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마! 그거 조심조심해서 들고 다녀! 섬세한 물건이란 말이다!"

"와트씨도 참, 저도 이제 베테랑이라구요. 애취급은 그만해주시죠."


휴대용 쐐기포를 옮기는 피터의 촐싹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와트는 행여 사고가 나진 않을까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칭 베테랑, 피터는 실전경험에 있어선 분명 외성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긴 했지만 그도 아직 장난기 많을 소년일 뿐이었고

전전긍긍하는 와트의 반응이 재밌어서 그는 점점 더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비안과 와트가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휴대용 쐐기포의

위력은 그 무게만큼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파괴력 테스트를 바로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와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원해서

옮기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피터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와트는

차마 싫은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탄식만 흘리고 있었다.


'그래, 피터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녀석이니까 선은 지키겠지.'


와트는 애써 납득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일어날 사건은 결국

일어난다는걸 피터가 몸소 증명해주는 데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콰앙!

거대한 폭발음과 파편이 튀어나가는 소리가 와트의 귀를 멍멍하게 만들었다.

살다보면 때론 확인하기 싫은것도 직접 확인해야 할때가 오는 법이다.

와트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피터는 완전히 쫄아버린 표정으로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휴대용 쐐기포를 든 채 굳어있었다. 


"야, 야 피터! 어디 다친덴 없냐?"

"네..네? 아.. 제 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와트는 들고 있던 쐐기포를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피터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다치거나 한 곳은 없어 보였고, 그렇다면

이제 그를 혼쭐낼 시간이었다.


"이 얼빠진 놈이! 내가 그거 위험하다 했어 안 했어?"

"자,장전 되어 있을 줄은 몰랐죠!"

"아직 장전된거 빼는게 힘들어서 연구 개량 더 해야 되니까 장전 된 채로 옮긴다고 했잖아!"


피터는 입을 다물었다. 들었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다행히 마을 중심가와는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의 입구라

마을에 피해가 가지 않은 것과, 피터가 무사하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와트는 꺼림칙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와트씨, 죄송해요.."

"후, 아니다. 내가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것도 있으니

나도 잘못이 있어. 그보다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근데요..."

"응?"


피터는 산산조각 나서 폐허가 되어버린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거 큐리안 대장 집인데요."

"아, 빌어먹을."


와트는 그제서야 꺼림칙한 기분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집은 완전히,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잘못 하셨으니 같이 사과하러 가 주실거죠?"

"이 뻔뻔한 애송이 녀석이...!"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와트와 피터는 오후 순찰을 마친 큐리안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다. 특히 와트는 성인으로서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집에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었고, 피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것은 온전히 그의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괜찮네. 어차피 가구같은 것도 별로 없는, 잠만 자는 공간이었거든."


그들의 불편한 맘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큐리안은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원래 내 집이 3층짜리 집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옆에

허밋을 위한 마굿간도 딸려 있고, 테라스에선 제라늄을 키우고,

루프탑에서 달을 바라보며 감자에일을 마실 수 있는 안락한.."

"네? 그냥 컨테이너 비슷한 단칸방아니었.."

"하하하, 물론이죠! 저희가 책임지고 복구해 놓겠습니다!"


와트는 조심성 뿐만 아니라 눈치까지 없는 피터에게 꿀밤을 때려먹이며 사태를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집이 완성되는 동안 어디서 지내시겠습니까?"

"흠, 그렇군. 허밋이 지내는 헛간에서라도 자야하나."

"괜찮으시다면 피터의 집에서 지내시죠. 헛간보다 더럽겠지만.."

"와트씨가 뭔데 제 집 숙박을 허락하시는거에요?"

"임마, 네가 원인제공자잖아!"


큐리안은 그 잠시가 멀다하고 다툼의 불씨를 지피는 그들이 왠지

친형제같다고 생각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나잇대 청년들이 뭔 짓을 하는지 아니까, 별로 가고싶지 않군."

"그럼 와트씨 집에서 지내세요! 홀아비 냄새는 좀 날 수도 있지만."

"뭐 이 자식아? ..대장님, 그럼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서라도.."

"아니, 내 집에서 지내도록 해."


남자 셋의 영양가없는 대화에 난입한 여성의 맑고 침착한 목소리.

막 마을 회진을 마치고 돌아온 엘라였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와트, 귀관의 집에는 여분의 침대가 있나?"

"아니요, 저 혼자 사는 집이라.."

"내 집은 병원을 겸하고 있어서 환자용 침대가 있으니 손님을 받기 더 좋은 환경일거야."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떠올린 피터, 와트 

그리고 큐리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부관님, 결혼도 하지 않은 성인 남녀가 한 지붕아래 

지내는 것은 좀 그렇다고나 할까..."


퍽!


"..커흑!"


와트의 걱정 섞인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라의 보디블로가

복부에 직격으로 꽂힌 큐리안이 저 멀리 날아갔다.


"저 남자는 감히 엄한 짓을 할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을 더 증명해야 하나?"


아마도 그녀를 완력으로 당해낼 자는 이 마을에 없을 것이다.

와트는 공포에 질려 본능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엘라 부관님, 그러면 큐리안 대장님을 저희 집에서 지내게 하고

제가 부관님의 집에서 자면..."


피터는 그의 헛소리를 듣고 다시 불끈 쥐어지는 엘라의 주먹과 

아직도 미동조차 못하고 있는 큐리안을 번갈아 본 후, 멋쩍게 

웃으며 입을 닫았다. 


"와트, 저 인간 오늘 야간 일과 끝나면 내 집으로 오라고 전해줘."

"예,옙."


와트의 대답을 들은 엘라는 고고하게 등을 돌려 멀어져갔고, 

그녀가 흐릿하게 보일때 쯤 비로소 큐리안은 몸을 일으켰다.


"크윽... 여긴 어디..?"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아아.. 문제 없네."


무릎에 손을 얹고서야 겨우 일어서는 큐리안을 보고 와트와 피터는

엘라가 덮쳐지는 일은 결코 없을거란 걸 확신했다. 


"대장님, 엘라 부관님이 야간 일과까지 끝내면 부관님댁으로 오래요."

"알겠다. 부관은 날 환자로 만들어서 환자용 침대에 눕힐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군."


큐리안은 삐그덕거리는 몸을 질질끌어 다시 일과로 복귀했지만,

일과가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신세를 진다니, 그것도 

딸 뻘인 여자의 집에.. 

갔다가 샌드백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 시곗바늘의 흐름은 멈출 수 없었고 결국

일과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퍼졌다. 

큐리안은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마지막으로 마을 한바퀴를 돌며 

장비와 치안을 점검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명분이 없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을 질질끌며, 큐리안은 마을 외곽에

홀로 자리잡은 엘라의 집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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