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는 티타노마키아 당시 가이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크로노스에 의해 저승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로스에 유폐된 티탄 삼형제를 구출해주었다. 이들은 이후 제우스에게 벼락을, 포세이돈에게 삼지창을, 하데스에게 투구를 만들어주었는데 이 벼락을 아스트라페, 또는 케라우노스라고 부른다.****
“전방 3종 침식체는 내가 막는다. 카운터는 분대 단위로 2종을 마크하도록!”
말을 마치자마자 제이크가 강하게 땅을 박찼다.
체고(體高) 5m가 넘는 거대한 침식체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에 푸른 뇌격을 두르고서 일직선으로 적진을 돌파했다.
3종과 제이크 사이에 있는 다른 침식체는 방해물도 되지 못했다.
한여름 밤 형광등에 달라붙는 하루살이 떼처럼 전격에 스치는 것만으로 까맣게 탄 육편(肉片)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흡!”
3종 앞에 도달한 제이크가 그대로 침식체의 다리에 주먹을 꽂았다.
체급 차이가 무색하게도 2m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의 주먹에 거대한 침식체가 주저앉는다.
쿠어어어!
뒤이어 침식체의 아래로 파고 들어가 놈을 들어 올려 옆에 있던 다른 침식체에게 엎어 쳤다.
뒤엉킨 침식체의 위로 번개가 연신 떨어졌다.
“꺼져라, 잡것들!”
순식간에 3종 침식체 두 마리가 잘 익은 전기구이가 되었다.
제이크는 내지른 주먹을 거두며 잠시 숨을 골랐다.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상황.
사방에서 달려드는 침식체를 보며 그가 코웃음을 흘렸다.
그대로 왼 다릴 들어 강하게 발을 구른다!
콰릉!
푸른 전격이 360도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모든 적을 터뜨렸다.
빛이 번쩍이고 난 후 그의 주위에 살아있는 생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인류 최강다운 위용(威容).
그 모습을 본 부대의 사기는 하늘을 뚫을 듯했다.
“대령님이 우릴 지켜주신다! 포기하지 말고 싸워라!”
“인류 최강이 우리와 함께한다!”
서둘러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다시 세우고 방어선을 보강한다.
간간이 화망을 뚫고 들어오는 침식체는 카운터가 힘을 합쳐 막아냈다.
간혹 2종 침식체가 제이크를 지나쳐 아군을 위협했지만, 전황은 이미 뒤집혀 있었다.
“2종이다! 진형을 무너뜨리지 마라!”
“카운터가 우릴 지켜준다. 침착하게 화력으로 밀어붙여!”
용병 출신 카운터나 특수전 대대 소속 군인들이 나서 2종의 발을 묶고 공중에서 연이어 정밀 폭격이 쏟아졌다.
2년간 무수한 피해를 낳으며 쌓인 대(對) 침식전 교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얼굴에 점점 화색이 돌았다.
잠시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2종을 막던 한 분대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런, 조심해!”
오거(Ogre) 타입 침식체의 칼날이 군인의 방패 위로 떨어졌다.
체중 차이에 밀린 군인이 바닥을 굴렀다.
일촉즉발의 상황.
죽음을 직감한 군인이 눈을 감았다.
“읏차, 한눈팔면 큰일 나요?”
다시 눈을 뜨자 셔츠 앞섶을 풀어헤친, 장도를 든 여고생이 앞에 있었다.
검 끝에서 반으로 베인 침식체의 체액이 뚝뚝 떨어졌다.
“아. 고, 고맙다 얘야.”
“아하하, 뭘 이 정도로요. 음~. 슬슬 끝날 것 같네.”
끝이 없던 공세는 어느새 한눈에 적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제이크가 이내 마지막 남은 3종 침식체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걸로, 끝이다!”
땅에 내리꽂은 주먹으로부터 푸른 전격의 파동이 전장 가득 퍼져나갔다.
사방에 즐비한 시체 사이로 병사들이 분주히 오간다.
싸움은 끝났으나 전장 정리가 남아있었다.
침식체의 사체를 모아 한곳에 쌓고 전우들의 시체를 따로 눕힌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수많은 죽음이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제이크 역시 그 가운데 있었다.
복부 아래가 잘려나간 시체.
내장이 새어 나와 진창이 된 상체로 그가 손을 뻗었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병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병사의 눈가를 쓸어내리자, 은색 군번줄이 손가락에 걸렸다.
힘을 줘 줄을 끊어냈다.
금속 소리를 내며 딸려 나오는 인식표.
반 살라자르(van salazar) 일병.
제이크는 한참을 인식표를 들여다보았다.
“대령님, 전후 처리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만 들어가서 쉬십시오.”
방어부대 사령관이 다가와 그에게 말했다.
“아니, 나도 돕지. 어디든 일손이 부족하지 않나.”
“대령님은 단순한 지휘관이 아닙니다. 대령님이 곧 우리 최강의 전력 아닙니까.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또한 대령님의 역할입니다.”
그의 말대로 현재 제이크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대피소로 몰려드는 공세.
델타세븐은 매일같이 각 방어선을 오가며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체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기진맥진해 온몸이 떨렸다.
그럼에도 자리를 비우지 않은 것은 의무감 때문이었다.
이 광경을 두 눈에 담아둬야만 한다는 의무감.
제이크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고선 사령관에게 인식표를 건넸다.
“전사(戰死) 보고를 부탁하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근방 강을 해자로 삼아 방어선을 만든 제1 대피소.
전략특수전사령부 부지(敷地)에 위치한 제2 대피소.
끝으로 파괴된 시가지를 주둔지로 한 제3 대피소.
지금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거점이었다.
델타세븐은 대전쟁 발발 이후 살아남은 군인과 용병을 긁어모아 전략특수전사령부를 중심으로 삼각 방어선을 구축, 핵심 전력인 델타세븐을 기동 타격 부대로 활용하여 침식체의 공세를 막아냈다.
사령관인 마리아 안토노프 중장의 지시였다.
마리아는 소장이던 시절 처음 침식체가 관측된 이후 줄곧 상부에 대 침식전 방어 전략의 수립을 요청했다.
대부분은 묵살당했지만.
그러나 그는 단념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휘하 부대에 지시해 별도의 훈련을 진행하거나 독자적인 보급선을 확보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거점마다 침식 재난시 대피소를 지정하고 방어 계획을 세운것도 그의 수완이었다.
결국 마리아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최악의 경우로.
전략특수전사령부 본청에 설치된 통합 사령실.
사령실 문이 열리고 제이크가 안으로 들어오자 주변에 있던 몇몇 병사들이 경례를 올렸다.
제이크는 그들을 지나쳐 사령실 가장 안 쪽, 참모부서로 향했다.
작전참모가 그를 보고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령님.”
“상황은?”
의자에 앉아 용건부터 꺼내는 무례함에 눈살을 찌푸릴만도 하건만 참모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인사치레를 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걸 그 또한 아는 것이다.
“각 대피소에서 피해 상황을 종합했습니다. 제1 대피소의 피해는 경미. 제3 대피소는 피해가 극심합니다. 본 사령부의 경우 병력손실은 비교적 적으나 남쪽 전선이 일시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사령부 남쪽에는 차원 함선을 건조하는 조선소가 위치해있다.
본래라면 철저히 지켜져야 마땅한 최고 보안시설이지만, 연이은 공세로 병력의 소모가 심해 도저히 예전처럼 전선 유지가 불가능한 것이다.
제이크가 침을 삼켰다.
“그래서, 피해는?”
“건조중이던 엔터프라이즈 호가, 파괴되었습니다.”
둘 사이에 침울한 공기가 감돌았다.
델타세븐이 보유하던 차원함선은 모두 파괴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뉴 오하이오 한 척뿐.
엔터프라이즈는 남은 물자를 끌어모아 건조중이던 마지막 함선이었다.
즉, 이제 더 이상의 함대 보충은 없다.
제이크가 침음을 흘렸다.
“그나마 병사들의 피해가 적다는게 다행인가….”
“죄송합니다, 대령님.”
“아니, 3종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이 우리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선소를 지키자고 다른 대피소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 사령관님께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시진 않았겠지.
제이크가 애써 아쉬움을 털어내며 물었다.
“놈은?”
참모가 테이블에 설치된 패널을 조작해 위성사진과 레이더를 띄웠다.
“4종 침식체는 여전히 기존대로 이동중. 지금 추세대로라면 약 2주 후, 본 사령부에 도달합니다.”
4종 침식체.
대균열 발생 이전 관측된 3종을 뛰어넘는 개체.
사실상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이다.
“이전 회의에서 나온 안건대로 사령부를 옮길만한 예비 부지를 물색중이나, 4종의 활동으로 흥분한 침식체가 사방에서 날뛰는지라 정찰이 쉽지 않습니다.”
“부대를 옮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야. 놈이 다른 대피소로 발길을 돌린다면 상황은 이전과 같다.”
“예, 그러니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합니다. 하지만….”
4종의 등장 이후 인류는 두차례 대규모 작전을 펼쳤다.
첫 시도는 4종의 토벌 작전.
대전쟁 초기 남은 병력과 물자를 모두 동원해 4종을 처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토벌 부대의 반 이상을 잃고 간신히 후퇴했다.
오히려 그 때 입은 부상으로 한동안 제이크 본인이 전선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그 전력의 공백으로 인류측이 전쟁 초 숱한 중요 거점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후 4종은 멈추지 않고 진격했다.
경로상의 모든 도시와 병력을 불사르며 대륙을 횡단하는 놈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놈이 이 사령부를 목표로 삼은 건 약 3주 전.
이대로 전진할 경우 사령부가 4종의 발 아래 불탈것이란 예측이 나오자 두 번째 작전으로 유인 계획이 세워졌다.
4종의 시선을 끌어 발길을 돌리겠다는 작전.
그러나 이 역시 실패했다.
부대를 투입해 호위 병력을 뚫은 다음, UAV를 동원해서 4종의 주의를 끌어보려 했으나 주변의 침식체를 뚫지도 못 한 것이다.
부대의 진격이 멈춘 사이 4종은 발길이 묶인 부대를 모두 집어삼키고 유유히 전진했다.
그리고 이제, 놈은 2주 거리까지 다가왔다.
인류의 절반을 불태운 악마가.
제이크와 참모 사이에는 침묵만이 멤돌았다.
작전 회의를 파(罷)한 제이크는 군 병동으로 향했다.
장성급 이상이 입원하는 집중 치료실 앞에 도착하자 마침 군의관이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사령관님의 용태는 어떻지?”
군의관이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꼬를 틀었다.
“솔직히 좋지 못합니다. 부상으로부터 침식이 이미 많이 진행되어 의식을 되찾으시는건 어려울 듯 합니다. 오히려 앞으로 며칠이나 더 버티실지.”
“그래, 알았다.”
제이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하자 군의관 옆에 있던 한 의무병이 그를 말리려 들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군의관이 의무병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30분만입니다.”
“고맙군.”
침대에 누운 마리아의 모습은 초췌했다.
그는 어디에 연결된것인지도 모를 관과 전극을 온 몸에 달고 죽은 듯이 잠들어있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선 호흡도 스스로 하지 못한다.
한 때 그토록 건장했던 여걸(女傑)의 모습은 거짓이었던 것 마냥.
유인 작전 당시 제이크와 마리아는 현장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작전이 실패하자, 마리아는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 그를 피신시켰다.
인류 최강의 전력을.
제이크가 침대 앞에 서서 경례를 올렸다.
“보고드립니다, 사령관님. 오늘 제 11차 대공습이 있었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극심하여, 건조중이던 엔터프라이즈 호가…파괴되었습니다.”
제이크가 주먹을 쥐었다.
통증에도 멈추지 않는다.
“4종은 여전히 건재. 지금으로부터 약 2주 후 본 사령부에 도달할거란 예측입니다.”
현재 군에 장성급 지휘관은 더러 있었으나 작전 지휘권은 델타세븐 간부들에게 승계되었다.
대 침식전 경험이 가장 풍부한 그들이 지휘에 적합하단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남은 델타세븐 인원 중 최선임자는 제이크.
마리아 중장이 의식불명인 이상, 군의 총 지휘관은 제이크 본인이었다.
“사령관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그는 태생이 무인(武人)이었다.
델타세븐 창설 이래 작전을 짜는 것은 항상 사령관인 마리아와 내사과 소속 카린의 몫.
도미닉 준장과 제이크는 전투만을 담당했다.
간부로서 전술학을 공부하긴 했으나 현장 지휘와는 연이 없는 군생활을 보냈다.
“일어나주십시오, 사령관님.”
그리고 지금, 남은 인류의 명운이 제이크의 어깨에 걸려있었다.
그의 지휘에 따라 수천, 수만이 움직인다.
그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수십, 수백명의 목숨이 헛되이 사라진다.
방어 거점은 셋이나 되며 그의 몸은 하나뿐이다.
3종이 사방에 넘쳐나는 이 미친 세상에서도 그는 누굴 먼저 구할지, 어딜 먼저 지킬지 선택해야만 한다.
보다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타인의 목숨을 저울 위에 올리고 고르는 책임.
그 오만이 제이크의 발목을 붙들고 끌어내렸다.
전우들의 형상을 한 해골이 사방에서 그에게 손을 뻗는다.
인류 최강의 사내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분루(憤淚)를 흘렸다.
“제겐, 너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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