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 협력으로 경찰서에서 사무보조를 시작한 지 어언 두 달이 지났다.

 

보통은 중소나 벤처 기업 등 규모가 작은 곳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민혁은 경찰서장인 아버지 덕에 행정 체험 연수 형식으로 공공기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낙하산이다.

 

말 그대로 사무보조이기에 그리 어려운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공문 작성을 돕거나 수사 자료를 정리하는 게 전부.

 

추리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천재적인 두뇌의 고교생이 경찰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운 좋게 금수저 물고 태어난,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니까.

 

딱히 경찰이 되고 싶단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학교를 졸업하려면 해야 하는 직장 체험, 마침 좋은 기회가 주어졌기에 잡았을 뿐.

 

, 그래도 부모 후광뿐인 고등학생이 경찰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긴 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카운터였다는 점이었겠지.

 

카운터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었다.

 

고작 D급에 간신히 걸친 수준.

 

등급제에 D 아래의 단위가 있었다면 최하위 등급은 분명 그의 차지였을 것이다.

 

처음 카운터로 각성했단 걸 알았을 땐 무척 기뻐하기도 했다.

 

만화영화에나 나오던 히어로가 될 기회가 민혁 자신에게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카운터 아카데미 중등부에서도 낙제하기 일쑤.

 

민혁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우수한 학생들은 고개만 돌려봐도 사방에 널려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난 그냥 운 좋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인생의 진짜 주인공은 저들이란 걸.

 

아카데미 필수 이수 시간을 수료한 뒤 바로 일반 학교로 편입했다.

 

카운터라고 해서 반드시 태스크포스에서 일하라는 법은 없다,

 

어차피 D, 그중에서도 밑바닥은 일반인과 별 차이도 없는 것이다.

 

초능력도 못 쓰는, 장비도 안 챙긴 용병들과 호형호제하는 정도로 침식체 앞에서 뭘 하라고?

 

제 분수도 파악 못 하고 까불다가 죽느니 하루빨리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가늘고 긴 삶.

 

소시민은 소시민답게 얌전히 사는 것.

 

소란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조용하고 안정적인 인생이 그의 목표였다.

 

 

 

, 뭐야. 왜 길을 다 막아뒀어?”

 

평소처럼 학교가 끝나고 경찰서로 출근하던 길이다.

 

민혁은 자주 다니던 골목길에 폴리스 라인이 쳐진 걸 보고 휴대 전화를 꺼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신호음이 몇 차례 울려도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 늦으면 또 뭐라고 할 텐데.”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려는 걸 끊고 다시 전화를 걸자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 박 경사님. 저 지금 출근하는 길인데.”

 

, !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

 

뭔데?”

 

박 경사는 시간 약속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었다.

 

할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민혁이 근무시간에 농땡이 피우는 걸 일일이 터치하진 않았지만, 출근 시간을 어기는 날이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바빠서 연락을 못 받았든 말든 그런 사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아니었고.

 

다시 전화를 걸자 바로 연결이 되었다.

 

, ! 바쁘다니까! 자꾸 왜!”

 

저 지금 출근하는 길인데 길이 막혀서요. 접근 금지라고 폴리스 라인 쳐 둬서 좀 늦을 것 같은데요. 돌아서 가야 해서.”

 

?! 너 지금 어디야! xx번가냐, 설마?!”

 

. 거기 맞는데요.”

 

수화기 너머로 박 경사가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네가 여길 왜 와, 씨바!”

 

민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귀에서 멀리 떨어뜨렸다.

 

그런데도 소리가 어찌나 큰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릴 정도였다.

 

온갖 축생 뒤에 새끼가 붙는 다채로운 욕이 절반.

 

멍청하다느니 생각이 없다느니 상대의 지능을 깎아내리는 욕이 또 절반.

 

너 지금 정확히 어디야! 너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다른 데로 새지 말고!”

 

그리고 또 뚝.

 

뭔 일인지 설명은 하고 끊어야 할 거 아니야.”

 

다시 전화를 걸어봐도 이번엔 받지 않았다.

 

꼼짝 말고 있으라고? 그럼 출근은?

 

아니, 애초에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생각이라도 할 것 아닌가?

 

접근 금지라고 한 걸 보면 안에서 뭐 상황이라도 터졌나 본데 그럼 오히려 여기 있지 말고 멀리 떨어져야 하는 것 아냐?

 

핸드폰을 손에 든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민혁의 귀에 나지막한 소음이 파고들었다.

 

.

 

총소리였다.

 

차가운 기운이 민혁의 뒷덜미를 타고 정수리로 올라왔다.

 

순간 사고가 멈췄다.

 

뭐야. 진짜 총소리야? 초저녁에 도시 한복판에서?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골목 쪽을 돌아보자 다급히 달리는 발소리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다시 탕.

 

이내 조용해지더니.

 

누군가 무거운 포대 자루를 질질 끌고 간다.

 

무슨 상황인지 보러 가려던 찰나, 박 경사가 수화기 너머로 소리쳤던 게 민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만히 있으라고? 사람이 총에 맞았는데?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야?

 

아니, 근데 진짜 총 든 강도 같은 거면 나 혼자 가서 뭐 어쩌려고.

 

경찰을 부른다던가.

 

그래, 경찰.

 

박 경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 손을 내려다보자 그제서야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다급히 주워 전원 버튼을 눌러보지만, 금이 간 액정에는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하필이면, 씨발.”

 

손톱을 물어뜯으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자니 납치 사건은 피해자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 위치를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옆 부서 형사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강도가 어디로 가는지만 알아내잔 생각에 발소리를 죽여 골목으로 들어가자, 빵 봉투를 뒤집어쓴 강도가 보였다.

 

5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의식을 잃었는지 다리에서 피를 흘리며 저항도 못 하고 범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강도가 가는 길을 유심히 보고 있자니 아이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 , , , .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벽에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와주긴 뭘 도와줘, 총 든 강도 상대로.

 

내가 나서 봤자 더 위험해지기만 할 뿐이야.

 

그래, 납치당했을 때 괜히 범인 자극하지 말라는 소리도 있잖아.

 

내가 돕는다고 저 아일 구해낸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가만히 경찰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악다문 이 사이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씨이 바알  .”

 

어째서 뛰쳐나간 건지, 민혁 스스로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냥, 정신을 차리자 이미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다, 씨이발!!”

 

골목에서 뛰어나가자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도가 뒤를 돌아보았다.

 

민혁은 그대로 손에 든 책가방을 강도의 얼굴에 있는 힘껏 처박았다.

 

건장한 고등학생의 체중에 가속도까지 붙은 책가방을 얻어맞은 강도는 아이를 놓치고 그대로 성대하게 넘어졌다.

 

민혁은 재빨리 아이를 안아 들고 뛰쳐나온 골목 쪽으로 달려 도망쳤다.

 

뒤에서 강도가 소리지르는 걸 무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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