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그닥 마음에 들진 않았음.
네퀴티아는 끔찍한 인간이었고 침식체가 되고 나서는 더 끔찍한 괴물이 됐어.
레아는 자기가 끝까지 버텨도 결국 그로니아는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각호까지 달려오지 않았으면 네퀴는 방송을 통해서 전 국민을 멘탈 프린팅했을 거였잖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5종급 침식체인 네퀴를 그로니아의 수도에 풀어놓는 게 그러지 않았을 때 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음.
나름 유능한 첩보요원인 레아가 그걸 모를리도 없었겠고.
물론 이걸 갖고 레아를 비난하는 것도 너무 가혹하지.
레아는 이미 모네카 끄고 도련님 모가지 딸 때부터 죽을 작정이었고, 반역자로 몰린 상황에서도 내전을 격화시킨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니까.
나는 레아가 지쳤던거라고 생각해. 레아의 삶은 가감 없는 지옥이었을 거고, 자기 딴에 엄마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 행동은 하나같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왔으니까.
그렇다고 주변에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만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그나마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게 카르멘이었는데 까고보니 캬루멘년은 자기를 농장에서 키우는 닭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잖아.
다른사람들은 레아하고 네퀴의 대화를 보고 둘이 합일되었다고 생각하던데 나는 레아가 자신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고 봤어.
지치고 지쳐서 더 살아갈 자신이 없던 레아가 포기할 이유를 찾고 네퀴티아가 던져준 이유에 애써 납득하는 것 같았음.
실제로 네퀴티아와의 대화에서도 네퀴티아가 부상하면 자신은 어떻게 되냐는 식의 말이나 삶에 대한 집착같은 건 보이지 않았으니까.
할만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그래 이게 끝이구나. 하는 식의 초탈함으로 받아들여지더라.
그런 맥락에서 네퀴티아가 보이는 인간성의 편린은 레아와 합쳐지면서 새로이 생긴 거라기보다는 그냥 레아의 미련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거라고 보는게 맞다고 봐.
관리자의 우군이 될 가능성 같은 건 당연히 논외고. 차라리 킹은 극단적이긴 했어도 인류를 위한다는 마음이라도 있었지 이 씨발년은 그냥 괴물 그 이상 이하도 아님.
되도록이면 레아의 엄마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있겠지. 근데 그게 아끼던 물건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 이상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더라.


결국 레아의 질문에 대한 답은 과거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