여기가 우리 숙소야."
크리스의 심장이 다시 긴장감으로 콩닥거렸다.
또 몇 명의 뉴페이스를 접해야 하는 거지.
알트 소대의 숙소는 한 둘로 이루어진 팀은 아닌 듯 꽤나 넓었다.
서윤이 구두를 현관에 벗고 실내로 들어서자, 크리스도 롱부츠를
벗은 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흐응, 다리도 예쁘고 발도 조그만 게 귀엽네."
"네,네에?"
무섭다. 이 여자, 동성애 성향도 있는 걸까?
"농담이야, 농담. 이따 애들 오면 소개시켜줄게 우린 좀 쉬고 있을까?"
"어, 어어.. 저는 여기! 여기 소파에서!"
서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대를 권했지만
크리스는 한사코 열을 올리며 거실 소파를 고집했고,
서윤은 어깨를 으쓱하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서윤이 잠잠해졌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지자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크리스는 소파에 녹아내리듯 늘어졌다.
역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중노동이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더더욱. 그냥 상상친구씨와 노닥거리는 평화로운
삶은 정녕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는 머나먼 꿈 같은 것일까.
크리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았는데, 그녀에겐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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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