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는 티타노마키아 당시 가이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크로노스에 의해 저승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로스에 유폐된 티탄 삼형제를 구출해주었다. 이들은 이후 제우스에게 벼락을, 포세이돈에게 삼지창을, 하데스에게 투구를 만들어주었는데 이 벼락을 아스트라페, 또는 케라우노스라고 부른다.****
“대령님! 정신 차리십시오, 대령님!”
이 목소리는, 소령인가?
카린이 애타게 외쳤다.
동굴 안에서 소리치는 듯 사방으로 울리는 목소리.
폭음과 총성이 가득한 전장 한복판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온 세상이 빙빙 돈다.
아니, 도는 건 제이크 자신의 시야였다.
군복은 검게 말라붙은 피로 흥건했고 복부엔 깊은 자상이 패여 지금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후퇴! 후퇴한다! 전 병력은 북동쪽에 화력을 집중하라!”
사령관님의 목소리다.
여긴 어디지?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으아아!
이 괴물 놈들!
살려줘, 살려줘!
도와주십시오, 대령님!
총성. 비명. 폭음. 쇳소리. 엔진의 배기음. 괴물의 울부짖음.
머릿속은 안개가 낀 듯 혼탁하기만 했다.
흐려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으려는 제이크의 옆으로 거대한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지는 폭발.
피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판단에 카린이 제이크를 감쌌다.
작은 소녀의 몸으로 자신보다 배는 큰 체구의 제이크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흙이 비산하고 사방으로 쏟아졌다.
고개를 저어 흙을 털어낸 카린이 다시 앞을 바라보자 육중한 거구의 사내가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부사령관님!”
준장님?
“으으….”
“대령님! 정신이 드십니까?”
“소령. 대령을 데리고 후퇴하도록. 여긴 내가 막겠다.”
“부사령관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같이 피하셔야 합니다.”
도미닉이 군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
검은 반 팔 티셔츠 위로도 잘 단련된 상체 근육이 돋보였다.
“모두 함께 피신할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누군가는 본대가 퇴각할 때까지 적의 발을 묶어둬야 해.”
“도미닉, 자네를 두고 갈 순 없네! 시간을 벌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다급히 곁으로 다가온 마리아를 돌아보며 도미닉이 씨익 웃었다.
“사령관님께서 남는다면 지휘는 누가 맡는단 말입니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투원은 대체할 수 있지만, 사령관님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주저했다.
“그렇대도, 어떻게 자네를 버리고 간단 말인가. 분명 모두 함께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나 도미닉의 의지는 굳건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사령관님.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주변에서 수많은 목숨이 사그라져갔다,
비행형 침식체가 활공하며 전투기와 차원 함선을 격추했다.
짐승의 형상을 한 침식체가 사방을 질주하며 병사들의 멱을 물어뜯었다.
더 늦기 전에 선택해야만 한다.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릴지.
“사령관님, 무운을 빕니다.”
도미닉이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침식체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등으로부터 강철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부사령관님.
안 됩니다, 부사령관님.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부사령관님.
부사령관님!
“허억!”
제이크가 모포를 걷어내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어두운 방 안, 러닝셔츠를 입은 그의 상체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이랬다.
단 하루도 악몽 없이 편히 잠들어 본 날이 없다.
눈을 감으면 그가 지키지 못한 전우들의 최후가 떠오른다.
컴컴한 방 안 구석에서, 함선 복도의 그늘에서, 한밤중의 주둔지 골목에서 죽어간 전우들이 그를 노려본다.
불에 타서 피부가 녹아내린,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내장과 뼈가 훤히 드러난 전우들의 시체가 절규한다.
어째서 우릴 구해 주지 않았냐고.
어째서 너만 살아남았느냐고.
최강이라면서, 델타세븐 최고의 루키 라면서.
텅 빈 시체의 두 눈동자에 시커먼 불길이 타오른다.
왜.
왜.
왜.
제이크가 오른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왼손을 뻗어 다급히 침대 옆 탁자의 진정제를 찾는다.
떨리는 손은 몇 번이나 미끄러졌고, 가까스로 약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겨우 노크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제이크가 걸어 나와 사령관실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대령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병사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렵다는 듯 용건을 꺼내길 주저했다.
“보고할 안건이 있다면 어서 말하도록.”
거듭 입술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던 병사가 이내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곤 말했다.
“지난 새벽, 마리아 안토노프 중장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델타세븐의 차 선임자는 제이크 워커 대령님이므로, 현 시간부터는 대령님께서 공식적인 총사령관이십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문에 가려 병사에겐 보이지 않는 제이크의 왼 주먹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휘관은 항상 냉정하고 냉철해야 하니까.
이 병사에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제이크가 천천히 눈을 감고 대답했다.
“…알겠다. 곧 내려가지.”
“옛, 사령관님.”
경례를 올린 병사가 문을 닫고 돌아가자, 제이크는 사령관실에 딸린 화장실로 향했다.
좁은 방 안이 오늘따라 유독 넓게 느껴졌다.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고선 한참을 세면대를 붙잡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들자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몇 주 째 잠도 제대로 못 자 초췌하기 짝이 없는 얼굴.
눈가엔 짙게 다크서클이 드리웠고 면도할 시간조차 없어 턱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다.
제이크는 이를 악물었다.
사령관님.
눈을 감자 지난번 유인 작전 때 자신을 피신시키던 사령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이크, 병력을 데리고 후퇴하게. 이제부턴 자네가 델타세븐의 지휘관이야.’
‘엔터프라이즈호가 건조될 때까지 버틴다면 아직 승산이 있어. 사령부를 중심으로 버티면서 패잔병을 수습하게나.’
‘이 늙은 목숨, 앞으로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나. 내가 시간을 벌겠네. 모두 퇴각하도록.’
‘죽으러 가는 게 아니야, 제이크. 사령관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걸세.’
마리아는 그 말대로 의무를 다했다.
온몸이 그을리고, 장기가 뒤틀려도 꿋꿋이 모두를 피신시킴으로써.
제이크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마리아를 구출해 함선에 태우는 시점에서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 이제야 찾아온 것뿐이다.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드득.
세면대가 그의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또다시 환청이 들려온다.
거울에 비친 어두운 방 안에서 죽어간 동료들이 그를 노려본다.
악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사령실엔 이미 작전참모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모여있었다.
제이크를 본 간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
제이크는 불편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은 채 경례를 받고선 상석으로 가 앉았다.
작전참모가 일어나 브리핑을 했다.
“지난 새벽 xx시, 마리아 안토노프 중장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전시 상황이므로 별도의 절차 없이 델타세븐 차 선임자인 제이크 워커 대령님께 지휘권이 이양되었습니다. 현 시간부터는 워커 대령님께서 정식으로 총사령관직을 수행하실 겁니다.”
간부들 사이에 이견(異見)은 없었다.
“그럼 사령관님,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령관이란 단어가 제이크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무거운 납덩이가 짓누르는 듯하다.
“어제 새벽 무인기의 관측 보고에 따르면 4종 침식체는 이제 본 사령부로부터 약 110km, 10일 거리 이내까지 접근했습니다.”
스크린에는 항공촬영한 4종 침식체의 사진과 레이더 화면이 띄워졌다.
관측 결과에 따르면 놈은 수많은 호위 병력을 거느리고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사령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이동 경로상에 무엇이 있든 별 의미는 없으리라.
그저 무참히 불탈 뿐이니까.
참모가 뒤이어 설명했다.
“지난번 두 차례의 대규모 작전에서 확인된 4종의 공격 범위를 고려해보았을 때 일주일 뒤까지 대책을 강구(講究)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패배입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전쟁 초와 비교해 확연히 줄어든 작금의 병력과 물자로 4종을 막을 방법 따윈 없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아는 것이다.
지금의 저항은 그저 최후를 받아들이기 싫어 발버둥 치는 것뿐이라는 것을.
한 장교가 손을 들고 말했다.
“지난번 유인 작전을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령부를 옮길 때까지만 시간을 번다면.”
“소용없을 겁니다. 지난번 작전 때도 호위 병력조차 뚫지 못하고 실패한 것을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전보다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시도한다면….”
“그러다 실패하기라도 하면 이젠 재기(再起)조차 불가능합니다.”
장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내사과의 카린 웡 소령이 제안한 작전이 있지 않았습니까? 차원 통로를 열어 고심도 이면세계에 4종을 유기한다는.”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의 이터니움 공학 기술로 고심도 이면세계로 향하는 통로를 열 수 있을지부터가 불확실하며, 또 설령 통로 생성에 성공한다고 쳐도 다이브를 한 인원들이 돌아올 수 있을지 또한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4종을 피해서 주둔지를 옮기는 것 외에는 방법이….”
“놈이 다른 대피소로 향한다면 상황은 종전과 같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제이크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크로스로드(Crossroad) 작전.
고심도 다이브를 통해 이면세계와 연결된 차원통로를 개방하고 네피림을 통로까지 유인, 사람이 살지 않는 이면세계에 격리한다는 작전이었다.
작전 안을 받아본 마리아는 단박에 각하했다.
4종을 통로까지 유인하는 것은 어찌 가능하다고 쳐도, 이 작전은 다이브를 시도하는 인원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상 자살 특공이었다.
물론 작전 안 말미에는 차원 간 압력 차이에 적응하지 못한 4종을 격퇴하고 귀환한다는 서브플랜이 적혀있었지만, 희망 고문일 뿐이었다.
참가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작전.
군인이 되기로 한 이상, 언제든 죽을 각오는 되어있었다.
하지만 내 판단으로, 부하들의 목숨을 내걸라고 명령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제이크. 홀로 위험 부담을 지겠다는 자네의 숭고한 자세는 물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가끔은 부하들을 좀 더 믿어보는 게 좋아.’
사령관님.
‘대령. 진정 강한 것은 무력(武力)이 아닌 통솔력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조직임을 명심하도록.’
부사령관님.
‘자네는 분명 훌륭한 군인이 될 거야. 요즘 따로 전술을 공부하고 있다면서? 하하, 아직 사령관직을 물려줄 생각은 없었는데. 벌써 내 자릴 넘보는 건가?’
‘강인한 육체에 강인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단련을 게을리하지 말게, 대령.’
‘오늘도 훈련인가, 제이크? 땀 흘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내 방에서 차나 한잔 마시는 건 어떤가?’
‘술과 담배를 멀리하도록. 상관이 군기가 흐트러져서 어찌 부하에게 모범을 보이겠나!’
‘군인이 된 이유 말인가? 하하, 웬일로 그런 걸 다 물어보나?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잡생각이 든다는 건 아직 몸이 충분히 피로하지 않다는 증거다. 훈련이 부족하군.’
‘때론 자네 같은 후배들을 보고 있으면, 슬슬 난 은퇴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
‘굳건한 신념만이 사람들을 이끄는 법이다. 가슴속에 품은 긍지를 항상 기억하게, 대령.’
‘결국, 조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지. 그것 외에 다른 건 생각해 본 적 없네.’
‘국가에 봉사하는 게 군인의 의무이며, 난 언제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적어도 델타세븐 부대원들은 같은 생각일 터이지. 자네도 그렇지 않나, 대령?’
“모두 그만.”
좌중의 시선이 제이크에게 모였다.
침을 한 번 삼키고 그가 입을 열었다.
아직도 고민한다.
내 판단이 이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저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의무이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게, 제이크.’
‘위에 선 자가 의무를 외면하는 것은 곧 또 다른 죄악이다, 대령. 책임에서 눈을 돌리지 말도록.’
사령관님. 부사령관님.
부디 제게 용기를.
“크로스로드 작전을,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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