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새로운 에피소드가 또 나왔어. 그런데 이 에피소드, 뭔가 이전의 이야기들과는 달라. 배드엔딩인지, 해피엔딩인지 알 수가 없게끔 굉장히 모호한 결말로 끝이 나지. 그래서 얼떨떨한 감정마저 들어. 이걸 어떻게 봐야 하지?

결론마저도 일단은 '그로니아의 청정화와 동료의 생존'라는 긍정적인 면과 '네퀴티아의 부활'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나타나. 그래서 이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판단이 잘 서지가 않지. 챈에서도 좋게 보는 이도 있고, 좋지 않게 보는 이도 있어.
이런 결말 외에도 사육제는 기존의 에피소드와는 뭔가 달라. 기존 에피소드와는 결이 다른 느낌이지.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려울 뿐, 다들 무언가 기시감을 느꼈을 거야. 뭔가 기존과는 다른 이야기라는 느낌을 말야.
이번에는 간단하게 이 '사육제'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려고 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둘째 치고, 이 사육제 이야기의 끝- 네퀴티아 부화 저지 작전이 왜 실패였는지, 실패일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해볼거야.

결론부터 말해서, 이 에피소드가 가진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높이'야.
이 에피소드는 시선 높이를 대폭 낮춰서 접근해. 바로 '개인/민간인'의 시점이지.
이 이야기는 민간인, 혹은 개인의 시점과 사정에 의거해서 이야기를 풀어가. 그리고 오롯이 그들의 감정과 사정만으로 일이 진행되고, 심화되고, 끝이 나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던 거야. 한번 살펴보자고.
0. 게임의 시점

-높이가 다르면 풍경이 바뀐다
우리는 이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제3자', 혹은 '방관자'의 시선으로 보게 돼.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관리자 혹은 그 밑의 기관' 정도의 시선으로 말야. 더 내려가 봐도 최소한의 힘은 가진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돼. 병사 한 둘 정도는 쉽게 걷어찰 수 있는 인물들 말야.

-최소한 건물 정도는 뛰어다니는 애들
우리가 삼국지 같은 전쟁, 혹은 대하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높은 곳에서 보는' 시선 때문이야.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높은 관직과 지위, 혹은 그럴 수 있는 권력과 힘을 가진 인물이지. 이들은 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인물들이야. 그런 시선을 가진 이들이기에 이들은 자신만의 거대한 음모나 계획, 야망을 가지고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

-모든 것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
그리고 우리는 그들 머리 위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시선에서 지켜볼 수 있어. 이런 싸움이 우리에게 '재미있게' 와 닫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선의 높이에서 나타나지. 한 개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세상이 돌아가는 거대한 흐름이 보이거든.

-시뮬레이션 게임의 높이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그 군웅이 아니라- 그 세상을 살아가는 한명의 양민이 된다면 어떨까.
내가 저기서 창에 찔리기 위해 돌격해야만 하는 병사1이 되는 거지. 혹은 그냥 살육당하는 민간인이 되는 거야. 개인에게 있어 그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이번 이야기는 그 민간인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보는가-를 다소 폭력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야. 까놓고 말해 이 세상의 표면, 민낯을 보여주는 거지.
-애니메이션 '섬광의 하사웨이': 전쟁과 피해자
이번 에피소드는 우리가 보던 시선의 높이를 확 바꿔. 군웅이 아닌 양민의 시점으로 말야.
기존의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보던 시선이 아니라, 눈앞의 것만 보기에도 벅찬 이들의 시선으로 다시 이 세상을 보여주지.
1. 시점의 변경-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지적 시점자
우리가 빌려 보던 시선은 사실 굉장히 높이 위치하고 있었어. 거의 맨 꼭대기에 있지. 바로 관리자의 시선이야.
이 게임에서 주인공 격인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관리자'야. 이 존재의 시선은 거의 모든 이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지.

그는 문자 그대로 인류와 세계의 관리자야. 전략 시뮬레이션의 정점이야. 거의 전지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조차 모든 것이 아니야. 그것조차 수없이 소모되어 왔던 세계 중 '하나의 세계'로 볼 수 있을 만큼 무지막지하게 높은 시선을 가진 존재야. 그는 보이는 모든 걸 보고 모든 걸 조절하며, 대국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승리를 위해 움직이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는 '이 세계의 체스말을 움직이는' 존재야.
그야말로 인류의 대표자야. 그래서 그는 거대한 테러를 일으킨 리플레이서 신디케이트도, 나라와 대륙의 국운의 건 싸움마저도 하나의 카드로 쓸 수 있는 존재야.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지.



-주인공들의 형태
관리자 뿐 아니라 펜릴 소대를 비롯한 다른 에피소드의 주인공격 존재들도 최소한 국가기관이나 특수부대지. 하다 못해 동네 용병 사장인 존 메이슨조차 '테라사이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계획을 살피면서 움직이는 사람이었어.
이들은 대국적인 시야를 가진 존재들, 혹은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이들이지. 이 흉측한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일 최소한의 힘을 가진 이들이야. 그리고 최소한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야.

-돈은 없어도 내일이 온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는 내일을 볼 희망도, 큰 꿈을 그릴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있지.
바로 흐름의 구성체이지만 정작 아무 힘도 없는 보통 사람들. 민간인들이야. 최소한의 방어 능력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침식체라는 재난에 모든 것을 잃고, 잃어버린 사람들끼리 싸우며 최소한의 존엄조차 잃어가는 자들.
거대한 집단들의 '계획'이라는 이름 하에 고통받으며 이름조차 없이 사라져가는 사람들 말야.
2. 삼차원에서 영(0)차원으로

-돈은 커녕 내일도 없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런 침식사태와 전쟁, 내전은 재앙이야.
우리가 보고 즐기는 대하소설의 이야기(삼국지)는 화려한 무용담을 가진- 군웅할거의 거대 서사야. 하지만 사실 민중 입장에서 그딴 건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내전에 불과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은 소리소문도 없이 굶어죽거나 살해당하지.
심지어 그들을 모아 만든 병사는 언제나 이름도 없이 숫자로 세어져. 이들은 소모되는 도구에 불과해.
전쟁에서 개인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끔찍하지.

-내일이 없는 자들
영웅의 무용담은 언제나 이면을 가져. 그 영웅의 무용을 칭송하는 찬사인 동시에, 그 칼 아래 쓰러져가는 이들의 비극이지.
그리고 영웅의 칼에 쓰러져간 이들이 흘리게 했던 사람들- 이름 없는 약자들의 피눈물로 써진 비극이야.
이런 이들에게는 내일이 중요하지 않아. 오늘까지 살지도 모르는데 내일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저 개인의 안위가 먼저겠지. 아니면 나를 '오늘까지 살 게 만든' 놈을 먼저 보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겠지. 혹은 그러한 판단조차 잃어버리고 오로지 갈 곳 없는 복수심을 휘두르면서 살아가거나.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개인적인 감정과 판단만이 남아서 살게 돼.
도덕이니, 관념이니- 평화 같은 것보다는 나와 가족의 안위, 안전과 복수만이 우선시 되는 거야.

-현재상황과 개인의 판단
이번 에피소드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높은 시점을 완전히 바닥으로 끌어내려서 진행돼.
관리자, 장군, 장교, 요원의 시점이 아니라 내전 국가- 전쟁 한복판에 떨어져버린 개인, 피해자, 민간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끌어내려서 진행되지.
그 동안 다른 '메인급' 캐릭터들의 행동에는 무언가 큰 계획 내지 이유가 존재했어.
모든 것들은 세계를 지키기 위한, 혹은 승리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지. 이전의 이야기는 목적이 존재했어. 한명 한명, 영웅들의 서사를 그린 무용담이었어.

-인간은 신을 베었다
하지만 개인의 이야기는 아냐. 개인의 싸움에 승리 같은 게 어디에 있어. 현실의 싸움이 일어나면 경찰은 언제나 쌍방으로 처리하지. 심지어 경찰이 없어도 마찬가지야. 영광이고 나발이고, 남는 건 내가 입은 상처 뿐. 둘 모두 상처밖에 없는 패배에 불과해.


-내전에는 이유도 승리도 없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제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아져.
오로지 감정만이 남지. 주위 상황이 악화될 수록 이 과정이 반복되어 가. 내전이 결코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야.
그저 누군가 하루 더 살고, 가족이 살아남지.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입은 상처가 복수가 되어 또다른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는 일의 반복이 일어나.
나중에는 싸움의 이유, 평화, 생존 같은 이성도 던져버리고 오로지 당장 서로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복수는 그 고통들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이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니까.
3. 대의를 잃은자, 저버린 자

이들에게 있어 거대한 계획이나 대의 따윈 없어.
선의 따위가 남을 리가 없지. 이 이야기는 그렇게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야.
그저 나의 삶과 감정, 사정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개인들의 삶을 보여주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또 버리고. 오로지 복수만이 모든 것이 되어버린 개인들을 보여줘.


때문에 이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큰 목적이 없어. 개인의 사정이 우선이 이들이야. 더 까놓고 말하면 복수지.
모두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 내일, 대의나 평화를 위한 행동 따윈 없어. 자신조차 평화를 바라지 않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이들은 복수자들이야. 이미 잃을 것이 거의 없는 이들이거나 아예 없는 이들이지.
더 이상 남의 안녕이나 평화 따위를 신경 써 줄 만큼 자비로운 내면을 가진 이들이 아냐.
이들은 죽지 못해 살아. 그냥 죽기에는 너무 억울한, 이미 원귀에 가까운 존재들이야.


-영원히 맞춰지지 않을 저울
이번 메인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이 이유로 본인들의 복수를 위해 움직여. 그 뒤의 일 따윈 안중에도 없지. 그냥 내가 더 억울해.
더 이상 누가 먼저 죄를 범했는가, 누가 더 나쁜 놈인가 하는 이유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아. 그저 그 대상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이 싸움은 자신의 안위는 물론 타인의 안위마저도 저버릴 수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복수자들의 개싸움이야.

-공동 목표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번 이야기는 겉으로는 '5종급 침식체 부활의 저지'라는 탈을 썼어.
하지만 결국 내면은 아냐. 이런 개인적인 이들의, 개인적인 이유에 의한, 개인적인 개싸움들이야. 고작 그런 이유나 사건 따위는 자신들의 복수를 멈출 이유가 되지 못해. 이들은 결국 마지막까지 협력은 커녕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지.



이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타협은 커녕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위험한 침식체가 부활이 되고 있든 말든.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있든 말든 본인의 판단과 감정이 우선이야. 자신만이 옳고, 나머지는 그걸 방해하는 존재로만 취급되지. 이들의 싸움은 필연적이었어. 모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들이야.
결국 이러한 개인들의 복수가 우선되는 상황 때문에, 이를 계획한 악마들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었지.

마왕의 작전은 매우 매끄럽게 성공하고 말았어.
그 누구도 힘을 합치지 못한 채, 대화조차 못한 채 서로 싸우기에 바빴지. 이쪽은 사실상 거의 자멸한 거나 마찬가지야. 정말 별로 힘도 안 들이고 본인들의 업을 쉽게 달성했어.
이들은 마지막까지 견제다운 견제도 안 받고 유유히 상황을 즐기다 떠나지.

-쟤들 뭐하냐.
물론 우리는 이걸 지켜보는 입장이니 '누가 더 나쁜 놈인가'에 대해 판단할 수가 있어. 하지만 당사자들은 아니지. 서로를 물고 뜯는 와중에 이득을 보는 건 언제나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야. 개싸움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싸움을 붙인 개 주인이야.
이번에는 바로 이 에델이었지.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이
결국 이 싸움은 서로 제 살만 깎아먹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어.
복수도, 평화도, 하다못해 악마의 방해도 하지 못하고 자신들끼리 소모만 하다가 공멸하고 말았지. 네퀴티아는 부활했고, 학회는 제 목적을 이루었어. 반면 이쪽에 남은 것은 잔존 병력의 소모, 생존자의 상처뿐이지.
결론적으로 이 싸움은 사실 완전히 말아먹은 거야.
끝에 네퀴티아에게 인간성을 심은 것 정도와 침식이 잠깐 사라진 정도로 무마될 결과가 아닌 거야.

또한 이 결과가- 어쩌면 관리자가 시솝을 내친 이유의 증명일 수도 있겠지.
복수와 수단, 방법을 모두 긍정하는 과격파-시솝이 지원한 결과는 이런 비극이었어. 관리자가 시솝을 내친 것이 이러한 과정을 가진 테라브레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마무리!
이 스토리의 중점이 되는 것은 결국 '복수'야.
한에 사로잡힌 개인의 복수. 그것의 연쇄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야. 이에 대해서는 다음 '레버넌트 개론'에서 상세히 서술할게.

-악마의 껍데기
다음 글은 이 '레버넌트'에 대한 개론으로 돌아올 거야. 이번 글은 그걸 위한 서론이라고 생각해 줘. 알맹이가 없어보인다고 생각하면 정답이야. 다음 글에서 몰아서 가져올게.
늘 읽어줘서 고맙고 리플 부탁해. 기왕이면 글자로 써 주면 너무 고마울 것 같아. 아님 걍 뭐라도 주면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