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오는 피로감에 하품을 거하게 하며 퇴근할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자, 거기에는 창백한 머릿결과 새하얀 피부의 조각상과도 같은 여자가 눈을 감고 공중에 떠있었다.

 백옥같은 살결과는 정반대의 강렬한 검은 복장이 고급스럽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뭣 모르고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간 큰일이 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여자는 살아있는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5종 침식체, 그 중에도 악명이 높은 개체인 <마에스트로 네퀴티아> 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를 코핀에 '임시 사원' 신분으로 데려온다는 결정에는 반발이 많았다.


"관리자님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른 침식체들을 데려올때는 적이라도 힘이 된다면 얼마든지 쓰실것이란 논리에 저도 설득당했지만, 이건 경우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눈을 감자 분노에 찬 채 사장 대행 역할을 하던 로봇을 반쯤 주먹으로 때려부수고 직접 관리자실까지 찾아와 목에 핏대를 세우던 부사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설득하기 참 힘들었지...'


 라는 생각을 하며 힘없는 미소를 짓자, 방 가운데에 가만히 있던 그녀가 살며시 눈을 떴다. 그 눈동자는 이쪽을 향하지만 초점이 없이 허공을 응시힌다. 그러나 그 눈동자의 방향만은 마치 볼 수 있는듯 정확히 당신을 향한다. 이내 그녀는 입을 열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허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서 오시지요 저희의 숙적, 관리자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사장실에 들어와있는데 애초에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거지? 분명히 잠궜을텐데..."


"이런 도어락 정도야 내부에서 들려오는 작동음 만으로도 여는 방법을 알아내는건 쉽답니다"


"알려줘서 고맙군...사장실 보안을 좀 더 강화해야겠어"


"관리자님도 농담은, 이 '가짜 사장실' 은 어짜피 보여주기 용이잖아요? 후후...그 여자, 이수연 이던가요? 가 들락거리는 '진짜 사장실' 은 여기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철통보안이시면서..."


"자네는 소리만으로도 그런 걸 다 알 수 있는건가?"


"언젠가 제가 말했었죠, 저에게 세상은 전부 악기라고...물론, 건물도 예외는 아니랍니다. 이 '가짜 사장실'에서 '진짜 사장실'로 연결된 비밀통로 방향도,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도 대강은 알 수 있답니다"


관리자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걸 느끼며 관리자실의 방음처리를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주제를 애써 돌릴려 시도 해보았다


"으음...근데 이런 늦은 밤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유가 무엇이지?"


"그건...사랑 이라는 감정에 대해 묻기 위해서 였습니다"


"알렉스...자네에게는 A타입 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군, 이 올린 상황보고는 이미 전부 읽어보았네. 자네는 자네의 어머니 '였던' 노파의 말에 공격을 망설이다가 퇴각했다더군, 그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깨우친거 아닌가?"


"겨우 그걸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했다고 주장하시려는거면 피아노 몇번 쳐보고 음악을 깨우쳤다고 주장하는 머저리들과 다를게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관리자님, 저는 더...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려고 온건데"


 사장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네퀴티아는 당신을 그 초점없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고, 당신은 고민에 빠진채.

 본디 침식체는 최후의 보루라고도 할 수 있는 관리자실과 테라브레인 근처에도 들이지 않는게 원칙일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고도의 지능을 가진 개체는 더더욱.

 그러나 그녀는 침식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단 지금은 적대행위를 멈춘 채 코핀 컴퍼니 임시 사원이란 신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카운터들과 상담해준 것 처럼...


"뭐...어울려줘도 괜찮겠지...."


"오?"


삑, 하고 주머니의 리모콘을 누르자 사장실의 벽들이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숨겨진 강철 문을 드러내었다.


"이쪽일세 네퀴티아 양, 이야기는 안에서 하도록 하지"


"이 방향은...정말로 저를 데려가셔도 되는건가요?"


"이미 들통나버린 시점에서 별 의미는 없겠지..."


어깨를 으쓱하며 비밀통로 안으로 네퀴티아의 손을 잡아 이끌자...


"어머..."


"무슨 일이지?"


"손을 잡아주실줄은 예상 못했군요...저도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나봐요 이런 행동도 알아채지 못하다니"


"걱정 말게, 경계심이 누그러진건 자네뿐만이 아니니"


"후훗...그렇네요, 당신의 숨소리나 심장 고동으로부터 더 이상 어떤 두려움도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음색이 들리는 군요"


".....다 왔네, 앉아도 좋아"


네퀴티아가 책상 맞은편의 의자에 스르륵 앉는 동시에 책상 밑의 버튼을 눌러 녹음/녹화를 시작하고는,

'이 상담 내용도 <카운터 케이스> 로 남기는게 좋겠지....'

졸음을 쫓기위해 커피잔을 들고 상담을 시작하며 관리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 논하러 왔다고 했지, 갑자기 무슨 일이지"


"저는 사랑따윈 사전적인 정의로만 배웠지만, 관리자님도 이미 알다시피 그날 그 사건 이후로 이해관계를 초월한 끌림이나 함께하고 싶은 감정 등이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랑이 그뿐만이 아니라는것도 깨달았습니다"


".....계속 해 보게"


"사랑에는 음악에도 수많은 장르가 있듯이 수많은 종류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맞아, 자네가 그 노파에게 느꼈던, 그리고 레아 로써의 기억 속에서 노파가 자네에게 보내준 애정은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지"


"그 외에도 여기 와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걸 들으며 그들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음색, 숨소리, 심장고동 등으로부터 친구 사이에도, 같이 싸운 동료 사이에도, 같이 자란 남매나 형제 사이에도, 스승과 제자 간에도 이해관계를 초월한 긴밀한 애정이 존재 할 수 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전부 각기 다른 아름다운 듣기 좋은 이중주를 만들더군요 "


"......우정, 전우애, 형제애 등으로 불린다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제일 강렬한건...서로 끌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이란것도 알았습니다. 이를테면...그 이수연이라는 여자가 이 방에서 당신과 둘만 있다던가 하는 상황에서..."


"푸훕?!"


 너무나 당황해 마시던 커피를 거의 그대로 책상에 뿜어버릴 뻔했지만 반사적으로 커피잔을 입 앞으로 가져가서 참사를 막았다.


"아하하...당신의 당황한 심장소리도, 숨소리도 다 너무나 듣기 좋군요...계속 듣고 싶어질 정도에요"


"크흠흠...자네는 내 사생활을 들추고 놀리려고 온 거였나..."


"아뇨, 너무 반응이 재밌으셔서 그만...본론으로 돌아가서, 그 이수연이라는 여자가 느끼는 감정...저도 알 것 같습니다"


"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상대가 누구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그 상대는...지금 제 앞에 앉아계시는군요"


쨍그랑, 이번에는 그만 들고있던 커피잔을 떨어리고 말았다.


"당신과 대화할때면 느껴지던 제 빨라진 심장소리, 밤에 혼자 당신을 떠올릴때면 가파지는 숨소리...당신이 손을 잡아주시면 머릿속을 장악해버리는 달콤한 멜로디...전부 종합한 결과 저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우습지 않나요? 숙적에게 빠져버리고 말다니..."


"................"


"어머...관리자님께서는 숙녀에게 이런 부끄러운 말을 시켜놓고도 아무 반응없이 지켜만 보는 매너없는 남성이셨던 걸까요..."


"아니...그건 미안하군, 카운터한테는 여러번 고백 받아봤지만 그림자한테 고백을 받은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제 자신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니 이해는 합니다만, 이미 한번 인간의 몸에 깃들었던 존재, 침식체 이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바라봐 주실 수는 없는 걸까요?"


".............자네가 말했듯이 사랑은 이중주 같은 거라네. 일방적이어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네"


"그래서 그걸 알아보려고 온 것 아니겠습니까"


네퀴티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서히 다가온다. 관리자는 포식자 앞에 구석에 몰린 불쌍한 동물처럼 점점 뒷걸음질 친다.


"후훗, 당신의 심장소리를 들어보아하니 이미 대답은 정해진거 같지만요"


"이...이러지 말게나"


"왜 안된다는거죠? 제가 단원 애들 없이는 치장도 스스로 못 하는 몸이라서? 다른 여자 때문에? 아니면...제가 침식체라서?"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네 이건...이건..."


구석에 몰려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진 관리자에게 네퀴티아는 숨결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서 그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로 시야를 꽉 채운다


"평소의 논리정연하신 말투는 어디가고 지금은 조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악기처럼 당황한 말투만 쏟아내시는군요. 후훗...그와 반대로 심장은 터질듯한 독주를 연주하는 중이지만"


"아..."


"당신도 당신의 심장소리의 음색을 한번 직접 들어봐요"


네퀴티아의 창백한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겹치는 동시에 손으로 당신의 양 귀도 막는다. 이제 들리는 소리라고는 혀끼리 타액을 섞는 끈적한 소리와 미친듯이 이중주를 연주하는 두 심장소리 뿐이다.


"하아....어때요? 듣기 좋았나요?"


".......좋은 음악은 한번만 감상해서는 충분히 즐길 수가 없는 법이라네"


"어머나?"


이번엔 관리자가 네퀴티아를 끌어당겨서 입을 맞추었다.

놀라서 반사적으로 저항하던 그녀는 이내 관리자 품속에서 몸에 힘을 빼고 양팔을 관리자 허리에 둘렀다.


"응.....웃......"


"...이번엔 자네가 감상평을 들려줄 차례군"


"1악장도 2악장도 전부 제 첫 키스를 바친 값을 할 정도로 훌륭한 음색이었답니다 후훗..."


"그러나 사랑하는 남녀가 연주할수 있는 이중주는 이게 끝이 아닐터...밤은 기니 오늘밤 저랑 함께 절정까지 연주해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다음편에 계속...아마도?



네퀴티아 너무 꼴려서 창작글 첨 써보는데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